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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46화 (46/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46화

“……!”

일순간에 뿜어져 나온 15미터짜리 대검이 공간을 잘랐다.

검은 오라를 걸친 두 마인이 무기째로 갈라졌다. 두 쪽 난 게이트 장치가 허공으로 떠오르고, 창고 밖에 선 건물의 허리가 끊어졌다.

바닷가에 묶여 있던 어선의 선실은 소실. 동강 난 전봇대가 매끈한 단면을 보이며 옆으로 기울어졌다.

거대한 부채꼴의 범위 안에 있던 모든 것이 분단되었다.

그뿐일까.

회전축으로부터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똑같은 각도의 이동에 대해 이동점의 거리가 커지고 속도는 배가된다.

음속을 초월한 검 끝이 충격파를 내뿜고 잘려 나간 대기가 되돌아오며 폭풍우가 몰아쳤다.

콰콰콰콰콰!

조각난 마인의 시체가 쓰레기 사이에서 휘날렸다.

무너진 전봇대가 파지직 전깃불을 피우고, 무너진 건물의 파편이 그 속에서 몰아쳤다.

단 한 번의 검격이 선착장을 폐허로 만들었다.

파산검, 신속.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던 가문의 비기를 재현해 낸 세라스가 막힌 숨을 토해 냈다. 그 파괴력을 목격한 김건이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세라스의 앞에 재킷을 걸친 남자가 내려앉았다.

“이런 제기랄. 이 괴물은 또 어디서 튀어나왔어? 발할라 생도들은 다 이런가?”

일격에 모든 적을 일소하려 했는데 계산이 틀어졌다.

세라스는 과도한 소모에 떨려오는 손끝을 진정시키며 검을 다잡았다.

방금의 공격은 분명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규모의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그것까지 읽고 몸을 공중으로 날려 공격을 피했다.

통찰력에서 발휘되는 기민함.

마치 상대의 앞에서 발가벗겨진 듯한 느낌은 토너먼트 때 김건을 앞에 뒀던 당시와 비슷했다.

절대 가볍게 봐서는 안 될 상대다.

세라스는 침을 삼키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 모습을 아스타로트는 지겹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정말 짜증 나게 하는군.”

기껏 키운 마인 둘을 잃은 데다 도주책인 게이트마저 부서졌다.

상황은 최악이었다. 아스타로트는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싸움꾼은 생명이 짧은 직종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싸우다 보면 그 수단이 외부에 노출되고 그럴수록 그 수명은 짧아진다.

수년을 들여 연마한 비기도 몇 시간, 몇 초의 분석이면 파해될 수 있는 것이 이 바닥이다.

“발할라 간부를 죽일 때까지는 보여 주고 싶지 않았는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다. 애초에 박사도 그것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그를 직접 보냈다.

아스타로트는 일전의 집회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지금 마인협회의 최대 목표는 발할라의 약화가 아니었다.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그 의지는 확실히 추종자들에게 전해졌다.

그의 신이, 김건이라는 남자를 원하고 있었다.

아스타로트가 오라를 끌어올렸다.

조용히, 하지만 격렬하게 검은 오라가 들끓었다.

그는 농담처럼 말했다.

“죽기 전에 좋은 걸 보여 주지. 영광인 줄 알라고.”

“보여 줄 필요 없어. 어차피 별거 없을 테니까.”

검을 중단에 세운 세라스가 이죽거린다.

“직접 보고 나면 그런 말은 못할 걸.”

아스타로트가 발을 내디뎠다.

세라스가 숨을 뿜었다.

그녀의 검 끝이 오라로 길게 연장되며 섬전 같은 찌르기가 아스타로트의 가슴을 꿰뚫었다.

큰 기술은 먹히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내뻗은 콤팩트한 일격.

적절한 판단이었으나 아스타로트의 실력은 그보다 훨씬 위에 있었다.

칼날이 가슴을 관통한 것은 착각. 아스타로트는 최저의 움직임으로 칼날을 겨드랑이 사이로 흘려보내며 순식간에 안쪽으로 파고 들어왔다.

‘그 정도는 예상했어!’

예상했기에 반응이 빨랐다.

그녀는 검을 회수하지 않고 바로 주먹을 뻗었다.

쉽게 회피하거나 쳐낼 수 없도록 목표가 큰 몸통을 노린다.

실력의 차이는 알고 있다. 쉽게 막힐 거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단순한 마력의 출력이라면 그녀가 위였다.

힘싸움으로 가면 그녀가 유리하다.

가드 채로 날려 버리겠어!

그렇게 생각한 세라스의 일격이 아스타로트의 배에 처박혔다.

물컹-

‘……?’

생각지도 못한 감촉이 몸에 제동을 걸었다.

시선이 절로 아래로 내려갔다. 아스타로트의 몸통 안쪽, 그가 피어올린 오라에 가로막힌 주먹이 보였다.

장벽의 형태도, 갑옷의 형태도 아니다.

검은 오라가 거품처럼 부풀어 있었고, 그 속에 주먹이 파묻힌 것이다.

“말했지. 좋은 걸 보여 주겠다고.”

아스타로트가 웃었다.

그의 몸 전체에서 검은 형태가 뿜어져 나왔다. 물줄기처럼 쏟아져 나온 그것은 장막처럼 펼쳐져 세라스를 덮쳤다.

‘뭐야, 이게? 오라야?’

오라라는 것은 금속처럼 굳어 있는 것이지 이렇게 살아 있는 생물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깜짝 놀란 세라스가 발을 빼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공격을 막아 낸 오라의 거품이 손을 꽉 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방을 덮친 물질의 표면이 둥글게 부풀어 올랐다.

경악한 세라스가 오라를 끌어올렸다.

사방에서 뻗어 나온 날카로운 가시가 그녀를 꿰뚫었다.

“크아앗!”

비명 같은 고함을 지르며 세라스가 괴력을 발휘해 아스타로트를 떨쳐 냈다.

뒤로 물러나는 그녀는 전신에 구멍이 뚫려 피를 줄기줄기 흘리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온몸에 둘러친 오라의 갑옷이 뚫렸다.

가시 하나하나가 무서울 정도의 강도와 예리함을 가지고 있었다.

아스타로트는 미소를 지으며 밤송이처럼 돋아난 가시를 회수했다.

전방에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검은 물질을 둔다. 그 모습은 전사라기보다는 차라리 무엇으로든 형태를 바꿀 수 있는 괴수를 부리는 술사였다.

하지만 그 공격을 직접 받아본 세라스는 알았다.

‘저건…… 오라가 맞아.’

오라 기술의 삼원칙인 경, 형, 중.

그중에서도 형은 제일 기초적인 오라 제어 원칙이었다. 기운일 뿐인 마력을 형태를 갖춘 물질로 만드는 작업.

그녀 역시 마음만 먹으면 저렇게 오라의 형태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자유자재로 형태를 바꾸면서 순간적으로 예리함과 강도까지 갖추는 건 할 수 없었다.

경과 형은 상충되는 속성이다.

단단하게 오라를 제련할수록 형태를 바꾸기 힘들며, 형태가 복잡할수록 오라를 제련하기 어렵다.

형태 변화와 경도 조절의 간격을 빠르게 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전위들이 단순한 형태의 냉병기로 오라를 다루는 것이다.

그래서 오라를 실의 형태로 제련해 사용했던 월터 바이스턴이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지 않나.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그것보다 월등한, 상위 호환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스타로트의 앞에서 검은 기운이 응축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폭발하듯이 앞으로 쏘아져 나왔다.

오라의 대검을 세워 막는 세라스. 하지만 아스타로트의 일격은 그녀의 상상을 초월했다.

파캉-!

단번에 황금색 대검이 깨졌다.

세라스의 팔이 피투성이로 물들며 충격이 그녀를 덮쳤다.

“컥!”

비명을 지르며 세라스가 날아간다. 그녀는 몇 개나 되는 전신주와 울타리를 부수며 한 건물에 처박혔다.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는다.

세라스는 눈동자에 파고드는 식은땀과 핏물을 닦아내며 고개를 들었다.

“무슨…….”

방금 전 막아 냈던 일격을 떠올리자 다시금 소름이 돋았다.

아스타로트가 날린 공격은 결코 단순한 찌르기가 아니었다.

뾰족하게 솟은 가시. 그 끝이 회전하고 있었다.

턱없이 단단할 뿐만 아니라 회전력까지 더한 드릴 같은 일격으로 그녀의 방어를 깨 버린 것이다.

강도를 유지하면서 회전 운동을 성립시킬 수 있을 정도로 오라를 조작하다니!

그것은 그야말로 형의 극의라고도 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그녀의 삼촌이자 현세대 최강이라 불리는 티리온 프레이저도 이 정도로 오라의 형태를 제어하지는 못한다.

거기다 아스타로트의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끅…….”

전신이 불타는 것처럼 뜨거웠다.

최초에 당했던 가시 공격. 송곳에 찔린 정도의 경상이 지금은 그녀의 온몸을 태우고 있었다.

상처 부위가 검게 변색되며 썩은 것마냥 오그라든다. 두 번째 공격에 꿰뚫린 팔에는 이미 감각이 없었다.

마기에 침식된 팔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세라스는 떨리는 무릎을 주체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래서 내가 마기라는 힘을 얻은 거지. 찰과상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거든.”

킥킥, 웃으며 아스타로트가 다가오는 그의 앞에 다시금 검은 기운이 집중되었다.

꽃봉오리 모양으로 뭉친 오라.

그것이 비틀리며 끝을 벌리자 봉오리는 활짝 핀 연꽃이 되었다.

그것은 꽃잎 하나하나의 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정교했으며, 또한 아름다웠다.

기술의 격이 다르다.

세라스는 죽음을 직감했다.

“우리 애들을 죽인 값은 치러야지.”

아스타로트가 검은 연꽃을 내쏘았다.

설령 죽더라도 그냥은 못 죽는다.

이를 악문 세라스가 검을 치켜들었다.

날아가는 꽃잎의 형태로 기술의 정체를 간파한 김건이 소리쳤다.

“피해!!”

막으면 죽는다!

그 뒤를 입에 담을 시간은 없었다.

김건의 목소리를 들은 세라스가 반응하기 직전에 연꽃이 폭발했다. 터져 나온 꽃잎 하나하나가 죽음의 송곳이 되어 날아왔다.

공간을 가득 메우는 수백 장의 꽃잎.

고작 검 한 자루로 어떻게 할 대상이 아니다.

“이런 씹…….”

세라스가 연꽃의 비에 휩쓸렸다. 마지막 순간에 그녀가 뿜어낸 황금색 기운과 연꽃이 충돌하며 폭발이 일었다.

“발악하기는. 꼬마 주제에 끈질겨.”

아스타로트는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먼지를 젖히며 중얼거렸다.

폭발은 세라스가 마지막에 뿜어낸 것이 완전히 제련되지 않은 오라였기에 일어난 것 같았다.

나름 괜찮은 대처였지만 치명상을 피하지는 못했을 거다.

세라스는 죽었다. 이제 다시 김건을 확보해서 도망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한 아스타로트가 김건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었다.

휘날리는 먼지 안쪽에서 푸른빛이 번뜩였다.

팟-!

아스타로트가 훌쩍 뛰어올랐다.

그가 있던 자리에 파란 광선이 꽂혔다.

한순간에 얼음덩이가 되는 지면. 그것은 바로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살기를 감지한 아스타로트가 이어서 몸을 날렸다. 그는 검은 기운을 날개처럼 펼치며 옆으로 활강해 회피 기동을 펼쳤다.

그런 그의 앞에 공간이 렌즈에 비친 것처럼 비틀렸다.

폭발.

비틀렸던 공간이 되돌아오며 뿜어내는 반발력에 얻어맞은 아스타로트가 날아갔다. 망토처럼 뒤집어쓴 오라로 충격을 흡수한 아스타로트가 낙법을 치며 숨을 내뱉었다. 그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이런 빌어먹을…… “

황금색 비늘 형태의 마력이 물결처럼 흐른다.

무지개색으로 반짝이는 은빛 머리칼이 커튼처럼 펼쳐졌다.

“네가 그이를 건드렸지.”

신격을 뿜어내는 한서리가 그의 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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