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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35화 (35/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35화

벨제불의 공격은 단순했다. 그저 뿜어낸 마기를 커다란 손의 모양으로 구성해 내리쳤을 뿐이다.

그것만으로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경기장을 몇 조각 덜은 케이크처럼 만들었다.

그 범위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빌어먹을, 시작부터!”

한서리를 안고 가까스로 공격의 범위에서 벗어난 김건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왜 벨제불이 처음부터 맞추지도 못할 광역 공격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벨제불을 상징하는 낱말은 지배와 침식.

마기는 모든 것을 침식하여 자기 것으로 삼고 지배하는 힘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마기로 초토화된 지역에서는 벌써부터 침식으로 인한 변이가 일어나고 있었다.

지면을 포함한 모든 물체는 검게 물든 땅과 줄기가 되어 가시넝쿨과 시체꽃을 피우고, 압사한 시체는 부서진 채 몸을 일으켜 괴이한 소리를 내며 활보를 시작했다.

이 세계의 일부를, 자신의 활동 구역인 명계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그를 거부하는 이 세계에 더 오래 존속하며 더 많은 힘으로, 더 많은 것을 지배하기 위해서.

하지만 욕심이다.

온전한 절차로 소환되지 못한 반쪽짜리 화신.

명계화된 대지가 벨제불에게 힘을 보태 줄 때까지는 침식이 완료될 때까지의 시간차가 있다.

방금의 일격으로 힘도 상당히 소비했을 터.

이 싸움에 기회가 있다고 한다면, 바로 지금이다.

그리고, 그와 똑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더 있었다.

강림의 매개체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벨제불은 마기로 만들어진 대검을 휘둘러 왔다.

건물에 가까울 정도로 커진 검은 칼날이 10미터가 넘는 공간을 넘어 김건에게 이빨을 들이댔다.

하지만 그 이빨은 김건의 목에 닿지 않았다.

어디선가 날아온 흰색빛이 벨제불의 팔과 어깨를 감싼 것이다.

벨제불이 눈을 깜빡였다.

“응?”

팔이 송송 썰어 놓은 파처럼 조각났다.

힘이 빠진 대검이 허공으로 날아가고, 팔을 잘라 낸 흰색 빛줄기는 서로 뒤얽혀 격자 형태로 조립되어 벨제불을 휘감았다.

하얀 피부 위로 검은 선이 사방팔방에서 생겨나더니, 그의 신체가 수십 개의 큐브가 되어 흩어졌다.

한순간에 화신을 조각낸 빛줄기가 바람을 가르며 쉬리릭- 소리를 냈다. 빛줄기의 정체는 예리하게 반짝이는 실이었다.

“늦어서 미안하다. 합류하도록 하지.”

월터 바이스턴은 그렇게 말하며 김건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상대가 화신이라니, 상상해 본 적도 없다고!”

그의 동료로 보이는 또 한 명의 남자가 온몸에 오라를 걸치고 그를 따랐다.

화신이 등장의 충격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그는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닥치고 집중해. 우리가 실수하면 여기에 있는 사람은 다 죽어.”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사이.

수백 조각으로 갈라졌던 화신은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히 몸을 복원해 내고 있었다.

일반적인 전위의 기술로는 상대할 수 없는 괴물이다.

월터는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팔찌에 걸친 손가락에서 은사를 끌어냈다.

김건은 이번 대회의 호위 및 감찰을 맡은 것이 월터가 이끄는 에인헤야르의 파티였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파티원 전원이 S급 이상의 실력을 가진 실력자들이다. 발할라의 간부진이 이끄는 파티나 팀을 제외하면 발할라의 최고 전력이라고 봐도 좋은 파티.

단시간에 화신의 존재감에 짓눌리지 않고 일어난 것만 봐도 그 능력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김건은 그들의 합류를 호조로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금의 역사를 기준으로 화신이 등장한 것은 10년 전의 이야기다.

그리고 월터의 파티는 모두 서른이 못 된 젊은이들로 이루어져 있다.

즉, 이 자리에서 화신을 대적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없다.

지배와 침식의 마신 벨제불.

다른 마신이면 몰라도 벨제불을 상대로 어설픈 인해전술은 오히려 독이었다.

김건이 뒤에서 외쳤다.

“섣불리 가까이 가지 마요! 정신 무장을 하지 않고 놈과 접촉해서는 안 돼!”

“알고 있어! 벨제불의 화신과는 눈을 마주치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월터의 동료는 그렇게 외치며 손아귀에 쥔 검에 오라를 불어넣었다.

화신을 상대할 때 필요한 주의 사항 정도는 아카데미 시절 질릴 정도로 들었다.

그는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아직은 동료인 월터만큼은 아니지만, 곧 초월자가 되어 발할라 간부 후보에도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왔다.

만약 이 자리에서 화신을 해치운다면 자신의 이름은 인류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것이다.

할 수 있어!

희망을 부풀어 올리며 그가 칼날을 휘두르려는 순간이었다.

한 목소리가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아니, 잘 모르는 것 같은데.”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작은 소리.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아름다웠으며,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살짝 아래로 깔았던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코앞에 떠 있는 한 쌍의 흑주안을 마주했다.

그의 입에서 신음과 같은 한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벨제불, 님…… “

“어서 오렴. 아이야.”

남자의 몸이 멈췄다.

검은 마기가 쩌억 아가리를 벌렸다.

콰드드득!

이빨이 부딪혔다.

상체를 잃어버린 하체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맥스웰!”

월터가 부르짖었으나 그의 동료는 이미 죽음의 강을 건넌 뒤였다.

방금의 일로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에까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알았다.

똑같은 수에 당하지는 않는다!

월터는 이를 악물며 실뜨기하듯 손가락을 엮고 있는 은사를 튕겼다.

그가 뿜어낸 실이 수백 갈래로 날아가 벨제불을 사로잡았다.

사방에 선 경기장의 기둥과 근처의 구조물을 이용해 그를 꽁꽁 옭아맨다.

일반적인 공격이 먹히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런 절대 방어나 회복을 가진 상대로 전위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

하나는 후위가 기술을 펼칠 시간을 버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목표 대상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것이었다.

끼기기기긱!

거미줄처럼 얽혀 오는 은사에 의해 화신이 공중에 구속되었다.

월터는 은사를 조작하는 양손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가 이끄는 파티는 총 네 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위 둘과 후위 둘로 이루어진 균형 잡힌 파티.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후위 두 사람.

그들은 극대소멸공격이 가능한 마법사였다.

위험을 감지한 김건이 한서리를 안고 바깥으로 몸을 날렸다.

빛이 번뜩이고, 원형의 경기장을 푸른 선과 붉은 선이 교차했다.

극대소멸공격의 상징이라고도 부리는 기술, 플레어가 발동했다.

태양의 표면 온도에 가까운 열기가 초고압으로 화신의 몸 위에 쏟아졌다.

그 뒤를 쫓아 직경 수 미터가 넘는 번개 줄기가 작렬.

천분의 일 초, 만분의 일 초, 한순간에만 존재했다 사라지는 하늘에서의 뇌격을 수 초 이상 지속하자 그것은 그것 자체로 신의 일격이 되었다.

콰콰콰콰콰!

화염과 전류가 한 공간에 뒤섞이며 열풍이 몰아친다.

부스러진 바닥이 녹아 사라지고 가지처럼 뻗어 나간 뇌전에 기둥이 무너졌다.

폭음과 함께 하늘로 솟아오른 후폭풍이 돔의 천장을 부수고 날아간다. 무시무시한 대파괴의 향연이 경기장을 소멸시켰다.

“큭, 한 명은 이후 상황을 보고 박으라니까……!”

공기 중에 퍼진 복사열만으로도 타 죽을 만큼의 열기다.

폭발의 중심지에 가까이 있던 월터는 전신에 끌어올린 오라의 장벽으로 고열을 막아 내며 뒤로 물러섰다.

맥스웰의 죽음에 흔들린 건지, 아니면 벨제불의 마성에 홀려서인지 애초의 작전과는 다르게 흘러갔지만 어쨌든 극대소멸공격을 적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압도적인 공격력 앞에 대부분의 방어와 회복 능력은 의미가 없다.

화신이라도 이렇게 극대소멸공격을 연발로 맞으면 버틸 수 없을 터!

하지만 만약의 경우라는 것이 있다.

존재의 소멸을 확신하는 그 순간까지 긴장을 놓을 수는 없…….

“너, 아직 나에 대해 잘 모르는구나.”

하얀 얼굴, 그리고 검은 두 눈이 코앞에 닥쳤다.

월터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기환마위로 속박에서 빠져나온 건가!

몸을 형체를 가지지 못한 마기로 변환시켜 고속 이동을 시행하는 기술.

그 존재는 알고 있었으나 그는 대인보다 대물에 특화된 전위였다.

화신이라는 존재가 나약한 마인이 도망칠 때나 사용하는 기술을 쓸지는 몰랐다.

“큭!”

이럴 때를 대비해 한쪽은 공격을 아껴 두라고 한 것인데,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

본능적으로 월터가 반응했다.

그가 날린 손날이 화신의 목을 떨궈 냈다.

하지만 벨제불의 몸통은 떨어지는 목을 붙잡아 소름 끼치는 그 얼굴을 월터를 향해 들이밀었다.

이쪽을 지배하려 하고 있다.

그 속셈을 눈치챈 월터가 질끈 눈을 감았다.

오라를 이용해 청각까지 차단.

오감 중 제일 중요한 두 개가 차단당했지만 아직은 후각과 촉각이 있었다.

화신에게서는 기묘한 꽃향기가 났다.

놈이 발을 옮길 때마다 지면의 진동이 느껴졌다.

월터는 그 감각에 의지해 그가 가진 모든 기술들을 펼쳐 냈다.

매섭게 날아간 은사가 종잇장처럼 화신의 양팔과 머리를 갈랐다.

놈의 다리를 붙잡아 휘둘러 관중석에 처박고, 그대로 들어 올려 공중에서 두 동강.

재생을 시도하며 하늘에서 떨어지는 놈의 몸뚱이를 은사로 인지하며 실뜨기하듯 자아낸 실의 장벽을 펼쳐 내어 머리 위로 사출.

꽁꽁 묶인 놈을 양쪽으로 잡아당기자, 갈기갈기 찢어진 화신의 육체가 폭죽처럼 허공에서 터져 나갔다.

놈의 체액인지 모를 뜨거운 액체가 후두둑 얼굴 위로 쏟아졌다.

후위들이 다음 일격을 준비할 수 있을 때까지 충분한 타격을 줬다고 생각한 월터가 눈을 떴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새빨갛게 흩뿌려지는 피의 소나기였다.

툭- 소리와 함께 동그란 물체가 두 개가 발치에 떨어졌다.

그것은, 관중석 쪽에 숨어 있던 동료들의 머리였다.

“……!”

제 손으로 죽인 동료의 피를 뒤집어쓴 월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냉정하기 없는 전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길게 깔린 한쪽 날개의 그림자가 그의 머리 위로 드리워졌다.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고 내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다니, 안일하구나.”

자장가를 불러 주는 어머니의 속삭임마냥 부드러운 울림.

그것이 귓가를 간질이자 한순간, 정신이 무너질 뻔했다.

정신의 붕괴를 막은 것은 지금까지 쌓아 온 영웅으로서의 자존심이었다.

막아야 한다.

이런 괴물이 바깥을 돌아다니게 해서는 안 된다.

“이놈!”

월터는 노호성을 지르며 등 뒤를 향해 공격을 날렸다.

그가 날린 공격이 화신의 몸을 가로로 갈라 다섯 등분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칼로 물을 내리친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도로 몸을 붙이면서 벨제불이 다가왔다.

월터는 재차 공격을 하려 했지만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눈앞이 흐려졌다.

전류에 맞은 것처럼 온몸이 저려왔다.

그의 얼굴을 붙잡은 벨제불이 천천히 다가왔다.

아름답게 깜빡이는 흑주안의 형태가 시야에 박혔다.

그렇게 벨제불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을 덮는 순간.

인간으로서의 월터는 사라졌다.

영원히.

촤라라락!

월터를 안고 있는 벨제불의 등 뒤로 금속질의 채찍이 날아왔다.

월터의 손가락이 까딱였다.

빛살처럼 뻗어 나간 은사의 줄기가 채찍을 튕겨 냈다.

“제기랄!”

채찍을 회수하며 김건이 후방에서 달려들고 있었다.

극대소멸공격의 여파에 휘말린 탓에 새빨갛게 달아오른 피부가 허물처럼 떨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를 발견한 벨제불의 눈매가 둥글게 휘었다.

“자, 귀여운 아이야. 이제 어떻게 할 거지?”

그가 손짓하자 새카맣게 눈을 물들인 월터가 김건의 앞을 가로막았다.

월터는 이제 완전히 벨제불의 지배하에 놓였다.

육체도, 정신도, 영혼도 벨제불에게 먹힌 마인이 된 것이다.

결국 최악의 상황이 도래했다.

이 장소 최고의 전력인 월터의 파티를 잃었으며, 그중 가장 강한 전위인 월터를 벨제불에게 빼앗겼다.

벨제불의 마기는 시체에까지 스며들어 그들을 조종하는 힘까지 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죽은 자들까지 되살아나 벨제불에게 힘을 보태게 될 것이다.

어설픈 지원이 오히려 상황을 나쁘게 만들었다.

바보같이 당한 월터와 그의 파티원들을 욕할 수도 있었다.

더더욱 벌어진 벨제불과의 전력 차이에 절망할 수도 있었다.

“어떻게 하긴, 널 죽일 뿐이지.”

김건은 그중 무엇도 선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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