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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22화 (22/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22화

D클래스의 최상급 반으로 이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전 훈련의 주기가 찾아왔다.

약 2주간, 생도로 취급되는 C, D클래스의 생도들이 모두 투입되어 마계화된 아프리카에 융성하는 몬스터들을 청소하는 대규모 작전.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생도들에게 실전을 경험시키는 것과 동시에 발할라의 무력을 세상에 과시할 수 있는 중요한 행사다.

하지만 발할라의 얼굴마담 역할을 하는 것은 한 단계 위인 C클래스의 몫이고, D클래스의 생도들은 말 그대로 훈련으로서의 의미가 강했다.

D클래스의 인원은 모두 2천 명을 넘었다.

그것을 백 단위로 쪼개어 이번 작전 목표인 몬스터의 영역을 분할받아 소탕 명령을 시행한다.

각 그룹별로는 인솔을 담당할 임시 교관, B클래스 이상이 되어 더 이상은 생도라고 부를 수 없는 아카데미의 졸업생, 에인헤야르들이 붙는다.

훈련이 시작되기 전부터 반복된 브리핑 덕분에 모두들 작전 내용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김건과 한서리가 속한 그룹 100명은 티아마트의 종속들을 처리하는 임무를 하달받았다. 그들은 앞으로 2주 동안 약 1,000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범위에 걸쳐져 있는 오크와 고블린의 군락을 청소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 그들 100명은 작전 겸 훈련의 시작에 앞서 그룹을 인솔하는 에인헤야르의 앞에 모여 있었다.

‘이대로 있다간 볼에 구멍이 뚫려도 이상하지 않겠는데.’

옹기종기 모여 있는 생도들 사이에서 김건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옆얼굴에 계속해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흘끗 눈을 돌려보자 그를 죽일 듯이 쏘아보는 제이미와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한 얼굴의 세라스가 보였다.

제이미와 세라스는 김건과 같은 D클래스, 신의 핏줄이라고도 불리는 프레이저 가문의 자녀이니 당연히 최상급반이었다.

김건은 프레이저 남매와 같은 반 클래스메이트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반이 바뀐 이후, 김건은 계속해서 서로 다른 의미가 담긴 두 사람의 뜨거운 시선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훈련의 그룹 지정은 여러 반이 뒤섞여 진행되었는데, 재수도 없게 같은 그룹에 속해 버렸다.

거북함을 견디다 못한 김건이 자리를 이동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들 사이로 한서리가 끼어들었다.

파란 눈의 여왕이 무서운 표정으로 두 쌍둥이를 쏘아보자 그제야 불타는 듯한 시선이 사라졌다.

‘어때, 잘했지?’ 라는 표정으로 이쪽을 돌아보는 아내를 지켜보며 김건은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제이미보다는 세라스를 견제하려고 그런 것 같지만 덕분에 살았다.

그는 보다 편안한 기분으로 그룹의 앞에 선 에인헤야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아인헤야르, 월터 바이스턴이다. 내가 너희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오로지 경고뿐이다.”

선홍빛 입술 사이로 싸늘한 말이 흘러나왔다.

아름답다는 형용사가 어울리는 미남이었다.

깔끔한 정장 차림, 하얀 셔츠 위에 새까만 조끼를 걸쳤다. 살짝 걷어 올린 소매 사이로 얇게 갈라진 근육의 결과 매끈한 팔찌가 보였다.

월터가 계속 말했다.

“이 일대에 깔린 몬스터들은 대부분 오크, 고블린, 코볼트들이다. 마계 기준으로는 벌레 수준의 것들이지.”

손가락을 들어 생도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것을 처리하는 일을 맡은 게, 너희들의 수준이라는 거다. 이번 일을 잘해 냈다고 해서 으스대지도 말고, 잘난 척하지도 마라. 이것조차 잘해 내지 못한다면 너희들은 이곳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

그렇게 말하는 본인은 오만하기 그지없었으나 그 말에 이의를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도들을 깔아 보았다.

“그리고, 방심하지 마라. 실전과 훈련의 차이점은, 훈련과 달리 실전에서는 상정하지 않았던 그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거다. 내 말이 끝난 지금 이 순간부터 너희들은 실전에 들어간다. 알아들었나?”

“넵!”

아카데미에 들어와 처음으로 맞이하는 실전에 모두가 큰소리로 대답했다.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왠지 모르게 주변 공기가 뜨거웠다. 젊은이들이 내뿜어 대는 혈기가 열을 뿜어내는 것 같았다. 월터는 그런 그들을 냉랭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를 관찰하던 한서리가 살짝 옆에 있는 김건을 밀쳤다. 김건은 잠깐 의아해하다가 금방 아내의 속뜻을 이해하고 자리를 잡았다.

난데없이, 공격이 뿜어졌다.

“크악!”

월터가 날린 주먹이 맨 앞에 서 있던 생도의 콧잔등에 처박혔다. 코뼈가 주저앉고 안면이 함몰된 사람이 뒤로 날아갔다.

전투 불능.

“어?”

바보 같은 소리를 흘리는 옆의 생도에게도 칼날 같은 호권이 날아갔다.

그의 후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건이 손을 뻗어 날아오는 주먹을 흘려보냈다.

그제야 공격이 멈췄다.

달궈진 분위기에 갑자기 찬물이 퍼부어진 것 같았다. 모두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는 분위기였다. 월터는 매서운 눈으로 그런 애송이들을 쏘아보았다.

“말했을 텐데. 상정하지 않은 그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게 실전이라고.”

“이게 대체 뭐 하는 짓……!”

번개처럼 뻗어 나온 오라의 덩어리가 십여 미터는 떨어져 있던 생도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그야말로 섬전 같은 권풍이었다.

또다시 한 명이 쓰러졌다.

첫 상황이 발생하고 10여 초가 지났다. 그제야 모두들 현실을 따라잡았다.

흐리멍덩하던 눈매에 예리함이 깃든다. 모두가 잔뜩 긴장한 채로 월터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이 새끼가!”

용기 있는 한 생도가 이를 갈며 월터를 향해 덤벼들었다. 전면에 오라의 장벽을 생성하며 무서운 속도로 월터의 사각으로 찔러 들어갔다.

월터는 파리를 쫓듯이 손을 휘둘렀다.

짧게 날린 손날에 오라의 장벽이 수수깡처럼 부서지며 목을 가격. 한순간에 눈이 뒤집힌 생도가 제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고꾸라져 안면으로 바닥을 닦으며 미끄러졌다.

월터는 태연하게 품속에서 담배를 꺼내 꼬나물었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작전은 시작됐다. 가라.”

매서운 눈이 꾸짖듯이 생도들의 면면을 훑고 지나갔다.

“아니면, 내가 너희들에게 주어진 작전의 목표인가?”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게이트를 막기 위한 지역 방어 병력인 영웅은 기본적으로 소수로 움직이는 게 기본이었다.

따라서 여기에 있는 인원 전부가 함께 움직일 필요는 없다.

그리고 이번 훈련은 성과제였다. 여기서 얼마나 많은 성과를 올리느냐에 따라 앞으로 있을 아카데미 생활이 달라지게 된다.

눈치가 빠른 몇몇이 서둘러 파티원들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

한 번 물꼬가 트이자 그다음은 쉬웠다.

“가자, 가!”

“빨리 움직여!”

100명이나 되는 생도들이 흩어지는 데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혀를 내두르던 김건이 옆에 있는 한서리에게만 들리도록 살짝 말했다.

“저 아저씨, 이때도 여전했네.”

“애들 기강 잡는 데에는 저만 한 사람도 없으니까.”

월터 바이스턴은 두 사람이 겪었던 미래에서도 생도들 사이에서 꽤 악명을 떨쳤던 사람이었다.

천재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 중 하나로, 스물 초반에 발할라 A클래스, 초월자의 반열에 오른 전위이며 마력의 흐름을 볼 수 있는 특수한 시력을 타고났다.

그 덕에 상대의 움직임을 보다 빨리 예측할 수 있어 백병전에서는 무적에 가깝다고 불리는 사내다.

대부분의 생도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성과를 올리기 위해 뛰쳐나갔지만, 한서리와 김건 외에도 남아 있는 사람은 있었다.

제이미와 세라스가 남아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제이미의 시선은 두 사람을 당장에라도 찢어 죽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난폭했다. 그것을 발견한 한서리가 피식 웃었다.

“왜, 아빠한테 말했는데 일이 해결되지 않아서 실망했어?”

한서리가 독단적으로 벌인 약혼 파기는 아직 표면에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한씨 집안에서는 당연히 먼저 이야기를 꺼낼 필요가 없고, 주도권을 쥔 프레이저 가문은 왠지 모르게 잠잠하다.

한서리는 그것이 보다 큰 이득을 얻기 위한 밑 작업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제이미는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았다. 억지로 고개를 돌리며 읊조렸다.

“됐다. 네 어리석음에 실망했다, 한서리. 어차피 곧 후회하게 될 거다.”

“응, 후회할 거 같아. 왜 조금이라도 더 일찍 네놈을 내 인생에서 잘라 내 버리지 않았을까 하고.”

“너……!”

극렬한 분노가 제이미로부터 터져 나왔다.

다시금 눈을 뜬 그는 짐승같이 이를 갈며 한서리를 쏘아보았다. 그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던 세라스가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만하고 가자.”

그녀는 그러면서 저 보라는 듯이 턱짓을 해 보였다.

그들을 주목하고 있는 월터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한서리는 월터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뱀처럼 속삭였다.

“그렇게 분하면 내기할까?”

“갑자기 무슨 소리지?”

“이번 훈련에 각 파티별로 성과에 점수가 매겨지는 건 알지? 내가 만든 파티와 네가 만든 파티로 점수 대결을 하자는 거야.”

한서리는 스산한 미소를 띠었다.

“만약에 우리가 지면 이번 일에 대해 전면적으로 프레이저 가문에게 사과할게. 만약 네가 원한다면…… 약혼에 대한 건을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어.”

제이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속이 빤히 보이는 도발에 화가 난 세라스가 입을 열었다.

“한서리, 사람을 놀리는 것도 적당히…….”

제이미가 손을 들어 올려 세라스의 말을 막았다. 차갑게 굳은 얼굴에서 입술이 달싹였다.

“그 반대의 경우는?”

“이번 일에 대해서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마. 그리고 네 진심을 다해 사과해. 이 사람을 벌레라고 부르며 모욕한 건에 대해서 말이야.”

제이미는 킥 하고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좋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받아들이지. 그딴 쓰레기를 옆구리에 끼고 뭐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말을 마친 그는 강체술을 발휘해 훌쩍 자리를 떠 버리고 말았다.

한서리는 코웃음을 쳤고, 세라스는 혀를 차며 그 모습을 바라보다 한서리의 뒤에 있던 김건과 눈을 마주쳤다.

김건은 미안하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까딱였다.

‘바보들 때문에 서로 고생이구나.’

세라스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마찬가지로 강체술을 발휘해 어느새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달려 나가고 있는 제이미를 쫓아갔다.

만나는 사람의 대부분이 적이 된다.

기본적으로 초식동물에 가까운 김건은 육식동물같이 호전적인 아내의 행보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을 들은 한서리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별것도 아닌 재능으로 콧대만 높아진 꼬맹이들을 이기는 건 일도 아니니까.”

“내가 걱정하는 건 그쪽이 아니야.”

“그럼 뭔데?”

“당신 인간관계가 나빠지는 거.”

“인간관계? 그런 건 필요 없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얼쩡거리던 인기척이 있었다. 김건이 고개를 돌리자 짧은 머리에 순박하게 생긴 청년이 보였다.

윌터가 두 번째로 주먹을 날렸을 때 나가떨어질 뻔한 녀석이다. 청년은 김건을 향해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방금 전에는 도와줘서 고마워. 네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바로 뻗었을 거야. 학비가 별로 없어서 여기서 빠지면 곤란하거든.”

몬스터 사냥은 돈이 된다. 시체에서 얻을 수 있는 온갖 재료들을 제외하더라도 몬스터로부터 추출한 마정석만 해도 에너지원으로서 가치가 높다.

때문에 매 훈련마다 발할라가 얻는 이익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수입의 일부는 생도들에게도 돌아간다.

당연히 훈련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수록 많은 돈을 받는다.

학비에 고통받는 생도들에게 이런 행사에서 얻는 돈은 가뭄의 단비만큼이나 소중한 존재였다.

“별거 아니야. 신경 쓰지 마.”

김건은 손을 저었다. 애초에 청년을 지켜 준 것은 그의 의지가 아니다.

한서리가 청년에게 다가갔다.

“당신, 화염 속성의 후위죠?”

김건은 그저 윌터가 생도들을 공격하기 전에 아내가 보낸 신호에 따랐을 뿐이다.

“맞아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청년과 그들은 안면이 없었다. 그런데도 한서리가 자신의 포지션을 알아보자 청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깨가 좁고 걸음걸이가 둔하니 전위는 아닌데, 옷은 소매 없이 몸에 달라붙는 걸 입었으니까요. 머리도 짧게 잘랐고. 화염 속성을 다루는 후위는 자기가 쏜 불에 옷이나 머리카락을 태우는 일이 많아서 그렇죠.”

매끄럽게 그의 의문을 해결해 준 한서리는 바로 등을 돌리며 말했다.

“그럼 따라와요. 이제부터 당신은 우리 파티원이니까.”

분명히 같은 나이일 텐데,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확신 때문인지 압도된다.

머리가 굳어 버린 청년은 저도 모르게 바보 같은 소리를 내고 말았다.

“으잉? 왜……?”

한서리는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파티에 필요한 인물이니까요. 당신도 학비가 걱정된다면 우리를 따라오는 게 좋을걸요?”

무려 킹메이커로부터의 파티 제안이다.

그 위상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거절할 수 없는 조건이었으나…… 우습게도 청년은 머리를 긁적이며 거부의 의사를 취했다.

“어, 미안, 아니 죄송한데…… 저는 이미 일행이 있어서…….”

그는 그렇게 말하며 뒤편을 가리켜 보였다.

그곳에는 이쪽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여성이 있었다. 작은 덩치와 소심한 자세, 그리고 등에 멘 배낭으로 보아 영락없는 후위의 모습이다.

한서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곧장 현실에 기반한 차가운 말을 쏟아 냈다.

“후위는 이미 충분해요. 더 이상의 후위는 필요 없으니까 쫓아ㄴ…….”

그런 아내의 입을 김건이 틀어막았다.

“최대 파티 구성원은 네 명이잖아? 나도 전위고, 서리의 골렘이 전위 역을 해 줄 수 있으니까 후위가 셋이라도 조합이 괜찮게 나올 거야.”

입을 막은 손 사이로 불만스러운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양보할 수 없다. 김건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두 사람에게 살갑게 웃어 보였다.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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