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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64화 (64/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64화

작전은 바로 그날 밤에 시작되었다.

다시금 포위망을 펼친 인류가 진격을 시작했다.

각각 초월자급의 전위를 미끼로 내세운 한서리와 클라우의 파티 역시 자리를 잡고 아수라의 습격을 기다렸다.

곧 닥쳐올 적을 맞이하기 위해 한서리의 파티는 되도록 전투를 피하며 천천히 티아마트의 영역에서 행군을 계속했다.

에디는 손을 쥐락펴락했다. 온몸에서 피어오른 한기가 그를 감싸고 있었다.

그는 한서리가 부여한 버프의 힘을 섬세하게 재확인하며 물었다.

“김건, 그놈이랑 세라스는?”

“다른 팀에 잠깐 보내 놨어요. 두 사람을 교수님과 붙여 놓으면 아수라가 근처에도 안 올 테니까요.”

한서리는 주변을 경계하며 그렇게 말했다.

차크람, 그리고 금강저의 위치를 교환하는 것으로 시전하는 순간이동.

이번 세대의 아수라는 꽤 골치 아픈 능력을 지닌 무구를 갖고 있었다.

시야가 뻥 뚫린 평야라도 그 정도 기동력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에디가 말했다.

“경계는 내가 하지. 긴장 풀고 마력이나 잘 다스려. 어차피 놈이 마음먹고 기습하면 네 반응 속도로는 대응이 안 돼.”

그것은 후위가 갖는 어쩔 수 없는 한계였다.

화신의 힘을 끌어다 쓴다면 가능하겠지만, 고작 이 정도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정체를 드러내는 것은 빈대를 잡기 위해 집에 불을 지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한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감사의 뜻을 담아서 에디를 바라보았다.

“제 의견에 찬동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이 거절하셨다면 프레데리카 교수님이 그렇게 쉽게 승낙해 주시지 않으셨을 거예요.”

에디는 콧방귀를 뀌었다.

“날 중심으로 세우는 전략인데 거절할 이유가 없지. 합리성이 없는 작전도 아니고, 가능성이 충분하니까 따라 준 거야. 그리고…….”

웬일로 에디가 말꼬리를 늘였다.

한서리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검은 머리 발키리, 그 애의 작전을 따르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야. 뭐, 별로 의미는 없었지만.”

에디는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말했다.

한서리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에디 교수님은 중립을 고수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 말에 에디는 당장 질색하며 손을 내저었다.

“내 앞에서 그런 말 하지 마. 난 사이먼 교수를 존경하고, 프리드리히 자식을 싫어하지만 그 능력만큼은 인정하고 있어. 둘 중 누가 실세가 되든 별 상관이 없단 말이지. 누가 실권을 잡든 내게 잔소리를 하는 건 똑같을 테니까. 그런 것 때문에 네 손을 들어 준 게 아니라고.”

“그럼요?”

“그냥 감이다. 그 애한테는 위험한 냄새가 나. 정체가 뭔지는 몰라. 하지만 그 애랑 싸우면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무슨 헛소리를 하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난 내 감각을 믿거든. 이게 없었더라면 예전에 이미 죽었을 테니까.”

전사의 냉랭한 눈이 한서리를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너한테도, 그 애와 비슷한 냄새가 나.”

살짝이지만, 소름이 돋았다.

한서리의 눈이 깜빡였다.

남편에게 듣기를, 에디 슐츠 교수는 상대방의 강함과 위험성을 탐지하는 데에 짐승과도 같은 감각을 지녔다고 들었다.

말로만 들었을 때에는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겼었는데 그 예민함은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한 영역에까지 올라가 있었던 모양이다.

한서리가 놀란 속내를 가다듬는 사이에 에디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넌 괜찮아. 김건, 그 벽창호 같은 놈이 믿는 사람이라면 위험한 힘을 갖고 있더라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거거든. 세라스 그 녀석도 널 꽤 신뢰하는 모양이고.”

그리 오랜 시간을 함께하지는 못했을 텐데, 김건과 세라스, 그리고 에디는 한서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유대를 쌓은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면 전생에서도 그랬다.

항상 목숨을 칼날 위에 얹어 놓고 싸우는 전위들은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면 급속하게 친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마치 극한에 상황에 몰린 군인들이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에게 사랑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이 사람도 그이의 일부를 가져갔구나.’

약간의 질투, 그리고 호감이 동시에 한서리의 마음에 자리 잡았다.

일방적으로 남편을 빼앗아 가려는 클라우와는 다르다.

에디에게는 남편이 그에게 건넨 신뢰가 있었다.

그것이 무르기 짝이 없는 감상이라는 것은 안다.

예전의 그녀에게는 없던 것.

돌아온 이래로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메리안, 세라스 같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조금씩, 조금씩 무언가가 바뀌어 가고 있었다.

차갑던 가슴 안쪽에 따뜻한 온기가 박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 헛된 꿈을 꿀 정도로 물러지지는 않았다.

이미 마계의 침공은 본격화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한서리의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여기서 잘해야 한다.

여기서 실패하면 행복이고 나발이고, 죽도 밥도 안 된다.

한서리는 마음을 놓지 않았다.

바로 옆에 에디가 있더라도 주변의 이상에 최대한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 성실함이, 그녀의 목숨을 구했다.

살기가 한서리의 등골을 꿰뚫음과 동시에, 에디가 손을 뻗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초고속의 금속체가 오라의 장갑을 걸친 에디의 주먹과 충돌했다.

하지만 완벽하게 튕겨 내지는 못했다. 가까스로 경로만 틀어 냈을 뿐, 한서리의 몸은 여전히 그 금속체가 그리는 궤적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

한서리는 고개를 틀어 그것을 피했다.

무시무시한 위력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쾅!

그제야 울리는 충돌음.

바람이 찢어지는 소리, 울려 퍼지는 폭풍.

움직임에 따라오지 못한 긴 머리칼이 찢겨 나가 허공에 휘날렸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것은, 여섯 개 팔을 악몽처럼 휘두르는 가면의 거인이었다.

* * *

한서리가 구상한 작전은 분명히 유효했다.

그녀의 버프를 받은 에디는 아수라를 상대로 충분히 시간을 끌 수 있었고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극대소멸기의 난타에 아수라는 만신창이가 되어 갔다.

“오오오오옷!!”

놈은 스스로가 티아마트의 권속임을 증명하듯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투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싸움이라는 것은 기세만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서졌던 것을 얼기설기 이어 붙여 복원한 수정구가 과부하로 폭발했고, 불과 얼음을 부르던 쌍도가 불에 녹아 소멸했다.

회심의 일격으로 쏟아 낸 보라색 번개의 강물은 삼중으로 전개된 세 마법사의 극대소멸공격에 부딪혀 거꾸로 역행해 아수라의 몸 절반을 날려 버렸다.

초고열의 여파에 외피가 모두 타 버렸다.

몸뚱이 대부분을 소실한 거인이 재를 흩날리며 극대소멸공격의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불타오르는 뼈에서 다시금 근육이 자라나며, 한 손에 남아 있는 차크람을 단단하게 움켜쥐었다.

“막아요!!”

한서리가 외치자마자 아수라의 도주를 막기 위해 준비되어 있던 수많은 마법들이 터져 나왔다.

중력 마법이 차크람을 아래로 잡아채고, 쏘아져 나온 번개가 아수라의 근섬유를 태웠으며, 바깥에 펼쳐진 원형의 장벽이 차크람의 동선을 가로막았다.

“크아아아앗!”

아수라는 그 와중에도 무시무시한 완력을 발휘하여 차크람을 집어던졌다.

바깥에 펼쳐진 장벽을 부수고 하늘을 향해 쏘아져 날아간다.

하지만 한서리가 파 놓은 함정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날아가는 차크람의 뒤편에서 파란 번개가 터져 나왔다.

콰르르릉!!

도주를 차단하기 위해 은신하고 있던 저격수가 극대소멸공격을 발사하여 차크람을 요격한 것이다.

천둥 소리를 뒤로하고 뻗어 나간 고열의 에너지가 커다란 금속 덩어리를 질질 녹이고 끓였다.

기화된 차크람이 허공에서 소멸해 버렸다.

“됐어!”

퇴로를 완벽히 차단했다.

그 모습을 눈으로 확인한 누군가가 환성을 질렀다.

차크람으로 향한 시선.

순조롭게 흘러간 작전의 성공으로 생긴 방심.

아수라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순식간에 몸을 복구시킨 놈이 재빨리 후위의 진형 안쪽으로 파고들어왔다.

남아 있는 무기는 금강저 한 자루.

그것을 빼면 맨몸이나 마찬가지지만 티아마트의 권속은 육체 자체가 궁극의 무기였다.

사방으로 뻗어 나간 주먹이 주변의 인간들을 고깃덩어리로 만들었다.

“이 자식!”

극대소멸공격의 사선에 걸리지 않기 위해 거리를 벌리고 있던 에디가 순식간에 따라붙었다.

인류 최속이라 불리는 주먹이 장전되고, 뻗어 나오기 직전에 아수라가 움직였다.

일부러 힘을 조절한 것인지, 놈은 주먹에 맞고 쓰러져 꿈틀거리고 있던 인간을 주워 앞을 가로막았다.

“……!!”

순간적으로 에디의 동작이 멎었다.

“미안하군.”

그 틈을 노리고 날아든 거인의 발차기가 에디의 방어 위에 꽂혔다.

포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에디의 상체가 튕겨져 날아갔다.

가까스로 중심을 다잡은 에디가 주먹을 쥐었을 때, 여섯 팔의 괴물은 인질로 삼았던 인간을 던져 버리고 저 먼발치에서 달려 나가고 있었다.

“이 개새끼가!”

감히 장난질을 쳐?

분노한 에디가 거인을 쫓아 뛰쳐나가려 하는 순간이었다.

“쫓아가지 마요!”

호통 소리가 그를 멈춰 세웠다. 고개를 돌리자 차갑게 굳은 한서리의 얼굴이 있었다.

“쫓아가면 안 돼요. 아무리 교수님이라도 혼자서는 못 당해요.”

그녀는 잠깐 사이에 빨간 점으로 보이는 아수라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신장 5미터 32센티의 괴물은 무시무시한 각력을 발휘해 자동차보다도 빠른 속도로 전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빠르긴 하나 에디라면 따라갈 수 있다.

실력이 있는 전위라면 따라잡지는 못해도 쫓아가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모두 후위였다.

후위란 기본적으로 대포.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화력이지 기동력이 아니다.

나머지 사람들에게 에디처럼 아수라를 따라가면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그 말뜻을 깨달은 에디가 욕설을 쏟아냈다.

한서리의 주도로 작전을 이끌어 나가던 모두가 안타까운 탄식을 흘렸다.

작전은 실패했다.

아쉬운 결과였다.

그래도 성과는 있었다.

착실하게 뒷정리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을 지휘하며 한서리가 말했다.

“끝장을 내진 못했지만 아수라의 전력은 확실히 깎였을 겁니다.”

“어떻게?”

회복 마법을 가진 후위에게 치료를 받던 에디는 물끄러미 파란 머리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한서리는 침착하게 설명을 이었다.

“놈이 다루는 무기는 무한정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처음 봤을 때는 새것처럼 깨끗하던 무기들이, 오늘은 상처투성이였어요. 똑같은 걸 계속 써 왔다는 거죠. 그때 부서졌던 수정구를 이어 붙인걸로 봐서는 어느 정도 수리 능력은 있는 것 같지만…… 없어진 물건을 다시 만들어 내지는 못할 거예요.”

“놈의 무기가 어디서 난 건지는 아직 모르잖아? 설령 없어졌다 해도, 어디선가 새로운 무기를 꺼내 올 수도 있지.”

“새로운 걸 꺼내 온다 해도 이전에 쓰던 물건보다는 효용이 낮은 물건일 겁니다.”

“어떻게 그걸 확신하지?”

“더 좋거나 비슷한 물건이 여러 개 있었다면 나타날 때마다 무기를 바꿔 가며 들고 나왔을 테니까요. 그게 불가능하니까, 오늘처럼 놈을 공략할 기회가 있었던 거죠.”

맞는 말이었다.

아수라가 매번 다른 능력을 가진 무기를 갖고 나왔다면 그 공략 난이도는 지금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을 것이다.

에디는 흠 하고 팔짱을 꼈다.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이전처럼 성대하게 날뛰진 못하겠군.”

한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서 피해는 나올 거예요. 하지만 감수할 만한 피해일 겁니다.”

“차원 균열까지 얼마나 남았지?”

“지금까지의 속도로 계산하면 4일 거리예요. 하지만…….”

“누님 성격이면 이틀 내에 승부를 보자고 하겠군.”

앞으로 이틀 간, 인류는 모든 여력을 쥐어짠 총력전을 벌이게 될 것이다.

노제는 아수라가 약화된 틈을 타 모든 병력을 휘몰아쳐 티아마트를 마계로 추방시키려 할 것이고, 아수라를 포함한 티아마트의 권속들은 어떻게든 그것을 막아 내려 할 것이다.

이제부터가 승부처였다.

그리고 승산은 충분했다.

한서리는 자연스럽게 그다음을 생각했다.

어쩌면 삼 일 뒤에는 남편과 함께하는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시간 역행의 충격으로 기린이 무너졌고, 남편의 일격으로 벨제불이 타격을 입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반신을 끌어내고 있는 티아마트를 추방해 낸다면.

세 마신들은 모두 휴식기에 들어갈 것이다.

영겁을 산 그들에게는 찰나이겠지만 인간에게는 평생에 가까운 시간.

어쩌면 이번 일을 마지막으로 큰 사건 없이 여생을 즐기며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미래를 그리자 벌써부터 가슴이 뛰었다.

“하아…….”

한서리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마른 입술을 쓰다듬었다.

못 본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남편이 보고 싶어졌다.

그 품에 안겨 어리광을 부리고, 못된 장난을 쳐 부끄러워하는 그이의 모습을 구경하고 싶다.

과거로 돌아와 맞이했던 첫날밤의 기억.

뜬금없이 떠오른 그 기억이 그녀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한서리는 양손을 들어 살짝 달아오른 뺨을 가렸다.

멍청하긴. 몸이 젊어지니까 네가 진짜로 소녀라도 된 줄 알아? 정신 차려!

발간 볼을 철썩철썩 치며 달뜬 마음을 바로잡는다.

그래도 일단 다시 그이를 보면 키스부터 받아야겠다고 다짐하는 찰나에.

저 멀리서 하늘 위로 솟아오르는 신호탄의 불빛이 보였다.

무언가에 가로막혔는지 터지지 못하고 도중에 소실되긴 했지만 하늘로 쏘아져 나가는 불빛 자체는 분명히 보았다.

오싹-

서늘한 기운이 목덜미를 덮쳤다.

“뭐야?”

에디 역시 그 불빛을 발견했다.

그는 고개를 기울이며 불꽃이 솟아오른 방향을 쳐다보았다.

이내 쿵,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가벼운 진동이 울려 퍼졌다.

저 먼 지평선에서 불빛이 흐드러지며 사방으로 번지는 것이 보인다.

확실했다.

그것은 분명 전투의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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