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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58화 (58/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58화

클라우는 짐승 같은 신음 소리를 내며 이를 갈았다.

“넌 네가 얼마나 과분한 것을 받고 있는지 몰라. 그딴 계집한테 그런 보물이 붙잡혀 있는 걸 용서할 수가 없어.”

무시무시할 정도로 순수한 정념이 담긴 눈망울이 한서리를 향했다.

“설령 그 사람한테 미움을 받더라도 괜찮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옆에 둬야겠어.”

이미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괴물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에게서 남편을 빼앗아 갈 생각이었다.

한서리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미친년.”

우위가 역전되었다.

유리한 고지를 점한 한서리는 비교적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싸울 수밖에 없다.

이 정도로 일그러진 욕망은 사회와 법률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 개인과 개인이 뒤얽히는 진흙탕 싸움을 해야 할 것이다.

한서리는 한숨을 쉬었다.

적은 오로지 마계의 존재이기만을 바랐지만, 정말 사람 일이라는 건 모를 일…….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존재하지 않는 도덕 관념, 기이할 정도로 강한 정념, 그리고 기존 상식을 웃도는 능력.

클라우 베리스는 과연, 인간인가?

파란 여자가 검은 여자를 탐색했다.

한서리는 이미 클라우의 신변 조사를 마쳤다.

조사 결과, 클라우의 신원은 확실했다.

꽤 기구한 인생이긴 하지만 갑자기 허공에서 뚝 하고 떨어진 인물은 아니다. 프리드리히 하이데거 교수와의 접점도 분명한 편이었다.

밝혀지지 않은 것은 단 하나.

도대체 왜, 그토록 김건이라는 사람을 원하는가.

어떤 요인이 이 여자를 맹목적으로 만들었는가.

그리고 의문.

왜 이 정도의 인물이 이전의 생에서는 표면에 드러나지 않았는가.

무언가, 머릿속에 흩어져 있는 퍼즐의 한 귀퉁이가 맞아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 모든 조각이 모인 것은 아니다.

무언가의 꼬리를 붙잡은 한서리가 생각에 빠지려는 찰나,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한서리는 통화를 끊기 위해 휴대기를 잡았다.

하지만 화면에 표기되고 있는 번호가 그녀의 눈에 띄었다.

긴급 상황에서만 사용하기로 한 번호.

한서리는 클라우를 흘겨 보며 전화를 받았다.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뭐야?”

다급하게 설명하는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흘러나왔다. 이내, 상황을 이해한 한서리의 표정이 굳었다.

경고가 울려 퍼졌다.

발할라 섬 전체가 경고음으로 울었다.

불길함을 알리는 소리가 뾰족하게 하늘로 솟구쳤다.

그것은, 타입 오메가로 판정된 존재가 등장했을 때 울리는 소리였다.

* * *

“차원 균열이 나타났다.”

단상 앞에 선 사람은 그렇게 말했다.

행사가 있을 때 외에는 잘 쓰이지 않는 대강당.

그 커다란 홀에 한서리, 클라우를 위시한 발키리들이 앉아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쟁쟁한 에인헤야르들이 가득했다.

발할라의 주력.

몇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의 강당에 이 세계 최강의 전력이 모여 있었다.

단상 앞에 서 있는 것은 젊은 여성이었다.

스물 중반을 넘지 않는 외견. 하지만 사실은 마흔을 넘은 중년이다.

발할라의 열두 별 중 한 명인 노제 프레데리카.

생물계 마법의 극의에 달한 마법사이며, 사이먼 베이커의 오른팔 격인 인물.

티리온 프레이저와 함께 교수진 중에 제일 활발한 활동을 이어 가는 사람이기도 했다.

사이먼은 이미 각국 정상들과의 회담을 위해 발할라를 떠났다. 그렇기에 그의 빈자리를 노제 프레데리카가 채우고 있는 것이다.

노제는 단상 뒤에 띄워져 있는 홀로그램을 조작하며 설명을 이었다.

“상황이 발생한 건 금일 15시 34분이다. 절대방위선의 슬레이프니르의 마력 탐지기가 이상을 감지, 급격한 마력 폭풍을 관측하고 위성으로 확인한 결과 차원 균열의 전조를 발견했다.”

날카로운 인상의 교수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말을 이었다.

“찢어지기 시작한 차원의 틈새로 티아마트의 권속들이 나타났다. 상당히 대규모의 침공이라 지구 방위군이 바로 핵미사일을 발사했다.”

마력이라는 힘은 이미 인류의 삶에 깊게 녹아들었다.

아직 마법의 사용이 허가된 산업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중 하나인 의료 사업만 하더라도 이미 게이트 발생 이전의 상황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마법으로 없어진 팔과 다리를 자라나게 하고, 간단한 외상은 순식간에 아물게 한다.

‘즉사가 아닌 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돌 정도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자원은 모두 게이트 너머에서만 나온다.

그래서 인류는 결정했다.

지속적인 자원수급을 위해, 몇몇 게이트는 그냥 열어 두는 것으로 하자고.

그렇게 되어 만들어진 것이 세계 곳곳에 산재해 있는 마계화 지역이었다.

그리고 그 마계화 지역에서는 종종 장기화된 게이트의 크기가 커져 마계로부터의 대규모 침공이 몰아닥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 사용하는 것이 핵미사일이었다.

몬스터가 강함을 뽐낼 수 있는 것은 중소 규모의 화기를 대상으로 할 때이다.

핵무기의 초월적인 화력 앞에서는 그들 역시 인류와 평등하게 한 줌 재로 사라져 갈 뿐이다.

그리고 그 막대한 열 폭풍은 게이트를 타고 마계의 안쪽까지 뻗어 나가 게이트를 유지하고 있는 대상까지 파괴해 버린다.

마계로부터 열린 문을 통해 지속적으로 자원을 수급하다 일이 커질 것 같으면 핵무기로 열린 문을 통째로 지워 버린 뒤, 다음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린다.

그것이 지금까지 행해 왔던 인류의 패턴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변수가 발생했다.”

노제는 그렇게 말하면서 화면에 영상을 하나 띄웠다.

마계화된 땅, 그 하늘에 검은 균열이 새겨져 있고 곳으로부터 크립티드의 거대한 나무줄기가 뻗어 나와 있었다.

티아마트의 상징인 핏줄기가 폭포처럼 쏟아지고, 그 폭포와 나무줄기를 타고 빨간 피부의 괴물들이 개미떼처럼 기어 나온다.

잠시 후, 그런 그들의 머리 위로 미사일이 꽂혔다.

뇌관이 작동. 빛이 번득이고, 발화된 핵무기의 열파가 모든 것을 앗아 가려는 찰나.

영상 속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찢어진 공간의 틈새로 새빨간 기운이 흘러나왔다.

원형으로 퍼져 나가던 폭발이 지우개로 지우듯 싸아악 사라져 버렸다.

동영상이 다시 제대로 재생되기 시작했다.

핵무기가 꽂힌 순간, 빛이 번뜩였다가, 사라졌다.

그걸로 끝이었다.

오로지 전투밖에 모르는 티아마트의 권속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미친 듯이 사방을 향해 달려 나갔다.

노제가 영상의 재생을 멈췄다.

그녀는 한마디로 영상속의 상황을 설명했다.

“차원 균열 반대편에서 강대한 투기가 발현. 폭발을 지워 버렸다.”

투기는 벨제불의 마기, 기린의 정기 등, 각 마신을 대표하는 특수 마력 중 제일 이질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까지 밝혀진 것에 따르면 일종의 현실 조작 능력으로, 의념이 담기지 않은 물리 현상을 지워 버린다고 한다.

간단히 말해 의념이 담기지 않은 공격에 대해 무적이 되는 특수 능력이다.

그럼 의념은 정확히 무엇을 정의해 말하는 것인가? 라고 하면 할 말이 많아지는 미지의 힘이기도 했다.

투기가 활성화된 곳에서는 미사일을 발사해도 고블린 한 마리 죽일 수 없다. 투기의 영향을 받은 미사일이 소멸해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칼 한 자루 꼬나쥔 사람이라면 고블린을 죽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휘두르는 칼에는 의념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투기가 가진 그 특성은 현대의 영웅 시스템을 정립시킨 제일 큰 원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반칙 같은 힘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많은 물리 현상을 소멸시킬수록 투기는 착실히 소모되고, 일시에 소멸시킬 수 있는 양에도 한계가 있다.

투기가 활성화된 곳이라도 계속해서 화력을 퍼부으면 결국은 초토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폭발의 위력을 소멸시켰다.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상황을 깨달은 에인헤야르들이 침음을 삼켰다.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노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티아마트가 이곳을 향해 머리를 들이밀고 있다.”

화면이 바뀌었다. 통계와 수치를 도식화한 자료가 떠오르며 노제가 설명을 이었다.

“에너지양의 관측 결과, 화신보다도 높은 수치가 발견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본체는 아니야. 본체가 나타났다면 지구가 통째로 소멸했을지도 모르지. 지금 대응 위원회에서는 현재 마신의 상태를 ‘반신’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기로 했다.”

다시 화면이 돌아갔다.

찢어질 듯이 팽팽히 당겨져 있지만, 완전히 찢어지지는 않고 있는 차원 균열의 공간을 가리켰다.

“억지력이 작용하고 있어서 당장 튀어나오고 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쏟아져 나오는 마력과 괴물들 때문에 영역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어. 이렇게 세력권이 넓어지다 보면 억지력도 약해져서 결국 차원을 뚫고 나올 거다. 그리고 여기서 희소식이 하나.”

노제가 안경을 고쳐 썼다. 화면이 바뀌며 마계화된 지역의 지도가 펼쳐졌다.

가운데에 빨간 지역이 있고 그것이 확산 중이라는 것을 표기하듯 화살표가 바깥을 향해 있었다.

티아마트의 세력권을 나타내는 도식이었다.

그 빨간 지역 위에 몇몇 노란색 원형이 박혀 있었는데, 노제는 그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계화된 지역에 숨어 들어와 조용히 살고 있던 기린의 권속들과 티아마트의 권속이 충돌했다. 엡실론급으로 판정된 몬스터 수 마리가 티아마트의 세력 확장을 저지하고 있지. 개중에는 드래곤으로 추정되는 개체도 확인되었으니 각 포인트에는 접근하지 않도록 주의를 바란다.”

드래곤이라는 말에 좌중이 웅성거렸다.

급수로는 엡실론이지만 신격을 지니지 못했기에 그렇게 판정했을 뿐, 단순 전투력으로만 따지면 화신과도 비견할 수 있는 것이 드래곤이라는 몬스터다.

이곳의 에인헤야르들은 마계화된 지역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사람들이다.

평소에 별생각 없이 오가던 장소에 핵폭탄급 괴물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에 그들은 오싹한 듯 어깨를 떨었다.

잠시 후, 브리핑이 끝났다. 노제는 거세게 단상을 치며 마지막 말을 이었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다. 티아마트의 세력권을 축소시키고, 균열에 마력 방벽을 쳐서 티아마트의 힘을 억누른 뒤, 억지력으로 놈을 추방시킨다.”

그녀는 빛나는 눈으로 에인헤야르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모두 다 알겠지만 이건 우리 발할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마계로부터 세상을 지키는 발할라의 용사들.

상황이 어찌 되든 결과는 이 안의 인물들이 만들어 내게 될 것이다.

“만약, 작전이 실패하고 화신보다 상위의 능력을 지닌 반신이 이 땅에 강림하게 된다면.”

역전의 전사인 그녀, 사이먼과 함께 제일 오래 활동한 영웅 중 하나. 그런 노제 프레데리카가 침을 삼켰다.

“인류는…… 멸망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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