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71화
세계는 발칵 뒤집혔다.
티아마트가 강림하며 일으킨 폭발에 작전에 참여했던 영웅 및 헌터의 5할이 죽었다.
그때 솟구친 먼지구름과 지각의 균열이 불러 온 지진, 쓰나미 및 이상 기후로 입은 피해는 계산할 수조차 없었다.
그만큼 사태는 심각했다.
영웅의 5할이 살아 돌아왔다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로.
모든 정보망이 바쁘게 움직였다.
위성을 통한 시각 관측, 대기와 자기장에 영향을 끼치는 신격의 특성을 이용한 역산, 그리고 그동안 쌓인 마계와 마신의 정보를 취합해 수십 명의 천재들이 모여 티아마트의 상태를 분석했다.
그것으로 추론한 결과, 현재 티아마트는 일시적인 가수면 상태에 들어가 있다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무리한 강림, 그리고 최초의 일격으로 많은 힘을 소모한 것이다.
억지력의 칼날에 의해 잘려 나간 반신에서 뿜어져 나온 티아마트의 세포들이 나무 같은 형태로 뻗어 나가 뿌리를 박은 것이 그 증거로 들이밀어졌다.
그것은 소모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함이며, 어쩌면 그 끝이 지각을 뚫고 그 아래까지 내려가 행성의 열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그것으로 인류의 방향성은 정해졌다.
티아마트가 깨어나기 전에 쳐야 한다.
티아마트가 내리친 일격에 전멸했던 권속들마저 그가 흘린 피에서 다시금 태어나 숫자를 불리고 있다 하니 최대한 빠른 대응이 필요할 것은 당연한 소리였다.
퇴치 작전을 수립하기 위해 많은 인력과 정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피해는 입었지만 발할라는 아직 건재했다. 그리고 착실히 다음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밖에서 보기에는, 그렇게 보였다.
발할라는 엄청난 혼돈에 휩싸여 있었다.
일단 첫째로, 클라우 베리스가 벨제불의 화신이었다는 것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발할라의 특무팀이 그 사실을 듣자마자 달려가 클라우 베리스의 추천인이었던 프리드리히 하이데거 교수의 확보를 노렸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그가 마인협회의 간부, 일명 박사라 불리는 자였다는 증거는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두 번째 폭탄이 되어 돌아왔다.
발할라의 두 번째 별, 거기에 첫 번째 별인 사이먼 베이커에 제일 가까운 남자라 여겨지던 남자가 마인이었다니.
그 두 사실이 나타내는 것에 사람들은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 둘이 계속해서 몸을 숨기고 공작을 벌였다면, 발할라는 내부로부터 무너졌을지도 몰랐다.
당연히 그 사실은 극도로 은폐되어 발할라의 간부 및 관리자들 사이에서만 돌았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사이먼 베이커는 실각을 피할 수 없었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첫 번째 별의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마인협회에게 정보를 흘려 왔던 프리드리히 하이데거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했고, 심지어 벨제불의 화신을 스스로의 특권으로 발키리의 직위에 앉혔다.
그를 문책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따르던 사람들의 신뢰에는 확실히 금이 갔다.
그가 발할라의 첫 번째 별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발할라를 배신하고 나타난 클라우가 김건을 원했다는 것, 그리고 뜬금없이 등장한 기린의 화신이 클라우와 싸움을 벌이고 그를 납치해 간 사건이 다시 사이먼 베이커를 몰아붙였다.
왜냐하면 사이먼 베이커가 김건이 벨제불의 화신을 쓰러트렸던 사실을 숨기고, 무구를 공급하는 등 그를 특별 취급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소리쳤다.
무엇을 숨기고 있느냐.
어서 알고 있는 걸 불어라.
티아마트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사이먼은 끝까지 김건을 비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세계는 혼돈에 빠져 있었다.
멸망의 카운트다운이 차근차근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사이먼은 말했다.
김건이 가진 능력, 그가 가진 기술에 대해.
살신기(殺神技)의 존재.
그것은 모두를 경악시켰으며, 단번에 지금까지 쌓인 모든 의문을 해소시켰다.
신을 죽일 수 있는 무기라니.
기린이든 벨제불이든 그 정체를 알았다면 그것을 원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건 인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그 원리 자체는 알았다. 김건이 없더라도 연구는 해 나갈 수 있다.
그러니 그를 아끼지 말고 사용해 티아마트를 쓰러트리는 것이 많은 자원을 소모하는 다른 작전들보다 낫다는 결론까지 나왔다.
사이먼의 뒤를 이어 첫 번째 별의 자리에 앉은 것은 노제 프레데리카 교수였다.
실력으로 보나, 실적으로 보나 그녀는 엄연히 사이먼과 프리드리히의 다음을 이었으며 이번 작전에서의 실패역시 그녀의 탓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든 의견을 수렴한 그녀는 결정을 내렸다.
티아마트 퇴치 작전이 수립되고 준비되기까지, 발할라의 모든 인원들은 기린의 화신과 김건을 추적해라.
그리고 만약, 김건을 확보하는 데에 성공했을 경우, 그의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티아마트 퇴치 작전을 진행한다.
그리고 한서리는, 모든 회의의 중심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 * *
재미없어.
그것이 그녀를 지배하는 생각이었다.
먼 과거, 벨제불과 만나 그, 혹은 그녀를 받아들인 그날 이후로 그녀는 인간을 조종할 수 있게 되었다.
손가락 하나만 까딱여도 사람들은 아낌없이 스스로의 목숨을 바쳤다.
전 재산을 내놓고 노예가 되었으며 아무리 흉폭한 이라도 순종한 개가 되어 그녀의 발을 핥았다.
모든 걸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이 재미가 없었다.
그녀는 스스로의 삶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죽지 않았던 것은 그저 죽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몇 년 며칠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릴없이 지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충격을 받고 잠에서 깬 것은 최근이었다.
아주 강력한 존재가 지구 너머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깨달았다.
아, 드디어 때가 왔구나.
떨어져 나간 찌꺼기의 일부에 불과한 그녀를, 그녀가 가진 힘의 진정한 주인이 부르고 있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벨제불의 의지를 가진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부름을 받은 그녀는 바로 욕실에 들어가 몸을 씻었다.
벨제불을 만나면 그녀는 분명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잡아먹힌다. 그리고 그녀를 이루고 있는 인간의 부분은 흔적도 남지 않을 것이다.
가면, 죽는다.
하지만 굳이 그것을 피할 이유도 없었다.
씻고 나온 그녀는 옷을 차려입고 가볍게 화장을 했다.
죽는 건 괜찮다. 그래도 마지막 모습을 추한 모습으로 장식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곱게 차려입은 그녀가 문밖을 빠져나가려 할 때.
이번에는 엄청난 고통이 그녀를 강타했다.
그것은 그녀를 이루고 있는 벨제불이 느끼는 고통이었다.
한참이나 그 충격으로 구토를 하고 바닥을 구르고 난 뒤에야, 그녀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없어진 것을 깨달았다.
놀랍게도, 벨제불의 의지가 깃든 자가 소멸해 이 세상에서 추방당한 것이다.
그것과 동시에 본체를 경유해 날아온 기억이 뇌리에 꽂혔다.
그리고 그 기억은 대부분 한 남자에 대해 담고 있었다.
화신을 상대로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맞서는 남자.
심지어 그가 지키려 하는 것은 기린의 화신이었다.
마치 사자와의 싸움에 낀 생쥐 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믿을 수 없게도, 그 생쥐가 사자를 쓰러트렸다.
그녀는 방금 전까지 이 세상에 있었던 벨제불이 남기고 간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피투성이의 얼굴.
흔들림 없는 목소리.
그는 벨제불이 행한 정신 제어에도 걸리지 않았다.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 대부분의 인간을 정신 붕괴로 무너트리는 공격에도 미치지 않았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멋있다, 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내 아내를 위협하고 살아남은 존재는 없어. 그게 뭐든 간에.’
인간 주제에, 가벼운 상처로도 죽어 버리고, 고작 백 년도 살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가 그런 말을 입에 담는 것은 귀엽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는 실제로 그 말을 실천해 그녀조차 거역하지 못하는 벨제불의 화신까지 일격에 날려 버렸다.
그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할 이유 따윈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갔다.
구토와 자해의 흔적으로 엉망이 된 몸을 씻지도 않고 구석에 처박혀 며칠이고 그에 대한 기억을 되돌려 상기했다.
보면 볼수록 그는 매력적이었다.
기억의 편린에 불과하기에 그 얼굴은 정확히 그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지만큼은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의지에 가득한 눈, 침착한 목소리며 단단하게 단련된 손.
그 희미한 연기 같은 기억이 그녀의 우상을 더욱 견고히 만들었다.
심지어 화신이 읽어 낸 그의 과거까지 흥미롭기 그지없었다.
그가 부모를 잃은 사건에서는 그녀도 슬퍼졌고, F급 마력적성을 갖고 태어나 받은 멸시에는 그녀도 화가 났다.
그런 그가 엄청난 노력을 발휘하여 오우거를 쓰러트리는 기억까지 되짚었을 때는 덩달아 환성까지 질렀다.
그녀는 살아생전 처음으로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었다.
상상하면 상상할수록 그가 좋아졌다.
가슴이 간질간질하다.
그 목소리가 부를 스스로의 이름을 떠올리면 소름마저 돋는다.
거기에 마계로 추방당한 본체 역시 그를 원한다고 강력하게 외치고 있었다.
사랑에 빠지지 못할 이유 따윈, 그 어디에도 없었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다시금 목욕을 하고 몸을 치장했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먼저 수화기를 들어 전화를 했다.
먼 과거, 그녀에게 지금의 자리를 마련해 준 한 마인에게 연락을 했다.
통화를 마친 뒤, 그를 만날 생각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그녀는 집을 나섰다.
그것이, 사랑스러운 생쥐 왕자님을 만나기 위한 여행의 시작이었다.
* * *
“…….”
또다시 그 사람의 꿈을 꾸었다.
클라우는 음울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구라곤 침대와 화장대밖에 없는 살풍경한 방.
마인협회가 마련해 놓은 수많은 은신처 중 하나였다.
침대의 옆에 바로 붙어 있는 화장대에는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로션 하나 없었다. 그저 누군가의 모습이 그려진 사진만 수북이 쌓여 있을 뿐이었다.
클라우는 손을 뻗어 사진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굳이 고를 필요는 없었다. 그 속에 찍힌 사람은 모두 동일했으니까.
클라우는 빤히 사진 속에 있는 김건을 바라보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웃는 얼굴이 보기 좋다.
부드러운 미소는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그 시선이 향한 곳에는 언제나 그 파란 여자가 저주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의 시선과, 파란 여자를 향한 시선이 겹친다.
그리고 드러나는 확연한 격차.
그것이 나타내는 사실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 왔다.
참을 수 없었다.
클라우는 이를 악물며 사진을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