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9화
여성은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손님이 왔는데 차 한 잔도 안 주니?”
한서리는 꼼짝도 않았다. 눈치를 보던 김건이 대신 주방으로 가서 커피를 타 왔다.
“어머나, 고마워라.”
커피잔을 받은 그녀는 살갑게 웃더니 김건을 쳐다보았다.
“김건 군이죠? 반가워요. 난 안서은이라고 해요.”
그렇게 말하면서 슬쩍 한서리를 쳐다본다.
“서리의 어미 되는 사람이고요.”
그녀가 아내의 어머니라는 건 첫눈에 알았다.
아내가 자주 짓는, 묘한 독기를 품은 고양이 같은 미소. 그것을 가진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아내의 부모님을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거기다 미래에 있을 결혼을 들먹일 수도 없으니 아직은 남남이나 마찬가지인 사이다.
김건은 상당한 거북함을 느끼며 안서은에게 마주 인사를 했다.
그것을 못마땅한 얼굴로 지켜보던 한서리가 싸늘하게 내뱉었다.
“잔소리나 하러 온 거면 그냥 가 줬으면 좋겠어. 할 말 따윈 없으니까.”
“호오~.”
예의범절에 엄격한 부모라면 경을 쳐도 모자랄 발언이었으나 안서은은 그저 느물느물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입에 댔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내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너도 잘 알잖니.”
“…….”
알긴 잘 안다. 한서리는 눈썹을 찌푸리며 팔짱을 꼈다.
그녀의 어머니, 안서은은 철저히 계산적이며 출세 지향적인 인물이었다.
사사로운 감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권력을 쥐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
한씨 가문과의 결혼 역시 출세를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고 그 결과로 낳은 두 자식 역시 이용 대상으로 삼을 뿐인 냉혈녀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녀는 권위 의식과 고지식함으로 똘똘 뭉친 아버지와 달리 말이 통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김건 군에 대해서는 착실히 조사를 해 왔단다.”
안서은은 그렇게 말하며 휴대용 디스플레이 장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 두었다.
손을 휘저어 인터페이스를 건드리자 장치에서 빛이 뿜어져나오며 홀로그램을 구성했다. 허공 위에 이력서 형식으로 정리된 데이터가 좌르륵 펼쳐졌다.
“집안 이력이 상당히 특이해. 대대로 무술을 연구해 온 일가의 자손이라…… 게이트 등장 초기부터 영웅들의 전투 기술 고문으로 활동했던 이력을 보면 혈통에 잠재된 마력적성이 낮았던 게 아쉬울 정도야.”
“…….”
“부모님은 두 분 다 돌아가셨네. 어머니는 몬스터의 습격에, 아버지는 무리한 헌터 활동 중에…… 하지만 본인은 홀로 남아 계속해서 무술을 갈고닦은 끝에, F급 마력적성인 몸으로 감마 몬스터를 홀로 사냥하는 위업을 이뤘어. 그 실적을 바탕으로 이곳에 들어왔고.”
주르륵 내용을 읽은 안서은은 파일을 닫았다.
“이번에 있었던 마인의 테러에서도 상당한 활약을 했다지?”
흥미가 가득 담긴 시선이 김건을 위아래로 쓸었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탁자를 톡톡 두들겼다.
“꽤 재미있는 인물인 건 인정해. 쓸모도 있어 보이고.”
그 말을 하는 안서은의 목소리에는 일체의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정보를 읊을 뿐인 기계를 눈앞에 둔 것 같은 감각에 김건의 얼굴은 점점 싸늘해졌고 한서리의 얼굴은 불쾌함으로 물들어 갔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제이미와의 약혼을 취소하고 프레이저 가문과 척을 질 정도의 가치는 없어.”
김건을 살피던 눈이 천천히 움직여 한서리에게로 돌아갔다.
“넌 부정하겠지만 나는 네 부모로서 그 책임을 떠안아야 해.”
그녀는 딸과 똑같은 자세로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러니 나를 납득시켜 보렴. 설명할 기회를 줄게.”
말 안 듣는 딸을 어르는 것보다는, 실수한 부하 직원을 추궁하는 듯한 어조였다.
한서리는 이맛살을 구겼다.
“그냥 좋아하니까. 그 이상의 이유가 필요해?”
안서은은 높은 목소리로 웃었다.
“재미있는 농담이네. 내가 그런 걸 고려할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널 약혼시키지도 않았단다.”
그녀는 웃음소리를 죽이며 조금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서리야. 내가 아무리 그래도 네 엄마다. 다른 사람들처럼 온갖 정을 다 주며 키우진 않았지만 그래도 내 자식이 어떤 사람인지 정도는 알아.”
“…….”
“특히 서리, 너는 나를 닮은 아이야. 지아비를 닮은 서연이와는 다르게 말이야.”
그러면서 편안하게 허리를 들어 등받이에 몸을 묻는다.
그와 동시에 묘한 압박감이 풍겨 왔다.
“그러니 말해 보렴. 나를 납득시켜 봐. 김건 군을 끌어들이는 것으로 네게 무슨 장점이 있는지, 앞으로 어떤 이득을 취할 수 있는지.”
“……큭.”
한서리가 험악하게 인상을 구겼다.
처음 대화를 시작할 때부터 기세를 빼앗겼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된 이상, 그녀는 김건의 장점에 대해서 설명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해 봐야 남편을 상품처럼 취급하는 것밖에 안 된다. 그러기는 싫었다.
그렇다고 그녀 스스로의 감정을 말하자니 피도 눈물도 없는 어머니라는 작자는 납득이 안 된다고 할 것이 뻔하다.
한서리는 말을 잇지 못하고 망설였다.
김건은 초조해하는 한서리의 옆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는 어머니와의 기 싸움에서 아내가 밀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맨 처음 언니와 마주쳤을 때도 그렇고, 가족들만 만나면 금세 흥분해서 냉정을 잃어버린다.
그동안 쌓인 게 많은 모양이다.
김건이 입을 열었다.
“반지가 참 예쁘네요. 어디서 사신 건가요?”
안서은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가리키며 묻는다.
안서은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라는 표정으로 김건을 쳐다보았다.
자신에게로 시선이 끌리는 사이 김건은 탁자 아래로 손을 뻗어 아내의 손을 꼭 쥐었다.
“……흐음.”
잠깐 의아해하던 안서은의 눈썹이 문득 고운 호선을 그리며 휘었다.
그녀는 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볼룬드에서 구매한 거예요. 왜, 장신구에 흥미가 있나요?”
“아니, 그게, 그…… 누구한테 선물이라도 해 줄까 싶어서요.”
다음에 무슨 이야기를 할지는 생각해 두지 않은 탓에 말을 더듬고야 말았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연 것은 잠깐의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이지 이 자리를 주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살짝 고개를 돌리자 이쪽을 쳐다보던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김건을 쳐다보며 빙그레, 사랑스러운 미소를 띠는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곧 여유만만한 여왕의 미소가 되어 맞은편의 안서은에게로 향했다.
한서리는 손을 뻗어 김건의 팔을 꼭 끌어안았다.
“자기가 납득하지 못한다고 네게 그 시선을 강요하지 마. 난 이 사람을 좋아해. 약혼을 깬 건 단지 그것 때문이야.”
문답무용으로 내려진 결론.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대답이다. 이번에는 안서은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녀가 뭐라고 입을 열기 전에 한서리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무나 내 마음을 가져갈 수 있는 건 아니지.”
한서리는 가슴을 펴며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장담할게. 이 사람은 이 세상 최강의 전위 중 하나야. 그것도 아주 특별하지.”
안서은은 코웃음을 쳤다.
“능력적인 면에서 이점이 있다는 건가? 하지만 F급 마력적성을 가진 사람이 그 정도 힘을 가졌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이야기야. 말은 필요 없어. 그 사실을 대체 어떻게 증명할 거지?”
“증명은 이미 됐어. 이번 사건에서 이 사람이 처리한 마인의 이름이 뭔지 알아?”
“뭔데?”
“자토.”
“…….”
데이지 랜드 테러사건의 상세한 정보는 발할라 내부의 군사 정보처럼 취급되었다.
이미 밖으로 많은 정보가 노출된 루키킬러와 달리, 자토의 이름은 극비 정보다.
김건이 눈치를 주었지만 한서리는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안서은을 노려보았다.
“……자토라고?”
안서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유명한 마인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이름을 잘 알고 있었다.
근 100년간 수많은 영웅을 배출하며 마계와 싸워 온 한씨 가문은 몬스터를 사냥하고 마계의 물품을 취급하는 헌터 사업의 큰손 중 하나다.
당연하게도 안서은은 간부로서 사업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마계화된 지역에서 유통하던 물류가 탈취당한 적이 있었다.
운송팀에 S급 영웅이 호위로 붙었는데도 살해당했다.
그런 건이 무려 2건이나 발생했다.
S급 영웅은 전 세계 인구 수십억을 통틀어도 천 명이 될까 말까 한 귀한 재원이다.
그 귀한 재원과 그 들이 호위하던 가치의 물자를 두 번이나 잃은 손실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해당 사업의 총책임자였던 안서은은 눈이 뒤집혀서 사건을 벌인 범인을 찾았고, 시장에 풀려나온 물자를 역으로 추적해 이번 일이 마인협회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벌인 짓이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거기서 마인협회가 히트맨으로 사용한 자가 바로 자토라는 이름의 마인이었다.
S급 영웅을 둘이나 죽인 특급 마인.
거대 기업의 간부인 안서은이 자존심을 버리고 그 추적을 발할라에 맡겨야 하나 고민할 정도의 강자였다.
“……거짓말은 아니겠지?”
안서은이 의심스럽다는 듯이 물었지만 한서리는 당당했다.
“못 믿겠으면 한번 확인해 보던가.”
“……잠깐만 기다려.”
안서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대기기를 꺼내어 어딘가로 통신을 연결하면서 밖으로 걸어 나간다.
잠시 후, 그녀가 돌아왔을 때 그녀의 안색은 이전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그녀는 탁자 위에 휴대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일단 거짓말은 아니더구나.”
“굳이 그렇게까지 확인할 필요가 있어? 정보료로 대체 얼마를 쓴 거야? 차라리 그걸 날 주지?”
“그건 앞으로 네가 하는 말에 따라 생각해 볼게.”
안서은은 탁자 위로 손깍지를 꼈다. 그러고는 김건과 한서리를 번갈아 보았다.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면…… 김건 군은 F급 마력적성을 지녔으면서도 초월자급의 실력자라는 거지?”
다른 사람들은 한서리가 가진 버프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여 김건의 실력을 과소평가하는 측면이 있지만, 한씨 가문의 버프 마법, 만년설식에 대해 잘 아는 안서은은 그런 오판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녀는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강력한 버프라도 무용지물이 된다는 걸 잘 아는 이였다.
자토에게 당한 S급들이 버프가 없어서 당한 게 아니다.
그들에게는 한씨 가문에서 키운 뛰어난 서포터들이 붙어 있었다. 킹메이커라 칭해지는 자신의 딸만큼은 아니어도 어느 파티에서나 원할 정도로 뛰어난 서포터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졌다.
그리고 그들을 패퇴시킨 자토를, 김건은 별다른 상처 없이 쉽게 쓰러트렸다고 한다. 그 말은 김건의 실력이 최소 S급 상위 이상이라는 말.
안서은은 곧바로 김건에 대한 평가를 수정했다.
“초월자라, 확실히 대단하긴 해. 하지만 F급인 이상 버프의 의존도는 클 수밖에 없고, 초월자 한 명으로는 프레이저 가문을 저버릴 이유가 안 돼. 세라스는 잘 모르겠지만 제이미라면 곧 그 정도 수준은…….”
그 말에 한서리는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초월자? 아니, 그 정도가 아니야.”
고개를 저으며 보란 듯이 김건의 어깨를 짚는다.
“이 사람은 최진철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수준의 전위야.”
최진철.
100년 전, 게이트 발생 초기에 등장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오라 기술의 기틀을 닦았기에 전신(戰神), 혹은 궁극의 무(武)라고 불렸던 대위인.
오늘날에 와서는, 오라의 아버지라고까지 불리는 사람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