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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62화 (62/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62화

각종 버프와 근접전에 특화된 마법으로 전위에 서는 마법사.

극대소멸공격까지 가능한 마검사라니, 특이성만 따지면 거의 김건과 동급인 희귀 인력이었다.

플레어의 여파에 휩쓸리지 않도록 김건이 물러섰다.

하지만 그는 곧 화염의 안쪽에 있어야 할 거인이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크아아악!”

어디선가 터져 나오는 비명.

칼날로 헌터의 가슴을 뚫어 낸 거인이 그곳에 있었다. 또다시 피를 부르기 위해 튀어 나가는 칼날을 김건이 막았다.

‘분명히 불길에 휩쓸렸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당혹스러운 상황에 김건을 제외한 모두의 움직임이 멎었다.

거인의 무기를 틀어막으며 김건이 외쳤다.

“순간이동이야! 차크람과 위치를 순간적으로 바꿨어!”

알리시아가 플레어를 사용하기 전에 있었던 세라스와의 공방.

거기서 세라스가 바깥으로 쳐 낸 차크람과 위치를 교환한 것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플레어에 휩쓸려 반쯤 녹아 버린 차크람이 되돌아와 거인의 손에 잡혔다.

치이이익-

엄청난 연기를 피워 올리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무기를 꼬나쥐는 거인.

무감정한 흑백의 가면이 김건을 내려다보았다.

“분석하고 있을 여유는 없을 텐데.”

지금까지 김건은 되도록 거인의 사거리 끝에서 싸웠다. 하지만 급하게 공격을 막느라 거인의 영역에 너무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그 위험성을 알아챈 세라스가 비명을 질렀다.

“김건!!”

여섯 개의 팔이 동시에 김건을 향해 쏘아졌다.

단순하기에, 더더욱 파해가 어려운 무결점의 일격이다. 고작 두 팔로 그것을 막아 내는 것은 불가능.

여섯 방향에서 뻗어진 무기가 김건의 몸을 꿰뚫으려는 찰나였다.

김건의 신형이 사라졌다.

─────!

폭음과 함께 거인의 몸이 튕겨져 날아갔다.

“……??”

미극공진동이 아니다.

거인의 가슴에는 외부의 충격으로 생긴 커다란 구멍이 있었다.

거인이 튕겨져 나온 방향에는 세라스가 있었다. 그녀는 깜짝 놀란 와중에도 반사적으로 칼을 휘둘러 거인을 베어 버렸다.

상하체가 동강 난 거인이 바닥을 구른다. 거인은 그 와중에도 거미처럼 땅을 기어 차크람을 던지기 위해 손을 들었다.

차크람을 밖으로 던져 도망칠 심산이었다.

모두가 그것을 깨닫고 차크람을 막기 위해 움직이는 순간.

화살 한 대가 거인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고개가 꺾이며 순간적으로 팔의 움직임이 멈춘다.

“팀장님!”

활을 거둔 알리시아가 외치기도 전에, 앱솔루트 제로가 발동했다.

한서리가 뿜어낸 극저온의 광선이 거인에게로 쏘아져 날아갔다.

발키리 파티와 파마의 번견 팀이 가진 마지막 극대소멸공격.

이번엔 정말로 끝이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오로지 김건을 제외하고.

“한서리!!”

이상을 감지한 김건이 외쳤다. 그것에 반응한 한서리가 머리털을 곤두세웠다.

빛이 번뜩였다.

지금까지 아무런 능력도 보이지 않았던 번개 모양의 법구가 작동하며, 그 끝에서 터져 나온 번개가 공간을 갈랐다.

아니…… 그것은 번개라 부를 수도 없었다.

보랏빛으로 물든 전력의 에너지가 터져 나온다. 전면부에서 날아오던 앱솔루트 제로를 단번에 일소. 전류가 강줄기처럼 흐르며 한서리가 서 있던 위치를 꿰뚫었다. 뒤이어 소리가 따라왔다.

콰르르르르릉!

천둥소리가 모두의 고막을 찢고 뒤따라온 파괴음이 울음을 토했다.

단번에 주변 일대가 초토화.

이미 반파되어 있던 캠프가 충격파에 의해 통째로 소멸하며 어마어마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폭발의 충격으로 나가떨어졌던 노바가 사방을 메운 먼지에 기침을 하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엄청난 고열의 여파로 지면이 녹아내리고 대기에서 분리된 이온이 원령처럼 떠다녔다.

“맙소사…… “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극대소멸공격에도 급수가 있다.

극대소멸공격 자체가 대단한 기술이기 때문에 세분화해서 나누지는 않을 뿐.

소멸시킬 수 있는 질량의 크기, 공격 범위, 그리고 지속시간 등에 따라 상위와 하위로 나누는 정도다.

방금 거인이 뿜어낸 것은 명백히 상위, 혹은 그것보다 더 위의 급수로 분류해도 될 정도의 것이었다.

사람이 없는 평야에서 터졌으니 다행이지, 저런 것이 도심에서 쏟아졌으면 초유의 참사가 일어났을 것이다.

“서리야!”

세라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흙구덩이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는 한서리가 보였다.

어찌나 급하게 몸을 날렸는지 단정한 행색이 다 흐트러져 있었다.

한서리는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손을 들어 보이며 몸에 묻은 흙을 털어 냈다.

등골이 서늘했다.

화신이라도 저 정도의 공격을 생으로 맞으면 소멸한다. 어설픈 화신인 한서리는 말할 것도 없다.

마지막에 남편이 경고해 주지 않았다면 죽었다.

그나마도 순간적으로 기린의 힘을 발휘하여 가속 마법을 사용했기에 피할 수 있었던 거다.

바로 앞에 다른 신격이 있었던 덕에 신격으로 인한 위압감도 숨길 수 있었다.

그녀는 서둘러 몸에 남아 있는 기린의 흔적을 지웠다.

“제길.”

한숨을 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이동을 이용해 이탈했는지, 이미 거인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남아 있는 것은 오직 폐허와 시체뿐.

한서리는 김건을 바라보았다.

상당히 부상이 큰지 무릎을 꿇고 팔을 붙잡고 있는 남편을 발견했다.

김건 역시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걱정하지 말고 할일을 하라는 뜻이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상처를 확인하고 싶었다. 또 다른 곳은 괜찮은지 들춰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멍청한 짓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고개를 끄덕인 한서리는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사망 인원을 확인하고, 전력을 파악하며 혹시나 있을 또 다른 습격에 대비해 정찰대를 편성한다.

아내가 리더로서 책임을 지는 동안, 김건은 몸상태를 점검했다. 무리한 운용으로 박살이 나 버린 오른팔을 내려다봤다.

어깨가 탈골됐다. 주먹과 손목은 복합 골절이 일어나 엉망진창이 되었다.

없던 팔도 자라나게 하는 근래의 의료 기술이 없다면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할 정도의 심대한 피해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엄청나게 아팠다.

김건은 앓는 소리를 내면서 탈골된 어깨를 끼우기 위해 팔을 잡았다.

그때 다가오는 손길이 있었다.

“도와줄게.”

어느새 가까이 온 세라스가 김건의 어깨와 팔을 잡았다.

부상에 익숙한 김건은 자연스럽게 힘을 뺐고, 그 덕에 세라스는 쉽게 빠져 버린 관절을 맞춰 넣을 수 있었다.

그녀는 있을 수 없는 각도로 꺾여 퉁퉁 부어오른 김건의 손을 짜 맞추며 고통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전투의 향방을 결정지었던 마지막 순간, 김건이 보여 주었던 잔영이 떠올랐다.

“마지막의 그건…… 에디 교수님의 기술이지?”

“그래.”

“난 원리를 들어도 흉내도 못 내겠던데 그걸 벌써…… 대단하네.”

김건은 웃었다.

“대단한 건 너지. 실력이 엄청 늘었던걸. 네가 아니었으면 이 정도 피해로 끝나지는 않았을 거야.”

간만에 들은 칭찬.

꽤 기분이 좋았지만 순수하게 기뻐하고 있을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세라스는 가벼운 코웃음으로 그것을 흘려 넘기며 치료를 계속했다.

리더인 한서리가 뒤처리를 하고 이번 전투로 많은 힘을 소비한 김건과 세라스가 휴식을 취하는 사이, 홀로 남은 노바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극대소멸공격을 사용한 탓에 전신이 노곤했지만 상관없다.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존재의 등장에 그녀의 학구열이 불타올랐다.

도대체 그 거인의 정체는 뭔가.

어떻게 인간의 말을 하지?

티아마트의 권속 같지 않은 그 지능은 무엇이며, 여섯 개의 팔은 어떻게 자라났고, 얼굴에 쓴 가면과 여러 가지 능력을 지닌 무구들은 누가, 어떻게 만들어 낸 거지?

수많은 의문이 떠올랐지만 답해 줄 사람은 없었다.

결국은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찾아봐야 한다.

다행히 노바는 그런 것을 아주 좋아했다. 아니, 오히려 환장했다.

그 흥미로운 생명체의 비밀을 파헤쳐 볼 생각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지만 필사적으로 숨겼다.

그녀라도 사람들의 시체 앞에서 낄낄거리고 웃을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일단은 자료 수집이 먼저였다.

그녀는 등에 멘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내, 혹시나 싶어 전원을 켜 봤다.

“역시 고장 났네.”

신격, 혹은 강대한 마력을 지닌 몬스터들은 그저 뿜어내는 기운만으로 다른 존재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런 놈들 앞에서 예민한 디지털 기계는 대부분 고철이 되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연구자인 그녀는 그럴 때를 대비해 아날로그 방식의 기록 장치들을 별도로 갖고 다녔다.

필름 카메라를 꺼낸 노바가 사방의 정황을 찰칵찰칵 찍기 시작할 때였다.

한서리가 그녀에게로 다가오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방금 그놈, 정보를 정리해서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겠어요?”

문서 작성이 특기인 노바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응! 가능해.”

“그럼 바로 작성해 주세요.”

“……지금?”

너무 갑작스럽다.

아직 자료 조사는 물론이요, 제대로 된 분석조차 해 보지 못했다.

하지만 불평을 늘어놓을 수는 없었다.

무서운 후배의 눈은 더없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지금 당장 회의를 열어야 할 테니까.”

* * *

꼭두새벽에 갑자기 마련된 회의.

전선이 넓고 전자기기의 사용 불능으로 신호탄이나 봉화 따위의 구시대적인 통신 방식에 의존하다 보니 모든 사람이 모이지는 못했다.

작전의 총책임자인 노제 프레데리카는 물론이요, 제대로 된 발언권을 가진 간부도 없이 진행된 간소한 회의였다.

한서리는 노바가 정리해 준 자료를 기준으로 간결하게 새로이 등장한 신격에 대해 브리핑했다.

그리고 각각의 리더들에게 새로운 정보의 유포와 다시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적습의 대비를 요청했다.

반응은 시큰둥했다.

한 남자가 피식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밖에서는 깨나 이름 좀 날린다고 하는 S급의 전위였다.

“사망자가 11명…… 학생 네 명에, 만들어진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헌터팀이, 오메가급의 적에게 습격을 당했는데 이정도로 끝났다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들이 별것도 아닌 적과 싸우고 털려서 엄살부리는 게 아니냐.

상당히 무례한 말이었지만 한서리는 반응하지 않았다. 파티와 팀을 꾸린 한서리가 봐도 그녀의 일행들은 인지도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강했으니까.

그저 냉정하게 알고 있는 정보를 말했다.

“오메가라고는 했지만 화신보다는 격이 떨어졌습니다. 저번에 있었던 토너먼트에서와 달리 이번에는 저희 팀 중 아무도 신격의 충격으로 기절하지 않았으니까요. 실제로 화신과 싸워 본 감각으로도 그렇게 느꼈고요.”

새파란 눈이 가늘어지며 냉랭한 공기가 주변에 깔렸다.

“하지만 놈은 교활합니다. 전투 기술도 뛰어나고, 놈이 가지고 있던 무기들의 성능 역시 기존의 상식 밖에 있습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생각을 할 줄 아는 티아마트의 권속이 얼마나 무서워질 수 있는지 굳이 설명이 필요합니까?”

“그래 봐야 애들 수준의 지능이겠지. 내가 보기엔 아무리 잘 쳐줘도 엡실론급은 될까 싶은 적이야. 화신과 싸워서 그런가? 어린 친구가 발키리가 되더니 현실 감각이 없어진 게 아닌가 싶군.”

“…….”

한서리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쓸모가 없다고 판단된 인간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는 타입의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당일, 해가 밝은 뒤 일어난 거인의 습격에 남자의 파티는 전멸했다.

비보를 전해들은 한서리는 조금 놀랐다.

미래에서 돌아온 그녀는 그 거인이 아무나 공격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멍청한 발언과 달리, 그 실력은 진짜였던 모양이었다.

'아쉽네. 미끼로 써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애초에 한서리가 회의를 연 것은 정보의 공유를 위해서였지, 당장의 사태를 그녀 스스로가 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집단을 다루기 위해서는 권위가 필요하고 그 권위를 위해서는 실적과 역사가 필요하다.

한서리는 아직 스스로에게 세계구급의 사태에 전면으로 나설 만한 권위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

정보의 유포로 씨앗은 심어 놨다.

한서리는 기다렸다. 그녀가 통제권을 잡을 수 있을 시기를.

거인의 등장, 그리고 정보 유포 1일차.

낮에 한 번, 밤에 한 번.

거인의 습격을 받은 두 개의 팀이 전멸.

실질적인 피해 상황이 보고되기 시작하자 상부가 대응했다.

언제 티아마트가 모습을 드러낼지 모르는 상황.

시간 싸움을 하고 있던 상부는 정체불명의 적이 가진 위험성보다 기존 작전의 성공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

포위망을 형성하기 위해 뿔뿔이 흩어져 있는 전력이 각개격파당할 수 있다는 변수를 무시하고 속행을 명령했다.

2일차.

새벽, 아침, 점심, 저녁, 밤.

다섯 개 팀이 전멸.

넓은 포위망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심대한 피해였지만 인류의 명운이 걸린 위기 상황이었기에 이 정도의 피해는 감수할 수 있다고 결론 내린 상부는 방침을 유지.

오히려 작전 인원들을 독촉해 빠르게 티아마트의 영역을 청소하며 차원의 균열로 향할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3일차 아침.

이번 작전의 핵심 전력 중 하나인 티리온 프레이저 및 에인헤야르로 이루어진 발할라의 팀이 절반 이상 사망하며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그날 정오. 책임자인 노제 프레데리카는 일시 작전중지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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