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5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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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은 지체 없이 브리핑 후 6시간 뒤에 시작되었다.
전 세계 규모의 대작전이라 하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대응.
하지만 그것은 그 정도로 지금의 사안이 급박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시간을 줄수록 티아마트의 영역은 넓어지고 그가 뿌리는 투기의 결계 역시 강해진다. 이번에 시간은 인류의 편이 아니었다.
전 세계의 영웅이 한곳에 모였다. 최소 인원만을 각 지역에 배치하고 간만에 게이트 방어의 의무가 영웅이 아니라 군대에게 지워졌다.
발할라에서는 에인헤야르뿐만이 아니라 C클래스 이상의 생도까지 모두 차출되었다.
생도라 한들 이미 대부분이 현역 영웅들 이상의 힘을 지닌 그들이다. 그런 전력을 놀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김건은 위를 바라보았다.
검은 밤하늘은 불꽃놀이가 한창이었다.
초음속의 전투기가 쐐애애액 공기를 찢고, 미사일이 공중에서 폭발해 하얗게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투기의 물리력 소멸 능력은 후위에 선 마법사의 공격도 경감시킨다.
일반적으로 투지가 강한 전위나 그에 가까운 정신 상태를 지닌 사람일수록 투기의 효과를 상쇄하는 의념을 더 강하게 발휘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폭격을 가해 조금이라도 투기의 결계를 소모시키는 것이다.
고개를 내려 저 먼 지평선을 쳐다본다.
끝없이 펼쳐지는 황량한 대지. 그 사이로 크립티드라 불리는 기괴한 마계의 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고, 폭격에 반응한 새빨간 피부의 괴물들이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 있었다.
불꽃으로 가득한 하늘과 지평선을 가득 메우며 몰려오는 괴물의 무리.
그것을 보면 저절로 세상의 멸망을 떠올리게 된다.
김건은 저 모습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봐 왔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훨씬 미래의 일이었다.
‘빠르다.’
진행이 너무 빠르다.
그는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는 한서리를 바라보았다.
총명한 아내이지만 그런 그녀라도 벌써부터 이 정도의 사태가 터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앞으로 근 10년간 인류는 꽤 발전할 예정이었다.
세대가 지날수록 인류의 평균 마력적성치는 오르고 있고, 영웅 시스템의 한계를 느낀 사람들이 영웅의 군대화를 위해 계속해서 경량화되고 보편화된 전투원 교육 지침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고작 10년일 뿐이지만 순수한 전투력만 놓고 보았을 때, 미래 인류와 현 인류의 차이는 배수로 따질 만큼 차이가 났다.
그것을 뒤집을 변수가 있다고 하면 단둘.
라그나로크를 경험하지 않은 발할라가 힘을 온존하고 있다는 것과 미래에서 돌아온 한서리와 김건의 존재였다.
그런 김건의 생각을 읽은 듯, 한서리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심각한 상황이지만 꼭 나쁘게만 볼 것도 아니야. 티아마트는 현신을 위해 엄청난 억지력을 감당하고 있어. 꽤 소모가 크겠지.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되면 세 마신의 움직임이 전부 둔화될 거야. 어쩌면 우리 세대에서의 일은 끝날지도 몰라.”
“그러길 바라야지.”
김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작전은 얼마 전에 아카데미의 훈련 주간에 있었던 티아마트의 지역 공략과 개요가 같았다. 넓게 퍼트린 포위망을 좁혀 가며 영역 자체를 점령해 나가는 것.
티아마트의 영역을 최대한 축소시킨 뒤, 억지력이 최고치에 달했을 때 모든 병력이 밀집하여 차원 균열을 틀어막는 것이 작전의 요지였다.
뒤를 돌아보자 이번 작전을 함께할 동료들이 있었다.
“으아앙!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데! 난 연구자야! 전투 요원이 아니란 말이야!! 눈 나은지 얼마나 됐다고! 싸우기 싫어!”
“그렇게 싸우기 싫으면 발할라가 아니라 아예 다른 연구 대학 같은 데에 갔어야죠.”
“그건 안 돼! 발할라의 자료실이 제일 정보가 빠르고 양이 많단 말이야! 사냥으로 틈틈이 자금 충당도, 정보 수집도 할 수 있고!”
“챙길 거 다 챙기면서 뭘 그렇게 불만이 많아요! 자, 어리광 그만부리고 일어나요! 울음 뚝!”
“히이이잉!”
그곳에는 난동을 부리는 노바가 있었다.
이전의 마인 테러로 한번 크게 데이고 나서 꽤 겁을 집어먹은 모양이다. 그리고 세라스가 쯧쯧 혀를 차며 그녀를 달래고 있었다.
세라스는 꽤 이미지를 바꾼 모양새였다.
조금 길어진 단발을 틀어 올려 윗머리에 묶었다.
그전에는 전투에 나서도 단출한 복장에 검 한 자루만 들고 있었는데, 지금은 갑옷까지 걸치고 보조 무기로 짧은 검까지 허리에 꽂고 있었다.
이전의 그녀가 칼 좀 다룰 줄 아는 아가씨처럼 보였다면, 지금의 그녀는 완숙한 여전사처럼 보였다.
그의 시선을 눈치챈 세라스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징징거리는 노바를 가리키며 도와 달라는 눈빛을 보낸다.
한서리는 알아서 하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애 보기에 자신이 없는 김건은 얼른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투덜거리는 세라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건은 생각했다.
지금이야 노바가 저렇게 난리를 치지만 막상 싸움이 시작되면 잘 해낼 것이다. 그 정도 담력이 없다면 애초에 셉텐트리온이라는 칭호를 받지도 못한다.
노바 라디스티라는 화력형 후위의 추가로 한서리의 파티는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한서리가 개인적으로 합류시킨 헌터팀, ‘파마의 번견‘이 있었다.
총 인원 36명의 전투 전문 헌터들의 모임.
김건이 그들의 면면을 살피고 있는 동안 노바를 달래는 데에 성공한 세라스가 다가왔다.
“어후, 애기보다 더한 선배네.”
고개를 절절 흔들던 그녀는 김건의 시선을 따라가 보곤 말했다.
“저게 그 유명한 파마의 번견들인가보네.”
“유명해?”
“……그걸 몰라?”
이 남자는 어쩔 때보면 정말 투도(鬪道)를 닦는 신선이 아닐까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속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 정도로 관심이 없을 줄이야. 세라스는 혀를 쯧쯧 찼다.
“생긴 지는 얼마 안 됐지만…… 요즘 새로 생긴 헌터팀 중에서는 압도적인 실적을 보이고 있어. 저 중 대부분이 A급이라고 하던데. S급도 몇 명 끼어 있고.”
A급 이상의 실력을 지닌 헌터 삼십여 명이라. 그 정도면 그냥 군대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전력이다.
세라스가 말했다.
“저만한 인재들을 다 어디서 구했는지, 헌터 매니지먼트들도 서리의 선구안에 다들 놀라던데.”
두 사람의 시선을 눈치챈 파마의 번견의 부팀장, 알리시아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곤 경쾌한 움직임으로 한쪽에 쌓여 있는 보급 품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 가벼운 움직임을 본 세라스가 감탄을 토했다.
“저 사람이 알리시아 비칸테르인가 보네. 듣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것 같은데?”
“왜?”
세라스는 조용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알리시아의 전신을 뜯어보았다.
“몸놀림이 엄청 좋아. S급 상위는 되겠는데. 예전의 나보다 훨씬 강한 것 같아.”
“…….”
김건은 내심 감탄했다.
알리시아는 그다지 기척을 드러내는 스타일의 헌터는 아니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실력이 드러나 보이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해서 몸을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도 그 위장을 뚫고 실력을 알아보았다는 것은 세라스의 안목이 크게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상대방의 실력을 재 보는 능력은 곧 전사의 실력이기도 했다. 그동안 에디와 김건의 뒤를 따라다니며 계속해서 단련을 거듭하더니 금세 실력이 늘었다.
그러다 문득, 세라스는 의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서리는 대체 저런 인재들을 어디서 긁어모으는 걸까?”
파마의 번견은 실력에 비해 이름이 그리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김건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나도 찾아냈는데, 다른 사람들을 찾는 건 더 쉽겠지.”
“하긴. 그건 그러네.”
이 세계 유일의 특이성을 가진 김건의 능력을 꿰뚫어 볼 정도라고 한다면 확실히 납득할 수 있는 성과다.
세라스는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건은 입맛을 다셨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마도 미래에서 가지고 온 정보, 그리고 기린이 가진 통찰안의 능력을 이용했을 거라 생각한다.
……어쩌면 그게 아니라 다른 요인이 있을 수도 있다.
저들 중에는 S급 이상의 실력을 지닌 자도 제법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김건은 그 중에 아는 얼굴을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다.
아무리 김건과는 활동했던 시절이 달랐다고 해도 김건이 현역일 때는 은퇴한 헌터도 모조리 전장에 나서야 할 때였다.
S급 정도의 실력이라면 이름은 몰라도 작전을 하다 한두 번 정도는 마주쳤어야 정상이다.
그리고 신경 쓰이는 것이 또 하나.
파마의 번견 팀원 중에는 활을 무기로 하는 자들이 많았다.
활은 몇몇 전위들이 원거리전을 위해 간혹 사용하곤 하지만 그다지 흔한 무기는 아니었다.
완전한 원거리에서는 후위의 마법이 더 정밀하고 강력하며, 그 이하의 거리에서는 형상화한 오라를 던지거나 쏘아내는 것이 더 편하니까.
그들의 출신 성분이 꽤 궁금해지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김건은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한서리가 만든 팀이다.
개인적으로 배신당한 적은 있어도 업무적으로는 뒤통수를 맞아 본 적이 없는 것이 그의 아내였다.
그때였다.
시선 한편에 붉은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폭격으로 밝아져 있는 하늘 한가운데에 붉은 물체가 떠 있었다.
그것은 함선이었다.
전신에 타오르는 화염의 문양을 새긴 화려한 배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오라로 시력을 강화해 살펴보자 선미에 위풍당당하게 휘날리고 있는 빨간 머리가 보였다.
세라스 역시 그것을 발견했다.
“발렌타인 교수님이다.”
“뭐, 뭐야! 수르트를 꺼내 왔다고!?”
김건이 예상한 대로, 징징거리면서도 파악할건 다 파악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구석에 웅크려 있던 노바가 깜짝 놀라 밖으로 튀어나왔다.
저걸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김건은 감개무량한 기분으로 하늘에 떠 있는 새빨간 함선, 수르트를 바라보았다.
수르트가 진행을 멈췄다.
동시에 선미에 서 있던 스칼렛 발렌타인 교수가 손을 들어 올렸다.
커다랗게 퍼져 나온 마법진이 선체를 감쌌다.
배의 꼭대기에서 쏘아 낸 광선이 하늘을 뚫고 솟구쳤다.
그것은 신호였다.
폭격이 멈췄다. 폭풍 같은 소리를 내며 창공을 누비던 비행체들이 빠르게 상공을 벗어났다.
하얗던 하늘이 검게 물들고,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던 폭음이 잦아들었다.
바다처럼 일렁이는 검은 하늘 속에서 빛나는 것은 오로지 사방으로 마력을 흩뿌리고 있는 한 채의 함선뿐이었다.
날개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함선의 아래쪽으로부터 뻗어 나온 불꽃이 옆으로 뻗어 나간다.
수천 리나 되는 물고기, 곤이 붕이 되어 날아오를 때, 그것이 펼쳐 낸 날개는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도 같았다 한다.
그것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지면 이러할까.
활짝 펼쳐진 화염의 날개가 지평선 위를 덮었다.
점점이 번져나가던 그것은 이내, 업화의 빗줄기가 되었다.
콰콰콰콰콰콰!
쏟아지는 화염의 소나기가 대지를 유린했다.
평야가 불탔다. 크립티드가 불길에 휩싸이고, 고블린과 코볼트가 녹아내렸다.
불길이 몸에 붙은 오우거가 고통스러운 한숨을 토해 냈다. 폭발의 굉음과 몬스터의 비명이 세상을 메웠다. 눈에 닿는 모든 땅이 불길로 물들었다.
그것은 과연 천벌이 내렸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한 광경이었다.
“와…….”
“미쳤어…… 너무 대단해.”
그 광경을 처음 목격한 세라스와 노바는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세라스는 그저 그 압도적인 위용에 감탄했다.
노바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실현시키기 위해 들인 노력과 기술의 고등함에 탄식을 흘렸다.
그리고 김건은 시간을 뛰어넘어 다시금 목격한 희망의 배에 경의를 보냈다.
먼 미래, 발할라를 잃은 인류가 마계의 공세를 버텨 낼 수 있었던 것은 라그나로크를 겪는 와중에도 수르트라 불리는 절대 위력의 함선과 스칼렛 발렌타인이라는 함선의 유일한 컨트롤 타워를 지켜 내는 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기존 병기가 통하지 않는 적에게 사용할 수 있는 인류최대의 화력.
하지만 방금의 폭격으로 수르트가 웬만한 국가의 1년치 예산은 될 마정석을 소모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각 나라에게 지원을 받긴 하겠지만 채 5분도 되지 않을 찰나에 발할라 총 자금의 삼분의 일이 허공으로 증발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한 투자를 할 가치는 있었다.
시야 안에 있는 모든 티아마트의 권속을 일거에 쓸어버렸으니까.
하지만 이것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그들의 적은 지평선 너머에서 나타났다.
새빨간 피부의 괴물들이 해일처럼 쏟아져 나와 몸으로 불을 덮어 지면을 메우기 시작한다.
살아남은 티아마트의 권속들이 울었다. 지진이 일고 대기가 몸을 떨었다.
우우우우우우!!
귓가를 울리는 괴물들의 합창.
그것은 전투의 개시를 알리는 소리였다.
반신 추방 작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