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50화
에디는 김건을 내려다보았다.
“그럼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잠깐 볼까.”
“그러시죠.”
두 사람은 살짝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각자의 자세를 잡았다.
주변은 고요하면서도 시끄러웠다.
쏴아아 폭포가 떨어지고 새가 지저귄다. 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숲이 우우우우 울었다.
김건과 에디, 둘은 그저 자연스럽게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움직인다.
몸의 중심이 이동. 자세의 축이 바뀌고, 근육의 신축상태가 변경된다.
슬그머니 에디의 앞발이 앞으로 이동한다.
김건은 물러서는 대신 무게 중심을 전방으로 향했다.
에디는 옆으로 축을 비틀었다.
두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했다.
잠시 후, 에디가 입을 열었다.
“거리에 꽤 자신이 있나 보군.”
“채찍을 쓰니까요.”
“채찍이라고 해 봐야 견제 정도겠지. 미극공진동이라 했던가? 그, 진동을 이용한다는 기술의 유효 거리가 상당한가본데.”
김건은 씨익 웃었다.
“그러는 교수님이야말로 속도에 꽤 자신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 너무 리듬이 빨라서 대응하기 힘들어요.”
에디가 김건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듯, 김건 역시 에디에 대해서는 파악해 두었다.
에디는 그가 현역이던 시절의 사람이 아니기에 아내에게 부탁해서 정보를 받았다.
이리저리 설명하기 복잡한 능력을 가진 김건과 달리, 에디의 강점은 단순했다.
그저 빠르고, 그저 강하다.
그는 사량발천근이라 불리는 고도의 강체술을 사용했다.
그 정확한 원리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순간적으로 발휘하는 파워와 스피드로는 따라올 자가 없다고 한다.
“일일이 다 반응해 놓고 내숭 떨지 마. 어린놈이 벌써부터 징그럽게.”
에디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의 머리칼은 칙칙한 갈색이었다. 높은 마력적성을 가진 사람 특유의 천연색 머리가 아니었다.
에디 슐츠의 마력적성은 S급으로 알려져 있다.
간신히 S급의 기준에 걸칠만한 수준의 적성.
일반적으로는 천재라 불릴 재능이지만, 그런 천재들이 득시글거리는 발할라에서는 그리 대단하다고 할 재능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발할라 최강의 육체 능력을 소유한 남자라는 말을 들었다.
김건은 그 기술의 요체를 원했다.
“딱 보아하니 타격에는 영 재주가 없구만. 엉덩이가 너무 빠져 있어. 어떻게든 직격을 피하겠다는 모양새인데. F급이니 어쩔 수 없나?”
애디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김건의 입가에 호전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타격에 목을 맬 필요가 없는 거죠.”
“그렇다고 그 진동 기술이 무적은 아닐 텐데. 타격보다는 반응도 늦을 거고, 정 안 되면 같이 진동을 내서 조준을 흐트러트리는 방법도 있지. 정확하게 제어하는 게 힘든 거지, 진동을 발생시키는 것 정도는 가능하거든.”
“당연히 무적은 아닙니다.”
김건은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입가에는 짙은 미소가 남아 있었다.
“그래도 최소한 주먹을 피하거나 칼을 막는 것보다는 어려울 겁니다.”
자신감 넘치는 도발에 에디가 반응했다.
그는 ‘어디 한번 해보자는 거냐?’ 라는 표정으로 손아귀를 쥐락펴락하다가 이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좋다. 마음에 들어. 내게 도움이 되려면 그 정도 패기는 있어야지.”
“그럼 제 제안을 받아들이시는 겁니까?”
“그래, 잘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디 한번 해 보자고. 나도 최근에는 벽에 틀어박혀서 실력이 안 늘고 있으니까. 네놈의 기술을 접목시켜 보는 것도 나름 환기가 될 것 같군.”
그렇게 두 전사의 계약은 성립이 되었다.
목표를 향한 첫발을 성공적으로 내디딘 김건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그는 살짝 에디의 눈치를 살폈다. 에디는 별 상관없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김건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말했다.
“숨어 있지 말고 이리 나와.”
그러면서 계곡 옆으로 펼쳐져 있는 숲을 바라봤다.
잠시 후, 커다란 나무줄기 뒤에서 황금색 머리칼이 빼꼼 튀어나왔다.
우물쭈물 모습을 드러낸 여인, 세라스 프레이저는 김건과 에디의 눈치를 살피면서 슬그머니 두 사람에게로 다가왔다.
“따라다니지 말라니까. 여기에는 왜 왔어?”
김건이 엄한 표정을 지으며 타박을 주자 세라스는 뾰족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그, 그것 때문에 따라온 건 아니야! 그냥, 네가 슐츠 교수님을 만나러 간다고 하니까 조금 흥미가 생겨서…….”
“흥미?”
“그래, 슐츠 교수님은 고수잖아…… 너도 고수고. 두 사람이 만나서 하는 걸 보면 뭔가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온 거야.”
“음.”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한 대답에 김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가 세라스의 처우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에디가 움직였다.
그는 의외로 세라스에게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이야기는 들었다. 얼마 전에 일격으로 마인 두 놈을 처리했다지?”
“네.”
“파산검 신속을 재현해 냈다고 하던데, 진짜냐?”
세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신의 마기에 오염되었다가 회복하는 와중에 마력회로에 쌓여 있던 노폐물들이 깨끗하게 사라졌거든요. 그 덕에 한번에 뿜어 낼 수 있는 출력이 크게 늘었어요. 몸도 더 튼튼해졌고요.”
에디는 파산검을 안다.
건물만 한 검을 휘둘러 대는 무식한 기술.
기술적 난이도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지만, 그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마력이 필요하다.
에디는 휘파람을 불었다.
“대단한데. 확실히 프레이저 가문 녀석들이 재능은 진짜 제대로 타고났어.”
대부분의 전위는 온몸의 마력을 쥐어짜도 파산검은커녕 프레이저 가문의 주력기인 참마검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때로는 그 마력적성이 부럽다니까.”
“동감입니다.”
낮은 마력적성의 서러움을 아는 김건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디가 말을 이었다.
“그냥 파산검도 아니고, 신속을 다룰 정도면 제어력도 좋은 모양이야. 어쩌면 프레이저 가문에서 티리온의 뒤를 이을 만한 인물이 나올지도 모르겠어.”
“확실히…… 재능은 있죠.”
어쩐지 두 사람 모두 세라스를 인정해 주는 분위기였다. 세라스는 조금 자신감이 생겨서 말했다.
“방금 전 이야기를 들어 보니 두 분, 아니 두 사람이서 연구회를 진행할 생각인 것 같던데…… “
슬그머니 운을 띄우자 에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기본적으로는 서로의 기술 교류가 중점이 되겠지만 말이야.”
미끼를 물었다. 세라스는 얼른 그 흐름에 편승해서 말을 던졌다.
“저도 거기에 껴 주시면 안 될까요?”
두 사람에 비해 실력은 떨어질지 몰라도, 세라스에게는 타고난 재능과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기술이 있다.
세라스는 스스로가 가진 재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보다 월등한 실력을 가진 두 사람과 어울리다 보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기대감이 가득한 얼굴로 김건과 에디를 돌아보았다.
그런 그녀를 맞이한 것은, 떫은 감을 씹은 것마냥 찌푸려지는 두 얼굴이었다.
“별로 내키지 않는데.”
“그건 좀…….”
칭찬할 때는 언제고 돈 깎아 달라는 말을 들은 장사꾼 같은 표정들을 짓는다.
심지어 에디는 이렇게까지 말했다.
“영감을 줄 정도로 독특한 것도 아니고, 너희 가문의 무식한 기술은 배워 봐야 써먹지도 못한다고.”
“…….”
그때 세라스는 결심했다.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이 인간들한테는 뭐 하나라도 뜯어먹고야 말겠다고.
* * *
“그럼 그냥 한 수 가르쳐 주세요!”
김건과 에디, 두 고수의 연구회에 껴 달라고 한참이나 실랑이를 벌였는데도 말이 안 통하자, 세라스는 그렇게 외쳤다.
에라, 모르겠다. 배짱을 튕겨 버린 것이다.
“그래, 좋아.”
에디는 너무나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세라스가 당혹한 소리를 냈다.
“갑자기 뭐예요?”
에디는 큭큭 웃었다.
“자존심이 있지, 어떻게 하수랑 논검(論劍)을 하나. 하지만 한 수 가르쳐 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즉, 너 같은 허접이랑 같이 뭘 하기는 싫지만 고개를 숙이면 받아는 주겠다는 말이다.
크으으윽, 세라스는 분해 죽겠다는 듯이 이를 갈았지만 참았다.
안 그래도 아침에 김건이라는 놈팡이한테 손도 못 쓰고 기절해 있다가 온 참이다.
그녀는 자신의 실력이 그들만 못하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그래도 목소리가 뾰족해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교수님은 누구를 가르쳐 주는 법이 없다고 들었는데 의외로 쉽게 허락하시네요.”
교수라는 직함은 그저 발할라가 명목상 아카데미라는 교육 기관으로서의 성격을 강조하기 위함일 뿐이다.
에디는 코웃음을 쳤다.
“애 보기는 싫어해. 귀찮고, 말을 해도 알아먹질 못하니까. 가르친다면 너나…… 그래, 월터정도는 돼야 할 맛이 나지. 이미 죽어 버린 놈이지만.”
그러면서 “아까워, 그 자식은 싹수가 있었는데.”라며 고개를 저었다.
세라스는 조금 애매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월터는 확실하게 초월자의 격을 인정받은 전위다. 전 세계 인구 수십억을 탈탈 털어도 백 명이 채 될까 말까 한 희귀 인력.
그 정도는 되어야 가르쳐줄 맛이 난단다.
그 자신감에 세라스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럼, 실력도 볼 겸 어디 가볍게 붙어 볼까.”
에디가 걸어 나갔다.
그는 수련용으로 만들어 놓은 폭포 옆의 공터에 서서 세라스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덤벼. 진짜로 덤비지는 말고 가볍게 스파링한다는 느낌으로. 무기는 써도 돼.”
“좋아요.”
실력을 보여 줄 기회였다. 어쩌면 저 높은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라스는 기세 좋게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그리고 1분 뒤.
“크어어어억!!”
세라스는 괴성을 지르며 하늘을 날았다.
그냥 허공으로 떠오른 정도가 아니다. 기역자로 몸이 접혀서는, 포탄처럼 날아서 숲속에 처박혔다.
수풀이 찢어지고 작은 나무가 사정없이 부러져 나간다. 세라스는 숲을 초토화시키며 쏟아지는 나뭇잎과 부러진 줄기의 파편에 덮였다.
먼지를 풀풀 날리며 그 안에서 기어 나오더니, 거창하게 숨을 토하며 위액을 쏟아 냈다.
“으웨에에엑!”
아침에 먹은 것이 없어서 다행히 추한 꼴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배가 아팠다. 어마어마한 충격에 온몸이 아려 왔다.
연습 삼아 원거리에서 진짜 포탄을 막아 본 적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위력이 더 센 것 같았다. 그녀는 몸통을 부여잡고 외쳤다.
“스, 스파링이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이 정도로 끝난 거야. 진짜였으면 내장 다 박살 냈어.”
그녀의 앞에 선 에디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대체 얼마나 강하게 주먹을 날린 건지 마찰열로 손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그것을 훅 불어서 날려 보낸 에디는 죽는 소리를 내는 세라스를 붙잡아 일으켜 주었다.
그는 짧게 평가를 내렸다.
“전체적으로 다 좋은데, 경험이 적은 게 문제군.”
그 말은 전에 김건에게도 들었다. 세라스는 아픔도 잊고 물었다.
“그, 그럼 뭘 하면 좋을까요?”
“경험은 어쩔 수 없어. 실전을 겪으면서 굴러야지. 죽네 사네를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몸에 배지.”
근래에만 벌써 두 번이나 죽다가 살아났다. 그 경험을 또 하기는 싫었다.
“그러다 진짜 죽으면 어떻게 해요?”
“그냥 거기까지인 거지.”
“대련이나, 뭐 그런 걸로는 안 돼요?”
“안 돼, 실전이랑은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생초보라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되지만 넌 그게 아니잖아.”
무책임한 말을 듣고 있자니 점점 신뢰가 떨어진다.
세라스는 따지듯이 물었다.
“그러면 방법이 없어요? 전혀?”
에디는 고개를 저었다.
“기초를 다져야지. 아무리 많은 기술을 익혀도 모든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건 결국 기본기야. 마지막 순간에 몸을 기댈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어.”
에디는 그렇게 말하면서 세라스의 목에 손날을 댔다.
반응하려 하니 배로 주먹이 날아온다.
그것을 막자니 이번에는 팔이 잡혀 중심이 흔들렸다.
세라스가 비틀거렸다.
“……!”
이 정도 거리에서, 싸움 중에 균형을 잃었다. 세라스는 이미 한 번 죽었다.
에디는 세라스를 놓아 주었다.
“넌 실력에 비해 너무 둔해. 반응 속도를 말하는 게 아니야. 움직임 자체에 둔함이 묻어 있어. 마력을 제어하는 방식도 그렇고. 굼뜬 코끼리 같다고나 할까. 다음 움직임이 너무 선히 보여. 경험 부족이라는 단점이 그래서 더 크게 다가오는 거지.”
“……윽.”
“높은 마력적성 덕에 항상 남들보다 우위에 서서 싸우다 보니까 그런 거겠지만 이 위에서는 안 통할 거야. 이쪽에는 상성을 씹어 먹는 괴물들밖에 없거든.”
에디는 그렇게 말하며 김건을 돌아보았다. 세라스의 시선이 그를 쫓았다.
F급 마력적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콜로서스를, 그리고 화신을 홀로 쓰러트린 남자.
그에 비하면 자신이 가진 기술은 쓰레기나 마찬가지다.
지금의 상태여선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었다. 그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가졌음에도 말이다.
세라스는 이를 깨물었다.
“알겠어요. 그럼 해야 할 걸 가르쳐 주세요.”
에디가 김건을 눈짓했다. 김건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일단은 감각을 키우는 게 좋아. 마력량이 많아서 다칠 일이 없다 보니까 세세한 곳에서의 반응이 느려졌어. 일단은 오라 제어보다 몸의 오감을 갈고닦는 게 좋을걸.”
에디는 씨익 웃었다.
“정확하군.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거든.”
그는 그러면서 물끄러미 세라스를 내려다보았다.
“진짜로 배울 생각은 있냐? 난 어린 여자애라고 봐주지 않아. 징징거리는 소리는 듣지도 않을 거다.”
세라스는 단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할게요.”
“그럼 일단 짐부터 수거할까? 수련에는 몸만 있으면 되니까.”
에디가 솥뚜껑만 한 손을 내밀었다.
주머니의 휴대기와 허리춤에 찬 칼. 그리고 허리에 메어 두었던 파우치 등…….
어차피 짐도 별로 없었다. 세라스는 가지고 있던 물건을 모두 꺼내서 에디에게 주었다.
에디는 물기를 털어 냈던 수건을 보자기 삼아 물건을 담고선 돌아섰다. 그리고 옆에 있는 폭포를 가리켰다.
“그럼 저기 가서 명상이나 좀 해.”
“……명상을 하라고요?”
무슨 기술이나 요령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세라스는 당황해했지만 에디는 여상스럽기 그지없었다.
“어. 명상. 명상이라고 해 봐야 뭘 이미지해서 머릿속으로 뭘 굴리라는 건 아니야. 오라는 쓰지 말고 맨몸으로. 내가 나오라고 하기 전까진 나오지 마.”
그 말은 세라스에게 이렇게 들렸다.
“……그냥 가서 물이나 맞으라는 거예요?”
“응.”
에디는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