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41화
김건은 설명했다.
한서리, 그리고 세라스 프레이저가 증언을 했다.
수많은 의문과 질문이 오간 끝에, 사이먼 베이커는 납득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학에 능통한 그였기 때문에 김건이 말한 이론의 가능성을 재 볼 수 있었다.
대마법사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엄청난 걸 만들어 냈군.”
사이먼은 경외심 어린 눈으로 김건을 돌아보았다.
“인류를 구원할 수도 있는 힘이야. 어쩌면 자네가 우리의 구세주가 될지도 모르겠어.”
그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사실에 충격을 받았는지 머리를 흔들었다.
“세상일이라는 건…… 정말 모를 일이군. 신에게도 대적할 무기를 전위가, 그것도 F급 마력적성을 가진 사람이 만들어 낼 줄이야.”
김건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다시 가능할지는 모릅니다. 마력 제어를 담당하는 신경계가 다 박살 났어요. 몸에 마력이 모이지도 않고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들어 보였다.
기술의 부작용과 후폭풍을 직격당한 탓에 망가진 그의 손끝은 계속해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사이먼은 손을 내저었다.
“괜찮네. 그런 방법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의 실현을 증명했다는 것만으로도 개인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한 거야. 그리고 반마력이라고 했던가? 측정이 정확하진 않지만…… 그 기운이 점차 옅어지고 있는 걸 확인했네. 몇 달 쉬면 마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될 거야. 그리고 걱정하지 말게.”
이 세계 제일이라 칭해지는 마법사는 지그시 김건을 바라보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네를 원래 상태로 회복시켜 놓을 테니까.”
그것이 신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이용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가능성을 가진 젊은이를 걱정해서인가. 김건은 알 수 없었다.
사이먼은 세 사람을 둘러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원래는 모두를 죽일 생각으로 이 자리에 왔는데 이렇게 되니 미안하군.”
방금 전에 느꼈던 살기를 떠올린 세라스가 솜털을 세웠다.
한서리는 차가운 눈으로 사이먼을 노려보았다.
“뻔뻔하게 웃으며 이야기하시는 걸 보니 크게 미안하진 않으신 것 같군요.”
“모두를 위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으니까. 서리 양, 자네라면 누구보다도 내 행동을 이해할 텐데.”
“전 아버지와는 다릅니다.”
“그런가? 이전에 보았을 때는 아버지와 비슷한 성격처럼 보였는데 말이지.”
능구렁이 같으니.
한서리는 이맛살을 구겼다.
그 반응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사이먼이 말했다.
“일단 이런 경우의 수는 상정해 두지 않았어. 화신이라는 변수만 없다면, 자네들은 정말 중요한 인재야. 벨제불과 싸워 살아남은 그 능력, 경험, 그리고 운까지. 그 모두가 발할라에 필요한 재원이지. 불편하겠지만 이곳에서 며칠 더 머물러 주게. 자네들에게 걸맞은 대우와 역할이 무엇일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그렇게 말한 사이먼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였다.
한서리가 꺼낸 말이 그의 발길을 붙잡았다.
“전 발키리가 되고 싶습니다.”
“발키리가?”
사이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발키리는 발할라의 졸업생인 에인헤야르와 동등하게 취급되는 계급이었다.
다른 점은 딱 하나, 에인헤야르가 D클래스 생도로 시작해 C클래스 생도로 수년 간 재학해야 하며 엄격한 승급 테스트를 통과한 뒤에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발키리는 그저 누군가의 승인만으로 얻을 수 있는 자리였다.
그리고 그 권한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밖에 없다.
인류 최연장 영웅이자, 발할라의 이사이자 교수, 발할라의 첫 번째 별이라 불리는 사람.
사이먼 베이커 교수는 흥미로운 시선으로 한서리를 바라보았다.
“그 이유는?”
“그게 제일 빠르게 발할라의 중심부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지난 20년간 발키리의 칭호를 받은 것은 티리온 프레이저밖에 없다. 그리고 티리온 프레이저는 발할라 사상 최연소 교수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가 이번 토너먼트에 참가한 것도 C클래스 승급을 위해서였지.”
탐색하는 듯한 시선이 한서리를 훑었다.
젊은 외모와 상관없이 뿜어져 나온 위압감이 한서리의 어깨를 짓눌렀다.
“자네는 젊어. 앞으로 펼쳐진 길도 밝아. 그런데 왜 그렇게 성급하게 구는지 모르겠군.”
한서리는 태연한 얼굴로 위압감을 받아 내며 말했다.
“글쎄요. 저는 제 앞길이 밝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재벌가의 자녀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살아온 자가 입에 담을 말은 아니군.”
“인류가 위기에 처했는데 재벌이 무슨 소용이죠?”
“그게 무슨 말인가?”
“교수님이 저희를 죽이겠다고 하기 전에 말씀하시지 않으셨나요? 인류는 지금 아주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저는 그걸 이야기하는 겁니다.”
사이먼의 입술 끝이 조금 올라갔다. 그는 시치미를 떼며 물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제대로 설명을 할 수 있나?”
한서리는 막힘없이 대답했다.
“게이트 발생의 증가 추이로 확인한 영웅 시스템의 결정적 한계.”
“내 논문을 봤군. 십 년 전의 논문인데 말이야.”
“그 논문의 인용 횟수가 최근에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매끄럽게 이야기를 하지만 한서리는 그 논문을 본 적이 없었다.
다만 사이먼과 함께 전장을 누비며 질리도록 그의 이론을 들었을 뿐이다.
그 이론에 따르면…….
“아카데미를 통한 현용 영웅 육성 시스템으로는 계속해서 늘어나기만 하는 게이트의 발생을 모두 처리할 수 없고, 그 한계를 맞이할 임계점은 앞으로 삽십 년 내에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그 임계점은…… “
“게이트 외의 변수, 마인 혹은 화신 등의 행동에 따라 더 앞당겨질 수 있다.”
한서리가 설명한 개요를 사이먼이 받아 마무리지었다.
한서리는 파란 눈을 깜빡이며 이 세계의 종말을 예지한 자에게 말했다.
“아마 이번 일로도 꽤 많은 시간이 당겨졌겠죠. 저는 앞으로 십 년 이내에 그 임계점이 찾아올 거라 생각합니다.”
“그게 빠른 출세와 무슨 상관이 있지?”
“다른 사람 손에 제 운명을 맡기고 싶진 않거든요. 살아남는다면 살아남는 대로, 죽는다면 죽는 대로, 그 결과는 제 의지로 결정하고 싶습니다.”
남의 명령만 듣다가 죽고 싶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사이먼은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자존심이 강하군. 말 잘 듣는 꼬마인 줄만 알았는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안 그래도 사실 자네들에게는 발키리가 되어 달라고 하려고 했었어.”
“……!”
발키리의 칭호는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절차 없이 오직 한 사람만의 보증으로 주어지는 자리인 만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책임은 모두 사이먼 본인이 져야 한다.
놀란 세라스가 물었다.
“어째서죠?”
“생도로 내버려 두기엔 자네들의 능력이 너무 아까우니까.”
사이먼은 세 사람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능력으로만 따지면 에인헤야르의 기준을 뛰어넘은 생도는 많아. 그런 그들을 내버려 두는 건 그들에게 경험이 없기 때문이지.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경험이 없으면 그걸 살릴 수 없거든. 하지만 자네들은 화신과의 전투에서 살아남았어. 현존하는 영웅 중 화신전의 경험이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네. 그들 모두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인들이지.”
화신전의 경험은 위인의 조건이 될 정도로 큰 가치가 있다. 사이먼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자네들은 이미 역사서의 한 페이지에 발을 밀어 넣은거라네. 발키리의 칭호를 받기에 부족함은 없어.”
말을 맺은 사이먼은 턱을 쓰다듬으며 김건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조금 걱정되는 건 있군. 김건 군이 발키리로 활동하는 건 내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이 커.”
발키리는 고위 전사다. 발키리가 되면 발할라의 주력으로써 최전선에 나가 싸워야 한다.
그러다 보면 부상은 당연하고, 죽음과는 항상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살아가게 된다.
“원리를 알려 준 것만 해도 많은 도움이 되긴 했지만…… 그걸 기술화하는 데에는 김건 군의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해. 그런 김건 군이 싸우다 죽는다면 그 손실은 이루 말할 수가 없지.”
“제가 누구한테 배려받을 정도로 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김건이 말하자 사이먼은 미소를 지었다.
“자네가 약하다는 말이 아니야. 화신까지 쓰러트린 전사를 보호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건 농담으로도 써먹을 수 없지. 그래서 대신 자네의 약점을 메워 줄 수 있는 사람을 호위 겸 파티원으로 붙여 줄 생각이었네.”
“그거라면 제가 맡겠습니다.”
“제가 할게요.”
한서리와 세라스가 동시에 손을 들었다.
한서리의 행동이야 어찌 보면 당연했지만, 세라스가 저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김건은 응? 하고 보기 드물게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두 여자의 눈빛이 부딪혔다.
“이이…… 아니, 김건의 약점은 낮은 마력적성으로 인한 저열한 신체 능력이야. 내 버프는 그걸 간단히 해결해 줄 수 있어. 거기에 극대소멸공격으로 화력까지 보충해 줄 수 있지. 나만큼 그에게 어울리는 파티원은 없어.”
한서리의 장담에 세라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교수님이 찾으시는 건 단순한 파티원이 아니라 호위야.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후위가 그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지? 호위를 겸한 파티원이라면 내가 하는 게 맞아.”
“단순한 방패 역할이라면 그 누구라도 할 수 있어. 나는 보호뿐 아니라 전사로서 김건의 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고.”
“극대화시킨다고? 그를 고기 방패로 쓰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지.”
“후위의 역할이 단순히 후방을 지킬 뿐이라고 생각하니? 멍청하네, 그러니까 머리통에 근육밖에 없다는 소리를 듣는 거야.”
“남들이 고생하는 사이 뒤에 숨어서 꿀만 빠는 인간이 할 소린 아닌데.”
싸늘한 비웃음과 독설이 오고 간다.
김건은 저걸 말려야 하나 고민했으나 그걸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다. 저 사이에 끼어들면 무저항으로 갈려 나갈 뿐이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쥐죽은 듯 숨을 죽였다.
그 선택은 현명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사이먼이 앞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뭘 그렇게 다투나? 일반적인 파티의 구성원은 네 명인데. 자리는 충분하고 두 사람의 의견 모두 합당하니, 셋이 파티를 꾸리면 되는 이야기 아닌가.”
오랜 세월을 살아온 마법사는 한마디로 모든 상황을 정리해 버렸다.
“아니, 그건…….”
“어, 그게…….”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힌 한서리와 세라스가 입술을 뻐끔거렸다.
사이먼의 말이 이어졌다.
“김건 군이 화신을 쓰러트렸다는 사실은 너무나 중요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알려져서는 안 돼.”
이 세상에는 마인들이 암약하고 있다. 인간이라 해도 무조건적인 아군은 아니다.
암살 기도가 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김건을 실험대 삼아 통제 불가능한 무기를 만들려는 집단이 있을 수도 있다.
“정보 유출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그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은 적을수록 좋아. 이미 그 사실을 아는 자네들이야말로 호위로서 적임이지.”
“…….”
“그리고 서리 양과 세라스 양, 두 사람의 조합 역시 좋은 편 아닌가? 한씨 가문의 버프를 받은 프레이저의 전위라,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상상도 하기 싫은 조합이야.”
반론은 차단되었다.
“벌써부터 앞으로 펼쳐질 세 사람의 활약이 기대되는군. 건투를 빌겠네.”
사이먼은 기분 좋은 듯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