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61화
여섯 팔의 거인이 돌진을 시작했다. 발키리의 파티를 피해, 반대쪽의 헌터들을 향해 달려든다.
약한 적을 먼저 노린다.
놈에게는 티아마트의 권속답지 않은 교활함이었다.
하지만 아까와는 상황이 달랐다. 황금빛이 희끄무레하게 늘어지며, 공간을 가로지른 세라스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딜!”
거인이 금강저를 던졌다.
쾅-!
한서리의 버프로 거인의 준할 정도의 힘과 속도를 얻은 세라스가 그것을 튕겨 냈다.
뒤이어 차크람을 던지려 하자, 김건이 날린 채찍이 거인의 팔을 휘감아 잡았다.
거인이 팔을 튕겼다.
차크람에 매달린 김건이 한순간에 거인의 영역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양쪽에서 날아드는 쌍도.
팡!
김건은 반대쪽 손에서 뽑아낸 채찍으로 칼날의 옆면을 때려 몸을 띄웠다.
갑옷을 걸친 육체가 종잇장마냥 팔락거리며 아래쪽으로 칼날을 흘려보냈다.
그대로 몸을 회전시켜 거인의 얼굴에 발차기를 먹인다. 거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남는 팔로 공격을 방어. 팔을 떨쳐 김건을 바깥쪽으로 날려 버렸다.
아군이 사선에서 벗어나자 수십 헌터의 화망이 거인을 겨냥했다.
“쏴!”
한서리가 지시하자 불과 번개, 얼음과 바람이 사방에서 몰아쳐 거인을 덮쳤다.
고작 여섯 개의 팔과 여섯 개의 무기로는 막아 낼 수 없는 전방위 공격이다.
거인은 한쪽 손에 들고 있던 수정 구슬을 내밀었다.
구슬의 안쪽에서 빛이 번득이더니 거인의 몸 주변에 반투명한 보호막이 생성되었다.
헌터들이 쏘아 낸 마력이 보호막에 부딪혀 소멸해 갔다.
거인이 외쳤다.
“그따위 잔재주는 소용없다! 자, 어디 용감하게 무기를 들고 덤벼 보……!”
퍼억-!
말을 하던 거인의 가슴이 갑자기 가라앉았다.
근육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가슴팍에 커다란 구멍이 파였다.
놀란 거인의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심장을 폭발시켰다.
가면의 틈새로 주르륵 피가 쏟아졌다.
김건의 진동에 당한 거인이 순간적으로 빈틈을 보인다.
신격을 지닌 괴물이 고작 심장이 터진 정도로 죽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
눈 깜짝할 사이에 자리를 잡은 세라스와 김건이 앞뒤로 협공을 가했다.
검은 채찍이 뱀처럼 파고 들어와 두 팔을 엮어 버렸다.
세라스가 날린 초대형 거검의 일격을 대도와 금강저를 겹쳐 막는다.
팔 네 개가 봉인.
그 틈을 노리고 파마의 번견에 속한 전위들이 달려들었다.
모두의 몸에 차가운 한기가 날리고 있었다.
한서리의 버프로 모두들 S급 영웅에 준하는 신체 능력을 얻은 전사들이 오라를 뿜어내며 거인을 향해 칼날을 들이댔다.
“제법이군!”
호탕한 웃음소리.
순식간에 가슴의 상처가 아물었다. 동시에 번개 같은 발차기가 뿜어져 나왔다.
쾅! 쾅! 쾅!
“크억!”
거인이 날린 발차기의 삼연타가 전열을 깨부순다.
철퇴 같은 일격에 오라와 무기가 바스러져 나가며 헌터들이 피를 뿌리며 후방으로 날아갔다.
거인이 몸을 틀었다.
비교적 힘의 운용이 단순한 세라스의 칼날을 가볍게 흘려보내며, 자유를 얻은 나머지 팔로 반대편으로 짓쳐들어오는 헌터들을 막았다.
빨간 대도가 허공을 갈랐다.
그 뒤를 따라 고열의 화염이 터져 나오며 공간을 장악했다.
촤악-!
던져진 차크람이 한순간에 또 하나의 목숨을 앗아 갔다. 질러낸 번개 모양의 법구가 한 전위의 팔을 날려 버렸다.
새로이 터져 나온 핏방울이 안개처럼 사방에 번졌다. 경악한 누군가가 비명을 토해 낸다.
“이 무슨 괴물 같은……!”
거인은 단순히 크고 힘만 센 게 아니었다. 모든 움직임에 전사로서의 노련함이 엿보였다.
단순한 육체 능력만으로도 수십 년의 무공을 쌓은 영웅과도 대등하게 싸우는 것이 티아마트의 권속이다.
그런 놈이 정교한 무술까지 사용한다.
거기에 각각의 손에 들린 무기의 특수 능력의 위험성까지 더하면 그것은 이미 재앙이다.
아무리 버프를 받았어도, A급 전위들로 상대할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한서리가 만들어 낸 파티와 팀 역시 보통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였다.
에이스가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을 수준으로 강화된 한서리의 아이스 골렘이 몸을 반파시켜 가면서까지 화염의 대도를 틀어막았다.
알리시아, 그리고 S급 영웅의 실력을 지닌 헌터 두 명이 물 흐르는 듯한 합격으로 거인의 팔을 잘라 내는 데에 성공했다.
여전히 채찍으로 거인의 몸을 구속하고 있는 김건이 두 개,
골렘이 하나, 그리고 헌터들이 하나.
네 개의 팔을 다시금 봉인하는 데에 성공.
방금 전과 똑같은 상황.
하지만 이번에는 인간들에게 강력한 전력이 남아 있었다.
“하아아앗!”
세라스가 대검을 휘두르며 전진했다.
5미터나 되는 검날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게 춤추며 거인의 전신을 노리고 쏘아졌다.
“큭!”
처음으로 거인이 이를 깨무는 소릴 냈다. 남아 있는 두 자루의 무기가 뻗어 나가 황금색 대검과 충돌했다.
콰콰콰콰쾅!
무기와 무기가 부딪치는 데 폭탄 터지는 소리가 연속으로 울렸다.
터져 나간 잔향이 고막을 울린다. 튀어 나간 금속과 오라의 조각이 수류탄의 파편처럼 튀었다.
거인은 세라스의 공격을 모조리 막아 냈다.
‘고수야……!’
거인과 검격을 교환한 세라스가 치를 떨었다.
인간으로 치자면 한 팔과 양다리를 밧줄로 꽁꽁 동여맨 상태에서 나머지 한 팔만 가지고 세라스가 날린 필살의 한합을 쳐 낸 것이다.
거인의 싸움 실력은 이미 에디나 김건의 급수에 올라 있었다.
만약 팀의 도움 없이 혼자서 거인과 싸웠다면 3초도 안 돼서 육편이 되었을 것이다.
세라스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거인이 몸부림쳤다.
“크아아앗!”
전신에서 근육을 부풀리더니, 어마어마한 힘으로 팔을 구속하고 있던 인간들을 날려 버렸다.
골렘이 두 동강 나고, 알리시아와 S급의 두 헌터는 아군이 펼치고 있던 진형 위에 꽂혀 볼링공처럼 사람들을 쓸고 지나갔다.
마지막까지 거인을 물고 늘어진 것은 김건뿐이었다.
거인이 김건을 돌아보았다. 힘을 줘 팔을 당겨 보지만 순간적으로 풀어진 채찍이 힘을 모조리 흘려 버렸다.
풀려난 팔을 움직이려 하면 다시금 조여 온다.
김건은 황소의 목줄기에 올가미를 걸친 투우사처럼 긴장과 이완을 반복해 가며 끈질기게 버텼다.
“훌륭한 솜씨!”
거인은 힘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김건의 기술에 감탄하며 나머지 손으로 채찍을 쥐었다.
그는 이미 김건의 한계를 파악하고 있었다.
마력을 이용해 무게를 조절하고 있는 다른 인간들과 달리, 이 인간은 전혀 무게를 생성해 내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만 타이밍을 맞춰서 당기면, 압도적으로 체중이 밀리는 김건은 순식간에 그의 앞으로 날아오게 될 것이다.
상황을 파악한 거인이 채찍을 잡아당기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커다란 저항이 걸렸다.
거인의 고개가 까딱였다.
“음……!?”
한서리가 만들어 낸 골렘이 김건의 몸을 붙잡고 있었다.
키가 3미터는 될 법한 거구가 임시 질량 대신 김건의 몸에 중심을 잡아 주었다.
“좋았어!”
타이밍 좋은 지원에 김건이 외친다.
김건과 한서리가 미래에서 함께 싸워 온 세월은 헛것이 아니었다.
각자 다른 영역을 맡고 있더라도, 각자에게 어느 순간에, 어떤 것이 필요한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김건이 팔을 뻗었다. 일부러 남겨 두었던 반대쪽 손의 채찍으로 거인의 발목을 휘감았다.
골렘이 팔을 당겼다. 거인이 뒤로 물러났다.
양쪽의 힘을 받는 김건은 순식간에 그것의 방향을 바꿔 휘몰아쳤다.
거인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팔과 발목을 잡아챈 채찍에 주어진 힘 때문에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은 것이다.
“음.”
콧소리를 내며 남아 있는 한 다리를 지면에 박아 버티는 거인.
슈칵-!
그런 거인의 발목이 사라졌다. 타이밍 좋게 끼어든 세라스가 그것을 잘라 낸 것이다.
육중한 소리를 내며 거인이 지면에 쓰러졌다. 한서리가 외쳤다.
“노바 선배!”
기다렸다는 듯이 노바가 마력을 해방했다.
보라색 머리칼이 사방으로 뻗쳤다.
동시에 그녀의 눈앞에 서 있는 금속 원판에서 거대 렌즈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야아아아아!”
그녀만의 극대소멸기가 발동.
멸망의 광선이 거인에게 작렬했다.
콰아아아앗!!
후위의 마법을 막아 내던 수정구가 보호막으로 백색 물결을 틀어막는다. 벽에 부딪힌 빛이 산란하며 사방으로 퍼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출력을 견디지 못한 수정구가 두 갈래로 쪼개졌다.
보호막을 깨부순 광선이 그대로 거인의 몸에 꽂혔다.
초고열의 빛줄기가 빨간 피부를 녹이고 뼈를 태우려는 찰나에, 거인이 광선 밖으로 빠져나왔다.
수정구가 만들어 준 잠깐의 시간, 그리고 한순간에 태우기 힘든 거구의 몸체로 고열을 버티며 극대소멸공격의 범위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런!”
이래서 질량이 커다란 녀석들은 상대하기 까다롭다.
광선을 옆으로 틀었다간 아군이 휩쓸린다.
당황한 노바가 마력의 해방을 멈췄다.
순식간에 잘려 나간 발목과 팔, 모든 상처를 복구해 낸 거인은 극대소멸공격을 피하느라 무너진 헌터들의 진형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여섯 개 팔이 춤췄다. 빨갛고 파란 쌍도에서 터져 나온 불꽃과 얼음이 헌터들을 덮쳤다.
던져진 금강저와 차크람이 피륙을 꿰뚫고, 날아간 주먹과 법구가 머리를 깨부쉈다.
한순간에 다섯 명이 죽었다.
거기에는 극대소멸공격을 준비하던 후위도 한 명 끼어 있었다.
남은 극대소멸기는 이제 둘.
또다시 날아가는 칼날을 검은색 채찍이 가로막았다.
그림자 갑옷과 설화기사의 힘을 받아 극도로 강화된 김건이 거인의 앞을 막았다.
“물러나요! 방해되니까!”
진형이 깨진 상태에서 약한 개인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건은 헌터들이 재정비할 시간을 벌기 위해 거인과 맞붙었다.
촤자자작!
순간적으로 두 고수 간에 엄청난 합이 오갔다.
눈으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공수.
피잉-
“큭!”
채찍이 끊어졌다.
그림자갑옷의 힘으로 채찍을 복구.
아무 생각없이 막으면 죽는다.
일검을 받아 내는 데에만 해도 무기의 각도, 힘의 분배, 중심의 이동 등 어마어마한 것들을 계산해야 한다.
수없이 쏟아지는 고난이도의 문제.
그중 하나라도 틀리면 끝이다!
최대한 방어와 회피에 집중하지만 고양이, 아니 쥐새끼가 호랑이를 상대하는 꼴이다.
버티는 것만으로도 기적. 무기가 난자하고 김건의 몸에 핏줄기가 튀었다.
아무리 그라도 정면으로 붙으면 이길 수 없다.
애초에 이겨야 할 필요도 없다. 지금 김건의 역할은 시간 끌기일 뿐이었다.
김건은 채찍으로 거리를 재며 뒤로 물러났다.
“도망치지 말고 제대로 덤벼라!”
미지근한 대응에 실망한 거인이 노호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런 그의 얼굴이 폭발했다.
쪼개진 가면에서 피가 튀고 심장이 다시 한번 터졌다.
우웅- 소리와 함께 발목과 무릎의 관절이 소멸. 김건이 아낌없이 뿌려 댄 미극공진동의 난타에 거인이 무릎을 꿇었다.
“으, 윽! 이 기술은!”
가면을 포함해 순식간에 다시 재생해 내지만 김건의 의도대로 시간은 벌었다.
“이 자식!”
세라스가 싸움에 합류했다.
헌터들의 진형이 무너진 이상, 김건을 도와 거인과 맞서 싸울 수 있는 것은 그녀밖에 없었다.
주변에 널려 있는 시체들을 발견한 세라스의 눈에 황금빛 의지가 떠올랐다.
‘더 이상 사람들을 죽게 하진 않겠어!’
전면에서 날아오는 쌍도를 막아 냈다.
쾅!
묵직한 검격이다.
하지만 막을 만하다. 한서리가 걸어 준 버프가 온몸을 데우고 있었다.
그녀는 강했다.
김건처럼 어마어마한 기술을 사용하지 않아도 거인과 대적할 수 있었다. 거인이 사자라면, 자신은 치타나 하이에나정도는 될 것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 잘하면 돼!’
거인의 움직임은 확실히 처음에 비해 둔해져 있었다.
사자는 그물에 걸려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조금, 조금만 더 힘을 내서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준 기회를 잡아채기만 하면 된다.
‘할 수 있어!’
세라스의 검격이 엿가락처럼 휘었다.
황금색 대검이 날아오는 차크람을 막고, 튕겨 낸다.
앞으로 발을 내딛는다. 노란 광채를 꼬리처럼 끌며 날아간 칼날이 거인의 팔을 잘라 냈다.
“……!”
순간적으로 기량이 급격하게 올랐다.
눈앞에 선 인간의 급성장에 거인이 탄성을 토한다.
팔이 잘린 충격에 거인이 주춤거리자, 김건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길게 뻗어 온 채찍이 거인의 발목을 캐치. 두 다리를 엮으며 잡아당기자 거인이 쓰러졌다.
“이놈……!”
손으로 지면을 짚으며 일어나는 거인.
그런 그의 측면에서 부팀장인 알리시아가 튀어나왔다.
하얀 피부 위로 문신처럼 박힌 문양이 떠오르더니 그녀의 양손에서 마력이 폭발했다.
극대소멸공격의 상징, 플레어가 뿜어져 나왔다.
태양의 표면에 피어나는 초고열의 빛과 에너지의 이름.
겁멸의 불줄기가 거인을 집어삼켰다.
김건이 감탄했다.
‘마검사 타입의 전위였던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