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75화
“핫!”
티리온이 질러 낸 일검이 꼬리의 끝을 잘라 냈다.
아서의 포격이 계속해서 드래곤의 동체를 흔들었다.
<<빌어먹을……!>>
알리시아는 단순한 화력전으로는 저들을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화염 마법은 그녀의 특기였지만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다. 어지간한 마법은 모두 스칼렛의 힘으로 상쇄될 것이고, 지금의 거대한 몸집으로는 저 강철 갑옷의 포격을 버틸 수 없다.
그녀는 바로 작전을 변경했다.
알리시아 비칸테르.
그녀의 종족은 스스로를 용족이라 칭했다.
용족은 처음 태어났을 때는 인간과 같은 형상을 가진다.
그러나 인간보다 훨씬 오랜 세월을 산다. 10년, 100년 오랜 세월을 인간의 형태로 수행을 쌓으며 용으로서의 힘을 키워 나간다.
그리고 1000년이 되는 해, 비로소 용으로서의 자신을 각성하며 궁극의 형태라 일컬어지는 새로운 신체를 얻게 된다.
즉, 용족은 한 가지 형태로 고정되어 있는 종족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비로운 빛이 알리시아의 몸을 감쌌다.
거대한 몸이 급격히 줄어들더니 이내 새로운 형태로 조형되어 이 땅에 섰다.
사람과 같은 이족 보행 생명체.
키는 2미터를 조금 넘을까. 하지만 온몸을 감싸는 두터운 근육과 비늘, 그리고 등 뒤에 솟구친 피막의 날개는 여전했다.
반룡(半龍)의 형태로 탈피한 알리시아가 어깨를 들썩여 사슬로 연결된 캡슐을 등에 짊어졌다.
그다음, 잔영을 남기며 순식간에 이동해 날아오는 포탄을 피했다.
“무슨!”
처음 보는 몬스터의 변화에 깜짝 놀란 아서가 경탄을 토했다.
크게 선회하여 이쪽으로 날아오는 붉은 그림자가 카메라에 포착.
그쪽으로 다시 포구를 돌리며 사격을 가하려는 찰나, 스칼렛이 소리를 질렀다.
“쏘지 마! 잘못하면 김건이 맞는다!”
인류는 지금 위기에 몰려 있었다.
티아마트만 생각해도 힘든 이 와중에 발할라의 별 세 명이 이곳까지 온 것은 어디까지나 살신기를 보유하고 있는 희귀 자원, 김건을 되찾기 위해서다.
인질범을 잡겠다고 인질을 죽여 버리면 그것만 한 실책이 따로 없었다.
“제길!”
욕지거리를 하며 아서가 대포를 버리고 뒤에 있는 입방체에게 무기를 호출. 장비 교체를 시도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짧은 지체가 알리시아에게 기회가 되었다.
홰를 치며 날아간 알리시아가 첫 번째로 노린 것은 당연히 후위인 스칼렛 발렌타인이었다.
마법으로 죽이기 힘들지만 접근만 할 수 있다면 삽시간에 갈기갈기 찢어 버릴 수 있다.
스칼렛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홍염의 날개를 조작해 재빨리 뒤로 도망쳤다.
하지만 그것은 독수리의 강하를 마주한 참새의 날갯짓에 불과했다.
<<느려!>>
“이런 썩을!”
순식간에 그녀의 뒤를 따라잡은 알리시아가 손을 뻗었다.
위기에 처한 스칼렛이 이를 악물며 마법을 짜내는 순간, 둘 사이를 가르는 금빛 광채가 있었다.
알리시아가 손을 물렸다.
그 끝에서 핏방울이 쏟아지며 잘려 나간 손가락 세 개가 바다 위로 떨어졌다.
“아까부터 저를 너무 무시하시는 것 아닙니까?”
티리온 프레이저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후위의 화망을 피하려 덩치를 줄였더니, 이제는 전위가 문제다.
알리시아가 욕설을 내뱉으며 뒤로 후퇴했다.
하지만 티리온은 임시 질량이 담긴 오라를 발판 삼아 날듯이 허공을 달려 그녀의 뒤를 추적했다.
타타탓!
도망치는 적을 아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추적하는 전사의 모습은 그것 자체로 공포였다.
<<이건 좀……!>>
괜히 현 세대 최강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다.
티리온이 등 뒤로 손을 가져갔다.
그의 등에 달라붙듯이 매달려 있던 금속체의 배낭에서 금속 막대가 뿜어져 나왔다.
그 막대는 이내 길쭉하게 늘어나 한 자루의 창이 되었다.
빛살 같은 창날이 알리시아의 전신을 노리고 쏘아져 날아왔다.
알리시아는 급히 팔과 다리를 들어 방어.
퍼버벅!
<<큭!>>
드래곤의 비늘에 방어 마법까지 덧씌웠는데도 단번에 꿰뚫리며 피가 난자했다.
단분자 칼날에 가까운, 초고재련의 오라가 창날에 덧씌워져 있었다.
알리시아가 발악처럼 질러 낸 손톱 역시 티리온의 피부를 덮은 오라에 부딪혀 가볍게 미끄러져 나갔다.
오라의 강도, 그리고 그것을 짜내는 속도가 무시무시했다.
프레이저 가문의 자제로 태어나 막대한 마력을 가졌지만, 특이 체질로 인해 그 출력은 B급 마력적성자밖에 되지 않는 티리온 프레이저.
그의 특기는 김건과 마찬가지로 극도로 정교한 오라 컨트롤이었다.
다만, 대세를 따르지 않고 새로운 길을 구축한 김건과 달리 그는 단지 기존에 있던 길을 극한으로 추구했을 뿐이다.
순식간에 내뻗어 온 창날이 어깨에 구멍을 뚫고 빠져나갔다.
이대로는 3초도 채 버틸 수 없다.
궁지에 몰린 알리시아의 머릿속이 미친 듯이 돌았다.
그녀는 재빨리 몸을 틀어 티리온으로부터 도망쳤다.
그런 그녀가 다시 목표로 삼은 것은 스칼렛 발렌타인.
스칼렛이 위력을 집중시킨 화염구 몇 발을 알리시아에게 맞췄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마치 자폭 돌격이라도 하는 비행기처럼 스칼렛에게 달려들었다.
“소용없는 짓을!”
노호성을 지르며 티리온이 반룡의 뒤를 쫓았다.
알리시아의 손이 스칼렛에게 닿는 것보다 티리온이 더 빨랐다.
삽시간에 그녀를 사정거리에 둔 티리온이 창날을 휘둘러 목을 떨궈 내려는 찰나, 알리시아가 몸을 회전시키며 어깨에 맨 관짝을 던졌다.
당연히, 그 안에는 김건이 있었다.
검은 관짝이 시야를 채워 오는 찰나의 시간.
수많은 생각이 티리온의 머릿속에서 교차했다.
그리고 그는 날아온 관짝을 몸으로 받아 낸다는 판단을 내렸다.
콰앙!
“큭!”
관짝에 얻어맞은 티리온이 추락했다. 자유를 얻은 알리시아는 그대로 스칼렛에게 달려들었다.
“크아아앗!”
반룡이 울부짖었다. 수많은 불꽃이 그녀의 몸을 지졌지만 소용없었다.
용족의 비늘이 가진 내열 성능은 그 어떤 물건보다도 뛰어났다.
“윽!”
순식간에 손을 내뻗어 스칼렛의 날개 한 짝을 뜯어냈다.
항력을 잃은 스칼렛이 균형을 잃는 순간, 알리시아는 스칼렛의 가슴을 향해 반대쪽 손을 내질렀다.
“……!”
스칼렛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용족의 손이 우뚝 멈췄다.
여기서 알리시아가 스칼렛을 죽여 버리면, 인간의 전력은 급격하게 감소한다.
스칼렛의 죽음은 앞으로 있을 티아마트 공략전에서 엄청난 장애가 될 것이다.
그리고 티아마트가 이 세상을 장악하게 되면, 그녀의 동족들은 모두 차가워져 가는 우주에 갇혀 쓸쓸하게 죽어 갈 것이다.
알리시아가 망설였다.
그랬기에, 그녀는 옆에서 날아오는 거대한 금속체의 돌격을 피할 수 없었다.
콰앙!
“하아아앗!”
칼과 방패로 무기를 바꿔 쥔 강철 갑주가 알리시아를 밀어붙였다.
방패가 그녀의 턱을 올려치고, 뒤이어 날아온 칼날이 그녀의 몸통을 갈랐다.
전위의 고재련 오라만큼은 아니지만 예리한 칼날이 비늘을 갈아 대며 불똥을 튀겼다.
날아가던 알리시아가 가까스로 날개를 펼쳐 중심을 잡았다.
극심한 출혈에 감각이 둔해졌다. 눈앞이 깜깜하고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아래쪽에서 접근 중인 살기를 느낄 수는 있었다.
김건이 있는 캡슐을 무인도에 내려놓은 티리온이 고속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거기에 반쪽 날개로 가까스로 균형을 잡은 스칼렛이 대규모 공격 마법을 준비하는 것까지 눈에 보였다.
알리시아는 숨을 삼켰다.
이게 마지막이구나.
눈앞에 펼쳐져 있는 끝없는 대양.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파도 아래가 그녀의 묘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죽을 땐 죽더라도.
임무만큼은 완수한다!
알리시아의 몸이 다시금 확장했다.
순식간에 거대한 본체를 꺼낸 드래곤이 강하를 시작했다.
적이 김건과 떨어졌을 때가 기회.
본체까지 옮기는 건 무리지만 그녀도 인간 하나 정도는 공간 전이로 날려 버리는 것이 가능했다.
“크와아아악!”
거대한 드래곤이 질주했다.
단분자의 칼날이 피부를 저미고, 뿜어져 나온 불꽃이 안쪽의 살을 태웠지만 상관없었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김건을 도주시킨다.
그러면 그 뒤는 그녀의 주인이 책임져 줄 것이다.
드래곤이 앞발을 뻗었다.
뾰족한 손톱의 끝에 조형되어 가는 마법진.
잠깐의 접촉이면 된다. 건드리기만 하면 김건이 탄 캡슐은 이 지구 어딘가로 날아가 버릴 것이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날아온 푸른 광선이 알리시아의 몸통을 꿰뚫었다.
<<……!>>
한순간에 정신이 날아간다.
알리시아의 눈앞을 암흑이 가득 채웠다.
드래곤이 총 맞은 새처럼 떨어졌다.
무인도와 바다의 사이에 추락.
바닷물과 모래가 동시에 솟구쳐 오르며 사위를 가렸다.
“후…….”
그 모습을 지켜보며 스칼렛이 땀을 훔쳤다.
그녀가 방금 사용한 것은 ‘제로 플레어’라 이름 붙인 자작 기술이었다.
플레어의 압력과 열기를 극도로 압축하여 수 배 내지는 수십 배로 증폭된 위력을 일점에 집중하여 쏘아내는 것이다.
화신처럼 초고속 재생 능력을 가진 적에게는 소용없지만, 내구력이 장점인 상대를 처리하는 데에는 절대적인 위력을 보이는 저격 마법이었다.
“좋은 판단!”
아서가 경탄하며 다시금 대포를 호출했다.
드래곤은 반쯤 바다에 잠겨 머리만 무인도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정확히 안구 부분을 포구로 겨냥. 비교적 강도가 약한 부위를 노려 일격에 끝낸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이었다.
스칼렛이 갑자기 사선으로 뛰어들었다.
자칫하면 사람을 대포로 날려 버릴 뻔했다.
놀란 아서가 소리쳤다.
“뭐 하는 거야!?”
스칼렛은 심술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기다려 봐! 어차피 다 죽어 가는 놈이야! 임무는 완수했으니까 이야기 정도는 해 보자고.”
그러고는 설명조차 없이 섬으로 내려간다.
“이런, 이 겁 없는 여자 같으니라고!”
위험하다고 말해 봐야 먹히지 않을 것을 아는 아서는 한숨을 쉬며 추진력을 발휘해 그녀를 따라 내려갔다.
지면에 착지한 티리온 역시 스칼렛의 움직임으로 그 의도를 읽었는지, 김건과 드래곤의 사이에 서서 조용히 경계를 하고 있었다.
스칼렛과 아서가 드래곤의 머리 앞에 착지했다.
드래곤은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콸콸 흘러나온 피가 작은 무인도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아서는 후방에 날아다니는 서브 모듈에게 손짓해 무기하나를 공급받았다.
커다란 쇳덩이를 둥근 모양으로 납작하게 눌러 놓은 물체였다. 그는 그대로 그것을 드래곤의 머리에 붙였다.
“벙커 폭파용 폭탄이다.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이 거리에서 터지면 머리가 남아나지 않을걸.”
그러면서 힘겹게 꿈뻑이는 드래곤의 눈앞에 기폭 장치를 들어 보였다.
스칼렛은 드래곤 앞에 섰다.
죽음을 목전에 둔 흐릿한 눈을 노려보며 물었다.
“왜 나를 죽이지 않았지?”
<<……네가 알 바 아니다.>>
끝까지 자존심을 세운다. 스칼렛은 입술을 깨물었다.
짜증 나는 놈이다.
하지만 싫지는 않았다.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럼 다시 묻지. 넌 아군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