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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20화 (20/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20화

모든 전위의 스승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과의 비교에 안서은은 기가 막힌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자신감이 과해.”

“과한 게 아니라 사실이야. 내가 당신을 닮았다며, 그러니 내가 함부로 헛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 텐데.”

“…….”

“이 사람은 아주 특별해. 장담할게. 향후 몇 년 내에, 발할라는 이 사람을 기준으로 움직이게 될 거야.”

‘과장이 심한테…….’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전설적인 인물의 수준으로 격상당한 김건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안서은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는 모양인지 떨떠름한 시선으로 큰소리를 치는 딸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한서리는 자신만만했다.

질린 안서은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후…… 네가 말한 걸 지금 당장 증명하라고 하진 않을게. 하지만 대체 왜 그렇게까지 호언장담할 수 있는지는 설명해 줘야겠어.”

“그걸 이 자리에서 다 말할 수는 없어. 딱 하나, 이것만 알려 줄게.”

한서리는 한 호흡 말을 쉰 뒤 말했다.

“이 사람은, 마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갑자기 내던져진 커다란 화두에 안서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신에게 영향? 정확히 뭘 말하는 거야?”

“그걸 다 말하면 재미가 없지.”

그 말을 끝으로 한서리는 입을 다물었다.

안서은은 그런 딸을 지켜보며 고민에 잠겼다. 지금 한서리가 담은 말은 결코 쉽게 내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신은 그 존재만이 알려졌을 뿐 기본적으로 언터처블, 인간이 감히 손도 댈 수 없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가끔씩 선보이는 힘의 파편만으로도 인류는 역사에 남을 만한 재앙을 겪어야만 했으니까.

그런 마신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니?

다른 사람이 비슷한 말을 했다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사기라고 단정 지었을 수준의 발언이다.

하지만 그녀가 말했던 대로 한서리는 그녀 자신을 닮았다. 결코 이런 자리에서 헛소리를 입에 담을 만한 이가 아니었다.

그녀는 한참이나 생각을 거듭한 뒤에 입을 열었다.

“정말로 김건 군이 마신에게 무언가를 할 수 있고, 그게 지금의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고 한다면…… 서리, 네가 방금 전에 한 말은 진실이 될 거야. 당장은 네가 한 말을 부정할 수 없으니 일단 정말로 김건 군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고 치자. 그러면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해.”

안서은은 검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첫째는 약혼을 깬 탓에 일어날 프레이저 가문과의 마찰인데…… 이건 감당하지 못할 수준의 문제는 아니니 넘어가자. 진짜 문제는 다음에 있어.”

그녀는 검지에 이어 중지를 펼쳤다.

“마신에게 영향을 끼칠 수단이 있다…… 실제로 그렇다고 한다면 김건 군은 그런 능력을 갑자기 어디에서, 어떻게 얻은 거지?”

의심의 눈초리가 김건에게로 향했다.

“그간의 기록을 보면 김건 군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아. 그나마 능력을 발휘했다고 여겨질 만한 건 이번에 자토를 상대한 일뿐이야. 그전까지만 보면 조금 특이한 생도일 뿐, 그것 이상, 그것 이하도 아니지.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오라의 아버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마신에게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그게 가능한 일인가?”

한서리가 뭐라 입을 열려 하자 안서은은 손을 들어 올려 그것을 제지했다.

“이건 김건 군의 말을 들어 보고 싶은데.”

아내와 눈을 마주쳐 의견을 교환한 김건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굳이 말해 봐야 갑자기 깨달음을 얻었다고밖에 못하죠.”

고상한 전위들이 흔히 하는 말에 안서은은 눈썹을 찌푸렸다.

“선문답을 하고 싶은 게 아니에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 주었으면 좋겠군요.”

“무슨 하늘의 뜻을 깨달았다든가, 만물의 이치를 알았다든가하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냥 평범하게 노력을 거듭한 끝에, 어느 날 갑자기 못하던 걸 할 수 있게 된 것뿐이죠.”

김건이 벌써부터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 것은 미래에서의 회귀 덕분이지만 갑작스러운 성장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이전의 삶에서도 그랬다.

발할라에 입학한 이후 김건이 성장을 이어 나갔던 것은 처음의 3년뿐이었다. 그 이후로는 완전히 벽에 가로막혀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무언가를 추구하다 보면 누구나 맞닥트리는 절망의 벽. 한 인간이 홀로 넘기에는 너무나도 높은 장애물.

하지만 김건은 이 세상 유일의 F급 영웅이었다.

따라서 그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F급 마력적성을 가지고 영웅이 된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스승도 없고, 선례도 없고 누군가가 남겨 놓은 자료도 없다.

조언을 받고 싶어도 그 영역에 대해 그보다 잘 아는 사람이 없고, 모두가 불가능이라 생각하니 아무도 도움을 주려 하지 않았다.

남들에게 받는 것이라곤 오로지 멸시와 모멸의 시선뿐.

하지만 김건은 버텼다.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연구했다.

노력을 거듭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의 앞에 서 있던 벽이 허물어졌다.

아무런 예고나 전조도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자신이 그토록 바랐던 경지에 어느새 도달해 있음을 깨달을 뿐이었다.

그 감각은 아무리 설명을 해도 다들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김건은 미사여구를 빼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기술 이론을 근래에 들어 완성시켰습니다.”

“기술 이론? 그게 어떤 건지 설명해 줄 수 있나요?”

“설명보다는 직접 보여 드리죠.”

김건은 그렇게 말하며 탁자에 손을 올렸다.

다음 순간,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홀로그램 디스플레이어가 퍽 소리와 함께 터져 나갔다.

그게 끝이 아니다. 웅- 하고 묘한 소리가 울리자 멀쩡히 서 있던 탁자가 갑자기 주저앉았다.

“뭐…… 뭐야?”

깜짝 놀란 안서은이 아래를 살펴봤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탁자의 다리를 부러트렸나 싶어 흔적을 찾아봤지만 부러진 탁자 다리 따윈 없었다.

탁자의 다리가 완전히 소실되어 있었다.

남아 있는 건 방금 전까지 탁자의 다리를 이루고 있었을 것이라 추측되는 톱밥뿐.

살짝 탁자 위를 만진 것만으로 디스플레이를 폭파시키고 건드리지도 않은 탁자 다리를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듣도 보도 못한 기술에 안서은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대체 뭘 한 거죠? 특수한 계통의 마법인가요?”

김건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순수한 오라 기술입니다.”

그 말을 들은 안서은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저 탁자를 부쉈을 뿐이지만 그 방식이 범상치 않다.

그녀가 알고 있는 상식선에서 오라 기술로 이런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보통의 것이 아니다. 사업가로서의 본능이 강렬하게 무언가를 호소했다.

이건 분명히, 돈이 되는 물건이다.

탐욕스러운 눈이 김건을 훑었다.

“어떤 기술인지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요? 아니, 혹시 우리 기술 연구소에 가서 다시 한번 보여 줄 수…….”

그 앞을 한서리가 가로막았다.

“웃기지 마. 이 이상은 대외비야. 뭔가를 더 보고 싶으면, 대가를 지불해.”

“어머, 가족한테 너무 매정한 거 아니니?”

“너무해? 그걸 가르친 게 바로 당신이야.”

“협상 상대를 향해 날카로운 모습을 보이는 건 좋지 않다고도 했는데, 그건 잊어버린 모양이구나?”

혀를 차는 한서리.

반면에 안서은은 미소를 지으며 도로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아주 흥미진진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방금 그걸로 김건 군이 뭔가 신기한 능력을 지녔다는 건 알았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그런 힘을 얻었다고 하면 대부분이 믿지 않을 거야. 어쩌면 마인으로 지목당할지도 몰라.”

“그건 아닙니다. 벌써 의심을 받은 적이 있어서 검사를 받은 적이 있어요.”

“알아요. 하지만 나는 평범한 마인을 가리켜서 한 말이 아니에요.”

“평범하지 않은 마인이 또 있습니까?”

“있죠. 바로 화신이라는 존재가.”

화신, 신의 아바타.

마신의 조종을 받는 인간이라는 기준에서는 마인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그저 꼭두각시일 뿐인 마인과 달리, 화신은 마신의 의지가 깃든 존재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달랐다.

인간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강림한 마신. 그게 바로 화신이었다.

역사상 화신이 등장한 것은 한 번밖에 없었다. 10여 년 전, 벨제불의 화신이 강림해 한 도시의 인간이 몰살당한 적이 있었다.

김건은 ‘그건 좀 아니지 않나요?’ 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화신이었으면 이런 변명을 할 시간에 주변 인간들을 싸그리 죽였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야.”

한서리가 끼어들었다. 그녀는 정보력이 부족한 남편을 대신해 말했다.

“사람들에겐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만 10년 전의 사건에서, 화신은 상당한 기간 동안 인간 행세를 하며 활동을 했다고 해. 조사에 따르면 이전에 있었던 검사에서도 마기가 검출되지 않았대.”

안서은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못 보던 사이 정보력이 많이 늘었구나. 어느 소스에서 얻은 건지 궁금하네.”

“알려고 하지 마. 어차피 모를 테니까.”

매섭게 쏘아붙인 한서리가 이야기를 정리했다.

“어쨌든, 사실상 화신이 마음먹고 몸을 숨기면 인간이 그걸 밝혀내는 건 불가능해. 설령 밝혀낸다 해도 그걸 어찌할 방법 따윈 없고 말이지. 그러니 그건 전혀 쓸모가 없는 의심이야.”

“네가 마신을 운운하니까 그러는 거야. 누군가가 어느 날 갑자기 네가 말한 수준의 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하면 그게 화신이 되었기에 생긴 능력이 아니냐는 의심을 피할 수 없어. 실제로는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공격당할 여지가 굉장히 많지. 그러니 미리 대비해 두라는 의미에서 한 말이야.”

한서리는 코웃음을 쳤다.

“걱정도 팔자야. 내가 알아서 해. 신경 쓰지 마.”

“뭐, 좋아. 그렇게 넘어가 줄게.”

고개를 주억거린 안서은이 말을 이었다.

“일단 네가 아무 생각 없이 일을 벌인 건 아니라는 걸 잘 알았어. 하지만 네 아버지는 그런 걸 신경 쓸 사람이 아니야. 지금은 바빠서 괜찮아. 주변에서도 네 이야기가 귀에 들어가지 않게 하고 있고.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어. 그이가 이걸 알게 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네가 그 어떤 설명을 하든 말이야.”

“그 정도는 알고 있어.”

“알고 있으면 됐다.”

안서은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납득했으니까, 조금은 시간을 벌어 줄게. 그러니 일이 터지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해 둬.”

맞는 말이지만 수긍해 주기는 싫다.

한서리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있으렴.”

인사를 하고 방을 빠져나가던 안서은이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아, 말한다고 하고 깜빡 잊은 게 있는데.”

“뭔데?”

안서은은 나이에 맞지 않게 악동 같은 미소를 지었다.

“피임은 꼭 신경 써서 하렴. 아이가 생기면 모두가 골치 아파지니까.”

“하?”

“…….”

한서리의 이마에 핏줄이 돋았다. 김건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한 사람은 분노로, 한 사람은 부끄러움으로 말을 못 잇는 사이 안서은은 손을 살래살래 흔들며 사라졌다.

평온했어야 할 시간을 누구 때문에 다 망쳐버렸다.

한서리는 한숨을 쉬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그런 아내를 향해 김건이 말했다.

“그런데, 나랑 최진철이랑 비교하는 건 좀 무리수라고 생각하지 않아?”

“뭐가 무리순데?”

한서리는 인상을 썼다. 김건은 어깨를 으쓱였다.

“나라고 뭐, 실력에 자신이 없는 건 아니야. 대인전이나 중소형 몬스터 상대를 상정한다고 하면 최강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건 그것 외에도 많잖아. 역대 최강 전사라 불리는 최진철이랑 비교할 수준인지는 모르겠네.”

실제로 과거로 돌아오기 전, 그가 전성기였을 때도 그의 평가는 그렇게까지 높지는 않았다.

강함에 대해서는 모두들 동의했으나, 약점이 많았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활약할 수 있는 으뜸패라기보다는 특수한 상황에서 강세를 보이는 조커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한서리는 단칼에 김건의 의견을 잘라 냈다.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진지하기 그지없는 파란 눈망울이 김건을 향해 깜빡였다.

“바로 정신을 잃어버려서 제대로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이네. 그러니 내가 다시 말해 줄게.”

메마른 입술이 담담하게 진실을 읊었다.

“당신은, 기린을 죽였어.”

그때의 기억을 떠올랐다.

터져 나오는 형형색색의 빛.

소리가 찢어지고 공간이 갈라지며 천지가 뒤집혔다.

한 남자의 주먹이 신위(神威)를 부서트려 갔다.

현실이 깨졌다.

자기 자신이 이야기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신화 앞에서 한낱 인간인 자신은 한없이 왜소한 먼지가 되어 간다.

무심코 밟혀죽는 벌레가, 가공 라인의 칼날에 목이 잘려 나가는 닭이 된 듯한 감각.

그때의 무력감은 영혼 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너무나도 멀어 보이는 등…… 그 등이 아른거린다.

한서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전 인류가, 남아 있는 모든 힘을 더해 싸워도 제대로된 상처조차 입히지 못했던 기린을, 다른 마신들조차 꺼려하며 싸우려 하지 않는 그 마신을, 당신이 죽였다고. 그리고 나는 그것을 본 사람이고.”

“…….”

“당신은 열쇠야. 이 세상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3분할되어 있는 마계의 균형을 깨트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

한서리가 손을 뻗었다. 건드리기만 하면 부스러질 듯한 눈송이를 만지듯이 김건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마.”

그녀는 남편의 어깨를 꽉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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