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31화
‘더 강해져야겠군.’
그렇게 생각하는 김건의 발치에는 그의 상대역인 생도가 발버둥 치고 있었다.
꽈아아아악!!
“켁, 컥!”
목에 감긴 채찍이 무서운 힘으로 목을 조른다.
오라든, 마법이든, 마력을 다루기 위해서는 높은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숨통이 막힌 상태에서도 문제없이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자식!”
옆에 있던 상대 파티의 전위가 달려들며 줄기줄기 오라를 뿜어내는 검을 휘둘렀다.
“음.”
김건은 전위의 공격을 보지도 않고 피해 냈다.
그의 다리가 춤추듯 움직였다. 몸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더니, 칼을 휘둘러 온 전위의 옆구리를 빠져나갔다.
“어?”
기묘한 움직임에 동선을 시선에서 놓쳤다. 생도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입에서 멍청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채찍이 뱀 같은 움직임으로 목을 휘감아 왔다.
“……!”
순간적으로 오라를 끌어올려 목을 보호하려 했지만, 김건이 더 빨랐다.
오라가 형성되기 전에 뒤에서 가볍게 후두부를 가격. 순간적으로 의식이 날아갔다.
채찍이 부드러운 목을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끄어억!”
“꺽…….”
채찍에 낚인 전위가 숨 막히는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김건은 굴비처럼 엮인 두 사람을 질질 끌며 경기장 위를 누볐다.
목이 졸린 둘이 발버둥을 치지만, 김건의 표정에는 미동도 없었다. 마치 덫에 걸린 사냥감을 회수하는 사냥꾼 같은 모습에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탄식을 토했다.
“끝내라! 끝내!”
“뭐 하냐, 불쌍하다!”
여기저기서 야유가 터져 나왔지만, 김건은 주변에서 무슨 말을 하든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살짝 고개를 돌려 경기장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소환한 아이스 골렘으로 후위들을 두들기고 있는 한서리의 모습을 확인했다.
생도들을 유린하는 얼음 같은 미모에는 한 점의 빈틈도 없다. 하지만 김건은 아내가 겉과 속이 다른 인물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겉으로는 냉정하고 강인해 보여도 그 두꺼운 껍질 속을 들여다보면 말랑말랑하기 그지없다.
쉽게 삐지는 데다, 남들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조금만 위험한 일이 생기면 금세 당황하는 유리 멘탈의 소유자다.
그 점은 회귀하고 나서 더 강하게 나타났다. 회귀 이전의 아내를 아는 김건으로서는 아내의 정신력이 약해졌다는 것을 확실히 실감하고 있었다.
‘아마도…… 돌아오기 전에 겪었던 일이 원인이겠지.’
돌아오기 직전에 있었던 일.
즉, 김건이 기린을 처치하고 죽어 버린 것이 트라우마가 된 것 같았다.
그의 아내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김건은 스스로의 존재 의의에 대해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싸움, 전투라는 건 본디 최후 최악의 수단이다.
강력한 무기, 군대, 그리고 무술…… 싸우기 위한 모든 수단은 그런 최악의 상황에 처할 때의 불안을 걷어 내기 위한 보험이었다.
설령 최악의 상황에 처하더라도,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줌으로서 안심을 가져다준다. 그것이 바로 무력(武力)이 가져야 할 의무다.
한서리가 가진 최강의 무기는 김건, 그 자신이었다.
그런 아내가 안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자신의 힘이 미덥지 못하다는 것이다.
김건은 손에서 힘을 풀었다. 기절한 생도들이 채찍에서 줄줄이 떨어져 나갔다.
김건은 자신이 있었다.
아내가 말하는 대로 역사에 남을 정도의 인물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스스로가 이 세상에서 손꼽힐 만한 수준의 전사라는 확신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상대는 이 세상을 위협하고 있는 마계와 신이라 불릴 정도로 강대한 세 괴물이었다. 그런 적을 상대로 어떻게 안심할 수 있는 전력이 될 수 있겠느냐 말할 수도 있지만…….
‘그딴 건 변명이 안 되지.’
설령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아내 한 명쯤 지킬 자신은 있다.
하지만 아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녀 자신이 아니라 김건이 죽는 것이었다. 김건은 아내를 지키면서 스스로의 목숨까지 보전할 자신은 없었다.
그 말은 즉, 지금의 위치에 만족할 게 아니라 더욱 나아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이다.
김건은 아내의 계획을 떠올렸다.
아카데미의 수뇌부에 접근해 배신자를 색출하고 현상을 유지하는 것.
좋은 생각이었다. 세상을 위해서도, 그리고 그의 성장을 위해서도.
지금까지 김건은 홀로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한계에 달했다.
혼자서는 안 된다.
더 이상의 것을 노린다면 슬슬 다른 사람들이 걸어온 길을 참고할 필요가 있었다.
“승자는 킹메이커, 한서리의 파티! 압도적, 압도적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승리를 보여 줬습니다!”
“파티원인 김건 군은 마력적성 F급이라고 하던데 대체 얼마나 강력한 버프가 있어야 저 정도 힘을 보일 수 있는 걸까요?”
“아뇨, 김건 군의 실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버프만으로는 저렇게…….”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경기장.
스피커로 흥분한 해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속에서도 따분한 듯 주변을 둘러보던 한서리는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김건과 눈을 마주하자 배시시 웃었다.
저 미소를 지키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김건은 그렇게 생각했다.
일단은 이번 토너먼트다.
이번 일이 끝나면 그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워 봐야겠다.
그는 그렇게 다짐하며 경기장에서 퇴장했다.
* * *
발할라 토너먼트.
C클래스 이하의 생도들이 대련을 통해 서로의 실력을 가리는 일종의 무술 대회다.
C클래스 이하라고는 하지만 결코 그 수준은 낮지 않았다.
발할라 출신이라는 명함을 걸고 사회에서 영웅으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C클래스였으니까.
B클래스부터는 속칭 말뚝을 박았다고 하여 에인헤야르의 칭호를 받고 완전히 발할라의 일원이 되어 버린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C클래스는 외부 지역이나 단체에서 초빙하여 방호를 맡길 수 있는 최고 단위의 영웅이었다.
집이, 혹은 직장이 갑작스러운 게이트의 발생으로 위험에 처했을 때 최소한의 피해로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은 근처 지역을 담당하는 영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은가에 따라 달라진다.
얼마나 강한 영웅이 지키는 곳이냐, 그것은 각 지역의 가치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다.
치안과 주민의 안전에 신경 써야 하는 지역의 행정가, 넓은 부지의 사업장을 관리하는 사업가들은 언제나 강한 영웅을 자신이 있는 곳에 두고 싶어 했다.
때문에 토너먼트에 참가한 생도들이 오가는 대기실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스카웃을 위한 물밑 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 있는 금발의 남자, 제이미 프레이저에게 스카웃을 시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 애가 그 애지? 그 프레이저가의 쌍둥이…….”
“맞아. 등급을 매겨보면 벌써 S급 상위…… 어쩌면 초월자일지도 모른다고 하던데.”
“칼을 휘둘러서 건물을 동강 낼 수도 있다고 하던걸.”
“저 정도 영웅이 우리 시를 지켜 주면 좋을 텐데…… 아마도 에인헤야르가 되겠지?”
“당연한 소리 하지 마. 저만한 전력을 지역 방어에 쓰는 건 인류의 낭비야.”
발할라를 떠나 지역의 방호를 담당하는 영웅이 되는 것은 명예욕이 있는 자들에게는 유배나 마찬가지인 행동이었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게이트를 기다리며 시간만 죽이는 일은 죽을 때까지 수행해도 별다른 영광이 되지 못한다.
발할라에 남아야 던전 공략이나, 거대 게이트의 지원, 마계 침입 작전 등의 큰 사건에 참여해 시대와 역사에 이름을 아로새길 인물이 될 수 있다.
발할라의 간부가 되는 것이 목표인 제이미는 홀로 고고히 서서 대기실 창밖에 펼쳐진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채찍으로 사람을 엮어 끌고 다니는 김건이 보였다.
‘상대가 되지 않는군.’
상대역으로 S급 영웅에 준하는 실력을 지닌 생도들도 간간이 보였으나 그 누구도 김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한서리가 부여한 육체 능력.
별다른 오라 제어 없이 고제련 오라를 막아 낼 수 있는 무기.
거기에 김건 스스로의 무술 실력이 더해지자 그 강함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C클래스에서라면 셉텐트리온 정도 되는 실력자가 아니면 상대할 수 없는 고수다.
하지만 그래 봐야 F급 쓰레기.
제이미를 이길 수 있는 수준의 강함은 아니었다.
오라를 다루지 못하는 건 전투에 큰 영향을 미친다.
검기 따위의 중장거리 공격이 불가능하며 임시 질량을 생성해 낼 수도 없어 공격력도 극도로 떨어진다.
대부분의 마무리를 체중이 필요하지 않은 조르기로 하는 것이 그 증거다.
무기의 특성을 이용해 짧은 사거리와 모자란 공격력을 커버하고 있지만 결국은 한계가 있다.
한서리의 버프도 무적은 아니고, 결국 마력량을 이용한 소모전을 취하면 쉽게 이길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제이미는 김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놈이 날린 손바닥에 허수아비처럼 쓰러지는 콜로서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벌써 몇 주가 지났는데도 풀썩 쓰러지는 괴물의 모습이 선명했다.
다시 한번 소름이 돋았다.
그 잘난 천재라는 월터 바이스턴마저 신기라고 할 정도의 기술.
월터 같은 마안은 없지만 제이미도 보는 눈이 없지는 않았다.
그 진가를 정확히 알아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한 번 더 보면 그 정체를 짐작해 볼 수 있을까 싶어 토너먼트 내내 김건의 싸움을 지켜보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쳇.”
더 이상 보고 있어 봐야 시간 낭비일 뿐이다. 생도들 나부랭이로는 그 진짜 실력을 끌어 낼 수 없다.
대기실에서 빠져나온 그는 복도를 걸으며 머릿속으로 김건과 싸우는 상상을 해 보았다.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지금까지 쌓아 온 경험이 일제히 말하고 있었다.
필패(必敗).
싸우면 반드시 진다.
“빌어먹을.”
외부 인사에게 발할라의 인재들을 알리는 것이 목적인 만큼, 통행의 자유를 위해 토너먼트는 발할라 섬이 아닌 외부 지역에서 치러졌다.
지금 경기가 열리고 있는 이곳은 과거 올림픽 등의 행사를 위해 건설된 장소라고 했다.
덕분에 경기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연회장이 준비되어 있었다.
물론 지금은 경기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파티가 열리지는 않았다.
연회장은 비교적 한산했고, 사교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이미는 연회장 한편에 있는 바로 다가가 점잖게 서서 주문을 기다리고 있던 바텐더에게 독한 칵테일을 한 잔 주문했다.
바텐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술을 제조해 제이미의 앞에 내밀었다.
제이미는 단숨에 술을 삼키고 빈잔을 건넸다.
“한 잔 더.”
극도로 단련된 전사의 몸은 알콜에 쉬이 취하지 않았다. 몇 잔을 연달아 들이켜서야 겨우 술기운이 돌았다.
“고작 벌레 따위가…….”
지금까지 쓰레기처럼 여겼던 상대에게 뒤지고 있다는 것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불쾌했다.
술로 울화를 가라앉혀보려 하지만 술기운이 오를수록 오히려 더 화가 났다.
김건과의 결승전을 상상한다.
알지 못할 수에 쓰러진 자신.
그리고 그런 그를 비웃고 있는 한서리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빌어먹을…….”
파열음이 들렸다.
그의 손아귀에 쥐어진 잔의 머리가 도르르 떨어져 나갔다. 순간적으로 압축되어 손자국이 남은 덩어리가 되어 버린 잔의 목이 제이미의 손으로부터 흘러나왔다.
제이미는 이를 갈았다.
놈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상관없다.
그는 천재였다. 마력적성 S급 이상의 인재만을 배출한다는 프레이저 가문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의 재능을 가졌다.
그런 그가 아무런 재능도 타고나지 못한 놈에게 질 리가 없었다.
그리고 한서리.
약혼만 했을 뿐, 같이 오랜 시간을 보내진 못했지만 그는 한서리를 믿었다.
그녀는 그와 대등한 재능을 가진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서로 통하는 것이 있을 줄 알았다.
한서리가 제이미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은 두 집안을 위한 결정이었고, 거기에 개인의 감정은 중요치 않았다.
그래도 제이미는 한서리에게 잘해 주려고 했었다.
사랑받지는 못하더라도 좋은 남편이 되어 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한서리는 제이미를 배신했다.
그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며 비참하게 만들었다.
“…….”
그와 한서리의 파티는 대진표상 결승에서 만나게 되어 있었다.
아직은 시간이 있다. 그 사이에 어떻게든 김건이 숨기고 있는 기술의 정체를 밝힌다.
그 수단이 무엇인지만 알면 김건은 결코 제이미를 이길 수 없다.
제이미는 한서리의 얼굴을 떠올렸다.
언제나 차갑고 냉혹하게 굳어 있는 그 얼굴.
‘반드시, 반드시 그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지켜봐 주겠어.’
제이미는 그리 다짐하며 연회장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