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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25화 (25/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25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샌가 2주라는 시간이 흘러 실전 훈련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그동안 계속되었던 한서리와 제이미의 점수 대결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한서리는 놀라운 용병술을 발휘해 제이미의 파티에 비해 계속해서 우위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 차이는 결코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언뜻, 두 사람의 대결은 일견 팽팽한 승부가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실상은 그것과 완전히 달랐지만, 그걸 아는 것은 한서리와 몇몇의 인물들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훈련 주기의 마지막 날을 앞둔 한서리 파티의 저녁 식사 자리.

여기엔 이제껏 없었던 인물이 끼어 있었다.

“넌 여기에 왜 있어?”

한서리에 물음에 세라스 프레이저는 애교 있게 손을 내저었다.

“에이, 왜~ 같이 밥 좀 먹으면 안 돼?”

“안 돼. 돌아가.”

“너무하네~ 이번만 좀 봐줘.”

차가운 말에도 세라스는 엄살을 부리며 매달렸다. 그러면서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세라스 양 한 명 정도는 끼어도 괜찮지 않을까?”

메리안이 말했다.

“난 상관없어.”

“나도.”

네드, 그리고 제일 중요한 사람인 김건까지 그렇게 말하자 한서리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대신 식사가 끝나면 바로 돌아가.”

“오, 허락받았다! 고마워!”

양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기뻐하는 세라스.

하지만 한서리에게는 그 모든 행동이 가증스러울 뿐이었다.

이윽고 메리안과 한서리가 함께한 요리가 차례로 식탁에 차려졌다.

삶은 콩을 넣은 샐러드에 감자 스프, 구운 닭고기에 와인으로 졸인 소고기 등…… 푸짐하게 놓인 요리가 상을 가득 채우자, 세라스의 눈이 점점 커져 갔다.

“우와…… 이거 네가 한 거야?”

한서리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경악한 표정으로 김건을 돌아보았다. 대체 저런 사나운 생물을 어떻게 길들였냐는 듯한 표정이다.

세라스가 놀라거나 말거나, 나머지 네 사람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 평온하게 식사를 시작했다.

김건이 닭고기에 포크를 갖다 대자 한서리가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았다.

죽 찢어 낸 하얀 닭고기를 접시에 흐르는 소스와 육즙에 찍어 맛을 보는 김건.

그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한서리를 향해 엄지를 치켜 올려 보였고, 그제야 한서리는 의기양양한 웃음을 띠면서 음식이 가득 담긴 접시를 내밀었다.

세라스는 그저 놀랍다는 듯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한가한 잡담이 몇 번 오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자 모두의 관심이 세라스에게 향했다.

“세라스는 좋아하는 음식이 있어?”

“머리카락 진짜 예쁘게 잘랐다~ 발할라에 있는 미용실에서 자른 거야? 어디야?”

그중에서도 또래 여자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은 메리안이 제일 많은 질문을 던졌다.

흥미롭게 그 둘을 지켜보던 네드가 가끔씩 이야기를 꺼냈고, 김건은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흐름을 따라갔다.

한서리는 어지간히도 세라스가 싫은지 그쪽으로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김건이 물었다.

“제이미는 좀 어때? 성과 점수판을 보니까 어지간히도 열심히 사냥에 몰두하는 모양이던데.”

발할라 학생들이 올리는 훈련의 성과는 당일마다 점수로 환산되어 공지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에인헤야르, 월터 바이스턴이 인솔하는 그룹의 파티 중에서는 한서리와 제이미 프레이저의 파티가 압도적으로 1등을 다투고 있었다.

세라스는 피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몰두하는 정도가 아니야. 완전히 사냥에 미쳤어. 오늘도 반나절간 미친 듯이 날뛰더니 돌아오자마자 뻗었어. 녀석 뒤를 따라다니는 나도 죽을 맛이고.”

외부에서 보면 언뜻 두 천재가 최고의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는 숨 막히는 대결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중 한쪽에 속한 세라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열심히는 하고 있어. 조금만 더 하면 이길 수 있다고 하면서. 하지만…… 못 이기겠지.”

눈치가 빠른 세라스는 지금 한서리와 제이미의 경쟁이 비등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에게는 한서리의 여유가 너무도 잘 보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두 파티의 점수가 비슷한 것은 그저 제이미를 죽도록 싫어하는 한서리가 그를 가지고 놀기 위해 꾸민 농간일 뿐이라는 것을.

그 말에 한서리가 반응을 보였다.

그녀는 차가운 눈으로 세라스를 바라보았다.

“알면 좀 말리지?”

“됐어. 말로 해 봐야 듣지도 않아. 난 예전에 포기했어.”

세라스의 얼굴에 독기가 감돌았다.

“녀석은 이번 기회에 혼 좀 나 봐야 돼. 아직도 철이 안 들었어. 벌써부터 지가 뭐라도 된 줄 알아. 오히려 고마울 정도야. 너희들이 나 대신 그 멍청이에게 쓴맛을 보여 주고 있으니까.”

그렇게 투덜거리던 세라스는 이쪽을 쳐다보는 한서리와 김건을 발견하곤 히죽,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너희 둘은 언제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된 거야? 서리를 오래전부터 알았지만 도저히 남자한테 넘어갈 성격으로 보이진 않았는데.”

“네가 나에 대해 뭘 알아?”

“아이, 왜 그래. 어렸을 때 곧잘 놀았잖아.”

“날 옆에 두고 너희들끼리 놀았을 뿐이지.”

한서리는 코웃음을 쳤다. 더할 나위 없이 차가운 태도였다.

계속해서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시켜 온 세라스의 얼굴에 장난기가 사라졌다.

“난 너희들 사이를 방해할 생각 없어. 약혼 건도 그렇고, 이런 개인의 일로 집안 어른이라는 작자들이 기 싸움하는 것도 꼴 보기 싫어. 오히려 나는 어른들이 뭐라 하든 굽히지 않는 너희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담담히 포크질을 하며 말을 잇는 모습에 김건은 친구였던 미래의 세라스를 떠올렸다.

그때, 과거의 권위가 모조리 부서졌던 그 시절.

세라스는 자신의 가문이 망해 사라진 것이 오히려 더 좋다고 말했었다.

자유분방하고 솔직했던 그녀는 온갖 것에 얽매여 무엇 하나 스스로의 의지로 할 수 없는 그 자리를 증오했다.

어떤 면에서, 그녀는 또 다른 한서리라고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공감할 수 있는 대상.

심술쟁이 아내가 마음만 열어 준다면, 세라스는 그녀에게 누구보다도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마친 세라스가 식기를 내려놓았다. 그녀는 똑바로 한서리를 마주하며 말했다.

“응원할게.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나도 발언권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집안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 손을 보태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거야.”

“……왜 우리를 도와주려 하는 건데?”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한서리가 묻자, 세라스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야 당연히, 너희들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으니까.”

* * *

훈련 주기 마지막 날, 제이미는 일어나자마자 휴대기를 꺼내어 어제 자 성과가 반영된 점수표를 확인했다.

아주 근소한 차이로, 그의 파티가 이기고 있었다.

하지만 기쁜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사실, 알고 있었다.

한서리가 일부러 적당히 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제이미는 그것을 앎에도 이 대결에 열과 성을 다했다.

그 이유는 지금의 이 대결이, 한서리가 자신을 시험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이 상황이 제이미에게는 한서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부군이 되고 싶다면, 어디 한번 날 이겨 봐.’

그렇기에 일부러 제이미가 이길 수 있는 여지를 남겨 주는 것이다.

한서리는 아직 제이미 자신에게 마음이 남아 있었다.

그 말은 곧, 지금 한서리의 옆에 있는 놈은 그저 허수아비일 뿐이라는 걸 의미한다.

조금 기분이 풀렸다.

까짓 거,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제이미는 손자국이 남을 정도로 양 볼을 거세게 친 뒤 다시금 사냥에 나섰다.

해가 창천에 떴다.

그 아래, 붉은 피부의 괴물 사이에서 날뛰는 이가 있었다.

“하아앗!”

제이미가 검을 휘둘렀다.

오라로 만들어진 거대한 검이 공간을 찢어발기며 피와 살점을 뿌렸다.

제이미는 주변의 모든 몬스터를 처리하자마자 뒤를 돌아보았다.

“얼마나 처리했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뒤를 바라본다. 몬스터를 죽이는 속도를 우선으로 하다 보니 자잘한 졸개들이 많이 살아남았다.

고블린과 악전고투를 벌이는 뒤처리반이 보였다.

“빌어먹을.”

하여간 저놈들이 이쪽의 사냥 속도를 쫓아오지 못하는 게 문제다.

못난 재능을 타고나 영웅조차 되지 못한 떨거지들.

할 수 있는 거라곤 먹다 남긴 찌꺼기 청소밖에 없으면서, 그것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답답해진 제이미가 인상을 쓰는 사이에 세라스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수 미터나 되는 대검을 몇 번 휘젓자 벌레처럼 우글거리던 고블린들이 추풍낙엽으로 쓸려 나갔다.

살아 있는 몬스터는 일소했지만 아직 마정석 채취와 시체 처리라는 작업이 남아 있다.

학학 거친 숨을 몰아쉬는 세라스가 제이미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털썩 맨바닥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만 좀 쉬자! 나, 더 이상은 못해.”

“웃기지 마라. 이 정도로는 한서리 그 여자를 이길 수 없다.”

“그러니까 못 이긴다고. 설령 이긴다 해도 문제야. 그 애, 이미 너는 안중에도 없어. 이만 포기해!”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옆의 바위에 걸터앉아 쉬던 제이미는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동생에게 인상을 썼다.

그리고 거친 호흡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크게 한숨을 쉬면서 옆을 돌아보았다.

2주간의 강행군으로 지친 건 세라스뿐만이 아니었다.

제이미 역시 지쳤다. 아니,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도 지친 건 그였다.

아무도 진심으로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만의 고집을 밀어붙여서 여기까지 왔다.

그렇기에 더더욱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여기서 포기해 버리면, 지금까지의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그는 생각을 바꿨다.

지금까지처럼 해서는 이길 수 없다. 동생이든, 누구든, 다른 사람을 볶아 봐야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뭔가 다른 것, 한서리의 예상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결정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다.

제이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시작했다. 그리고 천천히 주변 지형을 둘러보았다.

마계화되어 황폐화된 땅. 제대로 된 생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넓게 펼쳐진 능선에는 피와 지면의 양분을 빨아들여 티아마트의 종속을 늘리는 나무, 크립티드가 즐비했다.

빨간 바위산이 되어 높게 선 절벽, 그리고 협곡이 보였다.

제이미의 눈이 예리해졌다.

협곡 사이에, 커다란 동굴이 있었다.

충분히 쉬면서 체력을 회복한 제이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어디론가 걸어가지만 세라스는 저놈이 또 안달이 나서 시체 처리 작업에 열심인 헌터들을 볶으러 가는 줄 알았다.

또 싸움이 나겠지.

그걸 중재하는 것도 이젠 지긋지긋하다.

될 대로 되라지 뭐!

그녀는 에라 모르겠다 누워 버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원래라면 고래고래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칠 텐데?’

의아해진 세라스가 고개를 들고 제이미를 찾았다.

그리고 그녀는 시커먼 동굴 앞에 서 있는 제이미를 발견했다.

세라스의 눈이 뒤집혔다.

“야! 이 새끼야! 뭐 해! 거기서!”

세라스를 돌아본 제이미가 비릿한 미소를 띠었다.

그는 그대로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런 미친!”

마계 지역 내의 밀폐 지역에는 절대 들어가지 말라는 금언이 있다.

동굴, 깊은 협곡 사이,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 모르는 구덩이 등.

우선은 그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르고, 몬스터가 있을 경우 기습을 당할 확률이 높으며, 기습을 당했을 때 퇴로를 차단당하기도 쉽다.

존재 자체가 불안하면 머리를 들이밀 필요 없이, 밀폐 공간 자체를 폭파해 묻어 버리면 된다.

쉬운 처리 방법이 있는데 굳이 큰 리스크를 짊어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절대 들어가지 말라는 것인데…….

어딜 가나 말을 안 듣는 놈이 있기 마련이다.

동굴을 거점으로 지내는 몬스터는 단독 행동을 하는 경향이 강해서인지 강력한 종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간혹, 제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바보들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머리를 들이미는 경우가 있었다.

오빠라는 새끼가, 눈앞에서 그 지랄을 하고 있었다.

“이런 미친놈이……!”

빨리, 빨리 데리고 나와야 한다.

제이미를 위협할 만한 존재가 많지 않은 건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없는 게 아니었다. 이 세상에는 S급 영웅 따위는 한 끼 식사로 주워 먹을 수 있는 괴물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욕지거리를 하며 세라스가 몸을 일으키는 사이, 동굴 안쪽에서 황금색 빛이 새어 나오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것은 제이미가 가진 오라의 색이었다.

그 안쪽에 있을지도 모르는 괴물을 자극하는 소리다.

“정말, 가지가지 하네!”

세라스가 제이미가 들어간 동굴로 달려가는 동안, 몇 번이나 더 굉음이 울려 퍼졌다.

다행히 그 안에 아무것도 없었나 싶었던 순간, 이내 지금까지 있었던 굉음과는 차원이 다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면이 부풀어 오른다. 지진이 울려 퍼지며 높게 서 있던 절벽이 무너질 듯이 뒤흔들렸다.

폭풍이 울부짖는 것 같은 포효와 함께 동굴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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