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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40화 (40/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40화

체내 시간으로 3일이 지났다.

시계가 없으니 그것 말고는 시간을 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김건은 침상에 드러누운 채 눈동자를 깜빡였다.

현재 김건은 감금되어 있었다.

네모진 방 안은 깔끔했다. 널찍한 침상과 식탁을 겸용할 책상, 한구석에는 작은 책장이 있었다.

창문은 존재하지 않고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는지는 모른다. 벨제불을 쓰러트린 후, 정신이 들어 보니 이곳이었다.

김건은 손을 들어 보았다.

심각한 화상으로 망가졌었던 피부가 매끄러운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꽤 정성들여 치료를 했는지 부상도 대부분 나아 있었다.

마력을 움직여 본다.

‘미동도 없군.’

‘그 기술‘의 후폭풍으로 마력을 담고 제어하는 기능이 망가졌다.

처음 반마력을 쏘였을 때에는 며칠 뒤에 회복이 되었지만, 이번에는 힘을 되찾기까지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한마디로 김건은 지금 완벽한 무방비 상태였다.

하지만 불안해할 필요는 없었다.

이곳은 절대로 적진이 아니었으니까.

살짝 눈을 돌려 보자 바로 옆에 서 있는 시중용 골렘이 보였다. 강철로 만들어진 마네킹 같은 외형을 가졌다. 대화 상대로 쓸 정도는 아니지만 간단한 명령은 모두 알아듣는 고급품이었다.

그 골렘의 볼에는 꼬리를 물고 있는 뱀, 우로보로스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푸르게 빛나는 우로보로스.

그것은 발할라의 첫 번째 별, 사이먼 베이커 교수의 심볼이었다.

김건은 그가 이곳에 있을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평소에는 온화하고 침착해 보이지만, 사실 사이먼 베이커는 누구보다도 불같은 남자다.

그 예상은 바로 현실로 나타났다.

잠겨 있던 문이 열리고, 골렘이 입을 열었다.

“가시죠. 베이커 교수님께서 기다리십니다.”

* * *

골렘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장소에는 커다란 회의용 테이블이 있고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세라스 프레이저, 그리고 한서리였다.

아내를 발견한 김건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정신을 잃기 전에 보았던 아이 같은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었다.

“괜찮아?”

“당연하지.”

또랑또랑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한서리.

눈에 빛이 돌아와 있었다. 반듯하게 펴진 상체에는 위엄이 감돌고 있다.

안심한 김건은 이번엔 옆에 있는 세라스를 바라보았다.

“…….”

세라스는 말이 없었다.

얼마나 큰 부상을 입었는지 머리를 남자처럼 짧게 잘랐고, 한쪽 얼굴에는 아직도 하얀 패드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표정이 굳어 있다.

언제나 활발하며 선뜻 남에게 손을 내미는 상냥한 소녀가 아니었다.

“다들 도착했군.”

무거운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나타났는지 사이먼 베이커가 의자를 끌어내어 자리에 앉았다. 김건 역시 자리를 잡았다.

환갑이 가까운 노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미남의 얼굴에는 피곤이 가득했다. 사이먼은 다크서클이 짙은 눈으로 모두를 훑어보았다.

“몸들은 괜찮나?”

“네.”

“괜찮습니다.”

“다행이군.”

사이먼은 입을 다물었다.

거북한 침묵이 흘렀다.

공기가 무겁다. 누구 하나 말을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세라스가 말문을 땠다.

“제이미는…… 어떻게 됐나요?”

“……제이미 군은 죽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먹혔다고 봐야겠지. 그의 몸이 화신 강림의 매개체가 되었으니까.”

“……빌어먹을.”

세라스는 이를 악물었다.

분한 듯한 신음 소리가 흘러나온다. 슬픔인가, 아니면 분노인가.

끓어오르는 감정을 눌러 참으며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사이먼이 말했다.

“벨제불과 싸워서 살아남은 건 자네들뿐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죽었거나, 그 자리에서 정신을 되찾지도 못했다.”

깊은 한숨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지금 밖에서는 난리가 벌어졌어. 대체 어떻게 화신이 그 장소에 나타났는지, 그렇게 등장한 화신을 어떻게 퇴치한 건지, 경기장 일대에 깔린 마력 소멸 현상은 뭔지. 뭐 하나 설명이 되는 게 없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들은 우리에게 알고 있는 걸 털어놓으라고 하지만 그거야말로 멍청한 소리야. 우리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데 말이야.”

발할라의 간판격 인물인 만큼, 그는 외부에서의 공격에도 제일 많이 노출되는 사람이었다.

사이먼은 신경질적으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이죽거렸다.

“착각하고 있어. 지금 세상이 ‘안정’되어 있다고, 발할라가 모든 것을 손에 쥐고 통제하고 있다고. 인류가 얼마나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지 상상조차 하지 못하지.”

그의 말에는 짙은 분노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미래를 겪은 김건과 한서리는 알고 있다.

대부분의 영웅이 육체의 노화를 견디지 못하고 은퇴를 한다.

길어야 마흔, 쉰을 넘어서도 영웅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인물은 극소수였다.

베이커는 역사상 제일 오래 현역으로 살아온 영웅이었다. 인류 최후의 보루인 발할라를 세우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고, 회귀한 두 사람이 기억하는 미래 시점에서도 엄청난 활약을 했던 대위인이었다.

그런 남자의 눈이 무시무시하게 빛났다.

“이 안에, 화신이 있다.”

“……뭐라고요?”

김건과 한서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세라스가 놀라 되물었다.

사이먼은 그 세 사람의 얼굴을 하나하나 눈망울에 새기듯 노려보았다.

“갑자기 나타났던 화신이 갑자기 사라졌다. 원인 불명의 현상과 함께. 말이 안 되는 소리야. 갑작스러운 등장까지는 그렇다 쳐도 갑자기 사라지는 건 있을 수 없어. 화신의 힘은 잘 알아. 고작 에인헤야르 한 파티와 생도 몇 명이 화신을 소멸시킨다고?”

“…….”

“불가능해. 극대소멸공격으로 죽일 수 있다곤 하지만 RPG를 쏴서 전투기를 격추시키려는 꼴이나 마찬가지지. 무엇보다도 아직 제대로 된 화신의 대응 방침도 만들지 못했는데 벨제불의 지배의 마력에 저항할 수 있을 리가 없어. 결국 가능성은 하나뿐이야.”

이가 갈린다. 으르렁거리던 사이먼은 씹어뱉듯이 말했다.

“개자식들이 장난을 치고 있는 거지.”

이후에 펼쳐질 미래까지 포함해서, 사이먼은 마계와 반세기가 넘는 싸움을 지속해 왔다.

일 년, 이 년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절머리를 내는 전쟁을 수십 년이나 지속해 온 것이다. 그토록 긴 세월 동안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은 많지 않았다.

증오로 넘실거리는 눈동자가 세 사람을 훑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인간 사이에 숨어 들어와 놀이하듯 생을 즐기는 놈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티아마트는 아니야. 벨제불, 그 계집년이 자작극을 벌이는 것일 가능성이 제일 높지만 혹시 또 모르지, 기린 놈이 수를 쓴 건지.”

예상치 못한 상황에 김건의 생각이 깊어졌다.

김건이 지금까지 접했던 화신은 인간이 아닌 다른 매개체에 강림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그와 달리 사이먼은 인간 사이에 숨어 사는 화신을 꽤 접해 본 모양이다.

그는 아직 아내의 상태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히 봤다. 아내가 기린의 힘을 발휘해 벨제불과 싸운 것을.

정말로 화신이 된 건가, 아니면 뭔가 다른 방식으로 기린의 힘을 이어받은 건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아내가 기린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좋지 않군.’

그는 슬쩍 아내에게 시선을 향했다. 무감정한 파란 눈이 사이먼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이먼이 말을 이었다.

“부상을 치료하면서 계속 정밀검사를 해 봤지만 역시 지금의 기술로는 화신을 밝혀낼 수 없군. 나머지 두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더 이상 방법이 없다. 또다시 이런 참사를 만들어 낼 수는 없어.”

마력이 끓어올랐다.

공간 전체에 숨어 있던 마력진이 드러나며 공간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모두 죽일 수밖에.”

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게 무슨……!”

당황한 세라스가 몸을 일으켰다.

무의식적으로 힘을 끌어올리지만 사방에서 조여드는 마법진의 마력이 그녀의 오라를 억눌렀다.

김건은 몸을 거동하는 것조차도 힘든 상황이었다.

사이먼 베이커는 한다면 하는 인간이다.

무슨 준비를 해 뒀을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화신을 죽일 생각으로 이곳에 온 것이다.

고로 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최소한 화신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어설픈 저항은 죽음을 앞당길 뿐이었다.

김건은 속으로 침을 삼켰다.

다룰 수 있는 마력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최악의 경우 암살이라도 노려 보겠지만, 마력을 상실한 그에게 남아 있는 수단은 거의 없었다.

이대로라면 세 사람 모두 이곳에서 죽는다.

그때였다.

한서리가 자연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희를 죽이겠다는 건 소거법을 적용해서 화신의 자작극 외에는 지금 상황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나온 결론 아닌가요?”

“그렇다.”

“그럼 그것 외에 납득할 수 있을 만한 방법이 있다면 굳이 저희를 죽일 필요는 없겠군요.”

사이먼은 순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농담이 지나치군. 불가능해. 같은 화신이 아니고서야 그 정도 인원으로 화신을 물리치는 건…….”

김건이 손을 들어 사이먼의 말을 끊었다.

지금의 발언으로 아내의 생각은 읽었다.

와일드카드, 조커는 패에 들어오더라도 되도록 숨기는 것이 좋다.

타인에게 그 정체를 들키지 않아야 중요한 상황에서 유용하게 그 위력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그것이 정답인 것은 아니다.

“아뇨, 가능합니다.”

때로는, 조커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 더 큰 이득을 불러 오는 경우도 있다.

특히 같이 판을 꾸밀 수 있는 아군이 있을 경우에는.

“왜냐하면 제가 벨제불을 죽였거든요.”

김건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패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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