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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57화 (57/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57화

클라우 베리스.

새로이 발키리가 되었지만 그녀는 한서리의 파티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녀의 특기는 정신 지배를 응용한 통한 버프와 디버프로, 버프 마법을 장기로 하는 한서리와는 완전히 같은 포지션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따로 파티를 꾸렸다.

새로이 입학한 클라우는 한서리의 파티와 마찬가지로 C클래스의 생도 신분을 받았고, 그녀의 실력에 맞게 전투력만으로는 이미 어지간한 에인헤야르 이상이라는 셉텐트리온 멤버를 파티로 영입했다.

C클래스에 생겨난 두 개의 발키리 파티.

그리고 각 파티의 리더인 한서리와 클라우 베리스는 상당히 격렬한 신경전을 이어 갔다.

두 파티 사이에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토너먼트에서 화신의 등장으로 많은 인재를 잃고 침체기에 빠져든 발할라 아카데미는 그것을 상당히 좋은 신호로 받아들였다.

클라우는 아주 자연스럽게 아카데미에 녹아들었다.

그날도 두 파티는 경합을 벌였다.

실습 겸 훈련으로 같은 날 거의 동시에 발생한 게이트를 제압하기 위해 출동했는데, 클라우 베리스의 파티가 더 빠른 공략 시간 기록을 얻었다.

강의실로 돌아온 세라스는 오리처럼 입술을 내밀었다.

그녀는 불만스럽게 파티원들을 돌아보았다.

이길 수 있는 싸움이었다.

그녀는 한서리와 김건의 능력을 절대적으로 믿었다.

한계치를 뛰어넘게 해 주는 한서리의 버프와 강력한 골렘, 그리고 상당한 수준의 화력.

거기에 말할 필요도 없는 초고수인 김건의 실력이라면 셉텐트리온 수준의 파티로는 상대도 되지 않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생도 간의 경쟁에 별 흥미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한서리는 골렘에게 싸움을 맡겨 두고 일을 한답시고 노트북이나 만지작거렸고, 김건은 되도록이면 힘을 보여 주고 싶지 않다며 설렁설렁 몬스터를 때려잡았다.

그 결과가 이거다.

세라스는 분함을 억누르며 흘끗 시선을 돌려 강의실의 반대편에 몰려 있는 클라우의 파티를 바라보았다.

이쪽을 향해 시건방진 미소를 짓고 있는 생도가 보였다. 셉텐트리온의 일원이랍시고 발키리인 세라스와 친구들을 항상 견제하던 선배다.

클라우 베리스를 외한 나머지 두 사람의 셉텐트리온도 비웃는 기색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성질 같아선 당장 달려가서 모두들 한 대씩 쥐어박고 싶다.

“끄응…….”

세라스는 앓는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돌렸다. 김건은 쓴웃음을 지었다.

세라스의 속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아내의 계획은 이미 새로운 단계에 들어가 있었다.

발키리라는 출세를 향한 기차에 올라탄 순간 아카데미 내에서의 성적은 크게 의미를 갖지 못한다.

발키리는 이미 현역. 그리고 현역에게 중요한 건 학교에서의 성적이 아니라 실적이다.

이미 물밑에서는 한서리가 새로 꾸민 헌터팀이 자료를 수집하고, 파티가 활약할 만한 조건을 물색하고 있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별생각 없이 세라스를 따라 클라우의 파티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바로,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클라우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빨간 눈이 장난스럽게 찡긋거렸다. 다리를 꼬고 있던 클라우가 살짝 치맛자락을 만졌다. 새하얀 허벅지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진다.

김건을 질색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또 시작이다.

첫 만남 이래로 쭉.

클라우는 계속해서 김건을 향해 추파를 던져 왔다.

장난의 급수는 한서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내가 남편에게 하는 장난과 외간 여자가 유부남에게 하는 장난을 동일 선상에서 놓고 볼 수는 없다.

지금 아카데미 내에서 한서리와 김건이 연인 관계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클라우는 그것을 앎에도 김건을 향한 관심을 거두지 않았다.

미친 여자는 무시하는 게 상책.

그간의 일로 클라우가 정상적인 도덕 관념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김건은 이미 이해를 포기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방금 본 것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수업이 끝났다.

한서리 파티는 나란히 강의실 건물을 빠져나왔다.

문득, 한서리가 입을 열었다.

“먼저 돌아가 있어. 잠깐 볼일이 있으니까.”

김건은 차갑게 굳은 한서리의 표정을 보고 불온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그는 방금 전에 클라우가 한 짓을 아내가 봤다는 걸 깨달았다.

별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

“잠ㄲ…….”

그런 그가 입술을 떼며 손을 들어 올리는 찰나였다.

우와하하- 웃으면서 갑자기 세라스가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래, 우리는 먼저 갈게!”

그러면서 김건을 질질 끌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김건은 무슨 짓이냐는 듯 세라스를 쳐다보았다. 세라스는 입술만 달싹여서 말했다.

‘내버려 둬. 이래 가지고는 어차피 터질 수밖에 없어.’

이번에는 김건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인생을 홀로 살아온 김건과 다르게 세라스는 항상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왔다. 나이가 어려도 인간관계에 대한 이해도는 세라스가 더 높을 것이다.

내키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김건은 순순히 그 점을 인정하고 세라스와 함께 기숙사로 돌아갔다.

그래도 꼴에 친구라고 이럴 때는 도움이 되네.

한서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사라져 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모든 것을 공유한 사이라 해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는 법이다.

그녀는 간만에 세라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잠시 기다리자 클라우의 파티원들이 밖으로 나왔다.

전위 둘, 후위 둘로 이루어진 균형 잡힌 파티.

후위인 여자아이는 클라우의 옆에 착 달라붙어 계속해서 조잘거리고 있었고, 남자들은 마치 종처럼 그들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한서리가 앞에 서자 남자들이 나섰다. 그들은 마치 공주를 지키는 기사마냥 클라우를 지켰다.

“비켜.”

한서리를 본 클라우의 말에 남자들은 곱게 자리에서 물러났다. 한서리는 냉랭한 모습으로 그 모습을 관찰했다.

아무리 발키리라 해도 남자들은 셉텐트리온이라는 호칭에, 기수로 보나 나이로 보나 선배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애초에 서로 만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사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사람을 종처럼 부리고 있다니.

한서리는 정신계열 마법이 영향을 끼쳤다고 확신했다.

잘못하면 발할라의 특무대에 걸릴 수도 있으니 세뇌 마법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무나도 위험한 능력이다. 특감대로 감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봉인을 시켜야 했다.

클라우는 나른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지?”

낮게 깔린 차분한 목소리.

그것을 김건이 들었다면 놀랐을 것이다. 절대로 궤변을 늘어놓으며 시답잖은 장난이나 치는 여자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속을 꿰뚫어 보고 있던 한서리는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이야기 좀 하지. 둘이서.”

“너 따위랑 할 말은 없는데.”

너 따위.

회귀한 뒤로, 아니 회귀하기 전에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말이다.

자존심이 꿈틀거렸지만 한서리는 흥분하지 않았다. 적 앞에서 흥분하는 것은 자제력이 없는 멍청이뿐이다.

한서리는 내키지 않지만 미끼를 던졌다.

“김건에 대한 이야기야.”

“아, 그 사람에 대한 거라면 관심이 있지.”

“…….”

한서리는 보이지 않게 이를 깨물었다. 그녀 스스로가 이 상황을 유도했는데에도 울화가 치밀었다.

침착하자. 침착해.

아무리 생각해 봐도 회귀한 이후로 정신력이 더 약해졌다.

어리광을 받아 주는 남편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평온한 일상이 녹을 슬게 한 것인지, 차갑고 예리하게 빛내던 마음의 칼날이 닳아 없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우는소리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한서리는 보이지 않는 숫돌 위에서 칼날을 갈아 대며 클라우를 노려보았다.

“돌아가.”

클라우가 손짓하자 파티원들은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며 물러났다. 그리고 여유작작한 미소를 띠며 한서리를 바라보았다.

“그래, 어디서 이야기할까? 카페?”

한서리는 고개를 저었다.

“너랑 마주 앉아서 찻잔 따윌 홀짝이고 싶지 않아.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를 주고 싶지도 않고.”

남들 앞에서 전쟁을 벌여 봐야 애꿎은 사람들만 도탄에 맞을 뿐이다.

강의실이 있는 건물이 코앞이다. 한서리는 열려 있는 문을 엄지로 가리키며 선전포고를 하듯 말했다.

“옥상이면 충분해.”

* * *

옥상 위에 두 여자가 섰다.

바람이 불며 파란 머리칼과 검은 머리칼이 휘날렸다. 한서리는 옆머리를 걷어 내며 클라우를 노려보았다.

“너, 뭐야?”

클라우는 씨익 웃었다.

“클라우 베리스.”

“이름 따위를 묻는 게 아니야.”

하는 꼴을 보아하니 빙 둘러 말해 봐야 실실 웃기나 할 것이 뻔했다.

그리고 한서리 역시 말 돌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네가 뭔데 내 남…… 자 친구한테 꼬리를 쳐?”

남편이 혼자 있을 때 몇 번이나 달라붙어 왔다는 걸 들었다.

아카데미 내에서도 같잖은 유혹을 던지는 걸 몇 번이나 목격했다.

한서리는 파랗게 불타오르는 눈으로 클라우를 노려보았다.

클라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왜, 그러면 안 되나?”

하.

저도 모르게 실없는 한숨이 토해졌다.

클라우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일반론 따윈 듣지 않겠다고.

한서리는 짜증을 담아 말했다.

“웃기네. 네가 그렇게 특별해? 왜, 사람 마음을 가지고 놀다 보니까 사회가 정한 약속 따윈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처럼 보이나? 너는 그 약속에서 벗어난 것 같아?”

사회라는 건 그리 호락호락한 물건이 아니다.

인류는 멸망으로 치달아 가는 와중에도 공동체를 갖고 규칙을 지키며 살아갔다. 그것이 스스로에게 이득이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말을 하던 한서리는 곧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것이 철없을 나이의 여자애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재능이 있고 성숙하더라도 경험이라는 건 무시할 수 없다.

이제 막 아카데미에 발을 들이디민, 한창 세상 무서울 줄 모를 시기.

회귀를 거친 자신과는 다르다. 이런 천둥벌거숭이한테 말을 해 봐야 소용없…….

그녀의 생각은 클라우의 말 때문에 멈췄다.

“그걸 모르는 게 아니야. 그저 그걸 무시할 정도로 절박할 뿐이지. 굶주려 자식을 잡아먹는 부모가 된 것처럼 말이야.”

그 말에는 각오가 담겨 있었다.

이 여자, 진심으로 남편을 빼앗을 생각이다.

나이 따위는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날아갔다.

차갑게 마음이 가라앉는다. 한서리는 냉랭한 시선으로 클라우를 쏘아보았다.

“그건 네 사정이지.”

“그래.”

클라우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각오를 다진 인간에게 경고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서리의 눈에 독기가 담겼다.

“네가 난리를 쳐도 소용없어. 그이가 눈 하나 깜빡할 것 같아? 너 같은 건 발톱에 낀 때만큼도 생각하지 않을 걸.”

치졸한 도발이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상황을 이렇게 만든 것은 클라우였다.

일반론도, 위협도 먹히지 않으니 생생한 감정을 날것 그대로 들이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에는 효과가 있었다. 여유롭던 미소가 깨졌다. 클라우는 새빨간 눈을 태워 올리며 한서리를 노려보았다.

“웃기지 마. 네가 잘나서 그런 줄 알아? 넌 그냥 운 좋게 나보다 먼저 그 사람을 만났을 뿐이야.”

반면, 한서리는 웃었다.

보는 사람의 가슴을 철렁이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미소였다.

“그래, 운이 좋아서 내가 먼저 자리를 잡았지. 그러니까 꺼져. 옆에서 질척대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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