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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7화 (17/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7화

“아스타로트!!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네가 병신 같은 마인을 빌려 줘서 이렇게 된 거 아냐!!”

루키킬러가 새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마이 씨, 그런 말 하면 못써요.”

엉엉 우는 루키킬러를 마이라고 부르며 달래는 자애로이 쓰다듬는 이가 있었다.

비단결 같은 금발에 투명한 피부, 새하얀 국화꽃 같은 이미지의 미인.

벨제불을 추종하는 종교, 마교의 현 교주인 레이나 아레이드였다.

“병신이라니, 그 녀석이 얼마나 강한데. 그냥 상대가 안 좋았던 거지.”

두 사람 앞에 앉아 있는 남자, 아스타로트는 그리 말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재킷에 청바지, 온갖 금속 장신구를 몸에 걸친 그는 툴툴거리면서 이 장소에 모인 마지막 인물을 돌아보았다.

두꺼운 로브를 입은 한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

후드의 안쪽은 시커멓기 그지없어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인협회의 정보통이자 마인들에게 지령을 내리는 실질적인 지도자.

협회 내에서는 ‘박사‘로 통하는 인물이었다.

후드 아래쪽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늘 놀이공원에 있던 인물들 중, 노바 라디스티와 한서리를 제외하고 주요 인물은 없었다. 특징적인 인상착의도 없고 하니, 제대로 된 정보는 내일이나 되어야 얻을 수 있을 거다.”

박사는 손깍지를 끼며 말을 이었다.

“자토는 광마화까지 써가며 싸운 걸로 보인다. 하지만 격퇴당했지. 노바 라디스티가 극대소멸공격을 사용한 모양이야.”

아스타로트가 휘파람을 불었다.

“벌써부터? 셉텐트리온이라고 해도 심한데. 발할라 생도란 놈들은 죄다 괴물 아니야?”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건 농담으로밖에 안 들려요.”

호들갑을 떠는 아스타로트에게 레이나가 새침하게 말했다.

박사가 말을 이었다.

“노바 라디스티가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건 계산 내였다. 그래서 상성상 유리한 자토가 그 여자를 처리하기에 적임자라 한 것이고. 하지만 자토를 광마화까지 하도록 몰아붙였다는 자가 누군지는 정확히 아직 알 수 없다. 아마도 새로운 변수겠지.”

검은색 일색인 두건의 안쪽이 젊은 남자를 향했다.

“어쩌면 아스타로트, 네가 직접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아스타로트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 정도까지 해야 하나 싶은데…… 누군지는 몰라도 내가 나선다면야 확실히 죽일 수는 있겠지. 하지만 나도 무적은 아니라고. 발할라 놈들은 정말 장난이 아니야. 정보가 하나둘, 풀리다 보면 공략당하는 건 시간문제야. 내가 앞으로 나설 때마다 다음 싸움에서 내 승률이 떨어지는 건 감안해 줘.”

“고려하도록 하지. 나도 당장 너를 쓸 생각은 없다. 그저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을 뿐이다.”

아스타로트가 마이를 돌아보았다. 마이는 여전히 레이나에게 안겨서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다.

“이봐요, 마이 양. 그래서 자토 놈이 어떻게 죽었는지 설명이나 좀 해 주시죠.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자토가 그리 쉽게 당했다면 경계해야 할 놈인 건 분명해. 구체적인 정보가 있다면 나 외에 다른 녀석들로 쉽게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몰라.”

마이는 슬쩍 아스타로트를 째려보더니 꽥 소리를 질렀다.

“몰라! 둘이서 서로 지지고 볶더니, 뭐에 맞은 것도 아닌데 갑자기 그냥 픽 죽었다고!”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알아?”

아스타로트는 머리를 긁적였다.

“갑자기 사람이 어떻게 죽어. 뭐에 맞았으니까 죽었겠지. 네가 놈의 수를 못 본 거 아니야?”

“안 맞았다고! 그냥, 그냥 서로 맞붙어서 무기랑 손발을 조금 주고받은 게 다인데……! 자토 그 자식, 다음에는 자기가 이길 것처럼 잘난 체하더니 갑자기 죽었다고.”

“갑자기 어떻게?”

“그냥 지 혼자 피를 토하더니 쓰러지던데.”

엉망진창인 증언에 아스타로트는 난감한 얼굴을 했다.

레이나는 그저 웃었고, 박사는 마이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자에 대해서는 내가 다시 알아보도록 하지.”

다들 자신의 말을 못 믿는 눈치다. 마이는 벌떡 일어서서 소리쳤다.

“진짜라니까! 한 번 치고받은 뒤에, 조금 떠드나 싶더니 갑자기 피를 토하면서 죽었다고!”

“그래그래. 무슨 암살권이라도 쓰는 놈인가 보지. 옛날에 그런 만화가 있었는데…….”

“만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야! 진짜라고! 너도 직접 보면 똑같은 말밖에…….”

흥분해서 말을 하던 마이의 입이 멈췄다.

그녀는 갑자기 얼굴을 일그러트리더니 무릎을 꿇었다. 양쪽 귀를 틀어막으며 신음했다.

“뭐야,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아, 아파!!”

틀어막은 손아귀 사이로 새빨간 피가 흘렀다. 그것을 발견한 레이나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마이 씨!! 피가!”

그녀는 서둘러 마이의 어깨를 짚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귀뿐만 아니라 눈에서도 피가 터졌다. 마이의 입이 쩍 벌어지며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악, 아아아악!”

얼굴이 부어오른다. 피눈물이 흐르고, 마이의 머리가 찌그러졌다. 곱던 얼굴이 어린아이가 만져놓은 진흙마냥 기괴하게 뒤틀리더니,

퍽- 소리와 함께 여자의 머리가 터졌다.

“…….”

“…….”

침묵이 흘렀다.

코앞에서 터진 머리통에서 튀어나온 피와 뇌수를 뒤집어쓴 레이나가 큰 눈을 깜빡였다. 머리가 없어진 마이의 몸뚱이가 허수아비처럼 쓰러졌다.

“홀리 쉿!”

기겁을 한 아스타로트가 한 발자국 물러났다. 굳건히 앉아 있던 박사가 침음을 삼켰다.

“거짓말이 아니었군.”

“아아, 마이 씨!”

레이나가 무릎을 꿇고 맨손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의 파편을 주워 모으려 했다.

레이나의 몸에서 마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그런 그녀를 박사가 제지했다.

“잠깐 기다려라. 레이나.”

박사가 고개를 돌렸다.

“아스타로트.”

“기다려. 이미 보고 있으니까.”

아스타로트는 레이나의 맞은편에 앉았다. 손바닥으로 머리가 없는 마이의 몸을 짚었다.

그의 손에서 퍼져 나온 마기가 시체를 잠식했다.

잠시 후,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아스타로트가 시체에서 손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마법은 아니야…… 오라군. 오라를 사용한 기술이야.”

박사는 일순 말을 잃은 것 같았다.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게 가능한가?”

“가능 여부는 따질 필요가 없지. 바로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하지만 여전히 박사는 못미덥다는 듯이 말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오라로 이런 공격이라니, 원시인이 시한폭탄을 만들어 냈다는 수준의 이야기 아닌가?”

아스타로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원시인이라니, 오라 기술을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니야?”

“우습게 보지 않을 수가 있나? 기껏해야 단단하고 날카로운 쇳덩이를 만들어 낼 뿐인 기술 아닌가.”

“그 단단하고 날카로운 쇳덩이로 네놈의 목을 잘라 줄까?”

지금까지 쌓아 온 노력과 수고를 무시당한 전사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럼에도 박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할 수 있으면 해 봐라.”

“그만들 해요!!”

두 사람의 다툼을 막은 것은 레이나였다.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발치의 시체를 가리켰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쳇 하고 아스타로트가 혀를 찼다.

박사 역시 입을 다물었다.

아스타로트는 다시금 꼼꼼하게 시체에서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흩어져 있는 머리의 파편까지 살펴 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오라이긴 하지만, 이건 완전히 다른 체계의 기술이야. 경, 형, 중. 오라를 되도록 단단하고, 날카로우며 무겁게 가공하는 걸 목표로 하는 지금의 체계로는 이런 능력을 발휘할 수 없어. 그렇다고 깊이 없는 잡기술은 당연히 아니야. 내가 보기엔 못해도 수백 년의 연구가 쌓여 만들어진 기술이야.”

그 말에 다시금 박사가 입을 열었다.

“인간들이 마력이라는 것의 존재를 안 지가 100년이 안 되었다. 그런데 수백 년의 연구가 담긴 기술이 어디 있나?”

“이건 마력이 나타나기 전부터 있던 기술이야.”

“그전부터 있던 기술이라고?”

“이건…… 진동을 이용한 기술이야. 타격의 충격으로 만들어지는 진동을 조작하는 기술. 방어구를 뚫고 내부에 피해를 주거나, 물이 담긴 항아리를 쳐서 반대편에 구멍을 내거나 하는 기술이지.”

“그건……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기술이 아닌가?”

“그때는 그랬지. 하지만 그 가능성에 대해서 연구는 계속되어 왔어. 그리고 오라라는 걸 다룰 수 있게 되면서 실제로 그걸 할 수 있게 됐지.”

할 수 있는 모든 조사는 마쳤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스타로트가 손에 묻은 피를 손수건으로 닦으며 레이나에게 손짓을 했다. 얼굴에 튄 핏방울 하나 닦아 내지 않은 레이나는 그가 손짓하자마자 시체의 앞에 주저앉아 흩어져 있는 파편을 손으로 그러모으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마기가 시체의 표면을 덮었다. 하지만 박사는 그쪽에는 관심이 없는지 아스타로트만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그걸 실제로 할 수 있지? 내가 알던 오라 기술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스타로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오라를 형체화시키는 걸 기본으로 하는 지금 기술로는 불가능하지. 하지만 이 기술은 형체화라는 개념이 없어. 오라를 그저 운동 에너지로만 사용하지. 오라로 만든 운동 에너지를 마음대로 조작해서 무언가를 투과해 안쪽으로 찔러 넣는 거야. 방어를 무시하고 상대의 급소를 정확히 노릴 수 있으니까 위력에 비해 마력 효율이 좋아서 오라 연구 초기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목을 맸지.”

“근데 지금은 왜 아무도 그걸 쓰지 않지?”

“실전에서 쓰기에는 기술적인 난이도가 너무 높아. 정확히 급소만 찌를 수 있으면 조그만 바늘 하나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지.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

“막말로 칼로 아무데나 몇 번 쑤셔 주면 죽는데 그런 어려운 짓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리고 애초에 사람이 상대면 아무데나 몇 번 쑤시는 것도 거지같이 힘들어. 그 와중에 바늘로 급소를 찌른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 말도 안 되는 걸 진짜로 하는 자가 나타났다는 거군.”

박사가 침음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데도 혀를 내두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고개를 내젓던 박사가 아스타로트에게 물었다.

“그래도 그 기술에 대해 제법 많은 걸 아는 것 같군. 그러면 이길 수 있겠지?”

아스타로트는 말없이 레이나가 있던 방향을 돌아보았다.

작업이 끝났는지 레이나의 손 안쪽에 모여 있던 고깃덩어리는 어느새 제 모습으로 돌아와 멀쩡한 머리가 마이의 몸통 위에 달라붙어 있었다.

번쩍 눈을 뜬 마이가 쿨럭쿨럭 기침을 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아까처럼 레이나의 품에 달라붙었다.

갓난아기라도 된 것마냥 엉엉 우는 마이.

그것을 안아 주며 레이나가 “괜찮아요. 괜찮아요.”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를 복원한 이후에는 대부분의 마인이 죽음의 충격에 일시적으로 유아 퇴행 등의 증세를 보인다. 아스타로트는 한숨을 내쉬며 되살아난 마이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레이나가 도와주면…… 아니면, 광마화를 하거나.”

레이나는 아주 강력한 마기 회복술을 가지고 있었다. 벨제불의 영향을 받아 신체가 마기에 동화된 마인에 한 해, 훼손이 너무 심하거나 오랜 시간이 지난 것만 아니면 죽은 자까지도 살릴 수 있는 신기에 가까운 능력이다.

광마화, 또는 레이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건 죽음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싸울 수가 없다는 말이다.

박사가 말했다.

“그건 못 이긴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군.”

“그래, 못 이겨.”

“믿을 수 없군. 네놈 정도 되는 자가 그리 쉽게 패배를 시인하다니.”

아스타로트는 핫 하고 웃었다.

“옛날 말이긴 한데, 야구나 권투 같은 스포츠에서 왼손잡이들이 유리하다는 말을 들은 적 있어?”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들은 적 있다.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경기에서는 왼손잡이라는 상대가 익숙지 않아서 어렵다고 하더군. 반면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가 익숙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고.”

“그거랑 마찬가지야. 다만, 이놈은 왼손잡이 정도가 아니야. 기술의 근본 체계부터가 완전히 달라. 어떤 식으로 공격을 해 올지, 어떻게 대응하면 이길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어. 난 못 이겨. 아니, 이 지구상의 전위 대부분이 이놈과 싸우면 질 걸. 자기가 뭐에 당했는지도 모르고 말이야.”

박사가 아는 한, 아스타로트의 강함은 인류 전체를 통틀어 봐도 손에 꼽힐 수 있는 수준의 것이었다. 그런 그가 저리 말할 정도라면 이번에 나타난 변수는 정말로 마인협회에게 크나큰 위협을 줄 수 있는 존재다.

“그 정도의 고수가, 이렇게 갑자기 나타난다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마냥?”

“뭐, 천재라는 놈들은 언제나 돌연히 나타나기 마련이니까.”

박사는 탄식을 토했다.

“얄궂은 일이로군. 이제야 좀 제대로 활동을 시작해 보려는 차에.”

박사가 생각에 잠겼다.

깍지 낀 손에 턱을 얹고 고민한다.

아스타로트 역시 새로운 강자의 등장에 신경이 쓰이는지 말이 없었다. 방안에는 훌쩍이는 마이의 울음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마침내 박사가 고개를 들었다.

“어쩔 수 없다. 새로운 변수에 대한 정보가 모일 때까지 당분간은 활동을 중지한다. 아스타로트, 너는 이번에 잃은 전력을 복구해 놔라. 그리고 레이나, 마이나 다른 마인들이 사고치지 못하도록 단속을 부탁한다.”

“제기랄, 자토 정도 되는 고수를 막 공장에서 찍어 낼 수 있는 줄 알아?”

“알겠어요. 교도들 사이로 지령을 내려 놓겠습니다.”

레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스타로트는 툴툴거렸지만 박사는 그가 이번에 잃은 손실을 금세 복구해 낼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이번 회합은 여기까지로 하겠다. 그럼 보름 뒤에 다시 보도록 하지.”

로브 사이로 빠져나온 손이 손가락을 튕겼다. 불이 꺼졌다.

그리고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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