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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82화 (82/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82화

알리시아는 공간 마법을 이용한 고차원적인 방법으로 아내와 통신을 할 수 있었다.

즉 알리시아는 김건의 호위 겸 통신기 역할까지 하고 있던 셈이다.

김건이 물었다.

“뭐라고 합니까?”

“발할라의 티아마트 공략 계획이 완성되었다고 하더군. 아마 곧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널 찾아서 티아마트를 처리하는 계획은 잠정적으로 파기된 듯하고.”

“공략의 구체적인 내용은요?”

“정확한 건 아직 못 들었다. 하지만 큰 개요는…… 그, 붉은 함선, 수르트의 최대 출력으로 티아마트의 전신을 통째로 날려 버리려는 것 같았다.”

김건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게 가능합니까? 거의 산맥을 삭제시킬 정도의 화력이 필요할 텐데.”

김건이 겪었던 미래에서도 수르트의 화력은 압도적이었지만,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질량을 지워 버릴 정도는 아니었다.

저번에 했던 것처럼 단순히 지표면을 그을리는 것이 아니다.

거대한 산을, 통째로 증발시켜야 하는 것이다.

알리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도 모르지. 하지만 그걸 위해 전 세계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마정석을 긁어모으고 있다고 하더군.”

“아마 가능할 거다. 지금이 스칼렛의 전성기니까.”

다른 말소리가 끼어들었다.

고개를 돌리자 문 앞에 서 있는 박사가 보였다.

박사는 머리를 톡톡 두들겼다.

“스칼렛의 뇌는 특별해. 마력의 영향으로 변질되어 일반인의 수백 배에 달하는 내구도와 계산 능력을 갖고 있지. 충분한 마력만 공급해 주면 티아마트의 몸체를 날려 버릴 만큼의 마법을 구사해 낼 수 있을 거다. 한 번 하고나면 다시는 마법을 못 쓰게 되겠지만.”

책에서 고개를 뗀 알리시아는 못미덥겠다는 표정으로 박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김건은 믿을 만한 분석이라고 판단했다.

박사는 오랜 시간 발할라의 중심부에 자리 잡았던 사람이다.

배신자든 뭐든, 그 실적까지 부정할 수는 없었다.

박사가 말을 이었다.

“다만 대량의 마정석이 가진 출력을 수르트와 스칼렛에게 연결해 줄 연결망이 구축되어 있어야 해. 한시가 급한 이때에 시간을 끌고 있는 건 아마도 그것 때문인 것 같군.”

알리시아가 말했다.

“그만한 덩치를 날려 버릴 화력이 있다면 사실상 공략은 성공한 것 아닌가? 티아마트가 활동 중이라면 또 모르겠다만, 침묵하고 있는 지금 그만한 공격을 막아 낼 수단이 있을 것 같진 않은데.”

김건이 반론했다.

“그렇게 쉽진 않을 겁니다. 투기의 영향도 계산해야 하고 설령 그것이 없더라도 화력이 넉넉하진 않을 거예요. 아마 계산상 아슬아슬하게 가능한 수준일 겁니다. 그러면 조금만 변수가 끼어들어도 공략이 답답해지겠죠.”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티아마트가 흘린 피 때문에 그곳은 이미 크립티드와 권속들이 득시글거리는 마경이야. 아수라처럼 특이한 성질을 지닌 권속이 또 등장할지도 모르고, 놈의 권속이 멍청하다곤 해도 최소한의 지능은 있어. 주변에 널린 크립티드와 고블린 등의 작은 개체는 놈들에게 좋은 원거리 무기지. 어쩌면 함선이 사정거리까지 다가가는 것도 힘들지 몰라.”

그러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 정도는 어떻게든 해낼 거라고 생각하지만.”

김건은 물끄러미 박사를 바라보았다.

“배신자 주제에 발할라를 꽤 신뢰하나 보군.”

“좋은 곳이야. 발할라 정도로 큰 주권을 잡고 부패하지 않은 집단은 역사를 뒤져도 그리 많지 않을 거다.”

김건은 그런데 왜…… 라는 표정을 지었다.

박사는 이곳에 온 이래 처음으로 미소를 띠었다.

“발할라가 싫어서가 아니야. 내가 길을 잃었을 때, 벨제불 님이 내 길이 되어 주셨지. 난 그저 그분의 뜻을 따랐을 뿐이다.”

아스타로트와 똑같은 말이었다.

김건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클라우가 전 세계 모든 사람을 죽이라 하면 다 죽이겠네.”

“기린과의 계약이 끝난 뒤라면, 물론이지.”

박사는 잠시 생각하다가 첨언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헛것이 아니었다면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지?”

“신경 쓰지 마라. 어차피 우리가 정을 나눌 관계는 아니지 않나. 필요하면 이용하고, 방해되면 제거하고. 자네라면 더 잘 알 텐데.”

그건 그렇다.

김건은 입맛을 다시며 뒤로 물러났다.

박사는 이곳에 온 이유를 밝혔다.

“가라. 별장에서 아가씨가 기다리신다.”

* * *

이번에는 아침 식사였다.

아침인 만큼 차린 것이 많지는 않았다.

김건은 포크로 샐러드를 찍어 먹으며 생각했다.

인간 관계의 조율은 여전히 어렵다.

아군과의 관계든, 적과의 관계든 복잡하기 짝이 없다.

특히 그것이 제정신이 아닌 여자가 상대라면 더더욱.

굳이 친해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입이 근질거려서, 김건은 먼저 말을 내뱉었다.

“같이 식사나 하려고 동맹을 맺은 건 아니겠지?”

코를 박고 식사를 하던 클라우는 김건의 말에 번쩍 고개를 들었다가 이내 씁쓸하게 웃었다.

“그건 아니지.”

곰곰이 김건을 바라본다.

클라우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내가 무슨 짓이라도 해 주길 바라는 거야?”

“네가 미친 짓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클라우는 킥킥 숨죽여 웃었다.

잠시의 침묵.

그녀는 소심하게 접시 위의 계란을 포크로 조각내다가 말했다.

“난 그냥…… 너와 화해하고 싶을 뿐이야.”

“…….”

김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클라우는 그의 무덤덤한 얼굴을 바라보며 꿀꺽 침을 삼켰다.

“하나, 물어봐도 될까?”

“물어봐.”

“어떻게 하면 날 용서해 줄래? 연인이 되어 달라는 것도, 날 사랑해 달라는 것도 아니야. 그냥 친구라도 좋아. 아니, 네가 날 싫어하지만 않았으면 좋겠어.”

떨리는 목소리.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진심이 묻어 나온다.

김건은 상대의 진의를 읽는 데 능숙했다. 그의 감각으로, 클라우의 말에 거짓은 없었다.

진심이다.

클라우는 진정으로 그와의 화해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감정에 공감해 줄 수는 없었다.

김건이 한숨을 쉬곤 식기를 내려놓았다.

똑바로 클라우를 쳐다보며 물었다.

“지금까지, 사람을 몇이나 죽였지?”

냉랭한 목소리.

말로 만들어진 칼날이 클라우의 목덜미에 드리워졌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정신을 무너트리고, 망가트렸지?”

클라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기억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한둘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알고 있다.

클라우의 안색이 조금씩 하얗게 질려 갔다.

김건이 계속 말했다.

“모르겠지. 인간들 따위, 네겐 바닥을 기어 다니는 개미에 불과했을 테니까.”

“…….”

“단순히 네가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줬기 때문에 싫어하는 게 아니야. 네게 큰 악의가 없다는 건 알고 있어. 악의라고 해 봐야, 철없는 아이가 울부짖으며 성질을 내는 정도의 수준이지.”

강철 같은 눈동자.

벨제불마저 흥미를 갖고, 클라우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 눈빛이 여자를 향했다.

“하지만 네 악의 없는 행동에, 앞으로도 사람들은 죽어 나갈 거야. 실수로 밟았든, 개미집에 끓는 물을 들이 부었든, 너한테는 그냥 실수나 장난일 뿐 별다른 의미가 없으니까.”

할 말이 없다. 클라우는 김건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일반인의 입장에서 넌 그냥 천재지변이나 다름없어. 그냥 콧김 한 번 불어서 인생을 지워 버릴 수 있는 불합리한 존재야.”

식기를 내려놓은 김건이 손을 들어 손등 부분을 클라우에게 보여 주었다.

그의 손은 상처투성이였다.

관절 부위가 우둘투둘하고 주먹 부분은 수백 번 찢어지고 다시 붙어 굳은살로 뒤덮여 있다.

수많은 노력과 고련으로 만들어 낸 손.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불합리와 싸우기 위해 살아온 인간이지. 애초에 같이 어울릴 수 없어. 서로가 대칭점에 있으니까. 내가 널 싫어하는 건 생리적인 이유와 다를 바 없어. 악취를 느끼는 데에 교육이 필요 없듯, 그냥 싫은 거야. 본능적인 거부감이지. 그걸 고치려면 네가 흔히 하듯 내 정신을 모조리 뜯어고치는 수밖에 없을걸.”

“…….”

클라우는 한참 동안 김건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확실히 말해 주는 것이, 진심을 보인 클라우에게 해 줄 수 있는 김건만의 최대한의 호의였다.

“그래, 알았어.”

클라우는 웃었다.

하지만 그 말끝이 묘하게 흔들린 것 같았다.

하지만 곧 그것이 착각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기세등등한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떠올랐다.

“아무리 본능적으로 싫다 해도, 그게 필요하다면 참는 정도의 이성은 갖고 있겠지?”

이미 이렇게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자체가 그 증거다.

김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그렇지.”

“그럼 내 부탁 좀 들어 줘.”

그 말에는 반응이 좋지 않았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만 해도 이미 김건은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를 보인 것이다.

그 이상의 요구를 들어 줄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김건은 ‘내가 왜?’ 라는 표정을 짓자, 클라우가 은근한 목소리로 설득했다.

“거래를 하자는 이야기야. 내 부탁을 들어 주면 이걸 줄게.”

그녀는 그러면서 보석 하나를 꺼냈다.

속이 비치는 투명한 수정.

그 안에 검은 무언가가 불길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사악한 기운을 느낀 김건이 눈썹을 찌푸렸다.

“그게 뭐야?”

“벨제불의 조각. 신의 파편이라고도 하지.”

그 말에 김건은 당장 경계하는 얼굴이 되었다.

클라우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손을 저었다.

“그렇게 정색할 필요 없어. 박사가 화신을 소환하기 전에 연구를 위해 떼어 낸 거라고 하는데, 이건 정말, 정말 작은 조각이야. 이 정도 크기로는 화신을 불러내기는커녕 마인도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할걸. 나도 그냥 위급할 때 조금이나마 힘을 보충하기 위해 가지고 있을 뿐이고, 이게 크게 도움이 될 거라고는 생각 안 해.”

클라우는 빨간 눈을 깜빡이며 김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기술을 가진 너에게는 꽤 큰 의미가 있을 거라 봐. 그 원리를 생각해 본다면 말이야.”

“…….”

그 말에 틀림은 없었다.

김건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양’이 아니었으니까.

확실히, 손에 얻는다면 큰 도움이 될 물건이었다.

잘만 사용하면 김건이 가져갈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될지도 몰랐다.

문제는 저것을 얻는 대가로 클라우가 무엇을 요구하는 가이다.

돈 따위로는 가치를 환산할 수도 없는 보물.

그것을 건네는데 보통의 것을 요구할 리가 없었다.

그런 김건의 생각을 읽은 듯, 클라우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어. 별거 아닌 부탁이니까.”

후후후, 웃으며 이건 몰랐을 걸? 하는 얼굴로 말했다.

“그럼 오늘 하루, 모델이 좀 되어 줘야겠어.”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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