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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68화 (68/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68화

두 금발의 여자와 흑발의 남자가 격돌했다.

또다시 힘의 저울이 평행을 그렸다.

김건은 숨을 고르며 초속으로 승기가 오락가락하는 전황을 분석했다.

다시 한번 몸을 점검해 보지만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전신의 근육이 파열하고 주먹을 날린 손과 팔이 박살.

한계를 넘은 고속 이동에 닳아 버린 관절부는 퉁퉁 부어올라 뇌에서 날린 신호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운이 없었군.’

이럴 때는 어쩔 수 없이 하느님을 탓하게 된다.

그는 클라우의 얼굴을 복원하고 있는 한 여자를 바라보았다.

긴 생머리를 늘어트린 가녀린 여자.

길고 펑퍼짐한 옷을 입어 어딘가의 신부나 수녀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그 하얀 손끝에 떠도는 것은 끔찍하게 희번덕거리는 마기였다.

여자의 마기가 요동칠 때마다 채찍에 맞아 부숴졌던 클라우의 얼굴이 복원되어 갔다.

방금 전에 그가 패퇴시켰던 아스타로트를 회복시킨 것도 저 여자의 공이었다.

김건은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아스타로트를 물리친 김건이 우두머리인 클라우보다 다른 마인을 먼저 노린 것은 이 같은 상황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루키킬러.

기환마위를 특기로 한 암살이 특기인 여자.

회귀한 그가 맨 처음 마인협회와 접촉했을 때, 김건은 그녀에게 진동을 심어 일정한 시간 뒤에 머리가 터져 죽도록 만들었다.

그 루키킬러가 살아 있었다.

진동이 파훼당한 것이라면 김건의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그 가능성은 제외.

그럼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머리가 터져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을 만한 능력이 마인협회에게 있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김건은 클라우의 뒤에 있던 두 사람을 노렸다.

처음으로 보는 두 마인.

그들 중 하나가 부활에 가까운 위력을 가진 회복 기술을 가졌을 거라 예상한 것이다.

그 예측은 맞았다.

한 번에 두 명을 처리할 방법이 없어서 하나를 선택했는데 그것이 틀렸을 뿐.

정보 부족, 시간 부족으로 인한 실책이었다.

김건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클라우 베리스가 회복하면 이쪽이 불리해진다.

그가 쓰러진 뒤 수십 초가 지났다.

몸을 회복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

하지만 숨 한 번 골라 체력을 회복하듯, 고갈되었던 마력을 회복시키는 것은 가능했다.

가까스로 긁어모은 극소량의 마력을 진동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것을 몸 밖으로 발출하려는 순간, 클라우의 눈이 번뜩였다.

그녀의 손에서 검은 마기가 뛰쳐나와 김건을 물어뜯었다.

진흙처럼 온몸을 휘감으며 검은 기운이 등을 통해 안쪽으로 파고 들어왔다.

김건은 몸이 마비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마기가 신경계를 침식해 오고 있었다.

마력의 제어가 흐트러진다. 김건이 짜낸 진동이 허공에 녹아 사라졌다.

“가만히 있어. 금방 정리할 테니까.”

클라우가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켰다.

제압된 김건은 가만히 그녀를 쳐다보았다.

감정이 없는 무기질한 눈.

이전에도 무서운 눈을 하긴 했지만 그때는 맹수가 모르는 생물을 경계하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은 완연한 적의를 띠고 있었다.

한서리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분노나 짜증은 없다.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깊고 냉혹하다.

멀다. 너무.

찌릿-

왠지 모를 통증이 가슴 언저리에서 느껴졌지만 무시한다.

어차피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돌아올 때까지 박사를 살려 놔. 그의 힘이 필요하니까.”

“알겠습니다. 주인님.”

레이나는 충실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에 흩어져 있는 박사의 시체를 그러모으기 시작했다.

“후…….”

클라우가 마기를 끌어올렸다.

신격이 급증하며 단번에 그녀의 등에서 벨제불의 것이기도 한 검은색 날개가 뿜어져 나왔다.

검은 여자가 손을 떨치자, 보이지 않는 파장이 전장을 휩쓸었다.

그 효과는 금방 드러났다.

한서리의 진형에 있던 한 후위가 옆사람을 향해 번개를 내쏘았다.

“……!?”

한서리의 버프와 기본 방어 마법 때문에 막히긴 했지만 까딱하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번개를 맞은 사람이 깜짝 놀라 외쳤다.

“뭐야? 미쳤어?”

“아니야! 내가 그런 게……!”

아군에게 공격을 가한 후위는 그렇게 변명을 하며 손을 내뻗었다.

그 안쪽에서 튀어나온 푸른 전기 뱀이 놀란 아군의 머리에 작렬.

한 사람이 통구이가 되어 쓰러지는 건 순간이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런 씨발!! 가까이 오지 마! 이 개새끼들아!”

누군가는 욕지거리를 하며 사방으로 마법을 난사하고,

“힉, 히이이익! 살려 줘어엇!”

누군가는 비명을 지르며 지면에 머리를 박고 코를 훌쩍였다.

“뭐 해! 이 병신 새끼들아!”

아군의 행태에 분노하는 사람까지.

클라우가 사용한 것은 단순히 착란을 불러일으키는 마법이었다.

세뇌보다 훨씬 간단하고 쉬우며, 마력의 소모도 적다.

정신계열의 마법 중에 이것만큼 쉽게 다수의 적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마법은 없었다.

클라우의 참전에 한서리가 이끌던 진형이 빠르게 붕괴하며 순식간에 전황이 기울었다.

티아마트의 처리 문제도 있고 해서 되도록 온건하게 넘어가려 했지만, 이제 온건이라는 말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여기까지 왔다면 후환이라도 남기지 않는 것이 낫다.

클라우는 차가운 눈으로 한서리를 쳐다보았다.

‘너 때문이야.’

네가 양보를 모르고, 좋은 걸 독점하니까, 다 죽일 수밖에 없는 거야.

그때, 클라우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한서리는 그 일그러진 욕망을 마주했다.

골렘의 방벽이 뚫렸다.

그 틈새로 밀고 들어온 데스나이트들이 착란에 빠진 사람들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에디가 고함을 질렀다. 그는 온몸을 피로 물들여 가며 본 드래곤과 싸웠다.

세라스와 알리시아가 신음을 흘렸다.

스친 상처로부터 번진 마기가 그들의 몸을 좀먹고 있었다.

비명과 욕설로 가득한 절망의 구렁텅이.

그 속에서, 파란 여자는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극심한 혼란 속이었기에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삐이이────!!

지평선 끝자락에서 올라오는 새빨간 신호탄이 있었다.

강대한 적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였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가 아니었다.

릴레이를 하듯 저편에서 계속해서 신호탄이 순서대로 쏘아져 올라왔다.

밤하늘에서 그것을 내려다보면 빨간 연기가 점점이 솟아 올라 특정한 방향을 목표로 직선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클라우는 한서리의 미소를 보고 나서야 그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았다.

무언가가, 고속으로 이곳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탐색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것은 이미 눈앞에 들이닥쳐 있었으니까.

파르르륵!

커다란 날개가 홰를 치는 소리와 동시에, 하늘로부터 붉은색 산이 떨어졌다.

착지하는 충격만으로 폭발이 터진다.

그 충격에 휩쓸린 데스나이트들이 종잇장처럼 날아갔다.

폭발의 중심으로부터 불길과 괴성이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아아!!

그것이 날개를 펼치자 주변을 감싸던 흙먼지가 한번에 터져 나갔다.

새빨간 비늘이 물결친다. 기다란 목이 회오리치며 그 끝에 달려 있는#달린 파충류의 대가리가 환하게 드러났다.

놈의 이빨 사이로 비어져 나온 화염이 열화지옥의 그것마냥 사납게 몸부림쳤다.

드래곤.

기린의 권속 중 제일 강하다고 평가받는 존재.

“카아아아앗!!”

새빨간 비늘을 가진 드래곤이 발과 날개를 박찼다.

쾅! 쾅!

지면을 울리며 믿을 수 없는 거체가 그와 비슷한 크기를 가진 본 드래곤을 덮쳤다.

커다란 발톱이 본 드래곤의 어깨를 박살 냈다.

뱀처럼 파고 들어온 이빨이 뼈만 남은 괴물의 목줄기를 물어뜯었다. 괴수와 괴수가 얽히며 대기가 터지고 땅이 흔들렸다.

드래곤이 본 드래곤의 목을 문 채 마법을 발동했다.

극대소멸공격인 플레어가 대량으로 터져 나와 뼈를 태웠다.

본 드래곤은 몸을 이루고 있는 마기를 끌어올려 그것을 방어하며 마찬가지로 납읍부존지망을 뿜어 드래곤의 몸통에 꽂아 넣었다.

새빨간 비늘과 육체가 검게 녹아 스러지자 드래곤이 비명을 질렀다.

날개를 휘둘러 본 드래곤의 머리를 후려쳤다.

본 드래곤은 악을 쓰며 팔을 휘둘러 드래곤을 내동댕이쳤다.

놈들이 뒤얽히며 흘린 극대소멸공격의 여파에 지면이 녹아 용암이 흐르고, 침식된 대지가 무너져 운석이라도 처박힌 것 같은 크레이터를 만들었다.

스케일이 다른 싸움에 온 세상이 울었다.

괴수들이 뒹굴 때마다 천둥 같은 소리가 터지고 폭풍우가 휘몰아쳤으며 지진이 일었다.

실시간으로 주변의 지형이 바뀌어 갔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 된 인간들이 뿔뿔이 흩어져 나왔다.

“이건 또 뭐야!”

티아마트의 영역권에서 벨제불의 추종자가 나타난 것만 해도 심각한 일인데, 이제는 기린까지 지랄이다.

계속해서 초특급 사건을 마주한 에디가 진저리를 치며 소리쳤다.

“미쳐 버리겠군!”

오늘 하루, 아수라를 상대한 것만 해도 일반적인 영웅의 입장에서는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아까부터 그에 준하는 일이 몇 번이나 터지는 건지 모르겠다.

돌아 버리겠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계속된 충격을 겪은 사람들의 정신 감각이 하나둘 마비되기 시작했다.

“염병할!”

“그래, 씨발! 오늘 한번 죽어 보자!”

정신계열 마법이란 기본적으로 주변의 상황까지 고려되어 펼쳐지는 법이다.

갑작스레 나타난 드래곤이 분위기를 깨부숴 버린 탓에 클라우의 마법이 풀렸다.

심하게 당황해서 오히려 냉정해진 사람들은 순식간에 착란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이 와중에도 그들을 죽이기 위해 덤벼 오는 데스나이트들을 상대했다.

클라우의 마법에 휘둘리는 사이 많은 전력을 잃었지만 본 드래곤에게서 해방된 에디가 싸움에 끼어들자 다시금 균형이 맞춰졌다.

방금 전보다 훨씬 더 격렬한 난전이 일어났다.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술을 네댓 말이나 퍼 마신 것마냥 시야가 좁았다. 그저 죽지 않기 위해 눈앞의 상대만 보며 싸웠다.

그 대혼돈 속에서, 한서리는 클라우를 바라보았다.

아무도 그녀를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그 시선을 눈치챈 클라우만이 짜증을 표출하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다.

두 여자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주변은 너무 소란스러운 나머지 오히려 적막했다.

소음으로 이루어진 침묵 속에서, 두 사람은 외다리에서 만난 원수마냥 오롯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한서리가 팔을 들어 올렸다.

얼굴을 가리며 손가락을 굽혀 무언가를 끌어내리는 동작을 취했다.

그렇게 손을 내리자 그 끝을 따라 새하얀 면사포와 백색의 드레스가 펼쳐져 나왔다.

한순간에 푸른색 소녀가 사라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순백의 여성만이 남았다.

그것을 본 클라우의 머리칼이 분노로 솟아올랐다.

그래, 어디 한번 해 보자.

이를 악물며 한서리와 똑같은 동작을 취한다. 손에서 흘러나온 검은 면사포와 검은 드레스가 그녀의 몸을 감쌌다.

순백의 드레스 위로 황금색 비늘이 진동하며 시공간이 일그러졌다.

칠흑의 드레스 위로 검은색 마기가 피어나며 아지랑이만이 남았다.

한순간에 두 여자의 모습이 사라지고, 중앙에서 맞부딪혔다.

폭음.

───────!!!

신격과 신격이 충돌하며 폭발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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