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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29화 (29/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29화

김건은 자기가 대체 왜 이곳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프리드리히의 심문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럼 다시 묻지. 김건. 대체 무슨 방법을 써서 콜로서스를 쓰러트린 건가?”

김건은 퉁명스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오라를 이용한 진동 생성으로 공진 주파수를 맞춰 핵을 파괴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을 텐데요.”

“그건 아까도 들었어. 하지만 너무 말이 안 돼서 생각할 가치를 못 느끼겠군. 그 정도 강도의 물질을 부술 수 있을 정도로 진동파를 생성하는 것도 의심스러운데, 어떻게 F급 마력적성으로 짜낸 오라가 리빙메탈의 마력흡수를 무시하고 타격을 줄 수 있나?”

“마력이 리빙메탈에 흡수되지 않도록 계속 붙잡고 있었으니까요.”

프리드리히는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콜로서스의 몸 안쪽으로 흘려 넣은 오라를 계속 제어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네.”

“말도 안 돼. 체외에서의 마력제어는 체내에서의 제어 보다 훨씬 어려워. 농담이 지나치군. 마력적성 F급, 거기에 생도에 불과한 네놈이 그 정도의 마력제어가 가능하다고?”

도대체가 말이 통하지를 않는다.

김건은 하, 하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말했다.

“혹시 여기 무슨 구마 의식이라도 하는 곳입니까?”

“구마 의식? 그게 무슨 소리냐?”

“교수님이 하는 말씀이 마치 악마야! 거짓을 고하지 말고 모습을 드러내라! 라고 하는 것 같아서요.”

그 말에 어디선가 킥, 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프리드리히의 옆에 앉은 붉은 머리칼의 여자가 낸 소리였다. 프리드리히는 그녀를 노려보았다가 다시금 김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게 아니라 네놈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지 않느냐! 그냥 하니까 됐다니, 이론적으로 납득 가능한 원리도 설명하지 못한다면 무슨 수상한 짓을 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김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노골적으로 뭔 병신 같은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명은 충분히 했습니다. 그냥 교수님도 못하는 걸 제가 했다고 하는 게 기분이 나쁘다고 솔직히 말씀하시죠. 아, 이제는 말씀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충분히 이해하니까.”

“……!!”

“제 기술이 부러우시면 차라리 제게 가르쳐 달라고 하시죠? 혹시 압니까? 넓은 아량으로 제 비기를 가르쳐 드릴지?”

“이 건방진 놈이……!”

흥분한 프리드리히가 호통을 쏟아 내려는 찰나였다.

“크하하하핫!”

어디선가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중앙으로부터 조금 거리가 떨어진 홀의 한편에 한 거구가 배를 붙잡고 웃고 있었다.

앉아 있는 모습만 봐도 키가 2미터는 넘어 보이는 거한. 온몸이 근육으로 이루어진 것 같은 남자는 계속해서 새어 나오는 웃음을 겨우 눌러 참으며 말했다.

“저놈, 마음에 들어. 싸움꾼이라면 저 정도 자존심은 있어야지. 나라도 어느 놈이 내 실력에 대해 의심을 품었으면 바로 골통을 부숴 놨을 거야.”

“에디, 지금 저놈을 비호하는 건가?”

프리드리히가 눈을 부라렸지만 에디라 불린 남자는 느물거리며 웃었다.

“왜, 이제는 나를 악마로 몰아붙이고 싶나?”

“에디 슐츠……!”

교수들간의 분위기마저 험악해지려는 찰나, 프리드리히의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나섰다.

생기가 넘치는 흑발의 남자였다. 언뜻 보아서는 이십대 초반. 중장년인이 대부분인 교수들 사이에서는 유난히 젊어 보인다.

“그만들 해 두지.”

그가 입을 열자 공기가 바뀌었다.

프리드리히가 씨근거리면서도 입을 다문다. 에디는 어깨를 으쓱하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김건의 시선이 말 한마디로 교수들의 싸움을 잠재운 남자에게 향했다.

남자는 살짝 안경을 치켜올리며 차분한 눈으로 김건을 마주 보았다.

그가 바로 발할라의 첫 번째 별, 사이먼 베이커였다.

모든 속성의 마법을 통달했다 하는 천재 중의 천재.

언뜻 어려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십을 넘는 나이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최고라 불리는 마법사는 노화라는 자연 현상마저 뛰어넘었다.

사이먼이 말했다.

“싸우지들 말게. 프리드리히, 너무 흥분했어. 그리고 김건 군, 하이데거 교수가 거칠게 이야기를 한 것은 있으나 자네 역시 말이 과해. 조금은 자제를 해 주었으면 좋겠네.”

베이커 교수는 김건이 겪은 미래에서도 마지막까지 인류의 희망이 되어 주었던 든든한 대들보였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들 중 베이커 교수에게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고, 김건 역시 그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프리드리히 하이데거가 입을 다물자 자연스레 홀의 주도권은 사이먼 베이커가 쥐었다. 사이먼은 찬찬히 지금까지의 일을 정리했다.

“김건 군이 어떻게 콜로서스를 쓰러트렸는지에 대해 기술한 자료는 받았네. 내가 보기에, 확실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하지만 프리드리히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기도하지. 딱히 김건 군을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네. 하지만 상식적으로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는 건 부정할 수 없어. 그건 인정하나?”

사이먼의 말은 옳았다. 아무리 실력이 좋다 해도 갓 아카데미에 들어온 F급 마력적성자가 일격에 콜로서스를 쓰러트렸다고 하면 그 누구라도 믿기 힘들 것이다.

김건 역시 그를 죄인 취급하는 프리드리히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지 그의 능력에 의심을 품는 것까지 불합리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합니다.”

“알겠네. 하지만 뭘 어떻게 한 건지 본인에게 말을 해 보라고 해 봐야 지금까지 한 말고 다른 말을 하긴 어렵겠지. 그러니 이번에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 보도록하지.”

사이먼은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홀 한쪽 구석에 앉아 있던 한 남자에게 나오라고 턱짓을 했다.

김건이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러자 사이먼의 부름을 받은 남자가 나와 그 자리에 섰다. 그는 교수들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해 보였다.

“에인헤야르, 월터 바이스턴입니다. 이번에 김건과 한서리가 포함된 D클래스 생도 그룹의 인솔 역을 맡았습니다.”

“월터군, 지금 김건 군이 콜로서스를 쓰러트릴 때 벨제불의 마기나, 티아마트의 투기 등 마신의 힘을 빌어 이루어 낸 일이 아니냐는 의심이 있는 듯한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월터는 담담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단언했다.

“콜로서스를 쓰러트리는 걸 눈앞에서 봤지만 김건이 마신의 힘을 사용했다는 증거를 목격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스스로의 눈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아실 분들은 아실 테지만, 저는 마안(魔眼)을 타고나 마력의 흐름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로 감추지 않는 이상 마기나 투기도 구별할 수 있죠. 하지만 제가 본 바로, 그때 김건이 사용한 기술은 평범한 마력으로 이루어 낸 현상이었습니다. 순수한 오라 기술이었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긴 했지만요.”

오만한 천재의 눈이 씨근덕거리며 화를 참고 있는 프리드리히에게로 향한다.

“개인적인 생각이긴 합니다만, 그만한 기술을 마기 따위에 비교하는 건 오히려 그걸 갈고닦은 전사를 향한 모욕이라고 생각합니다.”

“뭣……!”

의견을 무시당한 프리드리히의 이마에 핏줄이 돋았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다른 교수들은 월터의 말에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월터를 아는 사람들 중 그의 청렴결백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거짓말이라는 걸 모르고 맡은 일에 언제나 열심. 행실이나 인격에도 결점 따윈 가지지 못한 재미없는 인간이다.

하지만 그만큼 그가 하는 말에는 무게가 있었다.

특히 평생 동안 오라기술을 갈고닦아 온 전위들의 반응은 유난했다.

수많은 후배 전위 중 제일 깐깐하고 붙임성 없는 녀석이 바로 월터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시대를 주름잡는 고수였지만 월터에게 존경이나 경의의 의미를 담은 말을 들어 본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잡아먹을 듯이 김건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붉은 머리의 여자가 깔깔거리고 웃었다.

“눈빛 변하는 것 좀 봐. 무뇌아들끼리 통하는 게 있나보네.”

인간 함대, 폭격마녀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후위 스칼렛 밸런타인이었다.

그녀의 깔아 보는 듯한 시선이 주변의 전사들을 훑었다.

그중 하나인 근육덩어리, 에디 슐츠가 말했다.

“뇌가 없는 건 너 같은 화력 바보겠지. 무작정 마법을 퍼부을 줄만 아는 멍청이가 무술의 심오함을 알겠어?”

“이 새끼가…… 이 자리에서 통구이로 만들어 줄까?”

“바로 화를 내는군. 역시 대가리가 빈 게 분명해.”

“넌 죽었어.”

“그만! 그만!”

살기를 피워 올리는 두 사람을 사이먼이 말렸다.

발할라의 교수직은 인성보다는 전투력을 우선시하여 채용되기 때문에 쓸데없이 자존심이 높거나 성질이 더러운 자들이 많았다.

“덤벼! 이 돼지 새끼야! 뒤룩뒤룩 살만 쪄서는!”

“치매 걸린 할망구. 근육이랑 지방도 구분 못하나? 그 빨간 머리를 뜯어서 물리 치료를 해 줄까?”

보다 못한 사이먼이 손을 날렸다. 그러자 마력으로 이루어진 푸른 사슬이 날아가 두 사람의 입을 틀어막으며 몸을 옭아맸다.

스칼렛이 반사적으로 불꽃을 피워 올렸고, 에디는 순식간에 근육을 부풀리며 사슬을 끊어 냈다. 하지만 그다음 순간, 두 사람은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내려다보는 사이먼을 발견했다.

“…….”

“……쳇.”

겨우 싸움이 멈췄다.

사슬에 묶인 채로 스칼렛이 자리에 앉았다. 에디는 혀를 차며 이빨로 뜯어낸 마력의 사슬을 뱉어 냈다.

사이먼은 한숨을 쉬며 월터에게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다. 그리고 한심하다는 듯이 스칼렛과 에디를 바라보고 있는 교수들 중 한 사람을 지목했다.

“제라드, 김건 군은 자네 추천으로 발할라에 입학한 걸로 아는데 김건 군의 기술에 대해 아는 게 있나?”

어디서 노숙이라도 하고 왔는지 지저분한 복장에 갈색 머리칼이 삐죽삐죽 솟아 있다.

제라드 센델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알지. 진동을 이용한 기술이야. 저 녀석의 아버지와 같이 연구를 했던 적이 있어. 깊게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수법이지. 이론상으로 제대로 사용할 수만 있다면 대부분의 물질을 내부로부터 파괴할 수 있으니까…… 콜로서스처럼 내구도로 밀어붙이는 타입한테는 상성이 좋아.”

“입학하기 전에 남긴 자료를 보니 김건 군은 그 기술로 오우거의 심장을 파괴한 것 같더군. 하지만 그때는 꽤 많은 시행착오 끝에 성공시킨 걸로 보였네. 몇달 전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실력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은데, 젊은 나이라곤 해도 이 정도로 빠르게 실력이 늘 수가 있나?”

센델은 흠, 하고 팔짱을 꼈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불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아. 오라를 운동에너지로 다루는 기술은 마력량보다는 정밀한 제어력을 요구하거든. 보지 못하던 걸 보려 하고, 듣지 못하던 걸 들으려 하는 종류의 노력이 필요하지. 경험치를 쌓는다고 무조건 레벨이 올라가지 않아. 성장과 시간이 비례하지 않다는 거야. 완벽한 계단식 성장이야. 평생을 노력해도 실력이 그대로일 수 있고, 운 좋게 벽을 넘는다면 하루아침 만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힘을 갖게 될 수도 있지.”

침착한 눈이 김건을 바라봤다.

“내가 알기로 저 녀석의 실력은 지난 몇 년간 쭉 정체기였어. 오우거를 쓰러트릴 때 썼던 기술도 실전에서는 그때가 첫 성공이었고, 그때 한 번 실력이 크게 늘었지. 만약 그 사건이 재능의 물꼬를 틔웠다면…… 급격한 성장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봐.”

조용히 있던 교수진 중 또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금발의 청년. 사이먼을 제외하고는 교수진 중 제일 어려 보인다. 사이먼은 고개를 끄덕여 발언을 허락했다.

“말해 보게, 티리온 군.”

“저는 김건 군의 성장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저 역시 그랬거든요. 집안에서…… 프레이저 가문에서 평생 동안 못난이 병신 취급을 받았지만…… 사실상 실력이 오른 건 스승님이 저를 가르쳤던 일주일이었어요. 그때 이후로는 크게 실력이 늘지도 않았고요.”

현대의 전위 중 제일 세련된 오라 기술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젊은이의 말이었다.

그의 말은 진실이었고, 그가 겪은 과거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사실이었다.

월터 바이스턴이 결백을 보증했고, 제라드 센델이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으며, 티리온 프레이저가 전례로서 앞에 나섰다.

반론을 내뱉는 사람이 더 이상 없었다.

프리드리히는 입술을 삐죽이긴 했으나 별 말이 없었고, 다른 사람들은 대체로 김건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더 이상 김건을 적대적으로 지켜보는 사람은 없었다.

잠자코 있던 한서리가 단상으로 나섰다.

“어느 정도 이야기가 정리된 것 같습니다만,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사이먼은 고개를 저었다.

“없네. 이제는 오히려 김건 군에게 우리 아카데미에 들어와서 고맙다는 말을 해야 되겠군. 둘 다 돌아가도 좋네.”

“가기 전에 교수님께 여쭙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뭔가?”

“콜로서스 사냥으로 얻은 이득의 분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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