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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23화 (23/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23화

“크워어어어!”

“오우거다! 그것도 두 마리!”

입학한 지 반년도 채 지나지 않은 새내기들이지만 발할라 생도들은 침착하게 지시했다.

“감마 몬스터야! 무리해서 싸우지 말고 지원을 불러!”

“바로 옆에 쌍둥이들이 있어! 조금만 버티면 돼!”

“헌터님들은 후방으로 물러나세요!”

실전 경험이 없으면 발할라에 입학할 수 없다.

생도들은 모두 삼 개월 이상의 헌터 연수를 마친 전투 경험자들이었다.

집채만 한 붉은색 근육덩어리 둘이 날뛰는 것에 맞춰 진형을 변경한다.

총 세 명의 파티.

두 전위가 각각 오우거를 상대하고, 나머지 한 사람이 화력을 전개해 개미떼처럼 밀고 들어오는 오크와 고블린을 막았다.

그사이 영웅 지망생들의 사냥 뒤처리역으로 따라붙은 헌터들이 물러났다.

대응은 깔끔했지만, 상황은 썩 좋지 않았다.

“제기랄, 숫자가 너무 많아!”

바람의 칼날을 난사해 고블린을 베어 넘기던 후위가 외쳤다.

앞에서 전선을 형성해 주던 전위가 오우거에게 발이 묶이자 큰 기술을 사용할 틈이 없어졌다.

그가 손을 휘두르자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기압의 칼날이 쏟아져 괴물들의 팔과 다리를 잘랐다.

하지만 티아마트의 권속들은 모두 강한 재생력을 가지고 있었다.

머리를 날리거나, 심장 역할을 하는 마정석을 깨트리는 정도의 피해가 아니라면 금세 다시 일어난다.

화력 지원은 커녕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

그렇게 후위를 잃은 두 전위는 오우거를 상대하는 사이 수많은 오크와 고블린에게 둘러싸이고 말았다.

“제길!”

그중 한 명은 욕설을 하며 머리로 날아오는 오우거의 일격을 피했다.

건물 기둥만 한 몽둥이가 머리 위로 지나간다.

허리를 숙이자마자 바로 옆에서 오크가 창을 질러 왔다.

오라로 생성한 갑주로 방어.

하지만 순간적으로 중심이 흔들렸다.

뒤이어 날아온 오우거의 주먹을 맞고 나가 떨어졌다. 뒤에 서 있던 고블린들과 뒤섞여 넘어진다.

넘어지자마자 몸을 옆으로 굴렸다. 내리쳐진 몽둥이가 그 자리에 쓰러져 있던 고블린을 가루로 만들었다.

“이 벌레 같은 놈들이……!”

공격을 피하자마자 달라붙어 도끼와 손톱을 휘둘러 오는 고블린을 베어 넘기며 으르렁거린다.

그는 A급 판정은 받을 수 있는 영웅이었다. 다소의 부상은 각오해야겠지만 오우거 정도는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순수하게 일대일로 싸웠을 경우의 이야기였다.

“크와악!”

“끼에에엑!”

티아마트를 상징하는 낱말은 피와 폭력.

그의 종속들은 그야말로 싸우기 위해서만 태어난 존재들이다.

공포 따윈 없고, 놈들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상대를 죽이고 그 피를 사방에 뿌리는 것뿐.

사방에서 붉은 피부의 괴물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공격해 왔다.

계속된 공격에 오라의 갑옷이 깎여 나간다. 그렇게 정신이 흐트러진 틈에, 오우거가 휘두른 몽둥이가 몸통에 꽂혔다.

“크어억!”

가로수를 동강 내고, 승용차마저 짜부라트릴 수 있는 일격에 충격이 전신을 휩쓸었다.

제때에 맞게 오라로 방어하지 않았으면 죽었다.

거창하게 나가떨어진 뒤, 위액을 뱉어 내며 몸을 일으키지만 서는 게 고작이었다. 다리가 굳어 움직이지를 않았다.

“크윽!”

이러다가 죽겠다.

싶은 순간, 싸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머리 숙여.”

등 뒤에 살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전위는 체면도 생각하지 않고 넘어지듯이 앞으로 허리를 숙였다.

그 위로 금빛 광채가 질주했다.

쫙────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

그와 동시에, 무기 째로 동강난 오우거의 상체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크워?”

멍청한 소리와 함께 오우거의 머리가 허공을 날아가고, 다리만 남은 반신이 부들부들 떨며 땅에 몸을 뉘었다.

남아 있던 오우거 한 마리가 강적의 등장에 흥분해서 주변에 깔린 고블린들을 짓밟으며 돌격해 왔다. 피로 온몸을 적신 그 모습에는 엄청난 박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 앞에 선 금발의 청년에게는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천천히 손을 들어올린다.

그 손에 들려있는 것은 장장 3미터에 달하는 황금색 오라의 대검이었다.

“꺼져라.”

내리친다.

또다시 금빛 광채가 휘날렸다.

검을 휘두른 건지, 폭탄을 터트린 건지 모를 소리가 울려 퍼진 뒤, 머리부터 가랑이까지 쪼개진 오우거의 시체가 처참하게 뒤로 날아갔다.

“사, 살았다…….”

그 모습을 보고 안심한 전위역의 생도가 비틀거리며 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기댔다.

그런 그를 누군가가 부축했다.

“괜찮아?”

단발이 어울리는 여성이었다.

앞에 선 남자와 똑 닮은 얼굴을 했지만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어 한눈에 봐도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음이 편해진다. 사락거리는 금발에서 몹시도 좋은 향기가 났다.

괜찮다며 손을 저으려 하던 전위 생도의 눈이 크게 뜨였다.

“위험!”

오우거에 정신이 팔린 사이, 잊고 있었던 고블린과 오크가 여자의 뒤에서 달려들고 있었다.

여자의 고개가 돌아가더니, 금색 눈썹이 사납게 솟구쳤다.

“어딜 덤벼?”

그녀가 들고 있던 장검에서 오라가 솟구쳤다.

빛살처럼 뻗어 나온 금빛 오라가 한순간에 대검의 형태를 이루고, 그것이 휘둘러지는 순간.

와르르릉!

노란 반원이 허공에 그려졌다.

천둥 치는 소리와 함께 반경 내에 있던 괴물들이 모조리 위아래로 분단되었다.

떨어져 나간 상체와 하체가 풍차처럼 회전하며 바깥쪽으로 나가떨어진다.

칼을 휘두른 게 아니라 마법을 사용한 게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일격이었다.

“가서 치료부터 해. 여기는 우리가 맡을 테니까.”

그렇게 말한 여자는 곧장 남자와 함께 앞으로 뛰쳐나갔다.

똑 닮은 얼굴. 반짝이는 금발에 위엄 넘치는 황금빛 오라.

제이미 프레이저와 세라스 프레이저.

프레이저 가문의 쌍둥이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몬스터들을 학살해 나가기 시작했다.

‘저걸 잡았어야 했는데.’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계 지역 청소 용역, 속칭 하이에나라고 불리는 헌터는 입맛을 다셨다.

쌍둥이 파티의 지원을 원했던 팀이 너무 많아서 결국 제비뽑기로 정한 결과이긴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주변에서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 봤어? 오우거를 일격에 보내 버리는 거? 역시 프레이저야.”

“완전히 괴물이야. 우리도 저 파티에 따라붙었으면 돈 좀 꽤 만졌을 텐데…….”

“다 들린다. 멍청이들아.”

지원팀을 관리하는 팀장이 눈치를 주자 겨우 입을 다문다. 팀장은 혀를 차면서 일을 독촉했다.

“한눈팔지 말고 빨리 작업 재개해! 지원 온 쪽은 벌써 일하고 있잖아!”

바로 옆에서는 쌍둥이 파티를 따라온 지원팀이 작업에 한창이었다. 살아남은 괴물들의 숨통을 끊고 시체를 파헤쳐 마정석을 채취하고 있다.

피와 폭력의 신인 티아마트의 종속답게, 그들은 모두 혈액을 매개체로한 무성 생식을 했다.

조그마한 피웅덩이만 있으면 모기처럼 증식해서 기어 나오는 놈들이다.

성장의 양분이 될 시체는 모아서 태우고, 지면에 모인 피웅덩이에는 이물질을 뿌려 재생을 방해한다.

어차피 이 지역은 마계화된 땅이니 완전 박멸은 필요 없다. 증식을 늦추는 정도면 충분하다.

하지만 마정석 채취와 더불어 그러한 처리 작업을 하는 건 상당한 중노동이었다.

약 50여 명으로 이루어진 팀. 그 팀을 분할해서 통솔하고 있는 조장이 다가와서 말했다.

“방금 생도들이 몬스터를 좀 흘려서 부상자가 나왔는데. 어쩌죠?”

“보긴 봤는데…… 숫자는 파악해 봤어? 얼마나 나왔는데?”

“중상까지는 아니지만…… 꽤 크게 다친 친구가 둘에, 경상은 열 명이 넘어요.”

‘오늘은 이걸로 쫑이군.’

주력인 생도들도 부상을 당했으니 더 이상의 진행은 불가능하다.

안타까워 한숨을 쉬는 팀장의 곁으로 쌍둥이들을 쫓아갔던 반대편의 팀장이 다가왔다.

“여, 고생하십니다.”

어린놈이 제비뽑기 좀 잘 걸린 것 가지고 기가 살았다.

팀장은 입술을 삐죽였다.

“꿀 좀 빨더니 얼굴이 피었군,“

“꿀은 빨 수 있을 때 빠는 게 진리죠. 수입이 좋아요. 사냥이 워낙 빨라서 오히려 일손이 부족할 정도입니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쌍둥이는 근처의 몬스터들을 모두 처치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반면에 뒤처리를 담당하는 헌터들은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었다.

“조심해! 이 자식, 아직 살아 있어!”

“야, 야! 확실히 머리를 깨부수라고!”

그들은 그렇게 말하면서 살아남아 꿈지럭거리는 고블린과 코볼트를 창으로 찔러 죽였다.

티아마트의 종속들은 모두 강력한 재생 능력과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서 몸이 두 토막 나도 잘 죽지 않는다.

잔당 처리, 마정석 채취. 그리고 시체 정리.

세 가지 작업을 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나이 든 팀장이 쉬고 있는 쌍둥이를 눈짓하며 말했다.

“좀 깔끔하게 죽여 달라고 말 좀 하지 그러나? 여유가 있으니 잡것들이 남지 않도록 깔끔하게 정리해 달라고 하면 작업이 훨씬 빨라질 텐데.”

“됐습니다. 저 사내놈이 저를 보자마자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젋은 팀장은 크흠, 헛기침을 하더니 한껏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똑바로 따라와라. 만약 너희들 때문에 발목이 잡힌다면 용서치 않겠다.”

“말이 안 통하는 성격이로군.”

“그래도 여자애는 사근사근하니 성격이 좋더군요. 딱히 말하지 않아도 배려를 해 줍니다. 저 애가 아니었으면 일이 훨씬 더 힘들어졌을 거예요.”

나이 든 팀장은 “그거 다행이군.”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방금 일손이 부족하다고 하지 않았나? 우리 애들 중에 아직 더 일을 할 생각이 있는 녀석들이 있을 텐데…….”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온겁니다. 더 일을 할 사람들을 추려서 조장들에게 말만 해 주십쇼. 그러면 제가 인솔해서 데려가겠습니다. 그 대신 저희 애들보다 지분이 적다는 건 아시죠?”

“상관없을 거야. 어차피 노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고맙네.”

감사를 표한 나이 든 팀장은 금세 부상자들을 데리고 사냥터에서 벗어났다.

그가 남기고 간 사람들을 면면히 살피던 젊은 팀장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사람이 부족한데…….’

마무리가 깔끔하지 않아서 그렇지 쌍둥이들의 사냥 속도는 무서울 정도로 빨랐다.

다른 발할라 생도들의 위력을 권총에 비유한다면, 쌍둥이가 가진 힘은 기관총이나 대포에 필적하는 것이었다.

그 속도에 쫓아갈 수만 있다면 반드시 큰돈을 만질 수 있다.

지분을 나눠먹더라도, 조금 더 사람을 부르는 게 좋겠다.

그렇게 판단한 팀장은 바로 휴대기기를 꺼내어 파티를 배정받지 못해 놀고 있을 대기조에게 전화를 했다.

상대 조장은 한참이나 통화음이 울려서야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지금 일 없지? 이쪽 파티에 붙어 줄 수 있어?”

<<지금 파티 하나 잡아서 일하는 중인데.>>

어쩐지 반응이 신통치않다 했다. 어느 마음 좋은 파티가 놀고 있는 것이 불쌍해 그들을 데려간 모양이다.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추가 인원으로 들어간거니, 조금만 구슬리면 얼마든지 빼올 수 있다.

“이봐, 그러지 말고 이쪽으로 오지 그래. 이쪽 파티, 사냥 속도가 정말 보통이 아니야. 오면 한몫 크게 잡을 수 있을걸.”

<<됐어.>>

“왜 그래? 저번에 밥값 떼먹은 것 때문에 그런가? 그러지 말고 와. 지분도 그쪽보다 훨씬 잘 챙겨줄게.”

<<아니야. 별로 옮길 생각 없어.>>

“사냥이 제법 빠른가 보지?”

<<빨라.>>

“그래 봐야 조금 나은 정도겠지. 우리는 달라. 프레이저 가문의 쌍둥이 알지? 그 쌍둥이가 여기에…….”

<<조금 나은 정도가 아니야. 사냥이 빠르기도 하지만…… 일이 엄청나게 편해.>>

“…….”

<<어쨌든 나는 옮길 생각 없어. 다른 사람한테나 전화해 봐.>>

뚝-

전화가 끊어졌다. 팀장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통화가 끊어진 휴대기를 바라보았다.

“대체 뭐야? 그 파티에 뭐, 꿀이라도 발라져 있나?”

* * *

한서리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효율이 안 좋아. 쓸데없는 사람이 끼어서 할 일이 더 많아졌잖아.”

사냥의 성과 계산법에는 당연히 파티의 인원이 포함된다.

단순히 총점을 인원수별로 나누는 정도가 아니라 인원이 추가되는 것으로 얻는 시너지 효과까지 산식에 고려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묻어가기가 힘든 구조다.

때문에 파티원을 늘리는 것은 매우 신중히 결정해야 할 일이었다. 한서리가 투덜거리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뒤에서 이렇게 놀면서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김건은 그렇게 말하면서 아내가 내민 손에서 카드를 뽑았다.

두 사람은 호송 차량 위에 상을 깔고 앉아 보드게임을 하고 있었다.

손에 쥔 카드를 살피며 한서리가 나른하게 대답했다.

“할 거 다 하면서 하는데 뭐가 문제야?”

“당신이야 할 거 다했지만 내가 문제지. 나는 그냥 놀고만 있잖아. 합류해서 뭐라도 잡는 게…….”

“당신은 나랑 놀아 주는 게 일이야. 그대로 있어.”

그렇게 말을 하곤 룰 북을 살피며 “이거 이렇게 하는 게 맞나?”중얼거린다.

그렇게 여유작작한 두 사람의 옆에서는 폭음과 폭염이 울려 퍼지며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하나 그 전투 속에서 치열함과 긴장감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전방에 있는 세 구의 아이스 골렘이 얼음을 흩뿌리며 괴물들 사이에서 날뛰고, 그 뒤에 위치한 짧은 머리의 남성이 양손에서 뿜어내는 불로 전선을 휩쓸었다.

그 옆에 있는 작은 키의 여성은 조그마한 모종삽을 들고 연신 허공을 퍼 올리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손을 휘두를 때마다 전선의 땅이 퍽퍽 파이고, 그렇게 생긴 구덩이에 떨어진 오크의 머리통을 지나가던 골렘이 짓밟아 부쉈다.

그리고 수십 명의 인부들이 모두 목 뒤에 고드름을 매단 채 뒤처리를 해 나가고 있었다.

김건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마법으로 괴물들의 움직임을 흐트러트리고, 휘청거리는 놈들을 거대한 골렘이 내리쳐 다진 고기로 갈아 놓는다.

남은 소형 몬스터와 죽다 남은 시체들은 넓게 퍼져 나간 화염이 쓸어 담고, 그 뒤에 투입된 인부들이 타 버린 시체를 뒤져 마정석을 걸러 내고 가방에 담았다.

마치 공장 라인에서 일하는 인부들을 보는 듯한 모습.

각자의 역할에 따른 분업화, 그리고 업무 흐름에 따른 체계화가 잘 되어 있었다.

그들이 하는 것은 스릴 넘치는 사냥이 아니라, 몬스터를 마정석으로 환원시키는 일상적 작업이었다.

몬스터 사냥이 주업인 헌터 길드, 그것도 최상위의 급에서나 겨우 볼 수 있는 광경.

그리고 그 수준의 집단을 하루아침에 만들어 낸 것은 오로지 킹메이커, 한서리의 능력이었다.

정해진 시간이 닥치자 호송 차량에 달아 둔 스피커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이다!”

“그만해! 그만! 쉬었다 해!”

새참이 왔다는 말을 들은 농부처럼, 사람들은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각자 흩어져 그늘가에 자리를 잡고 쉬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이어졌던 몬스터와의 싸움에 긴장을 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한서리와 김건의 주변에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의 파티원이 된 아카데미의 두 생도, 네드와 메리안이 다가왔다.

계속해서 불을 내뿜은 탓에 온몸에서 탄내를 풍기는 네드가 목 뒤의 고드름을 만지작거리며 감탄을 토했다.

“말로만 들었는데 직접 받아 보니 킹메이커의 버프는 진짜 대단하네. 체감상 마력이 배는 늘어난 거 같아. 평소보다 집중력도 훨씬 좋고.”

“나도 마찬가지야. 서리 양,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메리안은 키가 무척이나 작았다. 다람쥐같이 귀여운 이가 순수한 선망의 눈길로 쳐다보자 냉정하기 그지없는 한서리마저도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들 사이로 뒤처리 팀을 총괄하는 헌터가 끼어들었다.

“이 부근은 슬슬 정리되어 가는데, 다음은 어디로 갈 거요?”

“서쪽으로 가죠. 예전 자료를 보니 그쪽에 꽤 큰 규모의 곡창 지대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아까 크립티드의 뿌리 방향은 확인하셨죠?”

“동쪽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형태이긴 했지. 서쪽 지역이 비옥한 땅이었다고 하니 아마도 거기로부터 뻗어 나온 거일 텐데…….”

“맞아요. 그러니 그쪽에 거대 부락이 형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몬스터의 수도 더 많을 거고.”

“이 부근에서도 오우거가 등장할 정도인데 큰 부락으로 가면 타이탄급이 나올 수도 있어. 그건 어떻게 할 거요? 아이스 골렘으로는 감당이 안 될 거고, 저 화염술사 친구 혼자로는 화력이 부족할 텐데.”

“걱정하지 마세요. 타이탄을 제압할 수단은 이쪽에 있으니까.”

한서리는 그렇게 말하며 김건을 쳐다보았다. 헌터는 김건이 영 미덥지 않은 모양이었으나, 이견을 말하지는 않았다.

“알았소. 그럼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말해 두도록 하지요.”

다소의 불만이 있더라도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사람에게 그런 신뢰를 주기 위해서는 상당한 카리스마가 필요하다는 것을 김건은 알고 있었다.

한서리가 시선을 바깥쪽으로 돌렸다. 주변에 흩어져 쉬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다친 사람은 없나요?”

“없소. 아가씨가 걸어 준 버프 덕분이지. 무슨 원리인지는 몰라도 방어력이 상당하더군.”

“그럼 업무가 조금 더 거칠어져도 괜찮겠네요?”

한서리의 의도를 눈치챈 헌터는 피식 웃었다.

“그렇소. 뭐든 시켜만 주쇼. 다들 체력이 충분하니까.”

“그러면 네드 씨는 마법의 범위보다 위력에 신경을 써 주세요. 여력이 충분하니 코볼트나 고블린 몇 마리는 멀쩡한 상태로 흘려보내도 헌터분들이 알아서 처리할 거예요. 그리고 메리안 씨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 주세요. 제 골렘들의 최우선 보호 순위는 당신이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요. 메리안 씨가 날뛰면 날뛸수록 뒤에 사람들이 더 편해집니다.”

“오케이.”

“응, 알았어!”

네드와 메리안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사이렌이 울렸다. 누가 굳이 명령을 하지 않아도 각자 알아서 자신의 위치로 이동해 다시금 사냥을 시작했다.

한서리의 파티와 후방 지원팀이 만나 제대로 사냥을 시작한 지는 이제 반나절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사람들을 다 자신의 사람으로 길들였다.

김건은 오랜만에 다시 본 아내의 능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다수를 커버할 수 있는 버프 능력, 그리고 그 기술을 수련하며 얻은 관찰력과 타고난 카리스마.

한서리의 리더로서의 재능은 탁월했다.

조금 독선적이고 제멋대로라 지금처럼 뒤에서 놀고먹고 있지만, 아무도 불만을 가지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그 독선적이고 남들의 접근을 거부하는 고고함이 아내에게 최악의 결과를 불러 왔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김건은 그 점을 상기하며 다시금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가다듬었다.

많은 영웅들이 간과하지만, 사냥이라는 건 단순히 몬스터를 죽이는 것이 아니다.

몬스터를 죽이는 것은 그 과정일 뿐.

죽인 후에 거기서 필요한 자원을 채취하는 것까지 완료되어야 비로소 사냥이라는 행위가 종료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사냥의 속도를 올리려면 몬스터만 잘 죽일 게 아니라, 뒤처리를 담당하는 헌터들과의 협업이 필수적이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이 정도로 헌터들을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니, 미래에서 넘어온 한서리를 제외하곤 없다고 김건은 장담할 수 있었다.

이번 내기의 승부는 이미 확정되었다.

못돼 먹은 놈이긴 하지만 그것도 모르고 열정을 불태우고 있을 제이미가 문득 불쌍해졌다.

보드게임을 재개한 한서리가 판에 깔린 카드와 말을 정리하며 물었다.

“아까 제대로 답변을 못 들었는데, 대체 메리안은 왜 파티에 받자고 한 거야? 유용한 능력이긴 하지만 지금의 구조에 꼭 필요한 사람은 아니야.”

“당신에겐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네드한테는 필요해. 메리안에게도 네드가 필요하고.”

“인정이라도 베푸는 거야? 쓸데없어. 그 덕에 우리만 더 고생하게 생겼잖아.”

“대체 무슨 고생을 하고 있다는 거야…… 그리고 당신이 이 정도는 커버할 수 있잖아? 네드도 마음이 편하니까 더 활약할 수 있을 거고.”

“그게 한 사람 몫 이득은 못 봐.”

“지금 당장은 그렇겠지. 하지만 다음에도 네드의 힘이 필요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질걸?”

“나중에 네드의 도움이 필요할지는 모르겠는데?”

“필요할 거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갔을 때 이 발할라 출신 사람들 중에 필요 없는 사람이 있었어?”

“그건 그때까지 네드가 살아 있을 때의 이야기지.”

한서리는 코웃음을 쳤다.

“당신은 너무 물러.”

“당신은 너무 딱딱해.”

김건은 그렇게 맞받아쳤다.

““그래서 더 좋은 거지만.””

말이 겹쳤다. 시선이 마주친다. 두 사람은 미소를 지었다.

“찌찌뽕.”

김건이 익살스럽게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한다. 한서리는 피식 웃었다.

“뭐야 그게? 초등학생 같아.”

“그럴 때는 그냥 웃으면서 넘어가 주는 거예요. 아가씨.”

“그러지 마. 당신 유머 감각은 콩깍지 씐 나도 커버 쳐 줄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이니까. 자, 이걸로 끝.”

한서리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만든 패를 뒤집어 보여 주었다.

영악한 아내는 그가 대화에 정신이 팔린 사이 게임을 박살 내 놓은 상태였다.

“빌어먹을.”

김건은 구시렁거리며 패를 던졌다.

그러곤, ‘아내의 뺨에 10번 뽀뽀하기‘ 벌칙을 어떻게 남들 몰래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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