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28화
“김건…… 이 자식, 슬슬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구만. 하긴 그 실력으로 지금까지 조용했던 것도 말이 안 되지.”
아스타로트는 김건에 대한 정보를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정보를 전달한 박사가 말했다.
“이번 훈련 주기에서 얻은 정보도 추가했다. 쓸 만한 게 있나?”
“아니, 그냥 이놈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하다는 것밖에 없는데.”
“놈이 해낸 일을 보면 놈의 능력도 더 자세히 짐작해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아스타로트는 고개를 저었다.
“짐작도 안 가. 전~혀. 전에 말했던 진동을 이용한 기술이라는 것도 이젠 의심스럽기 시작했어. 내가 아는 상식선에서 진동을 이용한 기술은 리빙메탈의 마력흡수에 쉽게 파해되거든? 그걸로 대체 무슨 짓거리를 해야 최대치로 강화된 콜로서스를 잡을 수 있는 거야?”
“흠…….”
“신이 아닌 이상에야 체외마력제어로 그걸 무효화했을리는 없을 거고…… 뭔가 내가 모르는 꼼수가 있거나 구조적으로 다른 기술을 사용한 걸 텐데, 혹시 우리의 시선을 의식한 거짓 정보는 아니겠지?”
“그건 아닐 거다. 증언을 월터 바이스턴이 했으니까.”
“월터? 그 깐깐한 인간이 헛소리를 할 것 같지는 않고…… 그럼 진짜로 콜로서스를 죽였다는 거네.”
아스타로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튼 이걸로 확실해졌어.”
마인협회 최강의 전력은 협회의 지도자를 향해 말했다.
“이 자식은 고수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나타났다 없어졌다 하는 게 아니라, 시대 자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준의 고수. 더더더더욱 상대하고 싶지 않아졌어.”
“무책임한 말 하지 마라. 네가 하지 못하면 아무도 못한다.”
“너야말로 무책임한 말 하지 마. 이런 놈은 피하는 게 상책이야.”
그렇게 말을 맺은 아스타로트는 ‘김건’이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방구석으로 처박혀 벌벌 떨고 있는 마이를 향해 외쳤다.
“어이, 아가씨!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시끄러워! 그 새끼 이야기 꺼내지 마!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그 좆같은 느낌이 떠오른다고!”
“머리가 안쪽으로부터 터져 나가는 느낌말이야? 왜, 그 정도면 진귀한 경험 아니야?”
“입 닥쳐! 네가 한번 당해 볼래?”
두 사람이 시끄럽게 다투는 사이, 검은 장막으로 둘러싸인 협회의 회의실로 한 사람이 들어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질척한 액체가 뚝뚝 떨어진다.
빛나던 금발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피 칠갑을 한 레이나였다.
그 꼴을 본 아스타로트가 휘파람을 불었다.
“예쁜 얼굴이 엉망이잖아. 대체 몇 명이나 죽인 거야?”
레이나는 볼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매섭게 눈을 치켜떴다.
“죽이다니,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신도들이 벨제불 님의 품에 안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알고 그러시는 거예요?”
아스타로트는 질린다는 얼굴로 양손을 들어 올렸다.
“아, 예. 죄송합니다.”
레이나는 깐족거리는 아스타로트를 밉살스럽게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지금은 저 경박한 남자와 어울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박사를 바라보았다.
“신탁이 내려왔어요.”
깊게 눌러쓴 후드가 움찔거렸다.
박사는 놀랍다는 듯이 물었다.
“무슨 내용이지?”
“기린의 동태가 수상하다. 기린의 추종자를 찾아라.”
아스타로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추종자? 기린한테 추종자가 있어?”
추종자라 함은 마인, 혹은 화신처럼 마신에게 힘을 받아 그를 위해 행동하는 인간을 통칭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추종자라는 말은 마인과 동일시되어 사용되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상한 일이로군. 벨제불 님을 제외하고 인간을 부리거나 직접적으로 접촉을 한 마신은 지금까지 없었다. 그런데 기린이 추종자를 두었다고?”
“벨제불 님이 그리 말씀하셨으니, 당연히 있겠지요.”
고개를 끄덕인 레이나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것을 내려 주셨습니다.”
꼭 쥐고 있던 손을 펴자 무시무시한 마기가 사방으로 뻗쳐 나가며 안 그래도 어두컴컴하던 공간이 칠흑으로 물들어 갔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퍼져 나온 독기만으로도 즉사할 만큼의 순수한 마기.
터무니없이 사악한 기운에 아스타로트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게 뭐야?”
그것은, 그저 ‘무언가’라고밖에 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저 그곳에 존재한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감각적으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제대로 된 형체마저 파악할 수 없었다.
박사는 놀라움을 숨기지 못한 채 말했다.
“이건…… 신의 파편이다.”
“신의 파편?”
“벨제불 님의 일부라는 말이다. 아주, 아주, 극도로 작은 조각일 뿐이지만.”
“이걸로 뭘 할 수 있는데?”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말할 수가 없군.”
박사는 흥미롭다는 듯 초점이 잡히지 않는 신의 파편을 직시하려 노력했다.
“어지간히도 다른 마신들의 동태를 알고 싶으신 모양이다.”
“그게 무슨 소리야?”
“신격이 이 세상으로 넘어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걸 이쪽 차원으로 넘기기 위해 벨제불 님도 상당한 힘을 소모했을 거다. 마신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그래 봐야 인간보다 단계가 높은 상위 개체일 뿐이다. 결국에는 누군가의 피조물. 세상의 법칙을 깨트릴 수는…….”
“불경한 말씀 하지 마세요!”
설명을 잇던 박사의 말을 레이나가 끊었다.
그녀는 보기 드물게 극도의 분노를 표출하며 박사를 노려보았다.
“벨제불 님은 이 세계 유일, 절대적인 지고신이십니다. 그분의 큰 자식인 당신이 어찌 그런 말씀을 입에 담을 수 있나요?”
두건 속의 시선이 레이나에게 향했다.
여전히 두건 안쪽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속에서 안광이 번뜩인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네가 적은 교리에 그렇게 적혀 있는 거겠지.”
박사는 차갑게 말했다.
“당신……!”
흥분한 레이나의 목소리가 높아지려 하자, 박사는 손을 들었다.
무시무시한 위압감이 좌중을 장악했다.
순간적으로 신의 파편의 존재감마저 지워 버릴 정도의 중압감이 레이나의 입을 다물게 했다.
“착각하지 마라. 여기는 네가 이끄는 마교가 아니다. 이곳은 마인협회이고, 벨제불 님의 뜻에 따라 그분을 이 세상으로 불러 오기 위한 일을 하는 곳이지. 이곳에서 너는 교주가 아니라 같이 벨제불 님의 바람을 실현시키려는 동료일 뿐이다.”
“…….”
“각자 방식은 다를지언정, 하려고하는 일은 모두 같다. 그러니 흥분하지 마라. 결코 벨제불 님을 모독하거나 폄하하려고 한 말이 아니야. 무작정 신격화하는 것보다 냉정한 시선을 갖는 게 그분에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한 말이다.”
레이나는 분한 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더 이상 화를 내며 교리를 설파하진 않았다.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싶자 아스타로트가 다시금 물었다.
“이…… 신의 파편이라는 게 대단하다는 건 알겠는데, 이걸로 뭘 어떻게 해야 다른 신의 동태를 알 수 있는 거야?”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다. 다른 마신들도 이 세계에 관심을 갖고 있으니, 이곳에서 눈에 띌 정도로 큰일을 벌이면 된다.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는 방향이면 좋겠지. 큰 사건이 터지면, 벨제불 님의 영향력이 강해졌다고 생각해 다른 마신들도 움직임을 보일 거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뭘 할 거냐는 거지.”
“보채지 마라. 이런 기회가 올 줄은 나도 몰랐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그렇게 말한 박사가 고민에 빠졌다.
그는 한참 동안 생각을 하며 “좋은 소체는 있고…… 발할라 외부이니 충분히 타격을 입힐 수 있을 테고…….” 따위의 말을 중얼거리더니 이내 말했다.
“나쁘지 않군. 근래에 이것을 사용할 만한 좋은 무대가 있다.”
“그게 어딘데?”
“발할라의 토너먼트 행사다.”
“아, 무술대회? 그러고 보니 얼마 남지 않았군.”
박사는 깍지 낀 양손에 보이지 않는 머리를 살짝 얹으며 말했다.
“이번 일이 성공하면 발할라는 인재 육성에 커다란 타격을 입을 거다. 새로운 위협 요소로 떠오른 김건도 제거할 수 있겠지.”
그의 시선이 천천히 돌아가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는 작은 등으로 향했다.
“이번엔 마이, 네가 수고를 좀 해 줘야겠다.”
* * *
D클래스 생도의 훈련 주기에 엡실론급 몬스터인 콜로서스가 나타났다.
자칫 인솔역인 에인헤야르를 포함하여 근처 지역을 담당하던 발할라 소속의 인재들이 전멸할 수도 있는 위기였으나, 다행히 부상자 몇 명 외에는 별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기에 발할라는 해당 건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덮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의외로 콜로서스의 등장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예측이 불가능한 기린의 종속이다. 콜로서스가 그곳에 나타난 것은 그저 천재지변을 만난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으니까.
다만 교범 규칙을 어기고 동굴에 들어가 콜로서스를 자극한 일, 그리고 파티원을 제대로 제지하지 못한 일로 프레이저가의 쌍둥이는 2주의 근신 처분을 받았다.
물론 이는 벌어진 사건에 비해서는 경미한 처벌이었다.
이번 사건에서 진짜 문제로 떠오른 것은 바로 김건이었다.
주변의 도움을 받기는 했으나 다른 인물들의 화력을 모두 합해도 콜로서스를 죽일 수는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김건이 홀로 엡실론급 몬스터를 홀로 해치운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전에 있었던 S급 마인 처치와는 결이 다른 이야기였다.
전에 일은 F급 마력적성자라 해도 한서리의 버프와 고제련 오라를 버틸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감안해 ‘오, 대단한걸?’ 혹은 ‘제법이군?’ 정도로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의 성과였으나.
이번 일은 절대 그런 식으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애초에, SS급 마력적성자 두 명과 천재라고 불리는 초월자급 에인헤야르조차 치명타를 입히지 못해 애를 먹던 괴물이다.
그런 괴물을 전위, 심지어 F급 마력적성을 가진 이가 일격에 쓰러트린 것이다.
버프 따위의 힘으로는 절대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 현상에 발할라의 수뇌부는 긴급 회의 겸 청문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넓은 홀 가운데에 단상을 놓고 김건과 한서리가 서 있었다.
홀의 좌석 사이사이로 발할라를 대표하는 열두 교수 중 여섯 명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중에는 희끗한 머리칼을 깔끔하게 뒤로 넘기고 단정하게 콧수염을 가다듬은 양복의 남자가 있었다.
“무슨 수단을 사용해 콜로서스를 쓰러트린 건지 진짜 말하지 않을 건가?”
발할라의 두 번째 별이라 불리는 마법학 교수, 프리드리히 하이데거가 엄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처음에 스스로 개발한 오라 기술로 콜로서스를 쓰러트렸다고 말을 했지만…… 그건 답변이 안 돼.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일반적인 오라 기술로 콜로서스를 쓰러트리는 건 불가능하다. 안 그래도 요 근래에 마인들이 날뛰기 시작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김건, 네놈처럼 이상한 존재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서리가 차갑게 항변했다.
“의심을 할 게 뭐가 있죠? 이미 오자마자 마기의 검출이 없다는 건 확인했습니다. 김건 생도는 마인이 아닙니다.”
프리드리히는 코웃음을 쳤다.
“마인은 아닐 수도 있지. 하지만 또 아나? 다른 놈들도 벨제불과 비슷한 수단을 사용하기 시작했을지.”
“억측이 심한데요. 아직까지 티아마트나 기린이 인간을 추종자나 화신으로 삼은 적은 없습니다.”
냉랭한 답변에 프리드리히는 눈살을 찌푸렸다.
“우리가 질문을 던지는 건 김건이지 네가 아니다. 한서리.”
“저는 그의 파티장으로서 책임을 지고 답변을 하는 것뿐입니다.”
“아니, 내가 보기엔 그저 김건을 감싸는 것으로밖에 안 보이네만. 이만 비켜 주겠나?”
한서리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의외로 쉽게 옆으로 물러났다.
김건은 괜찮겠냐는 듯 한서리를 쳐다보았다. 한서리는 간만에 뚱한 표정인 남편의 얼굴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녀는 입모양만 가지고 말했다.
‘마음대로 해. 안 말릴 테니까.’
김건이 앞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