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26화
절벽과 돌산이 주저앉으며 쏟아지는 바위와 먼지 속에서 황금색 오라로 전신을 두른 이가 튕겨져 나오더니, 화려한 몸놀림으로 공중제비를 돌며 착지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눈에 쌍심지를 켠 세라스가 입을 열려는 찰나, 그의 뒤를 따라 거대한 그림자가 지면에 착지했다.
바닥에 내려앉은 충격만으로 지면이 갈라지고 충격파가 터진다.
집채만 한 황동빛 금속질의 괴물이 눈앞에 있었다.
삐죽삐죽 솟은 금속 비늘이 전신에서 물결쳤다.
파충류의 머리, 그러나 동체는 고양잇과의 육식동물을 닮았다.
어깨 높이 4미터, 전체 몸길이는 15미터 정도일까. 전봇대만 한 꼬리가 땅을 치자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놈을 발견한 헌터들이 외쳤다.
“콜로서스다!”
“미친…… 여기서 콜로서스가 나온다고?”
“도망쳐! 도망!”
누가 지시를 내린 것도 아닌데 혼비백산해 도망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것을 말릴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었다.
당연했다.
콜로서스는 영웅협회의 기준으로 일반적인 퇴치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엡실론급에 해당하는 몬스터였으니까.
기린의 권속인 놈이 왜 티아마트의 권역에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원래 기린의 권속 대부분은 집단 생활이라는 걸 모르며 각각의 개체가 제멋대로 행동해 통일성이라곤 없는 놈들이다.
기린의 권속들이 가지는 공통점은 단 하나, 허락 없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적은 반드시 공격한다는 것뿐이었다.
멍청한 오빠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제이미와 함께 콜로서스의 앞에 선 세라스는 다급히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물러나자. 우리끼리 상대할 수 있는 괴물이 아니야.”
그러면서 휴대기를 꺼내어 지원을 부르려는 세라스. 그녀가 꺼낸 기계를 본 콜로서스의 눈이 사납게 깜빡였다.
쿠오오오오────
놈이 발을 박차며 포효를 내지르자 원형의 파형이 주변을 휩쓸었다.
손에 쥔 휴대기가 터져 나간다. 헌터들이 타고 가던 자동차가 스파크를 튀기며 바퀴를 멈췄고, 허공을 부유하던 정찰용 드론이 연기를 흩뿌리며 추락했다.
“빌어먹을!”
인간을 상대해 본 적이 있는 놈이었다.
세라스는 작동이 멈춘 휴대기를 내던지며 검을 뽑았다.
평범한 장검. 오라를 불어넣고 싶지만 참는다.
그녀는 길게 호흡을 뱉으며 기수식을 취했다.
콜로서스의 눈이 그녀를 포착했다. 놈은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어깨를 낮췄다.
죽이는 것 외의 소통이 불가능한 벨제불이나 티아마트의 권속들과 달리, 기린의 권속들은 타협이라는 게 뭔지 아는 놈들이었다.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긴 하나 행동 양식 자체는 일반적인 짐승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라스는 전방을 경계하며 콜로서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정도의 동작으로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옆에 있던 제이미에게 말했다.
“좋아. 아직은 엄청나게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아. 지원을 기다려야 해. 천천히 물러나자.”
하지만 제이미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세라스는 짜증을 낼 수밖에 없었다.
“뭐 해?”
제이미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이놈을 죽인다.”
“미쳤어? 저건 엡실론급이야! 상성도 최악! 전신이 리빙메탈인 괴물이라고! 전위로는 상대 못해! 극대소멸공격 없이는……!”
“지금은 먹힌다. 놈의 색을 봐라.”
제이미는 콜로서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황동색이지, 거기에 크기도 작아. 잠에서 막 깨어난 놈이다.”
마력을 흡수하는 성질을 가진 리빙메탈. 그런 리빙메탈로 이루어진 콜로서스는 자신에게 가해진 충격을 마력으로 변환해 흡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맞으면 맞을수록 콜로서스는 더욱더 단단해지며, 더욱더 커진다.
최대치로 강화된 놈은 불타는 듯한 황금색으로 빛나며 키는 10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눈앞에 있는 괴물이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온몸이 금속으로 이루어진 놈은 일반적인 생물이 아니다.
생물이라기보다는 골렘에 더 가까운 존재. 핵을 제외한 부위의 데미지는 순식간에 회복해 버린다.
콜로서스를 상대하는 기본 방법은 충격이 누적되기 전, 약한 상태일 때 극대소멸공격 혹은 그에 준하는 위력을 지닌 일격으로 단숨에 처치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순간적인 고화력을 가진 후위가 필요했다. 섣불리 공격하는 것은 콜로서스의 힘을 키워 줄 뿐이니까.
제이미가 앞으로 나섰다.
“지금이라면 죽일 수 있다.”
“웃기지 마! 지금의 네 기술로는 못 죽여! 일단 도망쳐서 월터 씨를 부를 수밖에 없어! 개짓거리하지 마! 제이미!”
“멍청하긴. 이건 기회다. 내 힘을 모두에게, 그리고 한서리에게 각인시켜 줄 수 있는 기회. 이런 좋은 기회를 내가 왜 포기해야 하지?”
“이런 씨……!”
흥분한 나머지, 콜로서스를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잊고 말았다. 욕지거리를 하려는 세라스를 향해 광폭한 일격이 달려들었다.
“캇!”
집채만 한 거체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움직이며 무자비한 발톱이 측면을 쓸어 왔다.
세라스의 검에서 금빛이 솟구쳤다. 손아귀에 쥔 장검을 축으로 금빛이 분출. 그녀는 철판처럼 벌어진 오라의 대검으로 공격을 막았다.
콰앙!
엄청난 충격이 덮쳐 왔다.
오라로 만들어 낸 강체술의 근골이 삐걱삐걱 비명을 지른다.
‘중(重)’의 원칙에 따라 생성해 낸 임시 질량이 아니었다면 야구공처럼 날아갔을 것이다.
공격을 받아 낸 세라스는 몸에 익은 대로 바로 충격을 휘돌려 반격을 가했다.
타격 직전의 순간, 멈춰 선다.
“큭!”
공격해서는 안 돼!
필살이 아닌 어설픈 공격은 콜로서스의 힘을 불려 줄 뿐이다.
그녀가 멈칫거리는 사이, 콜로서스가 반대쪽 다리를 휘둘러 왔다.
발톱에 스친 지면이 푸딩처럼 패이며 엄청난 충격이 덮쳐 왔다.
“……!”
세라스는 일방적으로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계속된 콜로서스의 타격에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결국은 오라의 제어가 흐트러져 트럭에 치인 허수아비마냥 튕겨져 날아갔다.
그사이 제이미는 콜로서스의 후방에서 오라를 제련하고 있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협공을 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는 세라스가 시간을 벌어 준 덕에 더욱 정교하게 오라를 짜낼 수 있었다.
“후우…….”
마력을 변환하여 만들어 낸 오라라는 이름의 물질을 찰흙을 만지듯 원하는 형태로 잡는다. 그것이 형(形).
형이 잡힌 오라를 두들기고, 담금질하여 단단히 만든다. 그것이 경(硬).
마지막으로 형태가 갖추어진 오라에 마력으로 생성한 임시 질량을 부여하여 무게를 갖는다. 그것이 중(重).
경, 형, 중.
오라의 삼원칙에 따라 만들어 낸 대검이 제이미의 손안에서 피어났다.
평소의 배는 되는 크기였다. 하늘로 솟은 검 끝은 거대한 콜로서스의 머리보다도 높은 곳에 있었다.
크기뿐 아니라 정밀한 형태까지 갖췄다.
극도의 예리함과 극도의 강도를 가진 고제련 오라.
제이미는 이 기술로 구세대에 사용하던 수십 톤짜리 전차 폐물을 두 조각 낸 적도 있었다.
제이미의 근육이 율동했다.
폐가 수축하며 호흡이 폭발, 윗니와 아랫니가 부딪쳐 불꽃을 튕겨 냈다.
위험을 감지한 콜로서스의 고개가 제이미 쪽으로 돌아갔지만, 늦었다.
금색 대검이 폭포처럼 괴물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쫙─────
대기가 갈라진다.
순간적으로 비어 버린 공간, 그 사이가 공기로 메워지며 폭음과 후폭풍이 몰아쳤다.
지면에 일자로 거대한 홈이 파였다.
공간 자체를 절단하는 것 같은 일격이었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깔끔한 일섬이었으나…….
제이미는 인상을 찡그렸다.
“제기랄.”
그의 앞에 반으로 조각 난 콜로서스가 있었다.
어깨와 몸통의 일부, 그리고 골반을 거쳐 한쪽 다리까지. 과일의 껍질을 발라내듯 갈라진 신체가 떨어져 나왔다.
제이미의 공격은 충분히 콜로서스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입혔다.
하지만 죽이진 못했다.
검을 내리치는 순간, 콜로서스가 반응해 몸을 틀었기 때문이다.
공격의 정밀함이 부족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오라의 제련에 너무 많은 신경을 쏟은 탓에 조준이 어그러졌다. 그 미묘한 오차가 심장 부위에 있을 콜로서스의 핵을 구했다.
“크르륵!”
남아 있는 콜로서스의 한쪽 눈이 회전하여 제이미를 향했다.
놈의 입이 벌어지며 괴성이 터지고, 온몸이 용암처럼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몸이 부풀어 오른다. 떨어져 나왔던 금속이 순식간에 몸체에 도로 달라붙었다.
“큭!”
제이미가 뒤로 발을 뺀다. 몸을 수복해 낸 괴물이 분노의 함성을 토하며 그의 뒤를 추격했다.
삐이이─!!
후퇴하는 제이미의 머리 위로 신호탄이 연기를 피우며 하늘로 날아갔다. 도망가던 헌터 중의 누군가가 쏘아 올린 모양이었다.
“훅, 후욱……!”
심호흡을 하며 충격에서 몸을 회복시키던 세라스 역시 신호탄을 확인했다.
근처에 있던 다른 파티가 금세 달려오겠지만…… 큰 도움은 기대할 수 없다. 주변에 깔린 파티라고 해 봐야 모두 D클래스 생도. 그들 중에서 극대소멸공격이 가능하거나 제이미보다 강한 전위가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은 월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미 한 번의 실패로 큰 충격을 흡수한 콜로서스는 이전보다 훨씬 강해져 있었다.
하지만 아직 최대치로 강화된 것은 아니다. 젊은 세대의 전위 중 최강이라고 여겨지는 천재, 월터 바이스턴이라면 지금 수준의 콜로서스는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기회가 있다. 제이미와 힘을 합치면 시간을 끄는 것 정도는…….
세라스가 그런 생각을 하며 추격전을 벌이는 콜로서스와 제이미를 쫓아가는 순간이었다.
제이미의 몸으로부터 폭죽 같은 빛이 번져 나왔다. 세라스의 입에서 경악의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 정말……!”
프레이저 가문의 혈통에는 아주 강력한 마력적성이 깃들어 있다.
마력 보유량만 따지면 지구 제일.
SSS급 마력적성에 제일 근접했다고 일컬어지는 가문이다.
제이미는 그중에서도 특출났다. 가지고 있는 마력량이 스스로의 몸을 붕괴시킬 정도라, 온갖 봉인을 걸쳐 마력을 억눌러서야 겨우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 그 봉인이 해제되었다.
해방된 마력이 뛰쳐나오는 것만으로도 제이미의 몸을 중심으로 충격파가 퍼지며 흙먼지가 치솟아 올랐다. 줄기줄기 흘러나오는 마력이 발광하며 별가루 같은 빛이 쏟아졌다.
제이미가 훌쩍 뛰어올랐다. 그의 몸이 황금빛으로 물들며 손에서 터져 나온 빛이 하늘로 솟구쳤다.
프레이저 가문의 가전비기(家傳秘技) 중 하나.
파산검(破山劍).
지름 3미터, 길이 15미터를 넘는 빛의 기둥이 제이미의 머리 위에 출현했다.
무시무시한 마력의 방류에 폭풍이 휘몰아쳤다. 콜로서스의 거체마저도 그림자로 가릴 정도의 거검.
아니, 이제 더 이상 검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저 적을 죽이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온 파괴의 화신이다.
“죽어라.”
제이미가 손을 내리쳤다. 그 손짓을 따라 황금색 빛의 기둥이 반원을 그리며 추락했다.
고오오오오!!
건물만 한 무기가 내지르는 포효에 주변의 공기가 공포에 떨었다. 그 아래에 깔린 콜로서스가 비명 같은 함성을 터트렸다.
거검과 거대 괴물이 충돌하며 폭발이 일었다.
충격의 여파로 열풍이 몰아치며 지면의 붕괴로 인한 토사가 분수처럼 솟구쳐 올랐다.
솟아오른 흙더미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흙먼지와 파편이 파도처럼 주변을 휩쓸었다.
“쿨럭, 쿨럭!”
짙은 먼지 때문에 기침을 하면서 제이미가 지면에 내려앉았다.
막대한 마력의 소모로 체력 역시 고갈되었다.
급격한 칼로리의 소모로 몸이 이상을 일으킨다. 미친 듯이 식은땀이 새어 나오고 폐가 경련을 일으킨다.
그는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억지로 숨을 되돌렸다. 기침을 하면서 바람에 의해 걷혀 가는 흙먼지 너머를 확인했다.
산산조각으로 흩어진 황동빛 금속 덩어리들이 보였다.
원래 형태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부스러진 리빙메탈이 쓰레기처럼 사방에 뒹굴고 있었다.
해치웠다.
제이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하!”
죽을 것 같이 숨이 찬 와중에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엡실론급 몬스터 콜로서스.
희귀 금속인 리빙메탈로 전신을 두른 이 몬스터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간 2주 동안 발할라 학생 100명이 사냥했던 모든 몬스터를 가치로 환산하여 따져도 콜로서스 한 마리만은 못하다.
사냥한 몬스터의 가치가 곧 성과에 적용되니, 뒷일은 계산해 볼 필요도 없었다.
아무리 한서리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이건 못 따라올 거다.
‘이겼다.’
킹메이커를, 한서리를,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재기 넘치는 그 여자를 다시 손아귀에 넣었다는 사실에 환희가 차올랐다.
“하하하하하!”
제이미는 웃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까지 기분이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면에 흩어져 있던 금속 덩어리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중 작은 조각이 허공에 떠오르더니, 자석이 끌어당기듯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다.
제이미의 시선이 자동으로 이상 현상의 근원지로 향했다.
그곳엔 붉은색으로 달아오른 커다란 구체가 있었다.
루비처럼 아름다운 색으로 빛나는 구체.
비록 반쯤 금이 가 있긴 했지만 심장처럼 요동치며 주변의 금속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금속의 흡수가 가속화된다.
커다란 덩어리가 날아와 구체를 완전히 감싸더니 쇳소리를 내면서 변형을 이뤘고, 곧 거대한 파충류 머리의 형태가 빚어져 나왔다.
제이미가 경악했다.
“아직도 숨이 붙어 있었나!”
잠깐 놀라는 사이 도로 뭉친 금속 덩어리에서 어깨가 튀어나오고 길쭉한 앞발이 자라났다.
다급하게 제이미가 달려 나갔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다시 한번 오라를 짜내어 대검을 구축했다.
숨통을 끊지는 못했지만 핵에는 확실히 데미지가 들어갔기에 콜로서스는 상당히 약해진 상태였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약해진 이 틈에 확실히 마무리한다!
“이야아아압!”
기합과 함께 제이미가 대검을 내리쳤다.
최초에 콜로서스를 두 조각냈었던 수준의 고제련 오라가 콜로서스의 머리 위에 처박혔다.
콰앙!
거창한 충돌음.
그리고 엄청난 반발력이 돌아왔다.
“크으윽!”
손바닥이 찢어지며 검을 쥔 손잡이에서 피가 흘렀다. 아릿아릿한 통증이 손아귀를 거쳐 손목과 팔꿈치까지 마비시켰다.
“크르르르…….”
낮은 울음소리와 함께 용암처럼 달아오른 금속 덩어리가 눈앞에 떠올랐다.
콜로서스의 팔이 제이미의 대검을 틀어막고 있었다. 아까는 분명히 동체를 두 쪽으로 가른 공격이었는데, 이번에는 팔을 절반정도 파고든 게 전부였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눈동자가 제이미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