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45화 (45/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45화

한서리와 김건, 두 사람의 여행은 바다에서 막바지를 맞이했다.

사시사철이 따뜻한 곳. 캄캄한 밤바다는 조용히 파도치고, 축제가 한창인 해변가에는 사람들이 그득했다.

간식거리를 파는 노점이 기차놀이를 하듯 줄을 서고 곳곳에서 벌어진 거리 공연이 사람들의 환심을 끌었다.

한서리와 김건은 인파에서 떨어진 먼 곳에서 울려 퍼지는 파도 소리를 배경삼아 왁자지껄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산책 중에 갑자기 찾아온 발작 탓에 지친 김건은 모래사장에 엉덩이를 깔고 야자수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

한서리가 팔과 다리를 열심히 주물러 주었지만 근육이 아니라 신경 단계에서 찾아온 발작이었기 때문에 별 소용은 없었다.

잠시 후, 발작이 가라앉았다.

김건은 한숨을 토하며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훔쳐 냈다.

한서리는 걱정스럽다는 듯이 손수건으로 남편의 땀을 닦아 주었다.

“이젠 좀 괜찮아? 뭐라도 마실래?”

“그래, 시원한 과일주스라도 마시면 좋겠어.”

“잠깐만 기다려. 금방 사 올게.”

그 말을 듣자마자 한서리는 모래사장을 건너 인파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다녀오라고 하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김건은 쓴웃음을 띠며 떨리는 몸을 부여잡았다.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날뛰는 신경을 바로잡는다. 마력을 움직이는 신경계를 하나둘 확인해 본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아마 발작은 이게 마지막일 거다.

극소량이긴 하지만 마력도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이대로 일주일정도만 지나면 충분히 싸울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될 것 같았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다.

무기라는 건 본디 소모품. 영원히 쓸 수 있는 무기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전사에게는 육체 역시 무기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치료 기술이 좋아도 소용없다. 한 번 부서진 몸은 영원히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피해는 끝없이 누적되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일으킨다.

김건은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 싸울 날이 많은데 초반부터 너무 큰 소비를 해 버렸다.

몸을 중요시하라는 아내의 말이 맞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 김건의 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솜털이 곤두섰다.

위기를 감지한 육체가 발작을 멈췄다. 김건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세 사람이 앞에 있었다.

모두가 S급 이상의 실력을 가진 전위. 그중 가운데에 서 있는 검은 머리의 남자가 김건의 시선을 끌었다.

찢어진 청바지에 검은 재킷을 걸쳤다. 장신구를 좋아하는지 금으로 만들어진 목걸이와 귀걸이까지 달았다.

언뜻 동네 양아치로밖에 안 보이는 남자.

하지만 김건은 직감했다.

회귀한 뒤에 본 전위들 중, 그가 최강이라고.

검은 머리의 남자, 아스타로트는 한숨을 쉬며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이제야 겨우 떨어졌네.”

그는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김건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같이 좀 가 줘야겠어. 반항은 하지 마. 서로 귀찮기만 할 테니까.”

김건은 씩 웃었다.

“죽이는 게 아니라면 그리 쉽게는 안 될 텐데.”

아스타로트가 대답 대신 턱끝으로 김건을 가리키자, 양옆에 선 남자들이 움직였다.

2미터는 넘는 키에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진 거구와 홀쭉하게 마른 뼈다귀.

두 사람 모두 아스타로트에게 가르침을 받은 특급마인이었다.

“가만히 있어.”

뼈다귀 마인이 손을 뻗었다.

S급 영웅에 위치한 그의 악력이라면 금괴를 찰흙처럼 짓무르며 가지고 놀 수 있다. 아무리 대단한 전사라 해도 마력 한 점 다룰 수 없는 인간이 대적할 힘이 아니다.

뼈다귀 마인의 손가락이 김건의 어깨를 쥐었다.

프레스 같은 압력이 어깨를 쥐어짜는 순간, 김건은 몸에서 힘을 뺐다.

잡았다고 생각했던 어깨가 물처럼 손아귀를 빠져나간다.

천지가 뒤집혔다.

“어…….”

“뭐야?”

공중에 뜬 뼈다귀 마인의 눈이 커진다. 거구의 마인이 경탄을 토했다.

F급 마력적성을 가진 김건. 신마저 쓰러트릴 위력을 지녔지만 그의 미극공진동은 어디까지나 공격 기술에 불과했다.

가지고 있는 유일한 오라 기술은 오로지 공격기뿐.

하지만 싸움이라는 것은 공격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말은 즉, 지금까지 있었던 수십, 수백 번의 싸움동안 이루어졌던 방어 행위를 김건은 맨몸으로만 처리해 왔다는 것이다.

적절한 위치의 작용점과 받침점, 그리고 충분한 길이와 강도의 지렛대와 지렛목만 있다면 인간의 힘으로도 지구를 들어 올릴 수 있다.

김건은 그 원리를 이용하는 데에는 도가 튼 인간이었다.

휘릭!

아무런 이능도 지니지 못한 남자의 몸짓에 특급마인의 몸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남아 있던 거구의 마인이 반사적으로 주먹을 날렸다.

주먹의 궤적이 갈대처럼 바깥쪽으로 휘었다.

무시무시한 기술로 마인들의 공격을 흘려보낸 김건은 그대로 파고들어 거구의 몸통에 일장을 먹였다.

거구가 반사적으로 끌어올린 마기에 침식된 손바닥을 붙잡고 물러난다.

덩치 큰 마인의 입가에서 피가 튀었다.

“쿨럭!”

거구의 마인이 무릎을 꿇었다.

가까스로 균형을 잡고 착지한 마른 마인이 일반인을 상대로 무기를 빼 들었다.

아스타로트는 기가 막힌 얼굴로 말했다.

“오라가 없어도 진동을 쓰는군.”

김건은 빙글거리는 얼굴로 답했다.

“당연하지. 이건 오라가 없는 시절부터 개발된 기술이라고.”

“말은 쉽지. 그렇다고 그걸 진짜로 하냐? 진짜 미친놈이네.”

아스타로트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내상을 입긴 했지만 심각한 타격은 아니다.

입가의 피를 닦아 내며 일어선 거구 마인의 이마에 핏줄이 솟았다.

“이 새끼가!”

“어이.”

낮은 목소리가 거칠게 올라가던 손을 멈췄다. 경박한 남자의 눈이 번뜩였다.

붉게 달아올랐던 마인의 얼굴이 삽시간에 하얗게 질렸다.

그는 부들부들 떨면서 아스타로트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아스타로트는 한숨을 쉬었다.

“진짜 존경스러운 놈이군. 마력도 없는 병자가 특급을 패지 말라고.”

그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푸화학!

아스타로트의 손끝으로부터 검은 물질이 쏟아져 나왔다.

자세를 취하고 있던 김건은 바로 그것을 흘려 보려 했지만, 아무리 그가 대단하다 해도 손으로 흐르는 강물을 비껴 낼 수는 없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 있는 액체 금속 같았다. 방어를 뚫고 물결처럼 파고 들어온다.

그러다 아스타로트가 주먹을 쥐는 시늉을 하자, 김건의 몸을 감싸더니 단단히 굳어 버렸다.

“……!”

검은 물질에 둘러싸여 소리조차 낼 수 없게 포박당한 김건이 쓰러졌다.

순식간에 김건을 제압한 아스타로트가 두 마인에게 말했다.

“가자. 이러다 화신의 눈에 띄면 뼈도 못 추릴테니까.”

말을 마친 그는 바로 바다 위로 몸을 날렸다.

출렁거리는 파도를 밟고 그대로 달려 나갔다. 발바닥으로 뿜어낸 오라에 약간의 강도와 임시 질량을 부여하여 발판 대신 사용하는 오라 기술.

이론상으로는 공중도 날아다닐 수 있는 그 기술로 아스타로트는 바다를 건넜다. 김건을 둘러멘 거구와 뼈다귀 마인 역시 똑같은 방법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새카만 밤 아래, 융단처럼 펼쳐지는 거뭇한 밤바다를 세 남자가 달렸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해변가의 옆에 있는 작은 선착장이었다.

모두들 축제 구경에 나갔는지 사람은 없었다.

발판 사이로 작은 어선들이 밧줄에 매달려 조용히 떠다니고, 사방에 굴러다니는 그물과 바구니에서는 생선의 살점 냄새가 풍겼다.

아스타로트는 선착장의 안쪽에 조그맣게 마련되어 있는 창고로 들어갔다.

족히 수십 년은 묵은 듯한 낡은 창고.

문을 열자 썩은내와 먼지가 가득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천장은 구멍이 숭숭 뚫려 달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낡은 창고의 분위기와 전혀 다른 매끈한 금속질의 물체가 놓여 있었다.

양쪽에 놓은 기둥 사이에 커다란 원형의 고리가 달려 있었는데, 뼈다귀 마인이 다가가 기둥의 측면에 붙어 있는 패널을 조작하자 우우웅- 소리가 울려 퍼지며 가운데의 고리 사이로 마력의 불꽃이 튀었다.

규모가 큰 밀수업자들이 이용하는 임시 게이트 장비였다.

각국 정부의 철저한 감시망을 속여야 하는 데다 그 가격과 유지비가 상상을 초월하지만, 지구상 어느 곳으로도 한순간에 이동할 수 있다는 장점에는 그만한 위험과 비용을 부담할 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게이트 간의 이동을 추적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도주 방법으로는 최고. 게이트를 타고 도망가 버리면 따라가는 입장에서는 찾을 방법이 없다.

아스타로트가 물었다.

“얼마나 남았어?”

“앞으로 삼십 초면 됩니다.”

패널을 살피던 뼈다귀 마인이 대답하고, 게이트 장비의 가운데에 공간의 균열이 번져 나갈 때였다.

하얗게 비치던 달빛이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천장이 일자로 쪼개지며 황금색 대검이 지면에 내리꽂혔다.

검의 폭은 무려 이 미터에 가까웠다. 트럭만 한 칼날이 공간을 휘젓자 가까스로 형태를 유지하던 창고가 먼지처럼 날아갔다.

마인 세 명은 각자 몸을 날려 공격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그 중앙에 세라스 프레이저가 착지했다.

동시에 지면이 폭발.

황금색 소녀가 김건을 둘러메고 있는 거구의 마인에게 돌격했다.

“캇!”

마인은 순식간에 등 어깨에 매달려 있는 도끼를 뽑았다.

검은 마기가 응축된 도끼날이 소녀의 머리를 찍었다.

세라스는 피하지 않았다. 그녀는 김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쾅!

폭음. 그리고 충격.

도끼날이 튕겨져 날아간다. 부스러진 도끼날의 파편이 튀었다. 세라스의 반쪽 얼굴을 가린 오라의 투구가 빛을 뿌렸다.

거구의 눈이 커졌다.

무기에 씌우지도 않고 신체의 말단에서 뽑아낸 오라로 공격을 막았다.

그 말은 즉, 눈앞의 소녀가 가진 기술이 그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했다.

세라스의 어깨가 회전했다. 위험을 감지한 거구가 방어 자세를 취하며 오라를 끌어올렸다.

주먹이 처박혔다.

오라가 박살 났다.

가드가 뚫린다.

안면이 함몰된 거구가 미사일처럼 뒤로 날아갔다.

세라스는 김건을 옆구리에 끼고 뒤로 물러섰다. 김건의 입을 막고 있던 검은 기운을 단번에 뜯어내며 물었다.

“괜찮아?”

“그래.”

세라스가 손을 대자 김건을 구속하던 기운이 수수깡처럼 부러져 나갔다.

아스타로트의 얼굴에 짜증이 떠올랐다.

“이건 또 뭐야.”

생각지도 않았던 방해꾼이 끼어들었다.

그 정체는 대강 짐작이 되지만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다.

어차피 발할라 생도는 다 죽여야 할 놈들이다.

프레이저가의 자제라면 더더욱 죽일 가치가 있다.

고개를 내젓던 아스타로트는 날아갔던 거구가 피를 쏟으면서 부러진 코뼈를 맞추는 것을 보고 중얼거렸다.

“밥값도 못하는 새끼들.”

날선 어조에 거구와 뼈다귀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아스타로트는 세라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죽여. 아무리 병신이라도 둘이면 생도 정도는 이길 수 있겠지.”

두 마인의 눈이 세라스를 향했다.

절박한 시선. 공포와 증오, 그리고 분노가 섞인 살기가 피부를 찌른다. 검은 오라가 지옥의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하아아아앗!”

“이야아아압!!”

두 마인이 기합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세라스는 김건을 밀어내며 그의 앞을 막았다.

“후-.”

짧게 호흡을 내뱉는다.

전방에 선 두 전사가 내뿜는 살기에 전신이 짜릿짜릿했다.

두 마인의 실력은 척 보기에도 S급이었다. 뿜어내는 오라의 형태와 기세를 보면 안다.

이전의 세라스와 비슷하거나 더 강할지도 모른다. 그런 적이 둘이나 있다.

하지만 괜찮다.

벨제불과 싸우고 살아남은 경험이 세라스를 바꿨다.

마기에 침식되었다가 회복한 몸은 불구덩이에 넣었다 꺼낸 금속처럼 순정했고, 화신의 정신 공격에 버텨 낸 정신은 더욱 단단해졌다.

이제 더 이상, 그녀를 구속하고 있는 봉인은 없었다.

지금이라면 가능하다.

사이먼 베이커가 고작 학생인 세라스에게 인류 구원의 열쇠를 맡긴 것은 절대로 괜한 짓이 아니었다.

세라스가 이를 악물며 검을 쥐었다. 댐이 열리며 마력이라는 물줄기가 콸콸 흘렀다. 소녀가 쥔 검 끝에서 황금빛이 분출했다.

윗니와 아랫니가 부딪혀 불꽃을 튀긴다. 내리친 다리가 지면에 꽂힌다. 팔과 허리가 폭풍우쳤다.

지평선이 갈라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