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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63화 (63/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63화

책임자인 노제 프레데리카가 일시 작전 중지를 결정한 것이 정오.

그리고 약 세 시간 뒤에 모든 작전팀이 포위망을 풀고 습격에 대비할 수 있도록 전력을 집중한 형태로 재편성되었다.

그날 저녁, 모든 책임자가 한자리에 모인 회의가 열렸다.

커다란 막사를 펼쳐 만든 어설픈 회의실.

수십 명의 파티장 및 팀장들이 앉아 각자의 정보와 앞으로의 방침을 속삭이고 있을 때, 노제 프레데리카가 나타났다.

간만에 본 노제의 얼굴은 싯누렇게 떠 있었다.

나이를 잊게 만들 정도의 미모는 간데없고 그저 피곤에 찌든 여자만이 남아 있다.

그녀는 눈가의 다크서클을 문지르며 지금까지 파악된 정보를 전달했다.

“아수라에 대한 분석 결과가 나왔다.”

그녀는 그러면서 조수를 시켜 장내의 인물들에게 파일을 나눠 주었다.

그 안에는 속칭 ‘아수라’라는 이름이 붙은 오메가급 몬스터에 대한 스펙과 놈의 행동 양식, 그리고 그것을 기준으로 추측한 대응 시나리오 등이 적혀 있었다.

한 번 싸워 보았으니 스펙은 볼 필요가 없다.

한서리는 전략팀에서 정보를 모아 내놓았을 아수라의 행동 양식에 대한 문서를 살폈다.

이리저리 복잡한 전제와 가정으로 빽빽하게 문자가 채워져 있었지만 주된 골자를 보면 다음과 같았다.

하나, 아수라는 오메가급 몬스터로서의 힘을 이용해 단독으로 게릴라전을 시행하여, 인류의 진격 속도를 늦춤으로써 온전한 티아마트의 강림을 노리고 있다.

둘, 아수라에게는 투기를 근간으로 한 별개의 감각이 존재한다. 그것을 이용해 공격 대상을 탐색하며, 그 대상은 S급 상위, 혹은 초월자급에 오른 전위가 존재하는 파티다.

셋, 너무 큰 전력의 차이가 존재할 경우 공격하지 않는다.

그 내용은 한서리가 경험한 미래에서 인류가 내놓았던 결론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 말인즉, 앞으로의 사태가 그녀의 예상대로 흘러간다는 것이었다.

기회가 올 것이다.

곧.

문서를 살피며 설명을 이어 가던 노제가 말했다.

“티리온 프레이저 교수는 별도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본대에서 이탈한 직후에 습격을 받았다. 사냥감이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걸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낮은 한숨이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모두들 알고 있겠지만 티아마트에게 가까이 갈수록 투기가 강해져 후위의 화력이 감소한다. 이번 작전에서 전위의 역할은 훨씬 중요해. 이 이상 전투의 중심이 되어 줄 전위를 잃을 수는 없어.”

그 뒤로도 전체적인 행동 양식이 벨제불의 마인과 닮았다든가, 사용하는 무기들이 마계도, 지구의 것도 아닌 다른 차원의 것으로 보인다든가 하는 내용이 나왔지만.

여기 있는 모두에게 그런 사실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하나다.

이 골치 아픈 적을, 어떻게 해야 처리할 수 있을 것인가.

시간이 없었다.

이 이상의 전력 손실을 막기 위해, 그들은 포위망을 풀고 병력을 집중해 아수라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었다.

그렇게 뚫린 포위망으로, 줄어들고 있던 티아마트의 영역이 다시금 확장을 시작하는 중이다.

배가 침몰해 가는 와중에 사방에 뚫린 구멍을 막으러 다니기는커녕, 상어의 습격이 두려워 구석에 뭉쳐 오들오들 떨고 있는 모양새다.

어떻게든 상어를 사냥할 방법을 짜내야 했다.

세상이라는 이름의 배가 침몰하기 전에.

이내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다.

세계 멸망을 막기 위해 편성된 조직이라고 해서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성실한 상식인인 것은 아니다.

진정 세상의 위기를 해결하려는 자.

그 위기를 스스로의 출세 기회로 삼으려는 자.

이 와중에도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자…….

온갖 사람들이 뒤섞여 떠들기 시작하니 회의실은 난장판이 되었다.

수많은 안건이 나왔다.

개중에는 쓸 만한 것도, 쓰레기 같은 것도 있었다.

총책임자인 노제는 그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그녀의 선택에 세상의 명운이 달려 있었다. 생각이 깊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심사숙고를 거쳐 그녀가 골라낸 안건은 두 개였다.

둘 다 꽤 그럴싸한 계획이었다.

다만 걸리는 것은…… 그 두 안건이 모두 막 태어난 병아리들이 내민 것이라는 거다.

벌써부터 저 뒤편에서는 불평불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노제는 깔끔하게 그 말소리를 무시하며 안건을 내민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파란 머리의 발키리, 한서리가 말했다.

“아수라는 전위를 탐지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후위는 잘 알아채지 못합니다. 하지만 오메가급 몬스터를 퇴치할 수 있는 수단은 후위의 극대소멸공격이죠. 전위는 아수라를 불러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만 배치하되, 극대소멸공격이 가능한 후위를 다수 배치해 화력으로 압살하는 방법이 유효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위를 미끼로 던져 아수라를 유인하고, 다수의 후위로 극대소멸공격을 퍼부어 죽이자는 말이다.

노제가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아무리 후위의 수가 많아도, 전위가 앞에서 버텨 주지 않으면 극대소멸공격을 명중시키기 어려워. 그건 어떻게 할 거지?”

“미끼 역할을 할 전위가 해야죠.”

“어떻게? 다수의 전위로도 발을 묶기 힘든 괴물인데.”

“아수라를 끌어들일 정도의 전위가 제 버프를 받는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슐츠 교수님이면 충분히 이 역할을 수행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에디가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그거 마음에 드는 소리군. 누님, 날 보내 주시오. 애초에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었어. 김건이나 티리온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 괴물을 상대하는 데에는 녀석들 같은 기교파보다 내가 더 상성이 좋아.”

지금까지 에디는 본대를 지키는 역할을 맡았기에 아수라와 조우하지 못했다.

성질 급하게 나서는 걸 보니 그동안 꽤 불만이 쌓인 모양이었다.

“조용히 있어. 생각하는 중이니까.”

에디는 아카데미의 생도일 때부터 알고 지내 온 후배다.

노제는 한마디로 이 세상 최강 중 하나라는 전사의 입을 다물게 하며 생각에 잠겼다.

핀잔을 주긴 했지만 에디의 말은 옳았다.

게다가, 한서리의 파티는 아수라와 맞서 싸워 최소한도의 피해로 놈을 격퇴했다는 전적이 있었다.

한서리가 가진 버프의 능력은 그것만으로 증명되었다고 보아도 좋았다.

작전의 중심에 에디가 서게 된다면 젊은이의 생각에 거부감을 느끼는 꼰대들의 불만도 억누를 수 있을 것이다.

한서리의 작전은 빈틈이 없으며, 합리적이었다.

정답이라고는 할 순 없어도 차선책으로는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노제는 또 다른 작전의 발안자를 쳐다보았다.

검은 머리의 발키리, 클라우 베리스가 말했다.

“아수라가 계속해서 게릴라전을 성공시킬 수 있는 건 그에게 위협을 줄 수 있는 전력, 즉 전위를 탐지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죠. 그건 전위들이 투기의 영향을 덜 받는 것과 동일한 원리로 작동하는 능력일 겁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싸우고자 하는 의지, 투지를 읽는 능력이라고 봐야겠죠.”

클라우는 웃었다.

“저는 사람의 투지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녀가 내세운 작전의 골자는 이랬다.

정신계 마법을 전위들에게 걸어 강제로 투지를 죽인다.

그것으로 아수라의 탐지를 피한 뒤, 마찬가지로 미끼를 써서 유인해 낸 아수라를 투지를 숨기고 있던 다수의 전위로 제압한 뒤 극대소멸공격으로 처리하자는 것이었다.

노제는 흠, 콧소리를 냈다.

“자네의 정신계열 마법으로 아수라의 탐지 능력을 피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나?”

“아수라를 앞에 두고 실험해 본 것이 아니라 장담은 못하겠군요. 하지만 제 정신 마법의 영향을 받은 후위들이 투기에 의한 화력 감소 현상을 덜 받았다는 걸 증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많습니다. 방금 말했던 대로, 아수라의 탐지 능력이 투기에서 발현된 것이라고 한다면 그 반대도 가능하겠죠.”

“정신 제어로 인한 부작용은 없나? 마법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을 보일지도 몰라.”

검은 여자는 새하얗게 미소를 지었다.

“지금 부작용이 중요한 상황인가요?”

“……그건 아니지.”

클라우의 작전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완벽했다.

말한 대로 흘러가기만 한다면 아수라를 잡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작전이었다.

노제는 생각에 잠겼다.

두 작전 모두 한서리와 클라우 베리스, 각각 두 사람의 특기인 버프와 정신 제어 마법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다른 이들은 방법을 알아도 시행하지 못한다.

그런 강점을 기반으로 설계한 것이기에, 두 사람이 건의한 작전은 성공 가능성이 높았다. 노제는 그렇게 판단했다.

그러면 이제, 그 둘 중 누구의 작전을 채용할 것인가.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노제는 결론을 내렸다.

“두 작전을 모두 채용하도록 하지.”

애초에 두 사람이 요구하는 요건이 서로 다르기에,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가능한 조합이었다.

노제는 한서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한서리 발키리에게는 에디 슐츠 교수와 극대소멸공격이 가능한 S급 후위 열 명을 붙여 주지. 그 정도면 충분하겠나?”

“충분합니다.”

한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제의 시선이 이번에는 클라우에게로 향했다.

“클라우 베리스 발키리에게는 초월자급 전위 둘, 그리고 S급 전위 스무 명을 보낼 생각이야. 하지만 아무래도 정신 제어 마법을 받아들이는 데 불만을 가질 사람들이 있어서 인원 수를 채우는 데 조금 시간이 필요할 거야. 그래도 괜찮은가?”

“상관없습니다.”

클라우 역시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노제는 착잡하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아카데미에 들어온 지 일 년도 채 안 지났는데 이런 중책을 맡기게 되어서 미안하군.”

“괜찮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영웅에게 그런 사회적 통념은 의미가 없지. 애초에 발키리라는 작위가 그런 영웅들의 행동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나는 사이먼 오라버ㄴ…… 아니, 베이커 교수님의 판단을 믿어.”

노제는 양손을 들어 각각 한서리와 클라우의 어깨를 붙잡았다.

“두 사람은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건투를 빌도록 하지.”

그렇게 둘을 격려 한 노제는 다른 책임자들에게 지금 정한 방침을 공유하기 위해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아니, 저런 새파란 꼬맹이들의 작전을 따르겠다는 거요?”

“교수님, 이건 아닙니다! 다른 안건들 중에도 좋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노제가 말을 꺼내자마자 시끄러워지는 회의실.

두 발키리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지만, 여기 있는 두 사람에게 그딴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옥상에서의 대담 이후, 오랜만에 만난 한서리와 클라우는 그 소란 통 속에서 조용히 서로의 눈을 쳐다보았다.

보이지 않는 불꽃이 두 사람의 사이에서 튀었다.

한서리는 얼음장 같은 표정으로 한기를 뿜었다.

클라우는 장미꽃 같은 미소를 띠며 가시를 곤두세웠다.

이번 작전의 성공 여부는 두 사람에게 꽤 의미가 컸다.

여기서 성공하는 자는 인류를 구원하는 자로 칭송받을 것이다.

구원자, 혹은 진정한 영웅이라는 타이틀.

그것은 곧 막강한 사회적 권위를 말했다. 그리고 인간사회에서 그것은 거의 전능에 가까운 위력을 발휘했다.

클라우가 그것을 얻는다면 훨씬 쉽게 한서리를 압박하며 김건에게 접근할 수 있다.

어쩌면 한서리를 인질 삼아 김건의 정신을 흔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서리가 그것을 얻는다면 아예 클라우를 발할라 아카데미에서 아예 배제해 버리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두 사람에게 대의 따윈 없었다. 한서리에게 이 세상은 남편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일 뿐이고 클라우에게는 그 정도의 의미도 없다.

두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오로지 개인적인 욕망, 그리고 적을 향한 증오뿐이었다.

“…….”

“…….”

말은 필요 없었다. 혐오하는 상대에게 해 줄 말은 오로지 ‘죽어.’ 그 단 한 마디뿐이었다.

두 사람은 등을 돌렸다. 그리고 서로의 길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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