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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80화 (80/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80화

마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가 오기 전, 그러니까 제가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 당시의 이 섬은 지옥이었습니다. 병자들의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고, 하루가 멀다 하고 폭력이나 자살 소동이 일어났어요.”

“…….”

“담당 의사들은 어떻게든 그걸 통제해 보려 했지만, 이곳 고객이 어디 보통 분들이던가요. 그분들 요구 사항을 이것저것 들어주다 보니 쓸 수 있는 약물도 한정되고, 난동을 피워도 제압하기가 매우 곤란했죠. 그 처리를 모두 관리자들에게 떠맡기다 보니까 스트레스가 엄청 심했어요. 계약이고 나발이고 도망가 버릴까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했죠.”

마틴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이 향한 곳은 클라우의 개인 별장이 있는 방향이었다.

“하지만 아가씨가 오고 난 뒤로 무언가가 바뀌었습니다. 사람들 입에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죽고 싶다고 난리를 피우시던 분이 갑자기 식사를 달라고 요청을 하시더군요. 몸이 아파 하루 종일 비명만 지르던 친구도 의식을 되찾고, 짜증으로 가득하던 관리자들 사이에서도 활기가 돌았어요.”

마틴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지금은…… 거의 낙원이죠. 이곳 사람들 모두가 친절하고 상냥합니다. 사회에 나가도 이곳만큼 좋은 데는 없을 거예요. 아가씨가 직접적으로 뭔갈 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어요.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건 알지만 확신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건, 클라우 아가씨가 있기 때문이라는 걸요.”

멍하니 그때를 회상하는 마틴에게, 김건은 그것이 모두 조작된 것이고 클라우는 사람을 장난감으로만 생각하는 괴물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겐 필요한 것이다.

모르핀 같은 진통제가.

정보를 캐려고 시작한 대화였는데, 꽤 어려운 이야기를 들어 버렸다.

김건은 씁쓸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전에는 공자님 같은 말씀을 하더니 이제는 표정까지 난리군. 아주 세상 고민 다 짊어졌어. 새파란 꼬맹이가.”

웃음기 가득한 말소리.

고개를 돌리자 실실 웃는 아스타로트가 보였다.

그는 마틴과 김건의 자세, 그리고 바닥에 깔린 자재를 보고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한순간에 깨달았다.

아스타로트가 손가락을 튕기자 불쑥, 검은 무형기가 몸을 일으키더니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수십 개의 검은 손이 못과 판자를 집어 든다. 그리고 일제히 움직였다.

휙휙휙, 탕탕탕 소리가 들리기를 몇 초.

순식간에 듬성듬성한 구멍이 메워지고 잘게 그어져 있던 균열이 사라졌다.

한순간에 누더기로 기운 듯한 건물은 어디 가고 잘 보수된 창고만이 남았다.

수십 분 걸쳐 할 일을 몇 초 만에 끝낸 아스타로트는 벙쪄 있는 마틴을 뒤로하고 김건을 바라보았다.

“같이 차나 한잔하자고.”

* * *

섬에도 카페는 있었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복지를 위해 섬의 병자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다.

차는 모두 자판기 형태의 공산품으로 만들고 있다. 그것을 서빙하는 비교적 간단한 업무였기 때문에 카운터에는 사람 대신 골렘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스타로트는 김건의 앞에 커피를 한 잔 올려다 두며 말했다.

“의외인데. 너 같은 쓰레기랑은 할 말이 없다고 뻗댈 줄 알았는데.”

김건은 피식 웃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정보 수집이나 해 볼까 하고.”

경박한 남자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그럼 서로 의견 교환이나 해 볼까.”

자리에 앉은 아스타로트가 말했다.

“서로 질문 하나씩 던지기. 대답하기 싫으면 넘기고 다른 질문을 하나 더 받는 거야. 어때?”

음습한 활동을 즐겨 했던 마인협회와 달리, 김건은 회귀했다는 것만 빼면 딱히 밝혀서 위험할 정보는 없었다.

정보전에는 익숙지 않다. 하지만 해 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김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아스타로트는 짐짓 자비로운 척을 했다.

“선공을 양보하지.”

김건이 물었다.

“마인협회의 간부들은 너희 네 명이 다인가?”

아스타로트는 긍정을 표했다.

“그래, 자질구레한 부하들은 더 있지만 그게 궁금한 건 아니겠지?”

김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아스타로트의 말을 100퍼센트 신뢰할 순 없다. 하지만 진짜 정보를 추려 내기 위한 참고 자료 정도는 될 것이다.

“그럼 이쪽 차례군.”

매서운 전사의 눈이, 약관의 청년을 바라보았다.

“넌 어떻게 그렇게 강한 거지?”

“…….”

“생도 나부랭이의 실력이 아니야. 기량은 그렇다 쳐. 그 나이에 정신적으로도 완성되어 있는 건 반칙이야. 재능으로만 도달할 영역은 아니지.”

그 한마디에 김건은 아스타로트가 단순히 그에게 정보를 캐내려고 온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답을 찾는 눈.

어떤 이득을 쫓아서가 아니라, 마음속에 그려 낸 이상에 다가가기 위한 열망이 마인의 눈에 담겨 있었다.

김건은 잠시 아스타로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글쎄, 그냥 열심히 했다고밖에 할 말이 없는데.”

김건이 지금 시점에서 강한 건 그저 그가 미래에서 돌아왔기 때문이다.

10년 치 수행을 미리 땡겨 왔으니 나이에 비해 강한 게 당연했다.

하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어떻게 이 영역에까지 오게 되었냐고 묻는 것이라면 딱히 할 말이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가 강해진 요인에는 당연히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다만, 그걸 단순하게 말 한 마디로 표현하면 그냥 열심히 했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별다른 요령이나 방법론이 있었던 건 아니다.

김건은 입맛을 다셨다.

전에 있었던 싸움 때문에 그러는 모양인데, 강하다고 해 봐야 그가 아스타로트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것도 아니었다.

아스타로트의 기술은 이미 정점에 도달해 있었다.

단순 박투전에는 거의 무적에 가까운 능력.

잠재력은 미극공진동보다 못할지 몰라도, 기술의 근간이 되는, 무리(武理)가 모자라는 기술은 아니다.

김건이 아스타로트를 이겼던 건 그저 조금, 종이 한장 차이만큼의 상황적 우위가 있었을 뿐이다.

아스타로트는 피식 웃었다.

“모범생 같은 대답이군.”

남자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게 정답이겠지.”

아스타로트의 차례가 끝났다.

그는 뭐든 물어보라는 듯 턱짓을 했다.

김건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전의 토너먼트에서, 너희들은 어떻게 해서 화신을 불러낼 수 있었던 거지?”

“벨제불 님으로부터의 계시가 있었어. 화신을 불러낼 수 있는 재료까지 그분이 건네줬지. 박사 말로는 신의 파편이니 뭐니 하는 물건이라더군.”

아스타로트의 차례.

“널 가르쳐 준 스승이 있었나?”

김건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기초를 다질 때야 남들 손을 빌렸지만 그 뒤로는 계속 혼자서 수행했어.”

“……마찬가지군.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 하나만 더 묻지. 별건 아니야. 혹시 혼자 수행하는 게 힘들지는 않았나?”

그걸 말이라고 하나.

김건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힘들었지.”

“그런데 그걸 어떻게 버틴 거야?”

아스타로트가 룰을 깨고 연속으로 질문을 던지자 김건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질문이라고 해 봐야 정말로 시답잖은 것뿐이어서, 그냥 순순히 답변을 해 줬다.

“그냥 오기였지. 여기서는 오히려 내가 F급 마력적성자였다는 게 도움이 됐을지도 몰라. 다른 길은 없었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지. 그러니까 오히려 의욕이 더 나더라고. 성공해 내기만 하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소리칠 수 있는 거니까.”

돌이켜보면 참 우스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결심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너희가 틀렸다고, 옳은 건 바로 나였다고.”

사춘기 소년 같은 선언에 아스타로트는 큭큭 웃었다.

“대단한데. 나도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결국 못 버텼어. 아무리 해도 길이 뚫릴 것 같지 않아서 마인이 됐지. 내 기술에 마기를 더하면 최강이 될 줄 알았거든.”

확실히, 아스타로트의 기술과 마기는 상성이 좋았다.

스치기만 해도 상대의 능력을 확실하게 감퇴시키는 마기의 독성과 어떤 형태로도 몸을 바꿀 수 있는 오라의 괴물이라.

단순히 실력의 문제가 아니다.

가진 무기의 조합이 너무 좋다.

김건이 했던 것처럼 일순에 승부를 보지 않고 시간을 끌며 싸우면, 전위 중에 아스타로트를 이길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스타로트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근데 막상 여기까지 와 보니 아니군. 전혀 최강이 아니야.”

과거를 회상하는 듯 아스타로트가 먼 곳을 바라보았다. 김건이 물었다.

“……후회하냐?”

잠깐 초점을 잃고 흐려져 있던 시선이 김건을 향했다. 아스타로트는 킥, 웃었다.

“전혀, 후회 따윈 안 해.”

김건은 혀를 찼다.

지금까지 아스타로트는 수많은 사람을 죽여 왔을 것이다.

적 대 적. 사상, 혹은 입장의 차이로 인해 싸우고 죽이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애초에 김건 역시 무언가를 죽이는 것을 업으로 삼아 온 싸움꾼이었으니.

하지만 마인협회가 발할라의 힘을 깎기 위해 자행해 온 테러에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목숨을 잃었다.

회귀한 이후에 김건과 한서리가 막았던 테러에서도 그들이 없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지 모른다.

그런 과거를 쌓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후회 한 점 없다면, 답은 정해져 있다.

“그럼 결국 죽일 수밖에 없겠군.”

아스타로트는 웃었다.

“그래, 그때가 되면 잘 부탁하도록 하지.”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평온한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두 남자의 주변은 싸늘했다.

클라우의 마법에 개조당해 대부분의 현상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환자들조차 그들이 있는 영역에는 다가오려 하지 않았다.

그저 감정이 없는 골렘만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자리를 정리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아스타로트가 말했다.

“규칙을 깨 버렸군. 그 대신 네가 알고 싶어 하는 건 다 대답해 주지. 얼마든지 물어봐.”

선심 쓰듯이 말한다.

기분이 나빴지만 김건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물었다.

“벨제불의 계시를 받았다는 건, 너희들은 마계의 벨제불로부터 직접적인 지시를 받는다는 건가?”

“그래. 그래 봐야 대부분은 빨리 이곳을 집어삼켜라, 하는 등의 모호한 지시일 뿐이야. 하지만 직접적으로 연락을 취하는 건 사실이었지. 네가 화신을 날려 버리고, 클라우 아가씨가 우리에게 오기 전까지 말이야.”

‘사실이었다.’ 그 말에 내포된 의미를 깨달은 김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금은 별다른 지령을 받지 않는 건가?”

아스타로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신이 있는데 굳이 차원 너머의 존재에게 의견을 구할 필요가 없지.”

김건이 생각에 잠기자 아스타로트는 씩 웃어 보였다.

“뭘 묻고 싶은 건지는 알겠는데, 네가 생각하던 마인협회는 얼마 전에 끝났어.”

“끝났다니?”

“조직적으로 인류의 힘을 감소시키고, 결국에는 이 세상에 벨제불을 강림시킨다는 대계획을 쫓는 조직이 아니게 됐다고.”

“…….”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게 맞았지. 나름 체계적으로 돌아갔어. 박사가 발할라의 동향을 살피며 계획을 짜고, 레이나가 인력과 자금을 공급했어. 나랑 마이는 뒷공작을 벌이거나 마인을 영입하거나 하는 일을 맡았지. 그때의 조직 구성도나 규모를 알고 싶다면 알려 줄게.”

나른한 한숨이 마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필요 없을 거야. 지금은 남아 있는 게 거의 없거든. 기껏해야 레이나가 이끌던 마교 정도일걸.”

김건이 겪은 미래에서의 마인협회는 마지막 그날까지 암약하며 인류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도 모자라 라그나로크까지 일으켜 발할라를 멸망시킨 주범이었다.

그토록 끈질기던 놈들이 그것을 포기했다?

김건은 쉬이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왜지?”

아스타로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왜긴, 우리는 지시에 따라 움직여. 그냥 우리에게 내려지는 지시가 바뀌었을 뿐이야.”

“클라우인가.”

김건이 겪은 미래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

아스타로트는 그녀가 상황을 바꿨다고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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