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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49화 (49/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49화

해가 밝았다.

창가로 쏟아지는 온기 속에서 김건은 요리에 쓰다 남은 날호두 한 알을 쥐고 있었다.

“…….”

말없이 그것을 노려본다.

잠시 후, 단단하던 껍질이 먼지가 되어 허공에 휘날렸다.

바람을 훅 불자 손에는 깨끗하게 벗겨진 속살만이 남았다.

“좋아.”

김건은 호두를 입안에 던져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를 마친 김건이 한서리와 함께 방을 나섰다. 밖에는 이미 세라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김건은 두 사람을 앞에 두고 말했다.

“이제 따라 다니지 마. 더 이상은 필요 없으니까.”

한서리는 아쉽다는 표정이었으나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부상은 다 나은 거지?”

“응.”

그녀는 순순히 물러섰다. 하지만 아직 납득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부상이 다 나았어도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 누구 한 명이라도 붙어 있는 게…….”

세라스가 고집스럽게 말했다. 김건은 그 말을 끊었다.

“필요 없어. 애초에 난 무인이야. 누군가를 보호하는 역할이지 보호받는 역할이 아니라고. 일생을 그렇게 살아왔지. 그런 내게 보호받아야 한다고 하는 건 인생 전체를 부정하는 거나 다름없어.”

“하지만…….”

세라스는 포기하지 않고 김건을 설득하려 들었다.

김건은 무표정한 얼굴로 세라스를 바라보았다.

“……!”

살기를 느꼈다.

세라스가 말을 멈춤과 동시에 김건이 손을 뻗었다. 위협을 느낀 세라스가 방어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다음 순간, 뒤통수가 얼얼해졌다.

세라스는 세상이 빙글 돌아가는 것을 목격했다.

‘어? 손이 닿지도 않았는데…….’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시야가 꺼졌다.

쓰러지는 세라스를 김건이 받았다.

그는 세라스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 소파 위에 눕혔다.

“멍청하긴.”

한서리는 혀를 차면서 의식을 잃은 세라스의 코를 꼬집었다. 짓궂은 아내의 행동에 김건은 쓴웃음을 지었다.

“괴롭히지 마. 나를 생각해 줘서 그러는 거니까.”

분명 세라스는 성장했다. 능력만 보면 이미 초월자의 격에 달한 전위가 되었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김건의 진동파가 아무리 은밀하게 움직인다 한들, 이렇게 쉽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얘는 그냥 자기 주제를 모르는 거야. 누가 누구를 보호해?”

코웃음을 치며 손가락을 튕겨 코끝을 때린다.

통증에 반응한 세라스가 흘리는 신음 소리를 들으며 한서리는 몸을 돌렸다.

얼음 같은 미모에 어울리지 않게 실실 웃으면서 김건을 끌어안는다.

남편의 시선이 누워 있는 세라스를 향하는 걸 발견하고는 그의 허리에 걸린 벨트를 세게 잡아당겼다.

“아내를 앞에 두고 다른 여자한테 시선을 파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

“기절했잖아. 신경 쓰지 마.”

킥킥 장난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한서리는 김건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새로 받은 장비는 어때? 전에 쓰던 거랑 비교해서.”

전생에 쓰던 삼신기를 말하는 것이다.

김건이 말했다.

“거의 똑같아. 벌써부터 이게 만들어질 줄은 몰랐어.”

“이미 너무 많은 개변이 일어났으니까. 우리가 알던 미래는 옛날에 없어졌어. 앞으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아.”

거기까지 말한 한서리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녀는 가만히 김건을 안고 있다가 말했다.

“나, 당분간은 바빠질 거야. 베이커 교수님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참가하기로 했거든.”

“베이커 교수님?”

“응. 교수님과 가까워질수록 상황을 통제하기 쉬워지니까. 미래는 바뀌었지만 우리들이 알고 있는 정보는 아직 유효해. 배신자의 존재를 교수님이 고려하기 시작했으니까 지금 달라붙어서 열심히 바람을 넣어야지.”

“잘됐네. 나도 곧 바빠질 예정이거든.”

김건은 한서리의 허리에 팔을 감으며 말했다. 한서리는 물끄러미 김건을 올려다보았다.

“뭘 하려고?”

“저번에 깨달은 게 있거든. 실력을 좀 더 키워야겠어.”

“지금보다도 더 강해지려고?”

“왜? 싫어?”

“……좋지는 않아. 당신이 강해질수록 당신에게 의지하게 되니까.”

“부부잖아. 서로 의지하는 게 당연하지.”

김건은 그렇게 말하면서 아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서리는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가끔은 생각한다.

이 사람이 그냥 무능력한 한량이었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언제까지고 곁에 두고 내보내지 않을 텐데.

위험한 일 따위는 하지 못하게 할 텐데.

그것이 기만이라는 건 알고 있다. 그 능력의 덕을 누구보다도 많이 본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다.

한서리는 생각을 고쳤다.

남편이 가만히 있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나설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다.

그녀는 웃으면서 김건을 올려다보았다.

“조심해. 훈련한답시고 어디 다치지 말고.”

“그래, 당신도.”

두 사람은 가볍게 입술을 맞췄다.

* * *

그날은 수업이 별로 없는 날이었다. 김건은 점심을 먹자마자 게이트를 타고 발할라를 나섰다.

그가 도착한 곳은 아시아 대륙에서 가장 긴 산맥인 곤륜산맥에 위치한 발할라의 기지였다.

게이트는 세계 어디서든지 발생한다.

고산, 사막, 바다 등.

속칭 레인저라 불리는 영웅들이 그런 험지에 등장하는 게이트를 처리하고 있다.

레인저의 거점은 거대했다. 아무래도 소수의 인원으로 산맥에서의 변수에 대응해야 하다 보니 인력 수송을 위해 만들어진 시설들이 즐비했다.

산을 깎고 다듬어 활주로를 두었고, 헬기와 수송기가 자가용처럼 굴러다녔다.

초인적인 힘을 지닌 영웅들의 기지라기보다는 평범한 공군 기지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곳에는 일반 공군 기지에는 존재하지 않는 설비가 있었다.

김건은 그것을 이용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일반 생도는 이걸 이용할 수 없는데…….”

가끔 견학이라고 방문한 아카데미 생도들이 병원에 실려 가는 일이 빈번했기에, 시설을 관리하는 담당자는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김건이 발키리를 뜻하는 인장을 내밀어 보이자 순순히 길을 비켜 주었다.

그는 데이터베이스에서 김건의 이름을 검색해 보고는 마이크에 갖다 대고 말했다.

“F급 마력적성이라고? 거의 일반인이잖아!”

정말 괜찮겠냐는 듯 김건을 쳐다보는 담당자. 장비에 올라탄 김건은 엄지를 들어 보이는 것으로 말을 대신했다.

“모르겠다~ 뭔지는 몰라도 발키리라는 놈이니까 죽진않겠지.”

창밖 너머로 그것을 지켜보던 담당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장전이 완료되었다.

담당자는 제어판 위에 볼록 튀어나와 있는 버튼을 눌렀다.

푸슉.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김건의 신체가 가속했다.

초속 수백 미터의 속도에서 생겨난 중력으로 인해 피가 하체로 쏠리며 뇌로 통하는 혈류가 감소.

평범한 사람이라면 블랙아웃이 일어나거나 기절할 수 있는 위험이 있지만, 김건은 몸 안에 퍼트린 진동으로 혈류를 제어해 충격을 상쇄했다.

퍼엉!

공기를 찢는 충격파와 함께 김건의 몸이 초음속을 뚫었다. 그의 몸이 대포알처럼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히어로 캐터펄트.

사람을 관만 한 캡슐에 태운 뒤 목표 지점을 향해 발사해 버리는 무식한 장비다.

최대 사거리는 100km. 사용 편의성, 운영비, 유지비 따위를 고려했을 때 이것만큼 효율적인 이동 수단은 없었다.

단점은 딱 하나.

사용자의 안전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속이 끝나자 김건이 타고 있던 캡슐이 벗겨지며 파란 하늘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는 그렇게 맨몸인 채 전투기마냥 산맥 위를 날았다.

히어로 캐터펄트에는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다. 최초에 탑승하는 캡슐은 공기 저항을 뚫고 가속하기 위해 씌워 놓은 유선형의 껍데기일 뿐이다.

감속 및 착지는 오로지 사용자의 능력에 달려 있다.

이 장비를 이용하는 것은 대부분이 전위였다. 일반적으로는 오라를 사용해 장막을 펼치거나 생성한 임시 질량을 분사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당연하지만, 김건에게는 그만한 양의 마력은 없었다.

목표 지점에 도착하자 손목에 장착한 스마트워치가 신호를 보냈다.

차렷 자세로 날아가던 김건은 그대로 팔다리를 펼쳐 감속하며 아래를 향해 머리를 내리꽂았다.

초록색 숲의 바다가 펼쳐진다. 순식간에 지면이 눈앞에 닥쳐 왔다.

이대로 추돌하면 즉사. 전신의 뼈가 조각나 푹 퍼진 죽처럼 흐물흐물한 시체가 될 것이다.

김건은 진동을 흘려 허리띠의 버클을 조작했다.

버클로부터 새까만 물질이 흘러나왔다.

순식간에 뿜어져 나온 칠흑의 갑옷이 그의 전신을 감쌌다.

형태를 갖추지 못한 마계의 특이 금속인 에테르에, 조련된 그림자 악마의 의지와 물리화 능력을 덧씌워 완성한 마법공학의 결정체.

F급 마력적성자인 김건을 세상이 멸망하는 그날까지 살 수 있도록 해 주었던 일등공신이 다시 한번 그의 몸을 덮었다.

갑옷을 장착한 김건이 양쪽으로 손을 뻗었다.

촤르르륵- 소리가 나며 사슬 같은 구조로 이루어진 채찍이 각각의 손아귀에서 뻗어 나갔다.

튀어 나간 채찍 끝이 나무의 줄기를 휘감았다.

카가가가가가!

갑주로 강화된 악력과 상완이 채찍을 잡아당기자 마찰열로 연기가 피어오르며 나무의 줄기가 갈려 나갔다.

가시를 발라 내듯 두터운 가지가 줄줄이 떨어져 나가고, 추락하던 김건의 신체가 급격히 감속.

김건은 쿵 소리를 내며 안전히 지면에 착지했다.

“음.”

새로이 받은 그림자 갑옷의 성능은 여전했다. 낙법을 취할 필요도 없는 충격 흡수 기능에 김건의 취향에 맞게 제련된 채찍 두 자루까지.

이전에 사용하던 물건은 그가 본 주인이 아니었기에 다른 무기를 운용해야 했으며 체형도 맞지 않아 강화되는 근력의 비율도 떨어졌었다.

그런 세세한 점까지 감안하면 오히려 이전보다 더 좋은 성능을 지녔다 할 수 있겠다.

김건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갑옷을 회수했다.

그가 오늘 이곳에 온 것은 무기의 테스트를 위해서도, 회복한 몸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는 더 강해질 방법을 찾기 위해 이곳에 왔다.

어두컴컴한 숲속은 비라도 왔는지 습기가 가득했다.

바닥은 진득하니 신발에 달라붙고, 썩은 식물이 풍기는 냄새가 쿰쿰하게 콧속을 간질였다.

김건은 스마트워치를 조작해 목표 지점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했다.

‘그렇게 멀지는 않군.’

김건은 편안한 마음으로 수풀을 헤치며 숲속으로 들어갔다.

숲속의 모습은 특이했다. 무언가 괴수라도 날뛴 것인지, 수십 년은 살았을 법한 두꺼운 나무들이 뚝뚝 부러져나가 엉망진창으로 뒤얽혀 누워 있었다.

부러진 나무의 단면을 확인했다.

톱으로 자른 것처럼 깨끗하지도, 대포에 맞아 부서진 것처럼 파편이 흩어져 있지도 않았다. 그저 한계까지 늘어난 나무의 속살이 둥그렇게 비틀려 있었을 뿐.

그 모습은 마치 거인이 두터운 줄기를 양손에 쥐고 쥐어짜듯이 반으로 접어 부러트린 것 같았다.

김건은 그 흔적을 하나둘 확인하며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잠시 걷자 쏴아아 시원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쫓아가자 수풀이 걷히며 커다란 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콰콰콰콰!

수십 미터는 될 법한 폭포에서는 엄청난 양의 물이 끝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범람한 시냇물이 돌을 깎고 바위를 부수며 거칠게 흐른다.

김건은 그 아래, 폭포의 밑부분에 가려져 있는 어둠 속을 주시했다.

잠시 후, 어둠 속으로부터 한 사람이 빠져나왔다.

2미터는 될 법한 장대한 신체.

단단한 근육은 바위마저 깎아내리는 폭포의 물줄기에도 흔들림이 없었고, 짧은 머리에 눈썹은 타오르는 불꽃마냥 짙었다.

김건은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발할라의 열두 교수 중 하나.

육탄전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전해지는 남자인 에디 슐츠는 사납게 웃었다.

“쓸데없는 격식은 됐어. 같은 선수끼리 편하게 하자고. 편하게.”

손을 내저은 그는 짧은 기합과 함께 몸에 힘을 주었다.

오라가 반응하며 펑 소리와 함께 그의 몸 위에 흐르던 물방울이 튕겨져 날아갔다.

에디는 나뭇가지에 걸쳐 두었던 수건으로 남은 수분을 닦아 내며 김건을 돌아보았다.

“화신을 상대로 살아남다니, 대단한데.”

“운이 좋았죠.”

김건의 대답에 에디는 내숭 떨지 말라는 듯 코웃음을 쳤다.

“나도 아직 화신이랑은 싸워 본 적 없어. 전에…… 그러니까 네가 마주치기 전에 화신이 등장했을 때는 나도 좀 비리비리할 때였으니까.”

에디 슐츠는 발할라가 무너지기 전에 일어났던 라그나로크에서 몬스터 측에 제일 큰 피해를 입혔던 두 사람 중 하나였다.

비록 그것이 마지막이었으나 그의 활약이 없었다면 인류는 그때 멸망했을지도 모른다.

비리비리하다니.

야수 그 자체인 남자에게 붙일 만한 표현은 아니었다.

김건은 그렇게 생각하며 웃었다.

에디가 물었다.

“어때? 화신은. 다시 한번 상대해 볼 만한가?”

“아뇨. 되도록이면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리 기술을 갈고닦아도 화신에게는 별 소용이 없으니까요.”

미극공진동을 완성한 김건조차도 ‘그 기술’을 제외하면 화신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없다.

손에 검 한 자루를 쥐어 주고 저기 밀려오는 파도를 막아 달라 하면 그 어떤 전사라도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다.

모든 전위에게 화신은 그런 존재였다.

“월터는 어떻게 죽었지?”

“……용감하게 싸우다 돌아가셨습니다.”

김건은 그렇게만 말했다.

에디는 음, 하고 침음성을 흘렸다.

용감히라.

싸움꾼 입장에서는 별로 듣고 싶지 않은 형용사다.

여자들이 착하다는 말보다 예쁘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말이다.

혀를 차던 에디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한테는 무슨 볼일이 있어서 왔지?”

“가르침 좀 받을까 해서요.”

“무슨 가르침? 너 같은 놈한테 가르쳐 줄 건 없어.”

그건 김건을 폄하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누굴 만나든 상대를 보면 내가 저놈을 이길 수 있을까 없을까 재 보는 것이 싸움꾼이라는 인종의 습성이다.

이미 이전의 만남에서 에디는 김건의 능력을 재 봤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이놈과 싸우면 결코 몸이 성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그런 놈에게 가르쳐 줄 것이 어디 있겠는가.

에디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김건 역시 그걸 모르고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르침을 주고받고 싶습니다. 저랑 교수님은 가는 길이 다르니까, 각자 서로의 길에 대해서 상대에게 모르는 부분을 가르쳐 줄 수는 있겠죠.”

“서로 연구회라도 하자는 거냐?”

김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교수님의 기술은 제가 가진 약점을 메우는 데 꽤 도움이 될 것 같거든요.”

자기보다 열 살도 더 어려 보이는 청년의 답변에 에디는 웃었다.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 같은 표정이었다.

“그 말에는 조금 흥미가 돋는군.”

막대한 거구가 김건의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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