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74화
쏘아진 어뢰가 알리시아의 옆구리에 착탄.
폭음이 터지며 부서진 비늘과 핏줄기가 소용돌이치는 물길에 휘말려 날아갔다.
기계는 계속해서 알리시아를 따라붙으며 어뢰를 발사해 왔다.
<<큭!>>
알리시아의 특기는 화염 속성의 마법이다. 당연하지만 물속에서 쓰기 좋은 기술은 아니다.
그녀는 급한 대로 다른 속성의 마법을 사용. 바닷물을 얼려 무수한 얼음 송곳을 만들어 냈다.
이내 살포된 얼음 송곳과 부딪힌 어뢰들이 유폭을 일으켰다. 검디검은 바닷속에 하얀 원형의 충격파가 꽃처럼 피었다.
알리시아는 충격파와 파편을 두들겨 맞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당장의 공격을 막았을 뿐이다.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 방법을 짜낼 틈도 없이, 또 다른 적이 그녀를 덮쳐 왔다.
짐승을 초월한 드래곤으로서의 본능이 대신 위험을 감지.
알리시아는 재빨리 한쪽 눈을 감았다.
콰악!
감긴 눈꺼풀 위로 무언가 뾰족한 것이 찍혔다.
그것은 몹시도 예리했다. 비교적 연한 눈꺼풀의 비늘이 단번에 뚫렸다.
단단한 무언가가 살을 관통하고 눈의 각막을 긁고 지나갔다.
알리시아는 거칠게 고개를 털어 머리에 달라붙은 무언가를 떼어 냈다.
“……!”
고통이 뇌리를 달린다.
하지만 알리시아는 그 속에서도 감긴 눈 방향에 존재하는 적을 탐색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주변에 퍼지는 포말, 그리고 피부에 닿는 물길의 흐름을 읽어 사각의 어딘가에 인간 크기의 적이 있다는 것을 포착하는 데 성공.
아무리 연하다 해도, 그녀의 비늘은 총탄은 물론 어지간한 대포도 튕겨 내는 강도를 갖고 있었다.
그것을 가볍게 꿰뚫은 일격.
작은 크기. 그리고 극도로 절제된 움직임과 살기.
그 요소들이 나타내는 것은 하나다.
초월자급에 달하는 전위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녀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움직임이 제한된 수중. 한쪽 면에서는 정체불명의 기계가 어뢰를 날려 오고, 사각에서는 초고수가 암습을 노리고 있다.
위기의식이 경종을 울렸다.
위험하다.
이대로라면 죽는다!
알리시아가 수영을 멈췄다.
몸에 붙여 두었던 날개를 떼어 내며 사납게 입을 벌린다. 쿵쿵 뛰는 그녀의 심장으로부터 어마어마한 마력이 터져 나왔다.
────!!
폭음이 터졌다. 거룡의 중심부로부터 튀어나온 열에너지가 원형으로 퍼져 나왔다.
한순간에 물을 끓이고 증발시켜 기화. 뿜어져 나온 수증기가 가열되고, 급격히 확산했다.
폭발이 일었다.
알리시아가 뿜어낸 마법의 불길이 수십 미터의 층으로 쌓인 바닷물을 증발시키며 공중으로 뿜어져 날아갔다. 굉음과 해일이 몰아치며 드넓은 바다에 일시적으로 반구형의 크레이터가 파였다. 그 소용돌이의 안쪽에서 새빨간 드래곤이 날개를 펼쳤다.
홰를 치며 단숨에 수직으로 상승.
밀고 들어오는 바닷물을 따돌리며 순식간에 창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상대가 수중에서의 전투를 대비해 왔다면 날아서 도망친다.
전투기를 준비해 둔 것이 아니라면 인간의 능력으로 그녀를 따라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판단은 옳았다.
그녀를 추적해 온 자들이 더 깊은 함정을 파 둔 것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어디선가 터져 나온 불기둥이 날아오르는 알리시아를 덮쳤다.
<<……!>>
극대소멸공격의 일종인 플레어가 그대로 옆구리에 작렬.
어지간한 괴물은 그것으로 한 줌 재가 되어 흩어졌으리라.
하지만 알리시아는 그것을 버텼다. 그녀는 건물만큼이나 커다랬고, 용암 속에서도 유영을 가능케 하는 드래곤의 비늘은 태양의 표면 온도에 달하는 고열에도 불타지 않고 새하얗게 달아오를 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불기둥에 담긴 초고압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다.
공중에 뜬 거체가 밀려나며 자세가 흐트러졌다. 날개가 양력을 잃었다.
알리시아가 추락했다. 수백 톤의 거체가 격추당해 대양을 떠돌던 무인도의 위에 내리꽂혔다.
콰앙!
자그마한 섬이 비명을 내지르며 엄청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그 뒤를 따라 해저에서 솟아오른 두 개의 그림자가 무인도에 착지했다.
한쪽은 거대한 금속 갑주를 두른 기사, 나머지 한쪽은 검은 슈트로 몸을 감싼 금발의 남자였다.
그리고 그들과 다르게 하늘에서 내려오는 인영이 하나 더 있었다.
강력한 마력적성을 상징하는 총천연색의 머리칼.
피처럼 붉은 머리카락이 사납게 휘날렸다.
그 성격을 의미하듯 빨간 눈썹이 매섭게 하늘로 솟아 있다.
발할라의 12개의 별 중 하나.
인간 함대라 불리며 화력에 있어서는 인류의 최정점에 있는 마법사, 스칼렛 발렌타인이었다.
* * *
알리시아는 이를 갈며 앞에 선 붉은 머리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전의 작전에서 스칼렛 발렌타인이 지평선을 불바다로 뒤덮어 버리는 모습을 보았다.
스칼렛은 그저 인간이라는 굴레에 갇혀 있을 뿐, 알리시아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 차원에 올라선 마법사였다.
그리고 나머지 둘.
방금 겪었던 수중전에서 뼈저리게 느꼈지만 둘 역시 스칼렛에 뒤지지 않는 명성을 지닌 이들이었다.
검은 슈트를 입은 금발의 남자.
당대 최강이라 불리는 전위, 티리온 프레이저.
그의 옆에 선 커다란 기계 갑옷 역시 유명하다.
골렘 마스터, 아서 로보타.
그는 골렘을 작동시키는 데 사용되는 인공 지능과 동력 마법에 인류의 기계 공학을 접목해 마법의 새로운 장을 연 공로로, 발할라를 비추는 별자리의 한 축이 된 마법사였다.
발할라의 별 세 명.
하나하나가 S급이니, 초월자니 하는 분류 기준을 뛰어넘은 괴물들.
수십억 인류의 정점에 선 자들이 도열하자 엡실론급 몬스터인 드래곤마저 긴장감에 침을 삼켰다.
특히나 알리시아는 분신을 통해 꽤 긴 시간을 헌터로서 활동해 왔기에, 눈앞에 선 인간들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들인지 더욱 강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저 셋을 상대로는 풀 컨디션의 알리시아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의 그녀는 최상의 상태도 아닐 뿐더러, 기습을 당해 상당한 데미지를 입은 뒤였다.
불리하다. 몹시.
김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해볼 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랬다간 김건은 인류의 적으로 낙인 찍힐 것이며, 그 후폭풍은 그녀의 주인인 한서리에게 닥치게 될 것이다.
즉, 알리시아는 혼자서 지금의 일을 해결해야 했다.
스칼렛 발렌타인이 앞으로 나섰다.
그녀로부터 발현된 강력한 텔레파시가 드래곤의 뇌리에 박혔다.
<<김건, 넘겨라. 목적. 그것이, 전부.>>
말로 이루어진 문장이 아니다.
그것은 머릿속의 이미지와 의지를 텔레파시라는 이름으로 강력하게 표현한 것에 가까웠다.
알리시아는 드래곤의 모습으로 킁, 비웃는 듯한 소리를 내며 인간들의 공용어로 가공한 말을 텔레파시로 되돌려 주었다.
<<웃기지 마라. 김건을 지키라는 것이 그분의 명. 나는 그것을 따를 뿐이다.>>
스칼렛의 고운 아미가 찌푸려졌다.
인간의 말을 할 줄 아는 몬스터. 그 말에 엿보이는 충심, 납득 가능한 논리.
단순한 대답이었지만 그 안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복잡한 것은 일단 무시한다. 스칼렛은 고개를 털어 내며 입을 열었다.
“그분? 기린을 말하는 건가?”
“아마도 그런 것 같군.”
옆에 있던 강철 갑옷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칼렛은 매섭게 눈을 치켜뜨며 주변을 살폈다.
에디, 그 근육뇌가 말하기를 이 빨간색 드래곤은 기린의 화신과 함께 움직였다고 했다.
어딘가가 부족한 반쪽짜리 화신 같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위험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근처에서 기습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몸짓의 의미를 알아챈 티리온이 말했다.
“주변에 살기는 없습니다.”
“내 레이더에도 걸리는 건 없어.”
아서까지 그렇게 말했다.
그 두 사람은 탐지 능력으로는 발할라의 별 중에서도 순위권을 다투는 이들이었다.
스칼렛은 그들의 말을 믿고 시선을 눈앞의 드래곤에게 고정시켰다.
말이 통하니, 혹시나 싶어 한번 찔러 본다.
“기린의 화신은 어디 있지?”
대답 대신 날아온 것은 거대한 화염구였다.
새빨간 머리칼이 용솟음친다.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불길이 화염구를 맞받아치며 엄청난 열풍이 몰아쳤다.
불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여자가 거칠게 휘날리는 머리칼을 손으로 치웠다.
“그래. 좋아. 일단은 죽어라.”
그녀의 양손에서 폭발이 터졌다.
열기보다는 사방으로 퍼지는 압력에 집중한 마법.
그 폭발을 타고 스칼렛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녀의 어깨에는 날개처럼 생긴 기계가 매달려 있었다.
등에서 뿜어져 나온 화염이 추진력을 생산하고, 새빨갛게 달아오른 날개가 이리저리 움직여 자세를 제어해 준다.
그것은 후위인 스칼렛의 조악한 기동력을 안타깝게 여긴 아서 로보타가 그녀에게 선물한 홍염의 날개였다.
건물만 한 거체와 육탄전을 벌일 생각은 없으니 일단 거리를 벌린다. 그녀와 똑같은 판단을 한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강철 갑옷이 양손과 양발의 사출구에서 마력을 분사하며 비행을 시작했다.
“드래곤 사냥이라니, 이걸 진짜 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 끝나자마자 해저에서 거대한 금속체가 물방울을 흩뿌리며 튀어나왔다.
마름모꼴의 입방체가 여러 개 모여 뭉쳐져 있는 기괴한 기계.
그것은 습격 당시 알리시아에게 어뢰를 퍼부은 잠수체였다.
그것은 당연하다는 듯이 날아올라 아서 로보타의 후방에서 활강했다.
칙, 칙-
증기와 열기를 내뿜으며 마름모꼴의 한쪽이 분할.
분할된 마름모가 허공에서 변형을 일으키며 날아와 강철 갑옷의 어깨에 안착했다.
길쭉하게 앞으로 뻗어 나간 금속이 포구를 형성함과 동시에, 뒤이어 날아온 탄창이 그 후방으로 날아와 붙었다.
현대 기술의 화력은 대 몬스터전에서도 유효하다.
다만 전함급 방어력을 가진 놈이 전투기처럼 날아다니거나 대포에 맞아도 죽지 않는 괴물이 도심에서 고양이처럼 뛰어다니는 등 운용 난이도가 극악으로 높아졌을 뿐이다.
거포를 짊어진 강철 갑옷이 포격을 개시했다.
쾅! 쾅! 쾅!
강철의 기사가 웬만한 전함의 주포급 포탄을 연달아 쏘아 냈다.
불꽃이 튀고 검은 연기가 폭풍우처럼 몰아쳤다.
작게 개조된 포구가 수백 밀리미터 포탄의 출력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질 때마다, 뒤편에서 대기 중인 마름모꼴의 입방체가 새 포구와 탄약을 지급했다.
한 발을 쏠 때마다 금속질의 거체가 십여 미터씩 뒤로 날아간다.
하지만 강철 갑주는 발과 등에서 계속해서 추진제를 분사해 자세를 회복하고 사격을 재개했다.
<<……!>>
알리시아는 그 강철의 세례를 정통으로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몸으로 초음속에 달하는 포탄을 피하는 것은 무리이고, 순수한 물리력의 집합체라 마법으로 막기도 여의치도 않았다.
단숨에 비늘이 부서지며 그녀의 몸 여기저기서 피와 불꽃이 튀었다.
그래도 견딜 만했다.
아래쪽에서 다가오는 티리온을 꼬리로 쳐 날린 그녀는 사납게 이를 갈며 입을 벌렸다.
거대한 파충류의 구강 안쪽에서 조합된 마법식이 불꽃을 튕기고, 어마어마한 불줄기가 강철 갑옷을 향해 날아갔다.
극대소멸공격. 플레어.
아무리 내구력이 뛰어나도 소형, 키 3미터 언저리인 강철 갑옷으로는 버틸 수 없는 공격이었다.
아서는 재빨리 갑옷 이곳저곳에 박힌 로켓을 분사해 플레어를 피했다.
그러자 알리시아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틀었다.
입에서 뿜어지는 불기둥을 거대한 화염의 검처럼 휘둘러 아서를 베어 내려 했다.
“어딜!”
그 불꽃의 칼날을, 또 다른 화염의 검이 받아쳤다.
스칼렛 발렌타인이 플레어를 발동하여 알리시아의 공격을 상쇄한 것이다.
플레어와 플레어의 충돌.
불꽃과 불꽃이 길항하며 위아래로 퍼진 화염이 혓바닥처럼 날름거렸다.
증발한 바닷물이 증기를 피우고, 펄펄 끓는 대기가 아지랑이를 뿌렸다.
콰콰콰콰콰!
단순 출력이라면 마력량이 앞서는 알리시아가 당연히 위다.
스칼렛은 그저 잠깐 버틸 정도의 공격을 쏘아내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잠깐 버틸 수 있다는 요소가, 일대다의 상황에서 전혀 다른 구도를 만들었다.
극대소멸공격같이 커다란 기술을 쓰고 있으니 공격하는 동안은 무방비가 될 수밖에 없다.
아서와 티리온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