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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69화 (69/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69화

신격과 신격이 충돌하며 폭발이 터졌다.

그 여파에 휘말린 아스타로트와 세라스, 알리시아가 기겁을 하며 몸을 피했다.

“홀리 쉿!”

“이젠 별…… 화신이 둘이야?!”

검은색과 흰색이 허공에서 뒤얽히며 나선을 그리며 움직였다.

그들이 충돌할 때마다 터져 나온 얼음 꽃이 흐드러지고, 얼어붙은 마기가 검은 눈이 되어 하늘에 휘날렸다.

초고속으로 이동을 계속하는 흑백.

그 모습은 마치 별이 반짝이는 것처럼 보였다.

둘이 뿜어내는 파멸의 에너지가 뒤섞이며 세상이 삐걱삐걱 바스라져 갔다.

“세상에!”

“휘말리면 죽어! 피해!”

화신과 화신의 싸움.

미래의 인간들에게는 신화의 하나로 구전되어 내려갈만한 싸움이 황폐한 대지 위에서 펼쳐졌다.

그 대지의 한가운데에서, 그들의 충돌을 감지한 자가 있었다.

고오오오오-

대기가 요동쳤다.

황토빛 황무지로 가득한 마계화 지대의 상공에 떠 있는 차원의 균열.

찢어질 듯이 부풀어 있던 일그러진 공간이 급격히 확장을 시작했다.

억지력이 반응했다.

빠른 속도로 먹구름이 모여든다.

구름과 구름이 부딪혀 뿜어낸 벼락이 차원의 균열을 때리고, 지면에서 셀 수도 없는 회오리가 몸을 일으켰다.

급격한 자기장의 변화로 오오라가 피어오르며 허공에서 방사된 플라즈마가 별빛처럼 쏟아져 내렸다.

콰르르르릉!

균형을 무너트리는 존재를 발견한 법칙이 분노를 토해 내며 천둥이 세상을 찢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법칙조차도 거스를 수 있는 존재였다.

벌어진 차원의 틈새로 고성이 쏟아져나왔다.

크아아아아아아아────!!

그건 소리라고 할 수도 없었다.

폭발이었다.

막대한 울림에 상공의 먹구름이 모조리 터져 나갔다.

내리꽂히던 벼락이 튕겨 나가고 짐승처럼 요동치던 허리케인이 찢어졌다.

지축이 붕괴하기 시작한다.

주변의 모든 생물체가 사멸. 그저 광풍만으로도 모든 것이 사방으로 분해되어 나갔다.

세상의 종말을 구현해 낸 듯한 광경 속에 살아 있는 존재가 딱 하나.

여섯 개의 팔을 가진 붉은 피부의 거인.

태극 가면을 뒤집어쓴 티아마트의 권속, 인간들에게 아수라라 불리는 존재가 부르짖었다.

“주인이시여, 아직 때가 아닙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그는 사방에서 몰아닥치는 번개와 플라즈마가 뒤섞인 바람에 온몸이 찢겨져 나가면서도 간절하게 외쳤다.

“저곳에서 날뛰고 있는 것은 기린과 벨제불의 찌꺼기일 뿐입니다! 존귀하신 분이 직접 나서실 일이 아닙니다! 부디, 부디 재고를!”

그 대답은 그저 단순한 외침이었다.

──────!!

티아마트의 외침에 직격당한 아수라가 지면에 처박혔다. 한순간에 수십 미터를 뚫고 들어가 구덩이 속에 매몰되었다.

티아마트는 오로지 피와 전투를 갈구하는 존재.

바로 앞에, 그의 흥미를 자극하는 전투가 일어나고 있었다.

불멸자에게 자제심이라는 것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본체에서 떨어져 나온 반신.

그것이 가지고 있는 모든 신력을 이용해 강림을 시도했다.

억지력이 그것을 막으려 요동치지만, 세계의 법칙마저 티아마트의 욕망을 이길 수는 없었다.

알처럼 티아마트를 가두고 있던 차원의 껍질이 깨지기 시작하며, 차원 사이에 난 구멍을 뚫고 드디어 티아마트의 신체가 이 세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권속처럼 붉은 팔.

피부 한 점 없이 근육으로만 이루어져 말라붙은 식물처럼 보이는 팔이 공간을 찢고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상공에서 튀어나온 손이 지면을 짚자 대륙이 뒤흔들렸다.

그것은, 그저 컸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고층의 빌딩에 맞먹는다.

길게 뻗은 근육덩어리의 팔은 추정 길이 500미터.

팔 하나가 지면에 몸을 뉘인 것만으로 아무것도 없던 황무지에 산맥이 생겨났다.

사람의 것과 비슷한 구조를 가진 팔이 위성 궤도에서 육안으로 보일 정도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팔을 따라 어깨와 몸통이 삐져나오고, 거대한 머리가 등장.

그 얼굴은 마치 분노하는 화염을 그대로 굳혀 놓은 듯했다.

사방으로 뾰족한 뿔이 뻗쳐 있고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일그러져 있다. 그리고 그 안쪽에 용암처럼 타오르는 한 개의 눈이 박혀 있었다.

모습을 드러낸 티아마트가 다시금 울부짖었다.

손으로 지면을 짚고 차원의 틈새로 몸을 끌어낸다.

몸통 절반이 그것을 따라 비어져 나왔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신력이 다했다.

억지력이 움직였다.

성난 법칙이 분노의 철퇴를 휘둘러 왔다.

한순간에 중력이 치솟으며 공간이 굴절했다.

찢어질 듯이 일그러졌던 공간이 한순간 수축해 제자리로 돌아갔다.

늘어났던 고무줄이 줄어들듯 단숨에 차원의 균열이 복원.

한순간에 구멍이 닫히며 그 사이에 끼어 있던 티아마트의 상체가 절단되었다.

단면으로부터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양의 피와 함께, 반쪽만 남은 티아마트의 몸통이 추락했다.

굉음이 터지고 막대한 질량의 충격에 흙먼지가 피어올랐지만 억지력의 간섭 역시 종료되었다. 모여들었던 구름이 물러나며 폭풍이 잦아들었다.

반쪽짜리 강림이 성공했다.

자유를 얻은 티아마트가 움직였다.

싸우는 데 필요한 것은 오로지 생명뿐이다.

살아만 있다면 모든 생명체는 어떻게 해서든 싸워 나갈 수 있다.

전투 그 자체인 존재는 그것을 증명하듯 반쪽만 남은 몸으로 손을 치켜들었다.

500미터짜리 팔이 창공을 가르지르며 탑처럼 섰다.

거대한 존재가 달빛을 가려 만들어진 그림자가 온 세상을 덮었다.

붉은빛이 소용돌이치며 그 막대한 투기가 주먹에 모여들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

티아마트의 강림을 위해 설계된 아수라의 계획.

그를 물리치기 위해 짜 올려진 인류의 작전.

그리고 그 안에서 펼쳐진 두 화신의 개인적인 다툼.

싸움의 신은 오로지 일격으로 보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만들어진 모든 사건을 분쇄해 버렸다.

주먹이 떨어졌다.

─────

단순한 물리적 충돌이 아니다.

아직도 그 원리를 파악하지 못한 투기를 이용해 증폭시킨 위력이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지각을 쪼개 버렸다.

마계화 지대가 존재하는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 지진이 발생.

주먹에 직격당한 일대가 붕괴하며 토사가 하늘 높이 솟구친다.

충격파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흙과 돌로 이루어진 해일이 그 뒤를 쫓아 달려 나갔다.

고오오오오!!

가장 처음 그것에 휘말린 것은 역설적이게도 티아마트의 권속들이었다.

놀라거나 공포에 질리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다행일까.

그들은 여전히 분노에 찬 괴성을 지르며 그들의 신이 내린 평등한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다음 희생자는 티아마트의 추방을 위해 전진 중이던 영웅들의 군세였다.

반경 10km에 달하는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던 그들은 티아마트가 차원의 균열에서 요동치기 시작한 순간, 그것을 인지하고 대비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공격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했다.

당연하게도, 그들에게 천체 충돌급의 충격에 대비해 작성된 매뉴얼 따윈 없었다.

중심부의 충격에 비해 많이 격감되었다 하더라도 그 충격은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지휘 체계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사람들은 알아서 스스로의 목숨을 챙겼다.

후위들은 힘을 모아 보호막을 형성했으며, 전위는 몸으로 충격파를 받아 내며 다가오는 토사의 해일을 피해 발을 박찼다.

이것도, 저것도 안 되는 사람들은 그저 조금이라도 그것을 피하기 위해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티아마트의 공격 목표였던 한서리와 클라우의 파티 역시 절멸의 충격파에 휩쓸렸다.

그 재앙 속에서도 싸움을 이어 갈 수 있는 사람 따윈 없었다.

떨어져 나온 흰색 화신이 높이 수십 미터에 달하는 얼음 장벽을 형성하며 그 뒤를 드래곤이 받쳤다.

검은색 화신은 본 드래곤이 담고 있던 힘을 폭주시켜 마기로 만들어진 보호막을 펼쳐 냈다.

“으아아아아아!!”

“살려 줘!!”

사람들의 비명. 폭음. 쏟아지는 토사, 계속해서 몰아치는 충격파. 열폭풍.

지진이 지나가고 수십 초 뒤.

울퉁불퉁한 흙더미로 뒤덮인 황무지에서 붉은 거체가 몸을 일으켰다.

날개의 피막이 찢어지고 부러진 비늘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 몸을 이불처럼 덮고 있던 얼음 덩어리가 기화하며 엄청난 양의 수증기를 피워 올렸다.

빨간 비늘을 가진 드래곤이 고개를 쳐들었다.

쿨럭- 짐승이 토하자 피와 함께 부러진 이빨이 굴러 떨어졌다.

그 몸통에 올라타 있던 하얀색 화신이 무지갯빛의 기운을 불어 넣어 주었다.

밑에서 숨죽이던 인간들은 멍하니 그것을 올려다보았다.

“지켜 준 거야…… 우리를?”

눈을 크게 뜬 노바가 읊조린다.

드래곤이 보호해 주긴 했지만 완전하지는 않았다.

노바의 몸은 먼지투성이였다. 몰아닥친 열폭풍에 데여 가벼운 화상까지 남았다.

넋이 나간 듯한 그녀의 앞을 세라스가 가로막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황금의 여자는 이를 갈면서 전방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앞에는 둥글게 펼쳐진 검은색 장막이 있었다.

잠시 후, 장막이 걷히며 그 안에 숨어 있던 마인협회의 전력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본 드래곤의 몸체를 모조리 소모한 덕인지 그들의 모습은 한서리의 파티에 비해 비교적 멀쩡했다.

데스나이트들이 검게 변한 눈을 번득이며 다시금 앞에 도열했다.

전투가 벌어질 것 같자 에디와 세라스가 얼른 방어 태세를 취하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때였다.

잠자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백색의 화신이 황금빛을 남기며 사라졌다.

한순간에 마인협회의 중앙에 출현.

그 사이에 무릎 꿇고 앉아 있는 김건을 잡아챘다.

“큭!”

“이런!”

아스타로트와 마이가 반응해 오라와 단검을 날렸지만 늦었다.

흰색 화신은 다시금 순간이동에 가까운 기동력을 발휘해 김건을 데리고 원래의 위치로 돌아왔다.

“이……!”

분노한 클라우가 이를 악물며 기환마위를 발휘하려 할 때, 누군가가 그녀의 옷자락을 잡았다.

고개를 내리자 두건으로 뒤덮인 새카만 얼굴이 보였다.

레이나의 힘으로 다시 살아난 박사였다.

“물러나야 합니다, 아가씨. 이대로 싸움을 계속해 봐야 서로에게 피해만 가중될 뿐입니다.”

원래라면 최초의 기습이 실패했을 때 물러섰어야 한다.

하지만 박사 그 자신이 죽어 버린 탓에 결정이 늦었다.

그 결과 충분히 몰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티아마트가 강림했으며, 강력한 전력인 본 드래곤을 잃었다.

“티아마트가 이 세상에 등장했습니다.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가씨께서 인간으로서 살아갈 생각이 있으시다면 이번에는 참으셔야 합니다.”

여기서 함부로 행동하면 다 죽는다.

클라우도, 그녀가 원하는 김건도.

박사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클라우는 결코 그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를 갈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이만 물러나자.”

허락이 떨어지자 박사가 바로 손을 휘둘렀다.

검은 구멍이 그의 발아래에 생기더니, 데스나이트를 포함해 주변에 있던 모든 마인들이 검은 안개를 휘날리며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박사가 그 안으로 들어가자 일순간에 클라우의 파티 전체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한서리의 파티원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공간계열 술식에 조예가 있는 몇몇 후위가 경악하며 소리쳤다.

“뭐야? 기환마위를 이용한 순간이동인가?”

“아니야! 아마도 아공간을 통한 간이 이동…… “

평범하게 의견을 주고받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곁에는 마인뿐만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다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드래곤이 거세게 포효하며 날개를 펼쳤다.

“……!!”

몬스터인 것은 분명하지만 클라우와의 싸움에서도, 갑자기 벌어진 대폭발의 피해에서도 그의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기에 모두가 쉽게 공격을 가하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그 틈을 타 드래곤이 지면을 향해 불을 토했다.

바닥에 부딪치는 열기를 이용해 열풍을 생성.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자 그것을 타고 순식간에 거체가 날아올랐다.

드래곤은 그렇게, 흰색 화신과 김건을 데리고 날아 삽시간에 사라져 버렸다.

세라스가 비명을 질렀다.

“김건!!”

극도로 지친 데다 계속된 충격적 상황에 머리가 둔해져 반응하지 못했다.

눈앞에서 친구가 납치당하는 것을 본 그녀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바로 자신이 그 말을 하고 있을 처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가장 김건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세라스 자신이 아니었다.

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한서리의 얼굴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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