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8화
마인의 데이지 랜드 테러 사건은 발할라 학생 총 세 명의 활약으로 사건이 종결되었다.
킹메이커라 불리는 슈퍼 루키, 한서리가 열린 게이트를 닫았고 셉텐트리온의 일원인 노바 라디스티가 루키킬러와 자토라는 이름의 특급마인을 격멸한 것으로 조사가 마쳐졌다.
물론 두 사람에 끼어서 활약을 했다 하는 김건에게도 시선이 쏠렸다. 사건의 조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F급 마력적성을 가진 김건이 어떻게 S급 상위의 실력을 지녔다고 판단되는 마인과 호각으로 싸웠는지 의심했지만 의혹은 쉽게 풀렸다.
의혹을 풀어낸 조각은 두 가지.
하나는 한서리가 시연해 보인 버프의 막강한 위력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발할라 입학 전의 김건이 남긴 A급 몬스터 사냥 영상이었다.
명백히 일반인 수준밖에 안 되는 육체 능력으로, 차량도 집어던지는 근력의 오우거와 싸우는 영상.
인간승리라는 말이 어울릴 수준의 처절함이 엿보이는 그 영상에서 김건은 달인에 가까운 전투 기술을 선보였으며, 그것이 가능한 이유 역시 그가 가진 가계의 특성으로 설명되었다.
맨몸으로 오우거를 사냥할 기술을 가진 자와 일반인에게 S급 전위의 능력을 부여할 수 있는 자.
사건의 경위를 조사하던 발할라의 감찰관이 말했다.
“두 사람은 조합이 좋군.”
발할라 아카데미는 능력주의가 강한 집단이었다. 사건의 결과를 보고 받은 교수들은 두 사람이 꽤 좋은 콤비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결과, 한서리가 김건을 파티원으로 받아들이는 걸 조건으로 하여, 두 사람은 하루아침만에 F급 최하위의 하급반에서 최상위에 속하는 상급반으로 반을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한서리는 영웅으로서의 강함 뿐만 아니라 그동안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인재를 발굴한 선구안을 인정받아 영웅 매니지를 주로 하는 업계에도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것이 요 일주일간 있었던 일이다.
그동안 교수와 감찰관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으며 점수를 따내는 아내의 수완에 김건은 그저 감탄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틀간 밤을 샌 탓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한서리가 입을 열었다.
“이걸로 됐어.”
한서리는 그렇게 말하며 김건의 등을 툭툭 두들겼다.
벌거벗은 남자의 상체.
멋지게 조각된 근육이 섬세하게 박힌 등 위로 하얀색 인장이 눈꽃의 형상으로 박혀 있었다. 인장의 위로 마력이 흐르며 푸른빛이 반짝인다.
“발동 조건은 언제나 그랬듯이 신체에 극심한 피해를 입거나, 당신의 진동파야. 주파수는 똑같이 맞춰 놨으니까 쓰던 대로 쓰면 돼. 하지만 예전보다는 출력이 좀 낮을 거야. 최고치가 S급 하위의 강체술 정도…… 유지 시간도 짧아져서 10분밖에 안 되고.”
김건은 등을 타고 흐르는 아내의 마력을 느끼며 말했다.
“음…… 각인의 완성도는 더 높아진 것 같은데, 출력은 왜 떨어진 거야?”
“이전보다 내 마력량이 떨어져.”
고개를 젓던 한서리는 어깨에서 힘을 풀며 “힘들어…….”한숨을 내쉬었다.
“몸이 아직 덜 자라서 그런가, 마력량이 전성기의 70퍼센트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아. 쉽게 하던 걸 어렵게 하려니까 답답하네.”
그녀는 앓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몸을 뉘였다.
옆에 앉아 있던 김건은 아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조급하게 굴지 마. 몸도 금방 크겠지.”
“당신은 어때? 적응이 안 돼서 실력이 줄었다던가…….”
“난 더 실력이 늘은 것 같은데?”
“어떻게?”
새초롬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아내에게 김건은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내 기술에서 중요한 건 마력량이나 힘이 아니라 예민함이니까. 돌아오기 전의 몸은 나이도 먹은 데다 무리를 해서 신경이 다 닳아 버렸어. 끝물이라 티가 별로 안 나긴 했지만 기량이 정점에서 떨어지는 시기였지. 하지만 지금 몸은 달라. 신경계가 아직 쌩쌩해. 헌 거 쓰다가 새 거 쓰는 느낌이야.”
“뭔가 엄청 치사하네. 당신의 제어력은 정말로 사기야.”
“마력적성 SS급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
한서리는 투덜거리면서 살짝 고개를 들어 올렸다.
김건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아래로 베개를 깔아 주었다. 극심한 마력의 소모로 눅신눅신해진 몸 덕분에 정신이 몽롱했다.
그녀는 요 며칠간 남편의 몸에 응급시에 작동시킬 각인을 박아 넣는 데에 온 힘을 기울였다.
영웅들이 기본적으로 각인에 사용하는 진통, 지혈 등의 응급 치료 기능은 물론이고 그녀가 가지고 있는 버프 마법까지 박아 넣었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 일어날 일의 대비책이기도 했다.
“이제부터 마인협회는 당신을 주목할 거야.”
그녀는 그간 계속해서 모아 왔던 마인협회의 활동 자료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말했다.
“실제로 저번 주부터 마인협회의 움직임이 둔해지기 시작했어. 그 말은 녀석들이 당신을 주목하고 있다는 말이지.”
마인협회의 목표는 벨제불의 소환.
그것을 위해서는 이 세상의 더욱 많은 부분이 마계화가 되어야 하며,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마계화를 틀어막고 있는 발할라는 당연히 그들이 무너트려야 할 대상이었다.
이제 좀 제대로 손을 써 보려는 찰나에 상대가 갑자기 듣도 보도 못한 신무기를 꺼내 들었다.
놈들로서는 경계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었다.
김건이 말했다.
“벌써부터 마인협회와 싸우는 건 조금 이르지 않을까? 아직 우리 두 사람의 상황도 안정되었다고 할 수 없잖아.”
모자란 신체 능력을 보강할 수 있는 버프만 받아도 완전해질 수 있는 김건과 달리, 한서리는 가진 능력을 100퍼센트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이 많았다.
성장의 문제로 봉인되어 있는 마력이라든지, 파티의 사령탑으로서 그녀가 다룰 수 있는 장기말의 부족 등.
김건으로서는 조금 더 체제를 갖춘 뒤에 싸움을 벌이는 것이 낫지 않나, 싶었다.
하지만 한서리는 그와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안정되지 않았으니까 하는 거야. 둘뿐인 우리보다 마인협회가 체제를 가다듬는 게 더 느려. 놈들의 세력은 아직 새싹 수준이야. 안정화에 들어가기 전에 이리저리 들쑤셔 놔야 해.”
그녀는 머리칼을 매만지는 김건의 손을 붙잡아 가슴께로 당겨 안으며 말했다.
“당신은 미끼야. 내 예상대로 마인협회와 발할라의 배신자가 한통속이고, 지금 시점에서 그 배신자가 발할라에 이미 들어와 있다면 반드시 당신을 향해 무언가 반응을 보일 거야. 암살이든, 정찰이든, 유혹이든…… 그게 뭐든 간에 행동이 있어. 그리고 만약 거기서 무언가 꼬투리를 잡을 수 있다면…….”
극한의 상황에서 인류의 멸망을 수년이나 연장시킨 책사의 눈에 빛이 번뜩인다.
“우리가 이기는 거야. 저번과 같은 결과는 맞이하지 않아도 돼.”
김건은 흠, 하고 콧소리를 냈다.
“나는 오히려 기린이 걱정인데. 놈의 스타일은 알지만 과거로 돌아왔는데 지금까지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는 게 오히려 불안해.”
“기린은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편이니까. 놈이 무슨 짓을 할지는 미지수야. 그러니 일단은 벨제불의 세력을 먼저 축소시키자.”
김건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를 올려다보던 한서리는 몇 번인가 입을 뻐끔이다가 문득 말했다.
“하지만 기린은…… 아마도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마.”
“왜? 기린에 대해서 뭐가 생각난 게 있어?”
어리둥절해진 김건이 되묻자 한서리는 뭔가 고민하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니야. 그냥…… 감이 그래. 정확한 이유는 떠오르지 않는데 직감적으로 알 수 있어.”
“……알았어.”
김건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한서리는 아아, 하고 짜증을 토해 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우울한 이야기는 이제 그만! 놀래, 놀자, 놀아 줘!”
팔다리를 동동 구르더니 몸을 뒤집어 김건의 몸을 타고 오른다.
몸에 각인을 새겨 넣기 위해 며칠이나 고생을 했으니 힘들기도 할 것이다.
“그래그래.”
김건은 아내의 어리광을 받아 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제대로 씻지 못해 푸석푸석해진 푸른색 머리칼을 정리해 주려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그러자 한서리가 김건의 손을 잡았다.
“이렇게 하는 거야.”
그녀는 그렇게 남편의 손을 붙잡고 머리칼을 정리해 주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마를 스치는 남편의 손톱이 시원했다.
서툴러도, 애정이 담긴 손길에 마음이 흐느적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 김건을 올려다보았다.
“영화라도 볼래? 좋아하는 거 있어?”
“영화?”
아무래도 반응이 미적지근하다. 한서리가 되물었다.
“왜? 영화 별로 안 좋아해?”
“아니, 이때는 별로 본 게 없던지라.”
의외의 사실을 깨달은 한서리가 눈썹사이를 좁히며 말했다.
“당신 혹시 지금까지 문화생활을 해 온 게 있어?”
“어렸을 때는 만화를 많이 봤었지.”
“그다음은?”
“나이 먹고, 정확히 말하자면 발할라에 들어온 이후로는 없어. 연구랑 수련으로 바빠서 그런 걸 쳐다 볼 여유가 없었어.”
주변 사람들에게 일만 사랑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한서리도 여유시간에 즐길 취미 한두 가지는 있다.
전위 중에는 폐관 수련이랍시고 몇 년이고 골방에 처박혀서 싸움 연습만하는 바보들도 많다고 하던데, 그녀의 남편도 그 과인 모양이었다.
한서리는 질려 하는 얼굴로 핀잔을 주었다.
“정말 삭막하기 그지없네. 도대체 싸움 말고 할 줄 아는 게 뭐야.”
“없어.”
김건은 아주 당당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말했다.
“하지만 그 싸움을, 정말 잘하지.”
“……농담이라고 한 거면 웃어 줄게.”
“농담아닌데.”
“으웩, 센스 진짜 구려.”
한서리는 혀를 내밀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이내 장난기 어린 표정이 되어 남편의 턱끝을 치켜올렸다.
“걱정하지 마. 이제부터 내가 인간으로서의 교양을 하나하나 새겨 넣어 줄 테니까.”
그러면서 후후훗 웃는다.
아내의 웃음은 아름답지만 때로 독 오른 장미처럼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쩔 때에는 그 이중적인 부분에 매료될 때가 있다. 김건은 오싹오싹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미소를 지으며 아내의 이마를 쓸었다.
“자, 그럼 뭐부터 볼까?”
솜털이 보송보송한 영화 초보에게 명작들을 전파해 줄 생각에 신이 난 한서리가 컨트롤러로 벽면에 설치된 대형 TV를 조작할 때였다.
밖에서 벨이 울렸다.
“…….”
김건은 현관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정작 이 방의 주인인 한서리는 반응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벨이 울린다.
벨이 들리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는 아내.
하나 얼굴은 이미 불쾌한 감정을 풀풀 날리고 있었다.
김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누가 온 거 같은데.”
“없는 척해. 방해받기 싫어.”
무시를 계속하자 몇 번인가 더 울리던 벨이 멈췄다.
잠시 후, 보안이 해제되며 정상적으로 잠김이 풀렸다는 안내음이 흘러나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누가 들어온 건지 확인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던 김건을 한서리가 잡아챘다.
김건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닥에 누운 아내를 안은 자세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낮은 발소리가 울리며 두 사람이 있는 거실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렇게 나타난 사람은 양복을 걸친 여성이었다.
새하얀 미모에 날카로운 분위기가 서렸다.
눈가에 새겨진 옅은 주름 덕에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노련함까지 깃든 얼굴.
전체적으로 경험 많은 커리어우먼이라는 느낌이 드는 여성이었다.
얼싸안고 있는 두 사람을 본 여성은 웃었다.
“사이가 좋아 보이는구나.”
마치 독 오른 장미 같은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