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85화
노제 프레데리카가 모두의 앞에서 말했다.
“마지막까지 애썼지만 결국 쓸 만한 정보를 수집하지는 못했다.”
그녀가 뒤편에 위치한 디스플레이의 화면을 돌렸다.
붉은 안개로 뒤덮인 대지가 사진에 찍혀 있었다.
“투기의 영향으로 환경이 너무 바뀌었어. 빛도, 전파도, 음파도 차단되고 있다. 사실상 결계에 가까워. 밖에서 탐색하는 건 불가능해.”
누군가가 손을 들며 물었다.
“정찰대는 어떻게 됐습니까?”
노제는 고개를 저었다.
“안에 뛰어 들어간 사람들 중 돌아오거나 통신에 성공한 사람은 없어.”
밖에서 관찰이 불가능하니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가 정보를 캐 보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모조리 실패한 것이다.
노제는 음울하게 말했다.
“저 안은 마굴이야. 그 안쪽에 무슨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 지금까지의 작전은 모두 추측과 논리로만 세워진 거야. 작전을 너무 신뢰하지 말도록. 전파는 당연하고, 지휘부의 통신이 차단당할 수도 있어. 그러니 그때는 각자 알아서 판단하여 대처하기를 바란다.”
최고 책임자가 입에 담을 만한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역전의 용사라는 말이 어울리는 자들이었다.
마신과의 직접 전투.
그 강대한 신격 때문에 어설픈 자는 이 작전에 끼지도 못한다.
반신의 존재감, 신격을 인식하는 것만으로 전투 불능이 되어 버릴 테니까.
현세대를 주름잡는 위인들에게 미사여구는 필요 없었다.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호통도, 각오를 다지기 위한 연설도 없다.
이미 모든 것을 갖춘 자들에게 쓸데없는 말을 얹는 것은 오히려 낭비였다.
그저 할 일만 말해 주면, 각자 알아서들 완벽하게 스스로의 일을 처리할 것이다.
노제는 무거운 얼굴로 도열해 있는 영웅들을 바라보았다.
이번 전투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던 일반적인 티아마트의 권속들을 상대하는 것과는 방법이 완전히 달랐다.
땅따먹기식 전투가 아니다.
양보다 질.
가지고 있는 최강의 칼을 꺼내 일격에 상대의 심장을 꿰뚫어야 한다.
“모두들 질리도록 들었을 테지만 마지막으로 설명하지. 이번 작전의 대전제는 수르트의 주포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을 이용해 반신을 소멸시키는 것이 목표다. 당연히 수르트가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 후위는 비공정과 함께 수르트를 호위. 나머지 전위들은 별동대로 움직여 지면의 적을 제거하는 것이 기본 방침이다. 나머지 변수들은 스스로 대처해.”
무뚝뚝한 설명이었지만 충분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자 노제가 말을 이었다.
“나는 강하조로 들어가 전위들과 함께 지면으로 내려간다. 통신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이후의 지휘는 엠버 사라노바가 이어서 할 거다.”
노제의 옆에 서 있던 여성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엠버 사라노바, 그녀 역시 발할라의 열두 별 중 하나로, 역사에 남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후위였지만 그녀의 곁에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대마법사 사이먼 베이커.
엠버 사라노바는 연구파 마법사로 본디 남들 앞에 나서기를 싫어했다. 그런 그녀에게 지휘권을 넘기는 것은 그저 명목상의 이유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지휘는 엠버의 고문 역할로 따라붙은 사이먼 베이커가 하게 될 것이었다.
“…….”
반론은 없었다.
애초에, 온갖 이유를 들며 사이먼을 깎아내렸던 자들은 이번 작전에 참가하지도 않았다.
침묵이 흘렀다.
모두들 각자의 각오를 다지며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노제 프레데리카는 그런 영웅들의 모습을 믿음직스럽다는 듯이 바라보곤 해산 명령을 내렸다.
“그럼 모두에게 건투를 빈다. 각자 위치로.”
영웅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천명에 가까운 그 인원이 연결 다리 하나 없이 섬처럼 하늘에 떠 있는 각자의 비공정으로 돌아가 자리를 잡는 데에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10분 뒤.
고지해 두었던 시간이 되었다.
노제가 무전기를 들었다.
마계에서 사용할 수도 있도록 전파가 아니라 공간 마법을 통해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전달하도록 만들어진 마법 도구였다.
무전기를 통해 명령이 하달되었다.
“강하.”
[[[강하.]]]
곧바로 이어지는 복명복창.
그와 동시에 모든 비공정의 엔진이 꺼졌다.
웅웅거리는 추진력 발생기의 전원이 내려가자 정적이 찾아왔다.
공기조차 희박한 고고도였기 때문에 바람 소리조차 없었다.
뚝-
세상이 멈춘 듯했다.
파아란 행성의 위로 열 대의 비공정과 한 대의 함선이 허공에 못박혀 있다.
하지만 시간은 언제나 흐르고 자연은 현상을 일구어 낸다.
성실한 중력이 배를 잡아챘다.
공전하는 행성은 언제나 그렇듯이 영역권에 들어온 물체를 품으로 끌어당겼다.
빠른 속도로, 비공정이 낙하하기 시작했다.
* * *
콰우우우!
대기권에 진입하자 바람이 찢어지며 엄청난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와르릉 와르릉, 자유 낙하로 인한 가속과 공기와의 마찰 충격에 비공정이 부서질 듯이 흔들렸다.
“큭……!”
한서리는 그런 배의 갑판 위에서 납작하게 몸을 엎드리고 진동을 견디고 있었다.
비공정은 본디 하늘에서의 폭격이나 직접적인 공중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공수 부대를 투입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별도의 강하 포트 따윈 없다. 배에서 내리고 싶으면 그냥 뛰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 탓에 지면에서의 전투를 명받은 강하조는 언제든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모두 갑판 위에 올라와 있었다.
우르르릉!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그들은 아무런 안전 장치 하나 없이 자유 낙하의 충격을 버텼다.
전위들은 임시 질량을 생성하며 막강한 악력으로 배를 붙잡았고, 소수의 후위들은 전위들의 도움을 받거나 마법을 사용했다.
세라스는 물론 한서리 역시 전위들을 지원하기 위한 서포터로 강하조에 배속되었다.
“조금만 참아!”
세라스는 한 손으로 오라를 뿜어 한서리의 몸을 고정시켜 주며 남은 손으로 강철의 틈새를 붙잡았다.
엄청난 진동, 찢어지는 바람. 그리고 덮쳐 오는 중력.
검던 하늘이 하얗게 물들고, 하얗던 하늘은 이내 파랗게 물든다.
그리고 바로 눈앞에 검은 먹구름이 밀어닥쳤다.
티아마트가 발현한 투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이상 기후가 일어나고 있었다.
황무지의 하늘 위에 낀 먹구름 속으로 비공정이 뛰어들었다.
콰르르릉!
천둥이 치고 빗방울이 휘날린다. 비공정의 주변에 펼쳐진 마법의 방어막이 하얀 번개를 빗겨 낸다.
와사사사!
빗방울이 터져 나간다.
먹구름을 돌파하고 나서야 비로소 지면이 보였다.
붉은 안개가 끼어 있는 대지.
정체불명의 이계가 코앞으로 닥쳐 왔다.
삐이이이이!
추락하는 비공정의 움직임을 따라 경고음이 울려 퍼지며 길게 꼬리를 늘였다. 그 의미를 깨달은 모두가 자세를 고쳐 잡았다.
“조심!”
몸 약한 후위들을 배려한 누군가가 소리를 치고, 꺼져 있던 엔진이 점화를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앗!!
감속이 시작되자 가속력과 추진력 사이에 끼인 몸이 꽉꽉 눌렸다.
모두들 각종 보호 마법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지만 열 배가 넘게 증폭된 체감 중력이 영웅들을 압박했다.
“으으으으!”
단련이 부족한 후위들이 신음 소리를 흘렸다. 그와 동시에 연속으로 터져 나오는 엔진의 불꽃.
감속, 감속, 감속!
가속력을 억누르는 엔진의 힘에 선체마저 비명을 지르며 정신없이 흔들렸다.
그렇게 이어지던 진동이 우뚝 멈추고, 빠르게 위로 스쳐 지나가던 주변 풍경이 한 지점에 고정되는 순간, 엔진의 출력이 전력으로 개방되었다.
비공정이 실드를 전개했다.
포화를 막아 내기 위해 설계된 우산 모양의 마력 방패를 전방에 세우며 붉은색 안개를 향해 전력으로 질주했다.
파지지지직!
투기가 피워 올린 붉은 안개와 마력 방패가 충돌하며 번갯불을 튀겨 냈다.
번져 나간 빛줄기가 대기를 찢으며 안개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하나 그것도 잠시, 한순간에 안개가 걷히며 널따란 공간이 펼쳐졌다.
“아!”
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세상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가 비명에 가까운 탄성을 내질렀다.
막대한 거인이 지평선 위에 서 있었다.
몸의 절반은 없다.
상체만 남은 거인은 한쪽 팔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불타오르는 화염을 굳혀 놓은 것 같은 거대한 머리는 마치 태양처럼 붉은빛을 발하고 있다.
너무 크다.
너무 커서 현실감이 들지 않을 정도다.
실제로는 수십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데 그것은 마치 코앞에 당도해 있는 것처럼 존재를 과시했다.
차라리 거짓이거나 환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사방에 퍼져 있는 그 막대한 존재감이 그것이 진정 이 세상에 실재하는 것이라 외치고 있었다.
숨통이 막힌다.
독처럼 주변공기에 맴도는 끔찍한 살기에 사람들이 몸서리를 쳤다.
저것이 티아마트.
피와 전쟁의 마신.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자들은 그 마신을 끝장내러 왔다.
용맹하게 비공정이 돌진했다. 그들은 빠른 속도로 티아마트를 향해 날아갔다.
한서리와 세라스는 난간 바깥으로 펼쳐진 세상의 모습을 보고 침을 삼켰다.
마치 지옥과 같은 광경이었다.
티아마트의 몸통 안쪽에서 흘러나온 피가 강물과 폭포가 되어 콸콸 흐른다.
그 위로는 기이한 빛깔의 나무들이 연꽃처럼 떠다니거나 지면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피웅덩이 아래에선 괴물들이 끝도 없이 피범벅이 모습으로 기어 나왔다.
크아아아아아!!
붉은 피부로 둘러싸인 근육 덩어리 괴물들이 비공정의 무리를 발견하고 괴성을 내질렀다.
비공정이 지나가는 상공을 배경으로, 릴레이하듯 고성이 울려 퍼졌다.
인류 최강의 전력이 마신을 죽이기 위해 지옥의 상공을 관통했다.
* * *
맨 처음 이상을 발견한 건, 비공정의 선두에 있던 에디였다.
‘…….’
멀리서 봤을 때는 티아마트의 위용에 질려서 미처 보지 못했는데,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보이는 게 있었다.
“저건 뭐야?”
정말 산이 되어 버린 것마냥 굳어 버린 티아마트의 반신.
그의 몸통 위로 엄청난 수의 나뭇가지가 자라 있었다.
공간 마법을 이용한 통신기를 사용하려면 함선의 중심지까지 들어가야 하기에. 에디는 오라를 통해 증폭시킨 고함을 내질렀다.
“티아마트의 몸을 크립티드가 덮고 있다!”
폭탄같이 터져 나온 목소리.
모두가 그것을 들었다.
에디의 외침으로 목표를 재확인한 스칼렛이 지휘부를 향한 무전기에다 소리쳤다.
“이봐, 예상했던 것보다 덩치가 너무 커졌잖아! 저만한 크기를 날려 버리는 건 무리야!”
그녀의 말대로 티아마트의 몸통은 꽤 부풀어 있었다.
비율로 치면 20퍼센트 정도일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안 그래도 막대한 질량을 가진 티아마트다.
육안으로 보이는 크기가 20퍼센트가 늘었다면, 그 질량 값은 어마어마하다.
어림잡아 산 몇 개분 질량이 더해진 셈.
수르트의 최대 출력으로도 소멸시킬 수 있는 건 순수한 티아마트의 몸통 정도다. 저렇게 이물질이 많이 끼어 버리면 화력이 모자란 것이 당연했다.
시작부터 작전의 근간이 흔들렸다.
“제기랄!”
강하를 준비하던 노제가 중앙 지휘실로 뛰어갔다. 지휘실에서 비보를 전달받은 사이먼의 얼굴에는 암운이 돌았다.
새로이 등장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도 전에, 티아마트의 위를 덮고 있던 나무줄기가 일제히 뱀처럼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전방!”
누군가가 소리치고, 이변을 알아챈 비공정들이 일제히 우산 모양의 보호막을 앞으로 돌렸다.
티아마트의 몸통에서 뿜어져 나온 수백, 수천의 나무줄기가 비공정의 무리를 향해 쏘아져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