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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73화 (73/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73화

멸망의 위기라니.

그 말에 김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알리시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 고향은 대부분의 것이 마력을 사용해 움직인다. 이제 막 그 힘을 깨달은 너희들보다 훨씬 많은 부분을 의지하지. 그런데 그 마력이 동이 나 버렸어. 앞으로 몇백 년도 채 가지 못할 거다. 너희들의 말로는 ‘열 죽음’이라고 표현하는 듯하더군.”

열 죽음.

현재 거론되고 있는 종말 이론 중 하나로 간단히 말해 세상에 존재하는 에너지에는 총량이 있고, 언젠가는 그것을 모두 소비해 버려 모든 것이 멸망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거기서 이어질 이야기를 김건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곳으로 온 거군요. 당신들의 세상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

“그래. 이주가 가능한 곳은 이곳밖에 없었어.”

알리시아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김건의 안색을 살폈다.

이 세계의 원주민 입장에서 보면 그녀가 한 말은, ‘나는 너희 세계를 차지하러 온 침략자야.’ 라고 말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어쩌면 갑자기 적대적으로 돌변해 지금까지의 관계가 틀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당분간 그와 함께 움직여야 할 알리시아에게 썩 달가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괜히 말했나.’

알리시아는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그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김건은 쉬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럼 지금 당장의 적은 아니군요. 그쪽도 티아마트에게 이곳을 빼앗기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 정도면 됐습니다.”

“……굉장히 쉽게 이야기하는군.”

“전 전사입니다. 싸우는 게 직업이죠. 필요나 이득에 따라 싸우지, 감정으로 움직이진 않아요.”

“불안하지는 않나? 티아마트를 퇴치하고 나면 우리와 전쟁을 벌여야 할지도 몰라.”

“제 아내가 있지 않습니까.”

“…….”

“그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당신과 함께할 것 같진 않습니다. 뭔가 대안이 있겠죠.”

“그 대안이, 네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지도요. 하지만 납득할 수 있을 만한 답일 겁니다. 그 정도면 충분해요.”

너무나도 쉽게 대답한다.

그 통쾌함이 의외로 거슬려서, 알리시아는 저도 모르게 짓궂은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만약, 그분이 네가 납득하지 못할 답을 내놓는다면 어떻게 할 거냐?”

그런 질문을 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김건은 눈을 깜박였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동요한 것인가?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에, 알리시아는 그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아내는 똑똑한 사람입니다. 제 머리 위에 올라가 있죠. 그럼에 불구하고 납득하지 못할 말을 한다면…… 그건 명백한 고의입니다. 더 이상 제가 그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돌려 말한 거죠. 그게 가능한 경우는 둘 중 하나입니다. 저보다 강력한 무기를 얻었거나, 아니면 무기 자체가 필요 없어졌거나.”

김건은 어깨를 으쓱였다.

“어떤 경우든, 제게 나쁜 조건은 아닙니다. 전 아내가 행복해지기를 바라거든요. 그러니 일단은 양보하고 그 뜻을 따를 겁니다. 그다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해 보죠.”

“…….”

알리시아는 물끄러미 김건을 바라보았다.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는 왠지 모를 허탈함과, 난감함이 함께 담겨 있었다.

“넌 아무래도…… 여자 마음을 전혀 읽을 줄 모르는가보군.”

김건은 생뚱맞은 대답을 들은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여자 경험이 거의 없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만…….”

“됐다. 그분이 왜 가끔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이는지 조금은 알겠어.”

알리시아는 지겹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동정했다.

이런 벽창호를 남편으로 두고 있는 그녀의 주인을.

* * *

은신 생활 5일차.

맨 처음 김건이 걱정했던 것과 달리, 은신 생활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탐지를 피하기 위해 은신처는 극도로 단절되어 있었다. 당연히 외부로부터의 연락은 불가능하고 인간들의 네트워크도 이용할 수 없었다.

그동안 알리시아는 소설을 보며 시간을 죽였다.

인간의 기술에 익숙한지, 그녀는 밖에서 들여온 전자식 기억 장치에 엄청난 용량의 소설들을 넣어 둔 상태였다.

오늘도 소파에 누워 패드에 새겨진 문자를 읽어 내려가던 그녀는 문득 눈을 돌렸다.

거실 한편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김건이 보였다.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중간중간 밖으로 흘러나오는 마력으로 뭘 하는지 예상은 갔다.

알리시아는 쉬는 시간에도 공부에 몰두하는 친구를 본 학생 같은 표정을 지었다.

“넌 항상 수련만 하는 것 같군. 지겹지도 않나?”

김건이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전혀요. 몇 달 전에 벨제불과 싸운 후유증으로 감각이 둔해져서 실력이 많이 떨어졌어요. 할 것도 없는데 연습이라도 해서 조금이라도 복구해야죠.”

“계속 마력만 가지고 조물거리던데. 그게 그리도 재미있나?”

“재미로 하는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래도 진척이 있으니까 나름 할 만합니다. 어려운 퍼즐을 푸는 느낌이거든요. 계속 조정을 해 보니까 전성기의 팔 할까지는 복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몸에 섞인 탁기를 뱉어 내며 김건이 눈을 떴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리고 다른 걸 하고 싶어도 할 게 없으니까요.”

“나처럼 소설이라도 보면 되잖아.”

“싫습니다. 기술 연구할 때 제가 책을 몇 권을 봤는지 아십니까? 소설이고 뭐고, 문자 덩어리는 이제 보고 싶지도 않아요. 혹시 만화책이나 영화 같은 건 없습니까?”

“없어.”

“그럼 하던 거나 계속해야겠군요.”

마력 제어 연습도 집중력을 소모하고 신경에 부하를 준다.

김건은 잠시 신경계에 휴식을 줄 겸 단련 대상을 바꿨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체조 동작을 취했다. 손바닥으로 지면을 떠받치며 체중을 띄워 올리려는 찰나.

손끝에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한 번은 그냥 넘긴다.

바닷속을 유영하던 무언가가 은신처 바깥의 외벽을 들이받았을 수도 있고, 그저 단순한 해저 지진일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다음 이어진 두 번째 진동.

“……!”

명백히 그 진폭이 커졌다.

지대가 눈에 띄게 흔들리며 순간적으로 조명 장치가 점멸했다.

잠깐 동안 존재했던 어둠이 빛으로 탈바꿈하는 순간, 그 안에 있던 두 사람은 깨달았다.

이건 지진 따위가 아니다.

알리시아가 패드를 집어던졌다.

김건이 땅을 박차고 몸을 일으켰다.

“습격이다!!”

동시에 굉음이 울리며 동굴의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콰르르릉!

동굴이 울었다.

돌무더기가 쏟아지며 폭포수처럼 바닷물이 밀고 들어왔다.

“큭!”

알리시아가 이를 악물며 위로 손을 치켜올렸다.

뿜어져 나간 마력이 장벽을 생성, 동굴의 구멍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폭격이라도 가하고 있는지 사방에서 폭음이 울려 퍼졌다.

동굴의 외벽에 쩍쩍 금이 가며 공기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물이 부글부글 끓으며 바닥에서도 차오르기 시작한다.

알리시아가 외쳤다.

“내 본체에게로 가라! 도망친다!”

김건은 대답도 하지 않고 달렸다.

곧바로 그림자의 갑옷을 꺼내며 질주.

복도를 가로지를 시간도 아깝다.

검은 갑주를 두른 그는 어설프게 세워진 간이 벽을 모조리 깨부수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쾅!

돌 파편을 흩뿌리며 동굴집 밖으로 나오니, 차오르는 물속에서 꿈틀거리는 거체가 보였다.

빨간 비늘을 가진 수십 미터짜리 드래곤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커다란 녹황색 눈이 그를 바라보았다.

텔레파시가 꽂혔다.

<<이리 와라! 이 밑에 게이트를 만들어 뒀다!>>

김건이 채찍을 쏘아내며 번개 같은 몸놀림으로 드래곤의 등 위에 올라탔다.

알리시아는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마력을 내뿜어 동굴의 벽면에 새겨 둔 게이트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그녀의 마법 기술은 지구의 인간들보다 뛰어나 별다른 장비의 도움을 받지 않고 약간의 준비만으로도 공간 통로를 생성할 수 있었다.

이것을 이용해 지구 반대편의 다른 은신처로 이동한다.

‘어떻게 이곳을 찾아냈는지는 모르지만, 그곳으로 가면 얼마간 시간을 벌 수 있을 거다. 그 다음에 팀장님께 연락을 하면……!’

그렇게 공간의 틈새를 만들어 내려는 찰나였다.

우우웅!

갑자기 몸이 가벼워졌다.

인간들이 타는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내려갈 때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감각과 동일했다.

그것을 의미하는 것을 깨달은 알리시아가 욕설을 내뱉었다.

<<제기랄!>>

누군가가 주변의 중력을 뒤틀었다.

중력은 직접적으로 공간에 영향을 미치는 몇 안 되는 힘 중 하나다.

중력이 불안정한 곳에서 공간이동을 했다간 좌표가 꼬여 벽 사이에 끼거나 시공간의 틈새로 빨려 들어가 억겁의 시간을 헤매게 될 수도 있다.

고향에서는 범용화된 공간 이동을 차단 방법이지만 그걸 여기서 당할 줄이야.

중력 제어는 여러 마법 중에서도 굉장히 어려운 계파에 속한다.

상대측에 상당한 실력의 마법사가 있다.

곧바로 게이트 발동을 취소.

생각해 두었던 퇴로가 막혔으니 바로 다음 계획으로 넘어갔다.

<<캡슐에 타!>>

알리시아의 등에는 이전에 없던 금속 재질의 관짝이 달라붙어 있었다.

이전에 김건을 데리고 이곳으로 올 때, 알리시아는 고속 비행과 장시간의 잠수에서 김건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많은 마력을 소비해야 했다.

또다시 그 고생을 하지 않기 위해 돌아오자마자 갖고 있던 아티팩트와 건축용 자재들을 조합해 만든 것이 이 캡슐이었다.

강도도 튼튼하고, 안쪽의 기압도 유지해 주면서 마법으로 산소까지 공급해 준다. 바닷속은 물론이고 우주 공간에 떨궈 놔도 안전할 수 있는 생존 장비였다.

알리시아는 김건이 캡슐에 타자마자 바로 동굴 밑에 뚫려 있는 구멍을 통해 잠수했다.

날개를 딱 접어 몸통에 붙여 놓고, 긴 목과 꼬리를 쭉 뻗어 뱀처럼 물살을 갈랐다.

우르릉!

그녀가 빠져나오자마자 동굴이 붕괴하며 거기서 터져 나온 포말과 굉음이 사방으로 번져 갔다. 물고기가 도망치고 부러진 산호초가 흩어지며 퍼져 나온 흙 알갱이가 연기처럼 흘러나왔다.

깊은 바닷속.

적은 빛 때문에 짙은 남색으로만 보이는 세상에서 빨간 비늘을 가진 거대 파충류가 붕괴의 여파를 뒤로하며 무시무시한 속력으로 수중을 가로질렀다.

그녀가 내뿜는 포말과 공기 방울이 길게 늘어지며 비행기의 꼬리구름처럼 이어졌다.

파충류의 눈이 회전한다.

커다란 눈을 이리저리 굴려 가며 은신처를 붕괴시킨 적을 탐색.

그리고 측면에서 따라붙는 잠수체를 발견했다.

유선형의 동체를 가진 인간들의 기계가 있었다.

잠수함은 아니다. 앞이 뾰족하고 옆으로 삐져나온 날개가 컸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프로펠러가 아니라 로켓 형태의 분사구에서 무언가를 뿜어내는 것으로 잠행하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

하지만 그것을 굳이 추론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기계의 표면 금속이 접히며 열리더니, 그 안에서 쏘아진 어뢰가 이쪽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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