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48화 (48/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48화

다음 날.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세라스가 물었다.

“그 괴물을 이겼다고? 어떻게?”

그녀는 한없이 가벼운 분위기를 가진 주제에 무시무시할 정도로 정교한 기술을 지녔던 남자를 떠올렸다.

이름 모를 마인.

지금까지 그만큼 뛰어난 전위는 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삼촌인 티리온과 견줄 정도일지도 몰랐다.

순순히 자신이 가진 화신의 힘으로 물리쳤다고 할 수는 없다. 미리 대답을 준비해 두었던 한서리는 매끄럽게 말했다.

“내 버프를 받은 김건이 상대했어. 아쉽게 놓치긴 했지만.”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인 세라스는 옆에 있는 김건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동경이 담겨 있었다.

김건은 은근슬쩍 시선을 돌렸다.

사실, 한서리의 변명은 불가능한 말이었다. 그의 납치를 시도한 마인의 실력은 엄청났다. 아무리 김건이라도 미극공진동을 사용하지 않고 그를 이길 수는 없었다.

다행히 세라스는 그런 의심을 품지 않았다. 토너먼트에서의 사건 이후로 김건을 향한 세라스의 신뢰는 대단했다.

김건이 했다고 하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정도다.

그렇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여행은 끝을 맞이했다.

세 사람은 발할라로 복귀했다.

마인으로부터의 습격을 보고받은 사이먼 베이커는 침음을 흘렸다.

“김건 군을 노렸다고…….”

그는 곰곰이 생각을 다지다가 한숨을 쉬었다.

“세라스 양을 붙여 두길 잘했군.”

한서리가 말했다.

“상대는 초월자급의 마인이었습니다. 어쩌면 마인협회의 간부일지도 모르는 실력이었어요.”

그녀는 그러면서 아스타로트의 인상착의와 그의 능력 등 상세한 내용을 보고했다.

사이먼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세 사람 모두 고생했어. 그 건은 내가 별도로 처리할 테니 일단 조용히들 있어 주겠나?”

“알겠습니다.”

“고맙네. 막 복귀해서 피곤하겠군. 내일부터 등교해야 하니 모두들 가서 쉬게.

그렇게 사이먼은 세 사람을 물렸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을 걸으며 세라스가 말을 꺼냈다.

“교수님은 무슨 생각이신 거지? 이건 바로 모두에게 알리고 대처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알릴 수가 없는 거지.”

차가운 한서리의 목소리에 세라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한서리는 차근차근 설명을 했다.

“교수님은 화신을 쓰러트린 ‘그 기술’에 대해 들었어. 이론을 정립해서 기술적으로 구현해 낼 수만 있다면 마계와의 전쟁을 끝내 버릴 수도 있는 요소지. 그런데 그 정도로 대단한 물건의 이론 정립과 기술 개발을 혼자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교수 노릇까지 해 가면서?”

“그 말은, 교수님이 그 이론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했다는 거야?”

한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유하는 건 어쩔 수 없어. 문제는…… 그 정보가 마인협회에까지 흘러갔을지도 모른다는 거지.”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파악한 세라스의 얼굴이 진중해졌다.

“그건 혹시…….”

“그래, 마인협회와 관련된 사람이 있는 거야. 교수님이 믿고 정보를 공유했던 사람들 중에.”

이건 물타기다.

김건은 확신했다.

사실 그의 아내는 마인협회가 왜 움직였는지 정확히 몰랐다. 그렇지 않았다면 굳이 숨통을 끊지 않고 마인에게서 정보를 캐내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이 발할라 어딘가에 숨어 있는 배신자의 존재를 안다.

한서리가 이번 일을 트집 잡아 발할라 내부에 있는 배신자의 존재를 사이먼에게 주지시켜 수색이 시작된다면, 이번 일과 관련이 있든 없든 발할라의 배신자는 아주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이 이야기는 곧 교수님의 귀에도 들어가겠지.’

상황이 상당히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김건은 팔짱을 꼈다.

마인협회는 왜 자신을 죽이지 않고 납치하려 했으며,

아직 그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발할라의 배신자.

그리고 마지막에 나타나 마인을 구한 정체 불명의 화신까지.

그는 아내가 왜 갑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겠다고 한 건지 깨달았다.

싸움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직접 무기를 들고 벌이는 전투도 있고, 말과 논리로 벌이는 논쟁도 있다.

김건은 분명히 싸움의 고수다. 하지만 그라고 모든 종류의 싸움에 자신이 있는 건 아니었다.

아내의 모습을 돌아봤다. 아무렇지도 않게 분석을 늘어놓는 얼굴.

아내의 진짜 표정을 아는 김건은 그것으로부터 가면을 뒤집어쓴 것 같은 이질감을 느꼈다.

김건은 이미 아내가 싸움을 벌이는 중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것은 김건에게는 아주 자신 없는 부류의 싸움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암투라고 불렀다.

* * *

김건과 한서리, 세라스 프레이저, 세 사람의 아카데미 생활이 재개되었다.

화신전에서 생존한 덕에 그들이 발키리의 칭호를 받았다는 것은 이미 공식화되었다.

갑작스레 엄청난 일을 겪고 벼락 출세를 한 동기생이라.

당연히 세 사람은 생도들 사이에서 겉돌기 시작했다.

교수들은 그들이 발키리라는 것에 신경 쓰거나 특별 취급하진 않았으나 또래의 아이들과 거리감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토너먼트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희생당한 생도들도 많았기에 하하호호 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김건은 보디 혼자가 편한 사람이었으며 한서리는 여전히 고고했고, 세라스는 새로 얻은 두 친구로 만족한 모양이었다.

인간관계의 변화는 없었다.

네드와 메리안 커플은 여전히 평화로웠고, 위에서 김건의 그 기술에 대한 이야기가 도는 것 같다고 호들갑을 떨며 달려온 노바는 여전히 나이에 맞지 않는 주책을 부렸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렀다.

별거 없는 평범한 아카데미 생활.

그것은 언뜻 평화롭거나 지루하게 느껴져야 할 것이었으나…… 김건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이제 그만들 따라다녔으면 좋겠는데.”

우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김건.

그리고 그 앞에 선 두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싫어.”

“위험해. 언제 또 마인이 습격해 올 줄 알고.”

“습격은 무슨! 여기 발할라 한가운데야!”

목소리를 높여 봤지만, 한서리와 세라스는 요지부동이었다.

“만약이라는 게 있잖아.”

“방심할 수는 없어.”

한쪽은 무표정하지만 목소리에 장난기가 가득했고, 한쪽은 진지하게 그런 소리를 하고 있다.

김건은 앓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무슨 생각들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화장실까지 따라오는 건 진짜 아니라고!”

남자 화장실 앞에서 이러고들 있다.

김건은 부끄러워서 못 살겠다는 듯 얼굴을 가렸다.

부모에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사춘기 꼬맹이가 된 기분.

일찍이 부모를 여의어 제대로 된 사춘기 생활을 보내지 못했던 김건이었지만, 그는 그 심정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한서리와 세라스. 아카데미로 돌아온 이후로 두 사람은 몸이 다 낫지 않은 김건을 졸졸 따라다녔다.

처음에는 둘이서 티격태격하느라고 조금 여유가 있었는데 그것도 잠깐이었다.

조금 지나자 어떻게 죽이 맞아서는 밤에는 나, 낮에는 너, 이렇게 시간을 쪼개어 분업까지 해 가면서 감시의 빈틈을 줄였다.

신비로운 색의 장발에 얼음 같은 미모를 가진 한서리.

황금처럼 반짝이며 보기만 해도 활력을 주는 매력을 가진 세라스.

구애하듯 김건을 쫓아다니는 두 미녀의 모습에 처음에는 질투와 분노의 시선을 던지던 아카데미 생도들도 이제는 동정 어린 표정으로 김건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김건을 괴롭게 만드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식당으로 향하는 길.

한서리는 김건의 옆에 달라붙어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

보드라운 어깨를 부딪혀 오며 나른하게 속삭였다.

“오늘 점심은 뭐 먹고 싶어?”

지금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나눠왔던 가벼운 스킨십.

그러나 지금은 옆에 일행이 있었다.

세라스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하는 게 느껴진다. 김건은 애써 그것을 무시했다.

식사 시간에도 불편함은 계속되었다.

“이거 맛있네. 하나 더 먹어.”

“먹여 줄까? 아~ 해 봐.”

김건의 옆에 앉은 한서리는 헤실헤실 웃으면서 그의 식사를 챙겨 주었다.

평소였다면 부담스러워하면서도 기꺼이 그 호의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순수하게 식사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는 슬쩍 눈을 들어 식탁의 맞은편을 살폈다.

평범하게 식사를 하고 있는 세라스가 보였다.

그 모습은 일견 평온해 보였다.

김건은 시선을 돌렸다.

까득-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먹을 게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

‘돌아 버리겠군.’

김건은 사회 경험이 많지 않았다. 아내를 제외하면 여자 경험도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눈치는 있었다.

지금 두 여자 사이에서 엄청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두 사람이 휘둘러 대는 보이지 않는 칼날이 눈앞을 오가고 있었다. 그 사이에 끼인 김건은 그야말로 환장할 지경이었다.

차라리 화신이랑 한 번 더 싸우는 게 더 편하겠다.

반쯤은 진심이었다.

김건은 하루라도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사이먼이 김건을 호출했다.

호출 장소가 기숙사로 쓰이는 발할라 타워의 응접실이었기 때문에 멀리 갈 필요는 없었다.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아내를 떼어 내고 홀로 방에서 나온 김건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응접실이 있는 하층으로 향했다.

그렇게 찾은 응접실의 자동문이 열리자, 눈에 익은 황소 머리 투구가 보였다.

김건에게 와일드카드를 건넸던 볼룬드의 대장장이, 버트 포스터가 그곳에 있었다.

“왔군.”

김건을 발견한 사이먼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는 인사를 하는 김건에게 자리를 안내하며 말했다.

“알고 보니 자네와 버트가 인연이 있었더군.”

“전에 쓰던 무기를 만들어 주셨었죠. 와일드카드도 받았고요.”

사이먼은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일이 쉽게 풀렸네. 자네에게 줄 거라고 하니까 버트도 쉽게 협조해 주었어.”

버트의 협조라.

그것으로 무엇을 했는지는 쉽게 예상이 되었다.

잠깐 본 게 다지만 버트 포스터는 김건 그 자신과 비슷한 종류의 인간이었다.

오로지 하나밖에 못하는 인간.

김건이 싸우는 것밖에 모르는 인간이라면 버트는 뭔가를 만드는 것밖에 모르는 인간이었다.

김건은 묵묵히 앉아 있는 버트에게 시선을 주었다.

못 보던 사이 그는 꽤 변해 있었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근육질로 두텁던 몸이 반으로 줄었다.

소매 사이를 보니 강건하던 구릿빛 피부도 퍼석퍼석하게 말라붙어 있었다.

그 꼴을 본 김건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뭘 만들었길래 그렇게 된 겁니까?”

“화덕 앞에 오래 있어서 그런 거다. 신경 쓰지 마.”

버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김건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토록 깐깐하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이 저렇게 될 정도다. 방금 한 말이 사실이라 해도 앞에 있었다는 화덕이 보통 화덕은 아닐 것이다.

사이먼이 말했다.

“버트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 제일 뛰어난 대장장이지. 버트에게 자네를 도와줄 수 있는 장비를 만들어 달라고 했네.”

버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이먼은 김건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 있더라도 마력량이 적다는 건 분명히 단점이야. 아직까지는 서리 양의 버프로 버틸 수 있었지만 서리 양이 항상 붙어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잖나.”

“맞는 말이죠.”

김건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런 네놈에게 주는 선물이다. F급 마력적성자에게 이만한 무구는 없을 거다.”

전에 비해 왜소해졌어도 말투는 여전했다.

버트가 의자옆에 놓아두었던 가방을 탁자 위로 올렸다.

찰칵찰칵- 잠금이 해제되고 그 안에 있는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허리띠가 그곳에 있었다.

화려함은 전혀 없는 가죽 허리띠.

굳이 특징을 집으려 한다면 붉은 보석이 박혀 있는 버클 정도가 다였다.

“……!”

그것을 본 김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버트가 벨트를 집어 들었다.

상처투성이가 된 손. 스스로의 작품을 만지며 하는 말에는 진한 자부심이 녹아들어 있다.

“겉보기와는 달리 이건 무기도 되고, 방어구도 되는 장비다. 장착된 마정석의 마력을 소비해 작동하니까 마력이 적은 너도 다룰 수 있을 거다. 마정석은 못해도 감마, 되도록이면 델타급 이상 몬스터의 마정석을 사용하는 게 좋을 거야. 가격이 꽤 들겠지만…….”

사이먼이 그 말을 받았다.

“걱정 말게. 유지비는 이쪽에서 감당할 테니까.”

그 뒤로 버트가 장비의 스펙에 대하여 읊었지만, 김건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들을 필요가 없었다.

이 물건이 뭔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림자 악마라는 몬스터를, 에테르라는 특수한 금속에 정착시켜 제련한 장비.

일명 그림자 갑옷.

그것은 회귀하기 전의 김건이 소유하고 있었던 다이달로스의 삼신기였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