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70화
“자기야!!”
파란 머리칼의 여자가 하늘의 점으로 보이는 드래곤을 향해 달려 나갔다.
세라스는 이를 깨물며 친구의 허리를 잡아챘다.
“안 돼! 이미 늦었어!”
“놔! 이거 놓으라고! 씨발!”
한서리는 울며불며 난동을 피웠다.
그녀의 감정에 반응한 마력이 빠져나오며 사방에 얼음 꽃이 피었다.
언제나 냉정하던 한서리가 이 정도로 무너질 줄은 몰랐다. 세라스 역시 감정이 요동쳤지만 그녀는 꾹 참고 한서리를 말렸다.
그때였다.
“좀 자라.”
퍽-
짧은 말소리와 함께 발버둥을 치던 한서리의 몸이 축 늘어졌다.
세라스가 고개를 들었다.
눈물로 젖어 있는 얼굴을 앞으로 향하자 짧게 투덜거리고 있는 에디가 보였다.
“어리광을 받아 주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가볍게 후두부를 가격해서 기절시킨 모양이다. 세라스는 한숨을 쉬며 자세를 고쳐 늘어져 있는 한서리를 소중하게 껴안았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에디는 물론이고 노바, 파마의 번견 팀원, 그리고 아수라 퇴치 작전을 위해 파견된 모두가 피와 먼지로 범벅이 되어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 너머로 보이는 것이 하나.
거대한 버섯구름이 지평선을 가리고 있었다.
아마도 싸움 도중에 갑자기 덮쳐 온 천재지변의 원인이리라.
세라스는 그 버섯구름이 피어 있는 방향에 티아마트가 준동하고 있는 차원의 균열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티아마트가 벌인 짓인가?’
머리가 복잡했다.
클라우의 배신. 마인협회, 그리고 갑자기 나타나 그들을 도운 드래곤과 흰색의 면사포를 쓴 화신까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가.
그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하죠?”
에디를 바라보며 그렇게 물었다.
이 자리에서 한서리를 제외하고 모두에게 명령을 내릴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에디는 한숨을 쉬며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시야 한편을 꽉 메우고 있는 폭발의 흔적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은 도망가야지. 금방 후폭풍과 이상 기후가 덮쳐 올 거다. 이게 대체 무슨 지랄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살아남은 다음에 생각하자고.”
그의 말마따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폭발의 충격으로 치솟아 오른 먼지가 대기를 타고 하늘을 메우고 있는 것이다.
에디 역시 본 드래곤과의 혈투에 몸이 성한 곳이 없었지만 그는 극한 상황에서도 몸을 움직이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이었다.
그는 그 와중에도 냉정하게 상황을 읽고 사람들을 규합해 앞으로의 방침을 결정해 주었다.
제일 먼저 한 것은 인원 파악이었다.
살아남은 인원을 세어 보니 아수라와의 싸움을 마친 이후에 체크한 인원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클라우와의 전투에서 죽었거나, 아니면 그 후에 몰려온 폭발의 충격파에 휩쓸려 행방불명되어 버린 것이다.
혹시나 생존자가 토사 안쪽에 파묻혀 있을 수도 있었으나 에디는 그들을 찾고 있을 여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출발하지.”
부상자와 많은 짐을 짊어진 에디가 앞서서 걸어 나가자, 모두가 지친 몸을 이끌고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세라스는, 마지막까지 남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알리시아.’
그녀와 등을 나란히 하고 아스타로트와도 맞서 싸웠던 헌터가 생존자들 사이에 없었기 때문이다.
알리시아는 분명 폭발이 덮치기 전까지 살아 있었다.
함께한 것은 고작 며칠뿐이었으나 그녀의 실력은 잘 알았다. 전위와 후위, 양쪽에서 모두 S급 이상의 기량을 지닌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토록 강한 사람이 폭발의 충격에 쉬이 죽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이 땅속 어딘가에 파묻혀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봐, 시간 없어! 너까지 체력을 낭비하면 다른 사람들이 죽어!”
에디의 호통 소리가 들렸다. 세라스의 등 뒤에 업힌 부상자가 신음 소리를 흘렸다.
“……제기랄.”
세라스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어 에디를 따라 달려 나갔다.
* * *
드래곤의 등 위는 그리 편하지 않았다. 날갯짓을 할 때마다 온몸이 요동치고 찬바람이 피부를 때렸다.
거의 온몸이 박살 났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환자에게는 꽤 열악한 환경이다.
“…….”
김건은 딱히 신음을 흘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강인한 전사라도 출혈과 고통으로 안색이 파래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마력으로 만들어 낸 하얀 면사포를 걷어 낸 한서리가 남편을 돌아보았다.
“미안해. 조금만 참아 줘.”
그녀는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남편의 이마를 어루만졌다.
기린의 힘을 발휘할 때, 한서리는 정기를 이용해 모든 속성의 마법을 다룰 수 있었다.
그녀는 드래곤의 등 위에 얼음을 세워 바람을 막으며 화염 속성의 보온 마법을 사용해 남편의 몸을 데웠다.
기린의 힘을 쓸 때 머릿속을 떠도는 정보들을 잘 뒤지면 세포 재생을 이용한 치료 마법까지 찾아낼 수 있겠지만, 아직 그녀는 그 영역에 도달하지 못했다.
찬바람이 걷히고 열기가 돌자 조금이나마 정신이 들었다.
김건은 그를 안고 있는 아내를 올려다보았다.
파랗던 머리가 기린의 힘으로 형형색색으로 모습을 바꾸는 은발로 바뀐 것은 꽤 이질적이었다.
그는 그 힘이 아내에게 해가 되지 않기를 빌며 질문을 골랐다.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의심을 갖는 게 아니라 너무 급작스러운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나 앞으로 어떤 대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김건에게는 정보가 필요했다.
그는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을 물었다.
“……티아마트가 강림한 건가?”
한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랑 클라우의 전투에 자극받은 것 같아. 놈이 반응 할 정도의 싸움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틀렸던 것 같네.”
티아마트는 강력한 투기에 반응해 움직인다.
보통 개인이 그 정도의 투기를 가질 수는 없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뒤얽히며 투기를 뿌려 대는 대규모 전투의 기세에 반응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것은 미래를 겪은 두 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화신과 화신의 전투는 그들이 겪은 미래에도 전례가 없던 일이다.
당연히 그것이 낳을 결과를 예측할 수는 없었다.
한서리는 고개를 돌려 아직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버섯구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무리한 강림이었으니까 놈도 멀쩡하지는 않을 거야. 지금의 발할라 전력으로 막아 내는 게 불가능한 수준의 여력을 남기지는 못했을 거라고 봐. 방금 그 공격에서 너무 많은 전력을 잃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읊조리며 상공에서도 훤히 내려다보이는 원형의 폭발흔을 향해 눈짓했다.
얼추 잡아도 반경 수십 킬로미터의 지대가 초토화되어 있었다.
정말 대단한 괴물이다.
나타나자마자 주먹 한 번 내리쳐서 천체 충돌급의 충격파로 일대를 삭제해 버렸다.
그런 괴물의 전력을 분석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해야 했다.
하지 않으면 그냥 죽을 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
티아마트를 몰아내기 위해 모여들던 영웅들의 군세가 그 재앙에 휩쓸려 얼마나 죽었을지는 한서리도 예측할 수 없었다. 티아마트의 퇴치 가능 여부는 그 결과를 알고 나서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김건이 물었다.
“그럼 빨리 복귀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어차피 모든 작전은 발할라의 주도하에 이루어진다.
뭐라도 하려면, 빨리 복귀해서 작전 회의에 모습을 드러내고 의견을 어필해야 했다.
왜 지금 우리가 드래곤의 등 위에 올라타 있느냐.
김건이 물은 것은 그것이었다.
한서리는 차갑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제 당신은 복귀 못해. 최소한 이번 일이 마무리 될 때까지는.”
“왜?”
“분명히 당신의 기술로 티아마트를 퇴치하자는 의견이 나올 테니까.”
“…….”
이전의 삶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해 묻혀 있던 안건.
그렇기에 김건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 기술을 온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회귀한 그는 돌아오자마자 그것을 사용해 벨제불의 화신을 날려 버렸다.
가능성으로만 존재하던 것을 현실에서 증명해 보였다.
그 기술의 원리를 알고 있는 대마법사, 사이먼 베이커는 그것으로 티아마트를 소멸시키는 것이 가능하며, 또한 제일 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한눈에 꿰뚫어 볼 것이다.
지금 김건이 살아 있는 것은 순전히 운이다.
회귀로 얻은 두 번째 기회.
젊은 신경계로 더 정밀해진 제어.
거기에 비교적 그 목표가 작은 화신이었던 것 등 수많은 요소가 잘 맞아떨어졌기에 만들어진 기적이다.
두 번째 기적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었다.
다음번 기술을 사용하면, 그 반동으로 확실하게 김건은 죽는다.
하지만 그게 알 바인가.
한 명의 희생으로 세상의 멸망을 막을 수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그것을 택할 것이다.
오로지 한 사람을 제외하고.
한서리는 이를 악물었다.
“난 그 꼴 못 봐.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찾을 거야.”
“……당신은 어떻게 하려고?”
“일단은 돌아갈 거야. 발할라 중심부에 있어야 상황이 돌아가는 걸 알고, 통제할 수 있으니까.”
“그럼 지금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김건 그 자신이야 눈앞에서 드래곤과 흰색 화신이 낚아채 도망가는 걸 봤으니 그러려니 하겠지만, 아내인 한서리는 아니었다. 그녀가 없어진 탓에 지금쯤 아래에서는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건 괜찮을 거다. 내 분신을 팀장님의 모습으로 바꿔 두고 왔으니까.>>
공기를 통해 전달되는 소리가 아니다.
일종의 텔레파시.
소리가 머릿속에서 직접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것은 꽤 익숙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알리시아 씨?”
<<그래.>>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은 김건 자신과 그의 아내인 한서리, 그리고 그들을 태우고 있는 드래곤뿐이었다.
당연하지만 아내가 장난을 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답은 하나밖에 없다.
그 생각을 증명하듯, 한서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리시아는 용족이야. 우리랑 같이 행동하던 건 분신. 마신이 부리는 화신이랑 비슷한 거지.”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드래곤과 싸워 본 적은 있다. 하지만 그 드래곤이 사람의 형태를 한 분신을 다룬다는 소리는 처음이다.
당연하지만 김건은 지금까지 알리시아가 사람이 아니라는 의심을 품어 본 적이 없었다.
기린의 권속이 인간의 모습으로 위장하고 있다?
그것이 뜻하는 바에, 이번에는 김건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는 건, 기린도…….”
“그래, 마인협회처럼 이 세상에 숨어 사는 추종자들이 있어. 벨제불의 추종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성을 갖고 움직이지만 말이야.”
한서리는 탄식을 흘렸다.
“사실은 기린의 힘을 각성한 나도 처음에는 몰랐어. 그쪽에서 먼저 접근해 와서 알았던 거지.”
그쪽에서의 접근.
그 말이 과거의 기억을 일깨웠다.
“그럼 여행할 때 날아왔던 화살에 적혀 있던 내용이 그거였던 거야?”
여행지에서 붙었던 신원 불명의 미행.
그리고 날아온 화살에 묶여 있던 해석 불가의 메시지.
그것이 기린의 화신에게 보내는 추종자들의 신호였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생각이 미치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그럼 파마의 번견의 팀원도 전부?”
한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건은 그제야 화살에 담긴 메시지를 본 아내가 왜 당분간 거짓말을 하겠다고 한 건지 깨달았다.
그때부터 아내는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의 인류에게 적이 될지도 모르는 세력을.
한서리는 쓸데없는 오해를 부르지 않도록 첨언했다.
“걱정하지 마. 이들은 마인협회와는 완전히 다르니까. 그놈들처럼 무작정 기린을 강림시키거나 이곳을 장악하려고 하진 않아.”
<<그렇다고 네놈들의 아군은 아니다. 착각하지는 말도록.>>
알리시아가 새침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리고 금세 냉기를 뿌리기 시작하는 한서리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김건은 이제야 드러난 사건의 전말에 기가 막힌 듯했다.
그는 한마디로 이번에 일어난 일을 정리했다.
“사실상 세 마신간의 삼파전이었던 거군. 이 인간 세상을 무대로 해서 말이야.”
한서리는 한숨을 쉬었다.
“꼭 그런 건 아니야.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건 아니었으니까.”
사실 관계를 정리하자면 아수라가 밥상을 차렸고, 클라우와 한서리가 그 위에 재를 뿌렸으며, 그 탓에 분노한 티아마트가 밥상을 뒤엎은 것에 가까웠다.
“클라우는 왜 나를 원했던 거지? 애초에 일을 복잡하게 만든 건 그쪽이잖아.”
“그건 나도 몰라. 확실한 건 그 미친년이 당신을 얻고 싶어서 눈이 멀었다는 것뿐이지.”
그 말인즉, 앞으로 김건은 발할라뿐만 아니라 마인협회에게까지 추적당할 것이란 말이었다.
김건은 입을 다물었다.
발할라와 마인협회의 추적.
그것은 거의 전 세계를 상대로 도망쳐야 한다는 말과 동등했다.
하지만 김건은 싸울 줄만 알지, 도망치는 법은 모른다. 세력과 세력 간의 구도에서 빈틈을 찾고 활로를 여는 것 역시 그의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
고로 앞으로 생겨날 무거운 짐을 그는 모두 아내에게 넘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건의 얼굴이 침중해졌다.
그는 아내를 세계의 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산사람이 걷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지옥길이었다.
그것보단 차라리…….
그때였다.
뾰족한 목소리가 김건의 생각을 끊어 냈다.
“당신만 죽으면 다 끝날 것 같지?”
아내를 쳐다본다.
화난 얼굴.
하지만 분노보다는 슬픔과 억울함이 더 강했다.
한서리는 억눌린 목소리로 빠르게 말을 이었다.
“웃기지 마.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다 알겠는데, 여기서 딱 말해 주지.”
부릅뜬 눈에 조금이지만 울음기가 감돌았다.
그녀는 약간 부어오른 눈을 새파랗게 뜨며 남편을 노려보았다.
“당신이 죽으면 나도 죽어. 난 당신 없이 살 수 없어. 그러니까 죽을 생각은 하지 마. 알아들어?”
“…….”
“내 목숨과 당신 목숨은 그냥 같은 거라고 생각해. 이건 내 정신력이 약한 거랑은 전혀 별개의 문제야. 그냥 그런 인간이 되어 버렸어. 당신이, 내 근본을 이루는 뭔가를 바꿔 버렸다고. 그러니까 죽으려 들지 마. 절대로.”
김건은 고개를 들어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아내를 바라봤다.
만약, 손이 움직였다면 그 머리를 쓰다듬어 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밖에 할 수 없다.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명심할게.”
그때였다. 알리시아가 말했다.
<<팀장님, 슬슬 걸릴 것 같습니다. 인간들이 분신을 깨웠어요. 연기에는 자신 없습니다. 감이 좋은 인간들이 많으니 아마 금방 위화감을 느낄 거예요.>>
한서리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남편의 뺨을 어루만졌다.
“당분간은 알리시아랑 같이 있어. 앞으로의 방침이 정해지면 내가 연락을 할게.”
아기를 달래듯이 부드럽게 말을 맺은 그녀는 김건의 머리를 안고 그의 이마에 가볍게 입술을 맞췄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몸을 억지로 일으킨다.
한서리는 마지막으로 김건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무지갯빛 잔상을 남기며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김건은 드래곤의 등 위에 홀로 남았다.
엄밀히 말해서 혼자는 아니다.
잠자코 몸을 추스리던 그가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갑니까? 몸 상태가 이래서 제대로 된 의료 시설이 있었으면 좋겠는데요.”
<<몰라.>>
알리시아는 차갑게 대답했다.
정말로 답을 모른다기보다는 김건과 말을 하기 싫어한다는 뉘앙스가 강했다.
이제부터 온갖 일을 같이 겪게 될 텐데 벌써부터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김건은 내키지 않는 대사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저희 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들으셨죠?”
<<…….>>
“아내에게 다 이를 겁니다. 알리시아 님이 저한테 비협조적인 태도를…….”
<<미안하다. 일단은 대서양에 마련해 놓은 내 레어로 갈 거다. 별도의 치료 시설은 없지만 치유에 도움이 될 만한 아티팩트들이 있으니 상처도 치료할 수 있을 거다.>>
앞의 대답은 그저 김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부린 투정이었던 모양이다.
아내를 운운하자 알리시아는 얼른 사과하며 김건이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자신을 탐탁지 않아 하는 아내의 부하와 함께하는 은밀 작전이라.
거기다 그 부하는 인간도 아니고 몬스터였다.
김건은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앞으로 이어질 도피행은 상당히 고달파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