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30화
“음…….”
언급하기 껄끄러운 주제에 사이먼이 침음을 삼켰다.
하지만 한서리는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규정상 훈련 주기에서 얻은 이득은 그 성과를 이루어 낸 생도들에게도 일정 비율의 금액이 돌아가도록 되어 있다.
다만 뒤처리반의 고용, 획득한 마정석 등의 판매에 관해서는 모두 발할라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생도들의 지분은 그리 크지 않을 뿐이다.
문제는 그 적은 지분으로도 막대한 금액이 발생했을 때 발생한다.
B클래스 이상의 에인헤야르들에게는 이런 문제가 없다. 그들은 프로고 계약서에 따라 확실하게 보장된 액수를 챙긴다.
하지만 아직 온전한 영웅으로 인정받지 못한 C, D클래스의 생도는 어디까지나 아카데미에 종속된 존재였다.
때문에 훈련 주기의 성과로 가져갈 수 있는 금액에는 상한선이 존재했다.
미성숙한 생도가 무리하게 사냥에 목매지 않게 한다는 이유도 있고, 언제 발할라를 떠날지 모르는 사람에게 큰 이익을 보장할 필요도 없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문제가 있어 정해진 규정이지만…… 그냥 수긍하고 넘어가기엔 이쪽에서 볼 손해가 너무 컸다.
한두 푼이 아니다. 온전한 형태로 죽은 콜로서스의 시체가 가진 가치는 막대하다.
어지간한 졸부도 눈이 뒤집힐만한 금액이 이번 건에 걸려 있었다.
사이먼은 딱 잘라 말했다.
“자네들의 공헌에 제대로 된 보상을 주지 못한 것은 안타깝게 생각하네. 하지만 이건 규정이야. 아무 생각 없이 정한 규칙이 아니란 말일세. 그저 액수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규칙에 예외를 둘 수는 없어.”
하지만 한서리가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단순히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었다.
“그 점은 이해합니다. 이미 정해진 규정이니 지켜야죠. 하지만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까지는 어쩔 수가 없군요.”
그녀의 의도를 눈치챈 사이먼이 물었다.
“……돈 대신 뭔가 다른 보상을 원하는 게 있는 건가?”
“네.”
“그게 뭐지?”
“발할라 토너먼트의 참가 추천장을 받고 싶습니다.”
발할라 토너먼트는 매년 두 번, 생도들이 각자의 파티를 꾸려 모의전을 펼치는 일종의 무술 대회다.
기본적으로는 C클래스의 생도들을 참가 대상으로 하지만 D클래스라도 교수의 추천장을 받으면 참가할 수 있다.
그렇게 참가한 D클래스가 토너먼트에서 8강 안에 들어간다면 즉각적으로 C클래스로서의 승급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추천장을 통한 참가는 빠르게 발할라의 고위직으로 올라가길 원하는 생도가 밟는 필수적인 엘리트 코스였다.
그리고 이미 한서리와 김건은 생도 신분으로 있을 실력이 아니다.
그 두 사람이 토너먼트에 나가주는 건 오히려 사이먼에게는 좋은 이야기였기에,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추천장을 원한다면 내가 써 주도록 하겠네.”
“아뇨, 저희는 슐츠 교수님의 추천장을 받고 싶습니다.”
“에디의?”
생각지 못했던 요구에 사이먼의 표정이 변했다.
추천장이라는 건 엄밀히 말해 일종의 보증서이다. 이 사람의 실력을 보증한다는 의미의 문서.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신뢰 관계의 표현이기도 했다.
사이먼은 발할라의 얼굴마담이기도 했다.
그는 대외 활동에 적극적이었으며 때문에 비즈니스적인 의미로 추천장을 써 준 적도 많았다.
신뢰 관계의 표현이라는 측면으로 보았을 때, 사이먼의 추천장은 별다른 가치가 없었다.
하지만 에디의 추천장은 달랐다.
에디 슐츠는 독불장군이었다. 그는 전투에 나설 때 외에는 대외 활동을 하지 않았다. 개인 시간의 대부분을 수련에만 할애하며, 제자를 기르지도 않고, 따라서 추천장을 써 준 적도 없다.
그런 에디가 추천장을 써 준다?
외부인이 보기에, 그것은 제자나 그에 근접한 관계를 나타내는 상징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건…….”
사이먼은 그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기에 뒷말을 흐렸다.
그 혼자 결정을 내릴 사안이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에디의 눈치를 살피게 됐다.
의외로, 에디는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내가 추천장을 써 주지.”
후학 양성에 무관심한 에디가 제자, 혹은 그와 비슷한 관계를 갖는 것은 사이먼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사이먼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웬일로 쉽게 허락하는군.”
“난 저놈이 마음에 들었거든.”
씨익 웃은 에디가 김건을 바라보았다.
김건 역시 고개를 들어 에디와 눈을 맞췄다.
두 사람이 눈을 마추치는 순간.
무언가가 벌어졌다.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이었기에 두 사람 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눈치챈 사람은 이 자리에서도 극소수였다.
티리온과 월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에디는 신음 소리를 내며 팔짱을 꼈다.
상체를 숙이고 고개를 내밀어 김건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저놈은 딱히 날 귀찮게 하지도 않을 것 같고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에디의 이마에는, 어쩐지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 * *
청문회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한서리가 말했다.
“미래가 바뀌었어.”
상당히 심각한 표정이다. 하지만 김건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그거야 당연하잖아? 우리도 돌아왔으니 똑같은 일이 그대로 벌어지지는 않을 거…….”
“그런 문제가 아니야.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
한서리는 고개를 저었다.
“전의 훈련 주기에서는 콜로서스가 나타나지 않았어. 그냥 무난히, 아무런 사건도 없이 끝났던 일이야.”
사고를 거듭하자 점점 상황이 안 좋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녀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초조하게 말을 쏟아 냈다.
“자칫했으면 제이미가 죽었을 수도 있어. 그러면 일이 커져. 이런 일이 계속해서 나타나다 보면, 결국에는 모든 일을 망칠 수도……!”
김건은 손을 뻗어 초조한 듯이 움츠러들어 있는 아내의 팔을 낚아챘다. 아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미래라는 건 원래 알 수 없는 거야.”
“…….”
“그래서 사는 게 재미있는 거고.”
한서리는 남편만큼 그 말을 하는 게 어울리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김건이 아카데미의 낙오자였던 시절.
이 세상 그 누구도, 심지어는 마신마저도 그의 진가를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김건은 아무도 믿지 않는 미래를 향해 걸어 나간 끝에 무언가를 쟁취했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었다.
시간을 되돌린 건 기린이지만, 기린이 그것을 하게 만든 건 김건이었다.
“하아…….”
한서리는 깊은 한숨을 쉬며 남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김건은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생각이 너무 많아.”
“생각을 많이 할 수밖에 없어. 저번 같은 결말을 또다시 맞이하고 싶진 않아.”
두 사람은 서로를 안아 주었다.
한동안 그러고 있자 점차 마음이 차분해졌다. 한서리는 침착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은 토너먼트야. 거기서 이기면 승급과 동시에 명성도 얻을 수 있어. 그러면 지금까지보다 적극적으로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을 거야.”
“그래.”
“두 번째로는 제이미를 주시해야겠어. 돌아온 우리들로 인해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사람은 그 자식이야. 뭔가 변수가 일어난다면 그 자식이 그 원인이 될 가능성이 높아.”
“슐츠 교수님은? 굳이 그분한테 추천장을 받았다면 이유가 있겠지?”
“그게 세 번째 목표야. 그 사람, 당신을 꽤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으니까 이번 기회에 한번 친해져 봐.”
“왜?”
“발할라의 배신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수뇌부, 즉 교수 자리를 꿰차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흐음.”
“슐츠 교수가 배신자라면 당연히 당신에게 관심을 가질 거야. 슐츠 교수와 가까이 지내면서 그 사람을 관찰해 봐. 만약 배신자라면 분명히 뭔가를 해 올 거야. 그럼 그때를 노려서 증거를 잡으면 돼.”
“배신자가 아니면?”
“그럼 그냥 친하게 지내면 되지. 아군으로 삼을 수 있다면 꽤 믿음직한 사람이니까.”
냉정을 되찾은 한서리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교수진 중에서는 제일 배신 가능성이 낮은 사람이라 고른 것도 있어. 기껏 배신자를 찾아서 죽이거나 고발했는데, 인맥이나 신뢰도에 밀려서 역으로 잡아먹히면 그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으니까.”
김건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이런 일은 별로 익숙하지 않은데.”
“당신은 그냥 평소처럼 행동하면 돼. 세부적인 관찰은 내가 할 거야.”
김건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의 계획에 대해 되새김질을 하던 그는, 이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물었다.
“그럼 결국 당신은…… 현상 유지가 목표인 거지? 지금까지 마계의 침공을 막아 왔던 발할라가 무너지는 걸 막아서 지금의 세계를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거야.”
한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당신도 겪어 봐서 알겠지만…… 마신에게 대항할 방법이 없는 한, 마계와의 전면전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근본적인 원인 해결이 불가능하니 남은 건 현상 유지를 최대한 오래 끄는 것뿐이지. 계속해서 게이트가 생길 거고, 끝없이 피해가 나올 거야. 게다가, 만약 전면전이 발생하게 된다면…… 아마 당신은…….”
한서리는 말꼬리를 늘이며 슬쩍, 김건의 눈치를 살폈다.
잠시 그를 살펴보더니, 입을 다물고 얼버부리듯이 김건을 꼬옥 안았다.
허리를 감은 팔에서 약한 떨림이 느껴졌다.
김건은 아내가 불안해하고 있음을 알았다.
“…….”
돌아온 이래로 김건은 아내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거나 상처 입은 그녀의 마음을 치료하는 데에만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그러고만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아내가 내비치는 불안이, 김건에게 새로운 결심을 하도록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