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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67화 (67/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67화

박사에게는 못한다고 엄살을 부려 왔지만, 아스타로트에게도 승부사로서의 자존심이 있었다.

그는 꽤 열심히 김건의 기술에 대해 분석해 왔다. 그동안 김건이 노출한 정보를 하나, 둘 취합하여 김건을 이길 방법을 모색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길 수 없다.’ 였다.

여기서 이긴다는 표현은 이쪽이 죽지 않고 상대를 죽인다는 걸 전제로 한다.

오랜 세월을 들이거나 전문적인 팀을 꾸려 김건의 진동 공격에 대해 연구한다면 공략법이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한 사람이 잠깐 짬통을 굴려서 빈틈을 찾을 만한 기술이 아니었다.

그 정도로 김건의 기술은 난해하고 고차원적인 것이었다.

자신보다 강한 전위는 역사를 통틀어서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것이라 호언장담하는 아스타로트에게도 먹는 음식에 독을 타고 싶게 만드는 괴물.

하지만 지금 그의 뒤에는 마인에 한해 부활의 권능을 가진 레이나 아레이드가 있었다.

‘이기지는 못해도, 같이 죽는 건 할 수 있지.’

물론 죽이지는 않는다. 김건은 그의 신이 원하는 제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실력에 경의를 담아 치명상에 가까운 상처는 줄 생각이었다. 그 정도가 아니라면 벨제불의 지배까지 버텨 낸 정신력의 전사를 무력화시킬 수 없을 테니까.

한 수로 끝낸다.

방어를 포기. 아스타로는 가지고 있던 모든 오라를 쏟아 무형기를 생성했다.

그리고 그것을 조작해 김건의 진동이 몸속으로 파고들기 전에 그를 쓰러트릴 기술을 뿜어내려 했다.

그 준비 속도는 섬전.

하나, 아스타로트의 공격이 뿜어져 나오기 직전에, 김건이 움직였다.

앞으로 이어질 김건의 움직임은, 약 3초에 걸쳐서 일어난 일이다.

후의 선을 취한다.

먼저 움직인 것은 아스타로트였으나 공격을 성공시킨 것은 김건이었다.

남자의 몸이 폭발적으로 회전하며 일섬.

일순 무형기가 터져 나가며 초음속의 주먹이 아스타로트의 가슴을 꿰뚫었다.

“……!!”

승부를 가른 것은 두 가지.

김건이 새로이 익힌 에디의 사량발천근과 이전의 납치사건에서 노출된 아스타로트의 기술이었다.

오라를 이용해 인공적인 근골과 근육을 생성해 초인적인 힘을 짜내는 일반적인 강체술과 달리, 에디의 사량발천근은 폭발을 이용해 순간적으로 높은 출력을 낸다.

비유하자면 몸속에 폭탄을 설치하고 그것을 폭발시켜 만들어진 에너지로 주먹을 날리는 것이다.

에디는 한서리의 버프를 뜯어고쳐 사량발천근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고, 김건에게 점화식을 가르쳐 그것을 폭발시킬 수 있도록 했다.

김건의 입장에서는 그냥 불씨만 당겨 주면 되니 F급의 마력적성으로도 사량발천근의 사용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 세라스와 아스타로트의 전투에서 무형기를 본 김건은 한눈에 그 특징을 깨달았다.

오라의 강도를 유지하며 형태를 자유자재로 조작해 완전 공격과 완전 방어를 가능케 하는 초고난이도의 기술.

하지만 완벽하진 않았다.

형태 변환과 강도 부여의 시간차를 극한으로 줄였을 뿐, 정말로 강도를 유지한 채 형태를 변환하는 것은 아니었다.

김건은 그것을 노렸다.

무형기가 형태를 바꾸는 순간, 강도를 갖추기 전에 발생하는 불과 콤마 몇 초의 미세한 시간 차.

그 바늘구멍 같은 빈틈을, 사량발천근으로 만들어 낸 초음속의 찌르기로 꿰뚫었다.

아스타로트는 당하는 순간에 그의 패인을 모조리 깨달았다.

이래서 남들 앞에서 함부로 기술을 보여 주기가 싫은 거다.

김건이 이렇게 강력한 부무장을 준비해 뒀는지도 몰랐다.

뒤늦게 후회해 보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일격에 심장을 당했다.

전투 불능은 당연.

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의식이 김건의 다음 움직임을 예측했다.

아스타로트가 입을 벌렸다.

“ㅍㅣ───.”

짧은 한마디가 공기라는 매질을 통해 타인의 귀에 날아간다.

사량발천근으로 가속한 김건은 발을 박차며 그 소리와 나란히 달렸다.

음속으로 날아간 육체, 그것을 따라 쏘아진 주먹이 또 하나의 마인을 분쇄.

“───ㅎㅐ!”

아스타로트의 말이 끊어지는 순간, 클라우의 등 뒤에 서 있던 두건의 남자가 음속의 주먹을 맞고 사지가 분할되어 날아갔다.

마인협회의 우두머리, 박사가 사망.

클라우의 눈이 커진다.

음속을 초월한 물체가 곁을 스쳐 지나가며 남긴 충격파가 볼을 때렸다.

놀란 그녀가 고개를 돌렸을 때, 이미 김건은 그녀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날아오는 채찍을 팔에서 뿜어낸 마기로 방어.

채찍을 타고 진동이 안쪽으로 파고 들어왔다.

어설픈 방어는 포기하고 심장과 뇌를 마기로 감싼다.

일정한 진동을 가진 마기로 급소를 보호하면 한 번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아스타로트가 미리 언급해 주었다.

그 말은 맞았다.

아무리 김건이라도 한 번도 접촉하지 않은 상대의 진동수를 어 그것을 역으로 파고들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 아스타로트가 왜 김건을 상대로 승산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을까.

그건 미극공진동뿐만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김건의 전투 감각을 높게 샀기 때문이다.

극도로 부족한 정보를 그러모아 정답을 추론해 내는 능력.

김건은 클라우의 표정, 태도, 그리고 호흡으로 위화감을 감지.

이미 공격 대상을 바꿨다.

어깨에서 진동이 폭발했다.

방어를 위해 치켜들었던 팔이 순식간에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날아온 두 번째 채찍이, 클라우의 옆머리를 쳐 날렸다.

“윽!”

피를 뿌리며 클라우가 쓰러졌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3초가 경과.

김건이 움직임을 멈췄다.

에디의 사량발천근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힘과 속도를 얻었지만 한순간뿐이었다.

한서리의 버프, 그림자 갑옷, 그리고 몸속에 퍼트린 진동으로 상쇄하긴 했지만 오라로 근골을 보강할 수 없는 그는 사량발천근의 내부 폭발, 초음속의 움직임과 그것을 이용한 타격에서 오는 반발력을 감당할 수 없었다.

전신이 부서졌다.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졌으며 내장에도 충격이 갔다.

그림자의 갑옷이 무너지고 하얗게 피어오르던 서리가 꺼졌다.

김건은 온몸에서 피를 뿌리며 무릎을 꿇었다.

뒤늦게라도 반응해 그를 향해 단검을 찔러 들어가던 마이가 칼을 멈췄다.

한 번 더 찌르면 김건이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

“…….”

일순, 침묵이 흘렀다.

이 자리의 그 누구도 이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많은 일이 일어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김건이 쓰러졌다.

아스타로트가 전투 불능, 박사가 죽고 클라우가 부상을 입었다.

정작 에디라면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했으리라.

음속이라 해도 이곳에 있는 초인들이 반응하지 못할 속도는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 끼어든 김건이라는 변수가 상황을 바꿨다.

육체 능력을 버프에 의지할 뿐인 F급 마력적성에게서 온 방심.

그리고 그 사거리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진동 공격에 대한 경계가 그들의 반응을 늦췄다.

그렇게 나온 결과가 이것이었다.

기울어져 있던 전력의 차이가 지금, 평행을 이루었다.

이 자리를 통제하는 두 사람은 동시에 그것을 깨달았다.

한서리가 외쳤다.

“공격해!”

채찍에 맞아 함몰된 얼굴을 붙잡은 클라우가 소리쳤다.

“다 죽여!”

본 드래곤이 움직였다.

본디 마기를 이용한 네크로맨시 기술에 특화된 박사가 길들인 괴물이었으나, 박사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그 제어권을 클라우에게도 넘겨주었다.

몸길이 수십 미터에 달하는 괴물이 입을 벌렸다.

다시 한번 납음부존지망을 광역으로 발사해 모두를 지워 버릴 생각이었다.

꽈앙!!

그런 본 드래곤의 커다란 턱이 날아갔다.

발을 박차고 총알처럼 튀어 나간 에디가 놈의 머리통을 들이받은 것이다.

본 드래곤이 괴성을 지르며 팔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앗!

바람이 찢어지며 거대한 뼈로 이뤄진 광범위 공격이 날아왔다.

마치 달리던 기차를 붙잡아 휘두르는 것 같은 광경.

“흥!”

에디는 코웃음을 치며 훌쩍 뛰어 그것을 피했다.

하늘 위로 질량을 담은 오라를 발출해 고속으로 착지. 그리고 각력으로 지면을 폭발시키며 나아가 괴물의 몸통에 일격을 먹였다.

폭음과 함께 거체가 들썩이고, 부러져 나간 갈비뼈가 사방으로 튀었다.

음속의 속도와 그것을 가능케 하는 근력.

거기에 순간적으로 생성한 임시 질량의 힘까지 더해지자 그 주먹은 전함의 대포에 맞먹는 위력을 뿜어냈다.

본 드래곤이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아!!”

“덤벼!”

에디는 건물만 한 괴수와 대등한 싸움을 벌였다.

한 괴물과 맞서 싸우는 용자의 결투에 주변이 초토화되어 갔다.

그 난장판 속에서, 다른 전력들이 맞붙었다.

아수라를 상대하기 위해 파견되었던 S급 전위들로 만들어진 데스나이트들이 짓쳐들어왔다.

한서리가 일으킨 아이스 골렘을 따라 줄줄이 소환된 후위들의 골렘이 그 앞을 틀어막았다.

강력한 전위에게 어지간한 골렘은 시간벌이도 못하지만, 이 자리에 소환된 골렘은 모두 한서리의 영역에 있었다.

빠직빠직-

골렘의 등, 목에서 솟아오른 얼음이 무기질로 이루어진 종복들의 몸을 강화해 나갔다.

그렇게 강화된 골렘들이 버티는 사이, 후방에서 전개된 후위들의 화망이 데스나이트들의 접근을 막았다.

일반적으로 전위와 후위의 싸움에서는 화력에 모든 것을 투자한 후위보다 능력치가 고르게 잡힌 전위가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서리가 뿌린 버프의 위력이 전제를 뒤집었다.

막상막하의 접전이 벌어졌다.

칼과 골렘이 부딪치며 불똥을 튀기고, 사방에 흐드러지는 불꽃과 얼음, 전기와 바람의 난타에 세상이 형형색색으로 물들었다.

전체적인 힘 싸움이 비등하다면, 그 싸움의 향방은 각자의 에이스들이 얼마나 활약하느냐에 달려 있다.

콰앙!

황금색 대검과 악몽처럼 꿈틀거리는 검은색 괴물이 충돌했다.

공중에서 튕겨져 나가는 각자의 무기. 오라와 오라의 충돌에 폭발이 터지며 두 사람이 흩어져 지면에 착지했다.

그 한쪽인 세라스가 이죽거렸다.

“제기랄, 그냥 곱게 누워 있을 것이지!”

맞은편에 선 아스타로트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모든 일이 그렇게 쉽게 흘러가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

김건에게 맞아 폭삭 주저앉았던 그의 가슴은 그새 멀쩡히 돌아와 있었다.

‘이번 건 당신이 책임져요!’

여기서는 마인협회의 레이나가 조금 억지를 부렸다.

그녀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평소에 한 마법 도구에 조금씩 마기를 축적해 두었고, 그것을 소모해 한순간에 아스타로트의 심장을 복구해 냈다.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결과를 만든다.

지금 같은 타이밍 싸움에 걸맞은 효율적인 선택이었다.

아스타로트가 가슴 앞에 무형기를 모았다. 천변만화하는 만능의 무기를 부풀리며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10초…… 아니. 5초 안에 끝내 주지.”

방금 전에 김건에게 박살이 났으면서 자신감은 여전하다.

하지만 세라스는 경솔하게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아무리 실력이 늘었어도 그녀는 여전히 아스타로트에 비해 하수였다.

그래도 5초 만에 당하지는 않는다.

각오를 다진 황금의 소녀가 무기를 꼬나쥐었다.

그런 그녀의 등 뒤에 와닿는 온기가 있었다.

온갖 버프를 걸쳐 무지개 같은 빛을 뿜어내고 있는 한서리 팀의 부팀장, 알리시아가 그녀의 곁에 섰다.

“그렇게 쉽지는 않을 거다.”

그녀는 생기 있게 찰랑이는 말총머리를 흔들며 아스타로트를 향해 레이피어를 내밀었다.

“재미있겠는데.”

아스타로트가 웃으며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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