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65화
딱 보아하니 이중에서 저 소리의 근원을 아는 사람은 없다.
에디는 곧장 앞으로 뛰쳐나가 강화된 시력으로 신호탄이 솟아오른 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발견했다.
그곳으로부터 빠르게 접근해 오는 황금색 오라를.
후우우우웅!
고속 이동으로 일으킨 바람을 몰고 다니며 훌쩍 뛰어오른 세라스가 에디의 옆에 착지했다. 그 뒤를 따라 검은 그림자로 몸을 감싼 김건이 땅바닥에 내려앉는다.
두 사람은 상처투성이였다. 에디가 놀라 물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이야기할 시간 없어요! 피해요!”
그렇게 말한 세라스가 경고성을 지르며 스쳐 지나갔다.
그림자의 갑옷을 걸친 김건은 그대로 사람들을 뚫고 한서리에게로 달려갔다.
도대체 왜 그렇게 난리를 치냐고 물을 필요는 없었다.
이 자리의 모두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한 마력이 저편에서 발현.
김건과 세라스가 달려온 방향으로부터 희끄무레한 동체가 산처럼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거대한 날개가 좌우로 펼쳐진다.
길게 솟은 뼈와 다 찢어진 피막으로 이루어진 날개.
그 아래로 우둘투둘 솟은 척추가 물결치며, 훤히 드러난 늑골과 갈비뼈의 사이로 텅 비어 버린 공간이 보인다.
살점 한 점 없는 팔다리 위로 흐르는 검은 기운이 근육처럼 수축하며 거체가 몸을 일으켰다.
본 드래곤.
기린의 종속인 드래곤이 죽고, 그 시체를 벨제불의 마기가 잠식하여 태어난 괴물이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두 눈두덩이로 푸른빛을 뿌리는 파충류의 두개골이 턱을 벌렸다.
끼에에에에에에엑────!!
괴성이 터졌다.
그 소리에서 터져 나온 충격파가 폭풍이 되어 이쪽까지 흙먼지를 몰고 왔다.
에디의 경악 섞인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런 씨벌! 저건 또 어디서 튀어나왔어!”
본 드래곤을 발견한 모두가 놀라서 뛰쳐나왔다.
남편으로부터 짧게 상황을 전달받은 한서리가 빠르게 모두의 몸에 버프를 뿌렸다.
날개를 펄럭이며 고속으로 접근해 오는 본 드래곤이 아가리를 벌렸다.
그 가운데에서 흑광구(黑光球)가 증폭했다. 한서리가 외쳤다.
“피해요!”
───────!
검은색 광포가 캠프 위에 꽂혔다.
납음부존지망.
과도한 침식으로 인한 반작용으로 물질을 원자 분해해 버리는 흑색의 에너지.
하지만 본 드래곤이 쏘아낸 그것은 마인들이 사용하는 것과는 그 범위와 규모에서 차원이 달랐다.
콰콰콰콰콰!
멸살의 폭포수가 범위 안에 있는 모든 물질을 증발시키며 나아갔다.
미처 회피하지 못한 인간들이 녹아 스러지고, 보급품을 담은 전투 차량이 증발.
그러고도 힘이 남은 검은 기운은 지면을 파 내리며 한순간에 평평한 대지에 거대한 크레이터와 땅굴을 뚫어 버렸다.
대기가 찢어지고 지반이 붕괴했다. 파괴의 폭음이 주변을 휩쓸었다.
“뭐야? 뭐야? 뭐야?”
가까스로 그것을 피한 노바가 지면을 구르며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토해 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다.
기린도 아니고 벨제불의 권속이 갑자기 튀어나오다니!
티아마트도 마찬가지지만 벨제불의 권속은 숨어서 지낸다는 것을 모른다.
이성 따윈 없고 오로지 벨제불의 욕망에 따라 모든 것을 침식하고 지배하기 위해서만 움직이는 괴물들이 아니던가.
그런 놈들이 어딘가에서 숨죽이고 있을 이유가 없다.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파괴하고 집어삼키기만을 반복할 뿐.
예외가 있다면 단 하나.
마인이나 화신, 이성을 가진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을 경우다.
겨우 이성의 가닥을 잡은 노바가 지금의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려는 찰나였다.
달빛에 반사된 빛이 번지며 새하얀 칼날이 목을 노리고 날아왔다.
“위험, 위험.”
노바의 몸을 지키는 원숭이 형태의 골렘, 얏찌가 반응하며 심벌즈로 칼날을 막았다.
연달아 날아오는 칼날.
노바는 얏찌의 등으로 몸을 피하곤 곧장 광선을 발사하며 환영 마법을 펼쳐 도망쳤다.
거리를 벌리는 데에 성공.
한숨 돌린 노바가 공격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윙얀……?!”
아는 얼굴이었다.
노바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찬 윙얀, 노바와 같은 셉텐트리온의 멤버.
그렇게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같이 C클래스의 학생으로서 여러 번 인사를 주고받은 기억이 있었다.
즉 동료이자 같은 아카데미의 학생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노바를 향한 윙얀의 살기는 진짜였다. 광기로 희번덕거리는 검은 눈동자를 마주한 노바의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푸화하학!
윙얀이 내지르는 칼날로부터 오라가 뻗어 나왔다.
셉텐트리온의 칭호를 가진 만큼 그는 S급의 실력을 갖춘 전위였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일반적인 골렘으로는 S급 수준의 전위를 막을 수 없다.
순식간에 얏찌의 심벌즈가 조각났다.
충실한 골렘은 온몸을 던져 주인을 지켰지만 그렇게 버티는 것도 잠깐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본 드래곤, 그리고 이어진 아군의 공격 때문에 당황한 노바가 패닉에 빠졌다.
사고가 느려졌다. 머리가 뻑뻑하게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싸움터에서는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 올 수 있는 실수.
하지만 노바는 혼자가 아니었다.
퍼억!
어디선가 날아온 주먹이 단박에 윙얀의 머리통을 깨부쉈다.
광기에 물든 청년이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윙얀을 공격한 것은 에디였다. 그는 장갑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외쳤다.
“아군이 아니야! 마인이다!”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며칠 전만 해도 아카데미에서 같이…….”
노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반쯤 머리가 터져 나갔는데도 비틀비틀 몸을 일으키는 윙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피 거품이 질질 흐르고, 머리통이 걷어차인 음료수 캔처럼 찌그러졌는데도 움직이고 있다.
누가 봐도 명백히 정상이 아니었다.
그 손에 쥐어진 검에서 여전히 뿜어져 나오는 오라의 빛줄기를 본 에디가 그 정체를 깨달았다.
“이런 빌어먹을! 이건 마인도 아니야! 데스나이트다!”
죽은 시체, 혹은 해골을 마기로 침식하여 움직이는 것을 일반적인 언데드라고 한다면.
데스나이트는 그것보다 더 상위에 속한 벨제불의 권속이었다.
시체에 남아 있는 정보를 끌어내 생전에 가졌던 능력까지 복원해 낸 개체.
본 드래곤, 그리고 데스나이트.
심지어 데스나이트는 발할라의 학생을 재료로 써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에디는 확신했다.
근처에 네크로맨시에 특화된 기술을 지닌 마인이 있었다.
그것도 발할라의 교수급에 속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어마어마한 악당이었다.
살기.
에디의 머리털이 곤두섰다.
오라가 들끓었다. 일순간에 몸 전체에서 뽑아낸 오라로 전신을 방어.
너무나 비효율적인 운용이었지만 정답이었다.
사방에서 쏟아져 나온 검은 가시가 그를 찔렀다.
“캇!”
기합을 지르며 오라를 발출하자 빽빽하게 솟은 가시가 부러져 후드득 떨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이내 둥그렇게 뭉치더니, 마치 생명이 부여된 액체마냥 에디를 덮쳐 왔다.
뭔진 모르겠지만 아군을 끼고 싸울 만한 상대는 아니다.
멍청하게 서 있는 노바를 옆구리에 낀 에디가 급속도로 후퇴했다.
그런 그를 추격하는 검은색 괴물을 황금빛 대검이 틀어막았다.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검폭으로 벽처럼 공간을 차단.
그리고 그 끝에 손잡이를 쥔 세라스가 허공에서 춤췄다.
대검이 질주하며 어둠 속에 녹아들어 있던 한 사람의 그림자를 베었다.
핫, 하는 경박한 목소리와 함께 그 그림자와 검은 괴물이 후퇴했다.
언젠가 들어 본 목소리.
언젠가 본 기술.
세라스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제일 먼저 보호해야 할 그들의 지휘관을 찾았다.
어디선가 튀어나온 괴한들을 물리치고 있는 김건, 그리고 아이스 골렘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있는 한서리를 발견했다.
한서리는 높은 곳에서 사방을 둘러보며 커다란 목소리로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규합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머리 위에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서ㄹ……!”
세라스가 입을 벌리자마자 한서리의 머리 위로 기환마위로 몸을 이동시킨 한 여자가 출현했다.
그녀는 그대로 떨어지며 손에든 단검으로 한서리의 정수리를 내리찍었다.
그리고.
퍼억-!
그런 여자의 옆구리에 발차기가 박혔다.
금색 꽁지머리가 휘날린다.
한서리가 괜히 김건을 전방에 내세운 것이 아니었다.
아이스 골렘의 그림자에 숨어 있던 알리시아 비칸테르가 튀어나와 한서리를 습격하는 여자를 걷어찬 것이다.
“큭!”
튕겨져 나간 여자가 검은 아지랑이를 남기며 허공에서 증발했다.
순간적으로 짧은 거리를 이동해 싸움터의 외각에서 다시 출현했다.
그런 여자를 포착한 알리시아가 재빠르게 화살을 내쏘았다.
거의 총탄에 비견될 정도의 속도로 날아간 화살이었다.
그와 동시에, 한 남자가 여자의 앞을 막아서더니 손을 휘둘렀다.
그 손끝을 따라 펼쳐진 검은 장막이 알리시아의 공격을 모조리 튕겨 냈다.
“그러게, 함부로 까불지 말라니까.”
“젠장. 저 여자는 또 뭐야?”
한서리 일행을 습격한 남녀는 이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도 태평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알리시아가 다시 시위에 화살을 메겼다.
남자를 추적하던 세라스가 오라를 끌어올리고, 현재의 주적이 누구인지 깨달은 김건과 에디가 몸을 움직이려는 찰나.
하늘에서 떨어진 무언가가 모두의 돌진을 막아 세웠다.
하나하나가 인간만 한 관절들이 부딪치며 다다다닥- 소리를 낸다. 촘촘히 이어진 뼈가 지면을 긁으며 흙먼지를 피워 올렸다.
본 드래곤이 내려친 꼬리가 한서리 일행과 두 남녀를 갈라놓은 것이다.
“그만.”
어디선가 들려온 낮은 목소리가 전장을 꿰뚫었다.
단순히 성대를 통해 낸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텔레파시처럼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머릿속에 박혔다.
전투가 멈췄다.
습격을 가해 왔던 데스나이트들이 모두 물러섰다.
건물 같이 서서 그 크기만으로도 좌중을 압도하는 본 드래곤이 이를 갈며 날개를 접었다.
“…….”
좌중이 조용해졌다.
공기가 무거웠다.
아무것도 아닌데 삐질삐질 식은땀이 나고, 한증막에 들어온 것처럼 숨 쉬기가 가빠졌다.
뱀 앞의 개구리가 된 것 같은 긴장감이 목을 틀어쥐었다.
그 감각을 처음 맛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한다.
아, 그저 분위기만으로도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리고, 이 감각은 이자리에 있는 모두에게는 익숙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불과 한 시간도 더 지나기 전에 오메가급의 몬스터와 싸웠기 때문이다.
신격이 그들을 찍어 누르고 있었다.
아수라의 신격과는 질이 다르다.
열화 같은 흉폭함을 지닌 아수라와 달리, 음습하고 질척질척한 신격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었다.
모두가 그 존재감을 쫓아 본드래곤의 머리 위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거대한 해골 대가리 위에 서 있는 한 여성을 발견했다.
그것은 발할라의 발키리, 클라우 베리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