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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86화 (86/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86화

콰콰콰콰쾅!

촉수처럼 돋아나 덮쳐 오는 나무줄기의 세례를 보호막이 막아 낸다.

충돌과 함께 마력의 불꽃이 피어오르고, 까맣게 타 버린 나무가 우수수 지면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공격이 시작된 것은 전방뿐만이 아니었다.

비공정의 보호막은 막강한 방어력을 가진 대신 일종의 방패마냥 한쪽 면밖에 막을 수 없었다.

후방에서 날아온 물체가 비공정을 직격하자 와르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선체가 떨렸다.

그 진동을 버티던 영웅들이 이를 갈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약 5미터.

아수라에 비견될 정도의 키와 덩치를 가진 샛노란 외눈의 거인들이 옆에 자라 있던 크립티드를 뽑아내는 것이 보였다.

티아마트의 상위 권속인 타이탄이다.

하나하나가 S급 영웅에 준하는 힘을 가진 괴물들.

“크아아아아앗!”

어마어마한 괴력을 가진 거인 수백 명이 뽑아 든 나무를 목창처럼 던져 대기 시작했다.

나무를 뽑아 던질 뿐이지만 그건 말이 나무지, 수백 킬로그램, 혹은 수 톤에 달하는 거대 포탄을 화살과 같은 속도로 쏘아 날리는 것이다.

비록 탄속은 떨어질지언정 위력만큼은 어지간한 포격에 지지 않는다.

빠르게 의견이 오갔다.

“고도를 높여!”

“안 돼! 그러면 티아마트가 수르트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 요격해!”

비공정 하단에 달린 마법 포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말이 포대이지 마정석과 진법의 지원으로 화력을 강화시킨 후위들이었다.

포대 위치에 선 영웅들이 사격을 시작했다.

각자의 자리에 있던 후위들도 주문을 전개.

“쏴!”

불꽃과 번개가 비처럼 쏘아지기 시작했다.

뿜어진 화염이 폭풍을 일으키며 날아오는 나무를 박살 내고, 포대의 힘으로 강화되어 극대소멸공격에 가까운 위력을 지니게 된 번개 마법이 지면의 타이탄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콰쾅! 콰콰콰쾅!

“우오오오오옷!”

“방어막의 출력을 올려!”

“이쪽 화망이 얇아, 도와줘!”

폭음이 울렸다. 타이탄들이 괴성을 내지르고 영웅들이 노호성을 토했다.

치열한 화력전이 전장을 물들였다.

티아마트의 몸에서 덩굴처럼 자라 나온 나무줄기의 습격은 방어막으로 막아 내고, 지면에서의 포격은 화망을 펼쳐 막아 낸다.

언뜻 비등한 싸움처럼 보이지만, 좋지 않은 흐름이다.

중앙통제실에서 상황을 살펴보던 사이먼 베이커는 이를 악물었다.

인간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퇴치. 스케일이 조금 크긴 하나 어디까지나 암살이 주목적이다.

티아마트라는 이름의 무한한 생산 공장이 있는 한 힘 싸움을 벌여서 괴물들에게 이길 순 없었다.

‘일단은 대책을 세울 시간이 필요해.’

판단을 내린 대마법사는 바로 이때를 대비해 옆에 대기시켜 두었던 영웅의 이름을 불렀다.

“노바 양.”

“……네. 준비하고 있었어요.”

노바는 잔뜩 긴장해서 말했다.

그리고 양손에 쥐고 있던 마법 제어봉의 한쪽을 사이먼에게 건넸다.

사이먼이 마법 제어봉을 잡았다.

사이먼과 노바, 두 사람이 자아낸 마력의 술식이 비공정을 흐르고, 그들과 동화된 비공정이 증폭기 역할을 하며 마정석의 동력원이 울음을 토했다.

마법 전개의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비교적 하수인 노바가 카운트를 셌다. 사이먼은 그녀의 호흡에 맞춰서 알아서 술식을 전개할 것이다.

“3, 2, 1, 지금!”

사이먼과 노바가 올라탄 비공정을 중심으로 푸른 원형이 퍼져 나가 주변을 뒤덮었다.

그와 동시에, 주변의 빛이 굴절했다.

비공정의 표면이 부서진 디스플레이의 화면처럼 무지갯빛 잔장을 남기며 희끄무레하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번지는 일렁임.

다음 순간, 비공정들이 각자 분열을 시작했다.

두 개, 세 개, 네 개…… 아니, 셀 수도 없이 갈라져 나온다.

뚫린 구멍에서 기어 나오는 벌레마냥 증식하더니 수십 개, 수백 개로 나뉜 비공정의 잔영들이 사방을 뒤덮었다.

벌떼처럼 솟아오른 함선의 그림자가 상공을 가득 채운다.

“크르륵?”

“뭐야! 이게!”

그 무시무시한 규모의 환영 마법에 지능이 없는 티아마트의 권속들마저 의문을 표하고, 브리핑을 통해 해당 마법의 존재를 알고 있던 영웅들마저 감탄을 토했다.

“……!”

티아마트의 몸에서 솟구쳐 나온 덩굴도 시각을 근간으로 한 감각기를 가지고 있는지 일순 혼돈에 빠져 몸을 뒤틀었다.

고민도 잠깐, 눈앞에 있는 비공정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하나 대부분이 환영. 허공에 헛손질을 하기 바빴다.

지면에서의 포격도 현저히 옅어졌다.

하지만 이것으로 벌 수 있는 시간은 극히 한정적이다. 사이먼이 노바를 바라보았다.

“버틸 수 있겠나?”

“……한번, 해 볼게요!”

노바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똑바로 이야기했다.

사이먼은 그녀를 믿고 제어봉에서 손을 뗐다. 강하조에 있다가 문제가 생기자마자 빠르게 되돌아온 노제와 눈이 마주쳤다.

여러 명이 의견을 개진해 방향성을 흐트러트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곳에서 제일 많은 경험과 실적을 쌓은 고문과 총책임자.

대화를 나눌 것은 둘이면 충분했다.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마지막 회의가 시작되었다.

노제는 한숨을 들이켜며 말했다.

“일단은 티아마트의 몸을 덮고 있는 저 덩굴들을 치워야 해요.”

수르트의 최대 출력 포격을 발동시키는 데에는 5분이 걸린다.

그것을 더 당길 수도, 늦출 수도 없다. 한 번 발동을 시작하면 무조건 그 시간 뒤에 쏴야 한다.

애초에 발동이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스칼렛 발렌타인에게 감사해야 할 판이다. 그 이상을 바랄 순 없었다.

한 번 신호하면 끝.

그러니 함부로 포격을 지시할 순 없다.

애초의 계획은 비공정의 화력과 지면으로 내려갈 별동대로 지상에서의 방해를 제거하고, 남은 후위들은 비공정과 함께 수르트를 지키며 적확한 타이밍에 수르트를 사용해 티아마트를 처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나무줄기의 집합체가 상황을 바꿨다.

저것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작전의 수행이 불가했다.

노제는 입술을 씹었다.

‘어떻게든 김건을 확보했어야 했는데…… ‘

살신기를 가진 그가 있었다면 수르트의 화력을 마음껏 써서 방해물을 제거하고, 마지막 순간에 그를 투입해 티아마트를 끝장내는 수도 있었을 터다.

하지만 후회는 늦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그 결과는 하늘만이 알 것이다.

지금은 어떻게든 수르트의 화력을 꽂아 넣을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사이먼이 침착하게 분석했다.

“일단 저 나무줄기는 티아마트가 잠들어 있는 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 같군.”

그건 알고 있다. 그걸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지.

노제가 침을 삼켰다.

“……겉보기에는 크립티드와 비슷한 외견과 질감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크립티드 중에 저렇게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개체를 본 적은 없어요.”

사이먼은 침음했다.

처음 보는 괴물을 상대해야 할 때는 언제나 괴롭다.

경험이 많고, 아는 것이 많을수록 그 점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많은 것을 알수록, ‘모른다.’ 라는 단어가 가진 위험성이 얼마나 큰지 더 잘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깊게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사이먼이 말했다.

“……그럼 도박을 할 수밖에 없겠군.”

“어떻게요?”

“일단은 저것이 크립티드와 비슷한 존재라고 가정하고 생각해 보게. 그러면 가장 큰 약점은 뭐지?”

“뿌리죠. 뿌리 쪽에 위치한 핵을 부수면…….”

말을 하던 노제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뜬다. 그리고 띄엄띄엄 말했다.

“……부수면, 크립티드는 속이 썩어 버린 나무처럼 강도가 약해져요.”

사이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러면 저렇게 부자연스러운 형태는 유지할 수 없을 거야. 스스로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겠지. 잔여물이아 조금 남겠지만, 강도도 약하고 쉽게 타는 재질이니 화력을 감소시키진 않을 거야.”

비약이 있긴 하나 믿어 볼 건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문제가 있었다.

“핵을 파괴할 여력이 없어요. 덩굴의 공격 때문에 비공정의 방어막은 모두 전방을 향하고 있어요. 화망을 펼쳐서 수르트를 지키는 게 고작이고…… 제대로 된 화력 지원은 불가능한 상황이죠. 강하조를 투입하더라도 지원 없이 티아마트의 군단을 돌파하는 건 어려울 거예요.”

그럼 대체 어떻게 하냐는 거냐, 그렇게 반문하면 할 말이 없어지지만 노제는 거침없이 말했다.

아무리 급조한 작전이라도 최소한도의 정합성은 있어야 했다.

불가능한 임무에 귀중한 전력을 낭비해선 안 됐다.

사이먼은 음, 한 번 콧소리를 흘릴 만큼의 시간을 고민하다 말했다.

“……수르트를 쓰지.”

“수르트를 쓰자고요?”

“조금만 쓰는 거야. 최대 출력의 5퍼센트 정도만 사용하면 지표면의 적을 일소할 수 있겠지. 그러면 강하조가 핵을 파괴하러 가고, 나머지 전력은 그 뒤를 지켜 주면 될 거야.”

노바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면…… 티아마트의 몸체를 날릴 화력이 모자랄지도 몰라요.”

계산상, 약간의 여유는 있는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게 더하기 빼기 산수도 아니고, 한 치의 오차도 용서치 않는 곡예를 시도할 순 없었다.

“……그건 내가 어떻게든 메워 보겠네.”

사이먼은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더 이상 시간이 없었다.

마법을 유지하고 있는 노바의 눈이 뒤집혀 있었다.

기절하기 직전이다. 곧, 환영을 통한 시간 벌이는 끝나게 될 것이다.

이곳의 최종 결정권자는 노제다.

사이먼은 의견을 제시했고, 노제의 판단을 기다렸다.

그리고 노제는, 조용히 사이먼을 바라보았다.

세상이 무너져도 그대로일 것 같던 멋진 얼굴이 근래에 부쩍 늙어, 눈가에 주름이 잡혀 있는 것을 보니 가슴이 욱신거려 왔다.

사이먼은 모를 거다.

노제는 수십 년 전부터 그를 지켜봐 왔다.

동경하는 남자의 등을 쫓아가기 위해 노력해 왔다. 설령 그가 돌아봐 주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이제 와서…… 무슨…… 바보 같아.’

노제는 자조했다.

어떻게 하겠는가, 한 번 정했다면 끝까지 그 등을 따르는 수밖에.

그녀는 길게 고민하지 않고 무전기를 들었다.

“스칼렛, 수르트를 사용해서 지표면을 지워. 출력은 최대 5퍼센트. 그 이상은 사용하지 말고.”

무전기 너머의 스칼렛은 펄쩍 뛰었다.

“뭐? 언니!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알아? 소 잡는 칼을 벌레 잡을 만큼의 힘으로 움직여서 그걸 잡으라고? 설령 그걸 한다 해도, 여기서 마력을 낭비하면……!”

“설령 화력이 모자라더라도, 그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든 할 거야. 걱정 말고 시키는 대로 해.”

“……!”

노제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진심으로 그걸 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스칼렛은 이를 악물었다.

만약 다른 놈이 똑같은 말을 지껄였다면 그 자식을 향해 수르트를 쏴 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한 건 노제였다.

사이먼 베이커가 발할라라는 집단의 얼굴이라면, 노제는 발할라의 심장이었다.

천방지축들이 득시글거리는 교수진의 문제아들을 통솔하는 맏언니.

노제가 사이먼을 따랐듯, 스칼렛은 노제를 따랐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주제에 매일같이 잔소리만 늘어놓지만, 친척 하나 없는 스칼렛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노제가 사이먼을 믿고, 스칼렛이 노제를 믿었다.

신뢰와 신뢰가 사슬처럼 이어져 상황을 움직였다.

중앙통제실의 스피커로 뾰족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알았어.”

스칼렛과의 통신이 끊김과 동시에 수르트가 울기 시작했다.

킹, 킹, 키이이이이이이-!!

배를 둘러싸고 있는 마력 네트워크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수르트의 중심부에 있는 스칼렛은 온몸을 회로와 전선으로 휘감고 있었다.

그것을 타고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집속되었다.

“크으으으윽!”

스칼렛의 이마에 핏줄이 치솟고 부딪힌 치아에서 하얀 조각이 튀었다.

집중된 마력이 해방되고 싶어 미친 듯이 날뛴다. 제어권을 쥔 스칼렛은 필사적으로 그것을 억눌렀다.

아직은, 아직은 녀석을 풀어 줄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고삐를 틀어쥐었다.

그리고, 동시에 마법을 짜 올렸다.

마치 성난 황소 위에 올라탄 채로 균형을 잡으며 화살을 날려 표적의 정중앙을 맞추는 듯한 묘기가 펼쳐졌다.

붉은 배의 하단부에서 마법진이 분출.

빛으로 이루어진 선이 동그랗게 원형을 그리고 지그재그로 휘날리며 빠르게 문양을 그려 나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진식이 하얗게 물들고,

이내 그 안에서 폭포수 같은 불줄기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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