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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51화 (51/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51화

해가 졌다.

폭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에디의 거처가 있었다. 산중 수련을 좋아하는 그는 일이 있을 때가 아니면 발할라가 아니라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작은 통나무집이긴 하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침대, 냉장고, 소파 등 깨끗하게 정돈된 가구들이 놓여 있고 가운데에는 홀로그램 디스플레이를 겸하는 커다란 탁자까지 있다.

김건과 에디는 탁자 위에 홀로그램으로 잔뜩 자료를 띄워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아니, 그게 말이 되냐고. 여기서 왜 마력을 그렇게 돌려? 그냥 바로 질러 가면 되잖아.”

“바로 질러 가면 회로에 부하가 간다고요. 그러다 보면 미세하게 스크래치가 생겨서 제어력이 떨어진단 말입니다.”

“그렇게 안 되게 하는 게 실력이지.”

“아뇨, 그렇게 돌아가면서도 속도가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게 실력이죠.”

말싸움에 가까울 정도로 대화를 이어 가는 두 사람.

그러던 와중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고개를 돌리자 비 맞은 생쥐 꼴이 된 세라스가 있었다. 파랗게 질려서는 오들오들 떨고 있다. 그녀는 달달달 떨리는 이를 갈면서 소리쳤다.

“빌어먹을, 대체 얼마나 폭포를 맞고 있으라는 거예요? 죽을 뻔했잖아요!!”

무거운 폭포를 계속 두들겨 맞아 전신에 멍이 든 데다 몸에서 계속 열을 빼앗겨서 저체온증으로 현기증까지 왔다.

아무리 수련이 좋아도 죽을 때까지 하고 싶진 않다. 세라스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옆에 널려 있는 모포를 끌어내려 어깨를 감쌌다.

온몸이 아프고 손발에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후욱후욱 숨을 몰아쉬며 몸을 웅크렸다.

에디는 그 애처로운 모습을 보고 탄성을 흘렸다.

“아, 까먹고 있었다. 미안.”

“……!!”

저딴 헛소리꾼의 말을 듣고 죽기 직전까지 폭포를 맞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치솟는 것 같았다.

세라스는 육성으로 터져 나오려 하는 욕을 겨우 억눌러 참았다.

추운 것도 그렇지만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어서 배고파 죽겠다. 그녀는 불퉁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 먹을 거 없어요?”

“먹을 거? 자.”

에디는 기다렸다는 듯이 상자 하나를 던져 주었다. 손에 쥐자마자 금속의 재질이 느껴진다.

“……?”

일반적으로 금속질의 네모난 상자에 음식을 넣어 두진 않는다.

세라스는 에디가 던진 물건을 확인했다. 표면에 아름다운 문양이 그려져 있고 상자 내부에서 철컥거리는 기계음이 났다.

그것은 오라 큐브라 불리는 물건이었다.

아주 복잡한 구조로 잠금이 걸려 있는 상자.

평범한 방법으로는 열수 없다. 바늘만 한 구멍으로 형체화시킨 오라를 밀어 넣어 안쪽에 설계되어 있는 미로 같은 구조를 인식하고 그 속에서 해답을 끌어내야만 상자를 열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아이들이 오라 훈련 용도로 쓰는 퍼즐 장난감이었다.

에디가 담담한 투로 말했다.

“그걸 풀어. 안에 먹을 걸 넣어 놨으니까.”

“뭐가 들어 있는데요?”

“에너지 바.”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은데…… “

세라스는 투덜거리며 실망한 기색으로 오라 큐브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건이 웃었다.

“배가 차면 감각이 둔해져. 지금은 추워서 그렇겠지만 조금 쉬면 감각이 예민해졌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실력을 늘리고 싶다면 어느 정도 공복을 유지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아.”

“음…….”

차분한 설명에 조금 마음이 놓인다.

세라스는 한숨을 쉬며 큐브를 붙잡았다. 텅 비어 버린 배가 밥을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그래, 국물이든 뭐든 일단은 뭐라도 먹고 보자.

그녀는 오라를 찔러 넣어 퍼즐을 풀기 시작했다.

이 정도 장난감 퍼즐이라면 어렸을 때 수백 번도 더 풀어 보지 않았던가.

그녀는 5분 내에 에너지 바가 입속으로 들어오게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

그리고 30분 뒤.

“이, 이거 왜 이렇게 어려워?”

세라스는 아직도 자물쇠를 풀지 못했다.

오라를 넣어서 계속 살펴봤지만 아무리 봐도 보통 구조가 아니었다. 어렸을 때 풀던 것이 500조각짜리 그림퍼즐이라면, 지금 만지고 있는 건 2000조각은 되는 것 같았다.

“이거 난이도 몇이에요?”

“1등급.”

“대회에서나 쓰는 거잖아요!”

훈련용으로 쓰는 큐브 등급이 3등급이다. 그 이상으로 정밀한 오라 제어는 실전에 큰 효용이 없다고 판단되어 그런 기준이 설정된 것이다.

어려움이라는 벽에 부딪쳐 고통받는 걸 즐기는 변태들이나 가지고 놀 법한 퍼즐을 만지고 있자니 머리가 다 아파 왔다.

한 시간쯤 상자를 들고 낑낑거리던 세라스는 지쳐서 나가떨어졌다.

춥고, 배고프고, 졸리다.

그녀는 나른한 눈으로 탁자에 앉아서 회의를 이어 가던 에디와 김건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 좋게 떠들고 있더니, 지금은 각자 앉아 홀로그램을 조작하며 뭔가를 하고 있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아까부터 뭐 하는 거야?”

세라스의 시선이 김건을 향했다. 김건은 홀로그램에 심취해서 세라스를 바라보지도 않고 말했다.

“기술 공유. 일단 내 기술을 먼저 교수님한테 알려 드리려고 했는데 사상이 너무 달라서 말이 잘 안 통하네.”

“다른 게 아니라 내가 맞다니까.”

에디가 투덜거린다. 세라스가 질문을 이었다.

“전위인데, 기술을 공유하려면 직접 싸우거나 해 봐야 하는 거 아니야?”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 봐야 아는 건 아니니까.”

에디는 껄껄 웃었다.

“왜 그래, 아마추어처럼.”

그 말을 듣자니 몽롱하던 정신이 확 깨어났다.

염병할.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세라스는 이를 악물면서 오라 큐브를 붙잡았다.

한 시간 동안 들인 공이 있어서 큐브 안쪽의 구조는 얼추 다 파악했지만, 문제는 오라 제어였다.

그녀가 생성하는 오라는 너무 뭉툭하고 무거워서 퍼즐의 구멍을 알맞게 채울 수가 없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으면 될 것 같은데……!’

뭐가 그리 좋은지, 에디는 낄낄거리며 세라스를 쳐다보았다.

“그거 못 풀면 밥은 없어. 굶어야 돼.”

계속 된 도발에 열이 오른 세라스가 매서운 눈으로 에디를 째려봤다.

“이거 진짜 풀리긴 하는 거예요?”

“풀려. 나도 안 되는 걸 되게 하라고까진 안 해.”

“그럼 풀어 봐요!”

세라스가 오라 큐브를 던졌다.

에디는 웃으면서 큐브를 받았다.

양손으로 그것을 붙잡고 신경을 집중한다.

5초쯤 지났을까, 딸깍- 소리를 내며 상자가 열렸다.

“자, 풀리지?”

그 안에 있는 에너지 바를 보여 준 에디는 도로 그것을 닫고 김건에게로 바통을 넘겼다. 김건은 쓴웃음을 지으며 큐브를 쥐었다.

잡자마자 큐브가 풀렸다.

“아?”

당황한 세라스가 바보 같은 소리를 냈다.

혹시 못 봤나 싶어서 김건은 큐브의 문을 닫았다가 바로 다시 여는 걸 보여 준 다음 그것을 세라스에게 돌려주었다.

“됐지?”

세라스는 얼떨떨해져서 오라 큐브와 김건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번에는 에디도 당황했다.

“야, 그거 푸는 게 걸린 시간이 세계 기록으로쳐도 3초야! 이 자식, 제어력이 좋다는 건 알았지만…… 진짜 너 미친 거 아니냐?”

“미친 게 아니라 이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요. 교수님도 제 입장이 되어 보면 이해할걸요.”

세라스는 물끄러미 큐브를 내려다보았다.

너무 대단한 걸 봐서인지 오히려 할 맛이 안 났다.

그런 그녀를 향해 김건이 말했다.

“너도 할 수 있어. 오라가 너무 많아서 제어가 힘든 거야. 배가 고플 때 신경이 예민해지듯이, 마력이 빠질 수록 제어력도 올라가. 넌 너무 마력량이 많으니까, 일단 마력을 비운 다음에 다시 해 봐.”

에디가 타박을 주었다.

“그렇게 자꾸 알려 주면 실력이 안 늘어. 스스로 생각할 줄을 알아야지.”

“한 마디면 되는데 뭐 하러 시간을 낭비합니까.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요.”

그러면서 다시 둘은 홀로그램 자료에 정신을 쏟았다.

세라스는 멀뚱히 그것을 보고 있다가 큐브를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열린 문 밖에 황금빛이 비치더니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흔들리고 와르르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시끄러워 죽겠네.”

“기운 넘쳐서 좋은데요. 뭐.”

에디는 김건을 노려보았다.

“이 자식, 꼬맹이 주제에 하는 말은 아주 늙은이야! 싸움 실력도 능구렁이 같은 게, 어렸을 때 대체 뭘 하고 돌아다닌 거냐?”

“신경 끄시죠. 천성이 이래 먹어서 그런 거니까.”

잠시 후, 세라스가 들어왔다.

마력과 체력을 얼마나 쏟아 냈는지, 땀에 흠뻑 젖은 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오라 큐브를 집었다.

거친 숨을 다잡으며 정신을 집중한다.

그리고 20초쯤 지났을까.

딸깍, 소리가 울리며 큐브가 열렸다.

“풀었다!”

세라스는 방방 뛰며 좋아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계속된 폭포 수행, 그리고 공복에서의 집중력을 기르기 위한 퍼즐 풀이로 너무 많은 체력과 심력을 소모했다.

무릎 아래가 잘려 날아간 듯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풀썩 주저앉아 오징어마냥 흐느적거리며 큐브 안의 에너지 바를 집었다.

가까스로 손끝에 힘을 담아 포장지를 벗겨 냈지만 이제는 식욕이 없었다. 앉아만 있어도 너무 힘드니까 뭘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를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살려면 먹어야지.

반으로 조각 낸 에너지 바를 입안에 털어 넣곤 억지로 그것을 씹어 삼켰다.

그리고 남은 반쪽을 밀어 넣으려 할 때였다.

“천천히 먹어라.”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에디가 따뜻한 차를 건넸다.

“…….”

의아해하면서도 그것을 건네받은 세라스는 고맙습니다, 말하며 퍽퍽한 에너지 바를 차와 함께 목구멍으로 넘겼다.

뜨끈한 찻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자 몸에 조금 활기가 돌았다.

조금 여유를 찾은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을 깜빡였다.

그런 그녀의 머리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조금 정신이 든 것 같군. 그럼 나와라. 한판 붙자.”

에디가 주먹을 우두둑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세라스는 눈을 휘둥그레 치켜떴다.

“뭐라고요?? 저 지금 완전 쓰러기지 직전인데!”

“그럴 때 하는 대련이 제일 실전에 가까운 법이야. 엄살 부리지 말고 얼른 나와.”

한마디로 불만을 일축한 에디가 성큼성큼 통나무집을 빠져나갔다. 세라스는 살려 달라는 듯이 김건을 쳐다보았지만 김건은 그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에디에게 한 수 가르쳐달라고 한 건 세라스 자신이다.

그녀는 울상이 되었지만 한 번 한 말을 번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세라스는 끄으윽 죽는 소리를 내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런 그녀가 대포알처럼 날아가 산맥의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데에는 채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 * *

그렇게 에디 슐츠와 함께 하는 세라스의 지옥 훈련이 시작되었다.

발할라와 곤륜산을 오가며 에디와의 연구회를 계속하는 김건과 달리 세라스는 에디의 거처에서 머물렀다.

에디는 혹독하게 세라스를 몰아붙였다.

계속해서 방법은 바뀌어 갔지만 그가 세라스에게 시키는 것은 결국 하나였다.

신체적, 그리고 정신적 한계를 느끼게 하는 것.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는 먹을 것도 주지 않았다. 세라스는 기어 다니는 벌레와 뱀을 잡아먹었다.

물을 마시는 걸 제한했다. 세라스는 목이 탄다는 게 어떤 건지 깨달았다.

잠자리가 있는 거처에서도 쫓겨났다. 세라스는 나뭇잎과 수풀을 이불 삼아 잠들었다.

처음에는 세라스도 저항했다.

하지만 에디는 한 마디로 모든 불만을 잠재웠다.

“그러니까 네가 약해 빠진 거야. 오빠라는 놈이 그렇게 쉽게 간 것도 이해가 가는군.”

그 말을 들은 순간, 세라스의 눈에는 독기가 담겼다.

싱그럽고 발랄하던 소녀가 말을 잊어 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주일 뒤.

발키리로서 가벼운 임무 몇 개를 마치고 돌아온 김건이 발견한 것은 한 마리의 귀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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