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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21화 (21/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21화

테러 사건에 대한 일이 마무리되고 다시금 평범한 일상이 시작되기 직전, 한서리는 뒤풀이라는 명목으로 노바 라디스티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장소는 한서리의 스위트룸. 한서리와 김건, 두 사람 모두 요리에는 재주가 없었기에 음식은 모두 전문가에게 의뢰를 했다.

너무 부담스럽지도, 너무 간소하지도 않은 구성의 음식으로 식탁이 가득 찼다. 상차림을 마친 업자들이 빠져나가자 타이밍 좋게도 노바 라디스티가 나타났다.

“안녕, 그동안 바빠서 인사도 제대로 못했네.”

편하게 오라고 했더니 정말로 편하게 왔다.

노바는 꾀죄죄한 머리칼과 가운을 휘날리며 슬리퍼를 찍찍 끌고 나타났다.

빠져 버린 안구는 아직 치료 중인지 한쪽 눈에 안대를 차고 있었다.

나름대로 깔끔한 셔츠와 면바지를 갖춰 입었던 김건은 그냥 추리닝이나 입고 있을걸 하고 후회했다.

김건을 마주한 노바는 새빨갛게 얼굴을 붉혔다.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그리고…… 그…… 그, 그그그그 그때 일은, 이, 이이이잊어 주, 주면, 고맙, 고맙겠…….”

첫말은 잘 떼더니 호두까기 인형처럼 턱을 덜덜 떨면서 중얼거린다.

김건 대신 한서리가 그녀에게 답했다. 그녀는 사랑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때 일이라니, 무슨 일을 말씀하시는 거죠?”

생글생글!

또다시 나타난 푸른 머리 귀신의 모습에 노바는 겁에 질려 벌벌 떨었다.

김건은 아무렇지도 않게 능청을 떨었다.

“그러게, 무슨 말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네.”

말이 끝나자마자 옆구리를 꼬집혔다.

김건은 끙- 앓는 소리를 냈고 한서리는 불퉁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김건은 옆구리를 문지르며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노바를 바라보았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때의 일을 잊지는 못할 것이다. 그가 봐 온 인물들 중에서 노바 정도로 주책을 부리는 사람은 없었다.

식사 시간은 무난히 지나갔다. 적당히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고, 마음껏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진짜 대화는 식사가 끝난 뒤, 자리를 옮겨 거실에서 일어난 티타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찻잔을 홀짝인 한서리가 운을 땠다.

“노바 선배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요.”

“부탁? 무슨 부탁?”

한서리는 김건을 가리키며 말했다.

“남ㅍ…… 아니, 이 사람의 기술의 연구 개발에 도움을 주셨으면 해요.”

노바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

“연구 개발? 그 진동을 이용한다는 기술?”

“맞아요.”

한서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노바는 흐음 하고 턱을 쓰다듬었다.

“꽤 흥미로운 주제이긴 해. 그런데, 저번에 마인을 쓰러트린 걸 보아하니 이미 완성된 기술 같던데? 아직 미완성이면 몰라도 이미 체계가 잡힌 걸 개량하는 것에는 별로 자신이 없어. 그쪽의 전문가가 아니거든.”

“엄밀히 말하자면 있는 걸 더 좋게 만들려는 건 아니에요. 이 기술에는 부작용이 있어요. 그리고 그건 오라 이전에 마력 그 자체의 성질과 관련된 문제죠. 그 부작용을 최대한 없애는 법에 대해 연구를 부탁드리고 싶어요.”

노바의 귀가 쫑긋거렸다.

“마력 자체의 부작용? 뭔데, 그런 게 있어? 설마 마력을 오라가 아니라 마기나 투기 같은 걸로 변환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럼 뭐야?’ 라는 의미로 눈을 깜빡이는 노바.

그녀를 바라보며 한서리는 점차 목소리를 낮췄다.

“자세한 설명은 선배님이 이 일을 맡아 주신다고 하면 그때 해 드릴게요. 그리고…….”

말을 이으며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탁상 위에 올린다.

아름다운 푸른빛이 반짝이는 구슬이 또르르 미끄러져 가 노바의 손 앞에서 멈췄다.

그것을 집어든 노바의 목소리에 놀라움이 담겼다.

“이건…… 기린의 신물?”

계약과 수호의 마신, 기린의 신물에는 계약의 힘이 담겨 있다.

신물을 걸고 맺은 계약의 이행은 절대적이며 계약을 어긴 자는 기린의 힘에 의해 파멸한다.

기린이 발행한 일종의 보증서와 같은 물건.

본디 기린의 종복들 간에 사용되는 것이지만 그들 역시 이 세상을 위협하는 몬스터의 일종일 뿐이기에 그들을 죽이고 이렇게 인간의 손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었다.

신물 자체는 그저 물건에 불과하다. 구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마력만 다룰 줄 안다면 인간도 사용할 수 있는 기물이었다.

한서리가 말했다.

“만약 이 일을 맡겠다면 그걸로 계약을 맺어 주셔야겠어요. 이 연구와 관련된 정보에 대해서는 우리 두 사람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방식으로도 누설하지 않겠다는걸요.”

계약을 어긴 자에게는 자동적으로 기린의 저주가 내린다. 그리고 그것을 받고 살아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따라서 한서리의 말은 이것이었다.

‘이 일에 끼고 싶으면, 네 목숨을 걸어라.’

김건은 아내의 철저함에 혀를 내두르며 노바을 곁눈질했다.

그들과 노바와의 관계는 연약하기 그지없었다. 한서리와는 안면 정도는 있었던 것 같지만 그게 전부고, 김건 역시 한 번 목숨을 구해 줬다고는 하지만 얼굴을 대면한지 이제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다.

별다른 신뢰 관계도 쌓지 못한 인간이 갑자기 목숨을 건 계약을 하자고 하면 누가 그걸 받아들일까.

그런데.

“할게!”

“……허.”

놀랍게도,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었다.

노바는 우와 우와 하면서 호기심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기린의 신물을 살펴보았다.

“와우~ 기린의 신물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야! 대단한데? 쓰기 전에 좀 봐도 돼?”

“그러세요.”

한서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에서 이 상황을 납득하지 못한 건 김건밖에 없는 것 같았다.

당황한 김건이 노바에게 말했다.

“잠깐만요, 목숨이 걸려 있는데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거 아닙니까? 조금 더 생각을 해 보고 이야기를 하는 게…….”

“생각해서 한 거야.”

의외로 차분한 한쪽 눈이 김건에게로 향한다.

“기린의 신물을 들이밀 정도로 보안에 신경을 써야 하는 연구라면 재미있는 주제일게 분명해. 그러면 목숨 정도는 걸어 볼 만하지.”

그녀는 한쪽 눈으로 배시시 웃어 보였다.

“걱정 마. 이래봬도 입이 무거우니까. 이런 거 없어도 다른 사람의 귀한 정보를 흘리고 다니지는 않아. 어차피 말할 생각이 없으니, 계약을 맺든 안 맺든 달라질 건 없어.

“그렇게까지 말하신다면야…….”

하여간 보통은 아닌 여자다.

김건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면서 뒤로 물러났다.

계약의 의식은 간단하기 그지없었다. 신물을 손에 쥐고, 마력을 불어넣으며 내용을 복창하면 끝이다.

“나, 노바 라디스티는 이번 연구 건에 관련한 정보를 한서리 및 김건을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누출하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파란색으로 빛나는 구슬이 황금색으로 불타오르더니 스르륵 녹아내려 노바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계약을 마친 노바는 후후후 웃으며 나머지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자, 자, 그럼 계약까지 했으니까 이제 내가 연구해야 할 것에 대해서 가르쳐 줘.”

한서리가 김건에게 눈짓을 했다.

고개를 끄덕인 김건이 설명을 시작했다.

“제가 사용하는 기술이 구체적으로 뭔지 센델 교수님께 들은 적 있어요?”

노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를 형체화시키지 않고 운동 에너지, 정확히 말하면 진동파로 만들어서 사용하는 기술이지?”

“네, 맞아요. 이론 자체는 엄청 오래된 기술이에요. 하지만 아무도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다가 게이트가 열려서야 마력을 이용해 실제로 사용할 수 있게 됐죠.”

“알아, 하지만 실전성이 없어서 사장되었잖아?”

김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기술 이론은 여러 선택지가 있다면 굳이 고를 필요가 없는 종류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선택지가 없는 사람도 있다.

“실전성은 없었지만, 마력적성이 낮은 사람도 높은 공격력을 갖추게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이론이기도 하죠.”

김건이 설명을 이었다.

“몇몇 사람들에 의해 명맥만 겨우 이어져 오던 기술을 아버지가 그러모아서 기틀을 잡았어요. 그리고 그걸 제가 완성시켜서…… ‘미극공진동’이라는 이름을 붙였죠.”

“응응.”

“이 미극공진동에는 총 세 가지 기술이 있어요.”

김건은 그렇게 말하면서 탁자 위에 놓여져 있던 물통을 노바의 앞으로 끌어왔다.

“첫 번째 기술은 충파권. 진동으로 생성한 충격파를 외부에서 안쪽으로 흘려 넣는 기술입니다.”

그가 쥔 물통은 투명해서 안쪽의 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다 보였다.

김건이 물통 위에 손바닥을 올리자 가만히 있던 물통의 안쪽에서 파도가 일었다.

갑작스레 커진 파형이 위로 치솟더니, 펑! 소리와 함께 물통의 뚜껑이 하늘로 날아갔다.

저 멀리 떨어져 나가는 뚜껑을 쳐다보며 노바가 신기한 듯 탄성을 토했다.

“이걸 이용하면 상대의 방어를 무시하고 급소에 치명타를 꽂을 수 있어요. 단순히 손발만 섞어도 그걸 통해 충격파를 흘려 넣어 심장이나 뇌를 파괴할 수 있죠.”

노바가 손뼉을 쳤다.

“아, 그래서 그 마인이 그렇게 당했구나! 진짜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는 기술이네.”

여전히 물통에 손을 대고 있던 김건이 물통을 거꾸로 뒤집었다.

물은 쏟아지지 않았다.

물은 물통의 아랫바닥에 달라붙은 채 허공에 떠 있었다.

김건이 신경을 기울이자 가만히 있던 물이 날뛰기 시작했다.

빙글빙글 돌며 휘몰아치더니, 회오리가 되어 아래로 꼬리를 늘였다. 김건은 물통을 머리에 얹은 채 소용돌이치는 물 회오리를 손가락 위에 얹어 놓고 말을 이었다.

“오라로 생성한 인공적인 진동이기 때문에 성질과 파형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어요. 그래서 잘만 조율하면 충격파가 터지는 시간을 조절하거나 자연스럽게 몸속을 흐르며 돌아다니다가 특정 조건을 만족했을 때 터트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건 이제 알겠어. 그럼 다음은?”

“두 번째 기술은 공명권입니다.”

물통 속의 물을 원상복구해 놓은 김건은 다음 기술의 시연을 위해 비어 있는 찻잔을 들어 노바의 눈앞에 들어 보였다.

웅- 하는 짧은 소리가 들린 뒤, 금속으로 이루어진 찻잔이 산산조각이 나서 후두둑 떨어졌다.

노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그건. 공진 주파수?”

“네. 흔히 말하는 공명 현상을 이용한 기술이에요. 진동을 대상의 고유 진동수에 맞게 쏴서 대상을 부수는 거죠. 이것도 효율이 좋아서 조금의 오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어요.”

오오오, 감탄하던 노바가 주머니에서 작은 금속 조각을 꺼냈다.

“이것도 부술 수 있어?”

마계학 실험용으로 제작된 미스릴 막대였다.

지구의 금속으로는 그 강도와 연성을 따라갈 수가 없다고 알려진 마계 궁극의 금속.

그러나 그마저도 김건의 손에 넘어가자마자 1초도 견디지 못하고 바스러졌다.

“이것도? 이것도?”

최근 마계 금속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던 통에 주머니에 시료를 많이 들고 있던 노바가 계속해서 물건을 내밀었지만 주는 족족 모두 김건의 손에 닿아 가루가 되어 갔다.

우와아-! 노바는 아이처럼 눈을 반짝였다.

“엄청 잘하네. 이거 다 물질별로 고유 주파수를 정확하게 알아야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래서 처음에는 연구소에 살면서 주파수를 달달 외웠죠. 화학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중간에 합금도 섞여 있었는데 그건 어떻게 부순 거야?”

“말로는 설명 못해요. 계속 하다 보니까 감각적으로 할 수 있게 된 거라. 처음 보는 물질도 어지간히 특이한 성질을 가진 게 아니라면 몇 번 만져 보면 바로 부술 수 있어요.”

“대단하네. 대단해.”

그녀는 이제 선망의 눈을 담아 김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건은 조금 부담스러워하며 설명을 넘겼다.

“마지막 기술은 명동권이라고 하는데…… 이건 딱히 보여 줄 건 없어요. 진동과 진동을 공명시켜서 더 큰 진동을 만들어 내는 기술이거든요. 아무리 효율이 좋아도 기초 마력량이 적다 보니까 목표 대상의 질량이나 강도가 커져 필요한 주파수가 모자랄 때 사용합니다.”

김건은 탁자 위에 흩어진 쓰레기들을 정리하며 말을 맺었다.

“기본적으로는 이 세 가지 기술을 적절히 조합해서 쓰는 게 미극공진동입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이론상 모든 물질을 파괴할 수 있어요.”

“대단해. 대단해.”

김건의 기술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는지 노바는 연신 ‘대단해.’를 연발했다.

감동에 젖어 있던 그녀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눈썹을 찌푸렸다.

“그런데 분명히 무슨 부작용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무리 봐도 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문제가 있어 보이는 기술은 아닌 거 같은데?”

김건은 씁쓸하게 웃었다.

“방금 보여 준대로만 사용하면 문제가 없어요. 하지만 연구를 계속하다 발견한 운용법이 있죠. 우연히 찾아낸 것에 불과하고, 아직 가설에 불과한 이론을 따르는 기술이지만요.”

“그게 뭔데?”

김건은 ‘그 기술‘에 대해 설명했다.

시범을 보일 수가 없어서 말로만 내용을 전달했다.

이내 흥미로 가득찬 노바의 얼굴이 일순 굳어 버리더니, 설명이 이어질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파랗게 물들어 갔다.

그리고 설명이 끝났을 때, 노바는 새하얗게 질려서 외쳤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그딴 게 가능할 리가 없어! 설사 가능하다 해도, 인간의 능력으로 구현하는 건 불가능해!!”

흥분한 그녀에게 김건은 담담히 사실을 말했다.

“가능합니다. 제가 직접 해 봤으니까요. 처음 해 봤을 때 죽을 뻔했었죠.”

노바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김건을 노려보았다.

“그걸 하고 살았다고?”

“연쇄 반응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아서 살았죠. 연쇄 반응이 없다면 막 엄청난 결과가 나타나진 않거든요. 분열 시에 나오는 이상 물질…… 저는 반마력이라고 부릅니다만, 죽을 뻔한 건 오히려 그것 때문이에요.”

그다음에 제대로 시도를 했을 때는 죽었지만.

김건은 뒷말을 삼켰다.

노바는 부들부들 떨면서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서리가 말했다.

“이 기술의 개량을 노바 선배에게 부탁드리고 싶어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최소한 후폭풍으로 사용자가 죽지 않을 정도는 되었으면 해요.”

“…….”

말이 없는 노바.

“죄송하지만 거절하셔도 계약을 해지하지는 않을 거예요. 혹시 연구비나 임금이 필요하셔서 그러시는 거면 얼마든지…….”

“아니야.”

노바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지금까지와 같은 가벼움이 없었다.

“지금까지 모르던 걸 알아서 감동했을 뿐이야.”

후줄근한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눈.

그 안에 열망의 불이 담겼다.

“내가 이런 귀한 기회를 놓칠 리가 없잖아. 해 볼게. 그게 뭐든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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