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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88화 (88/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88화

부동명왕의 가면을 쓴 아수라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수라? 이 세계의 인간들이 붙인 명칭치곤 괜찮군.”

아수라가 모든 손을 들어 올렸다.

등 뒤의 고리가 빛을 뿜으며 황금색 선으로 이루어진 칼날이 생성되어 그 손아귀에 들어갔다.

그리고 또 하나.

아수라의 다리 아래로 고개를 들이미는 황금색 용이 있었다.

생물체라는 느낌은 없다. 아수라가 손에 든 것처럼 황금색 선으로만 이루어진 폴리곤 덩어리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실재했다.

그 용의 목을 끼고 올라탄 아수라가 그와 함께 공중으로 날아올랐으니까.

황금색 용, 금빛 무기와 부동명왕의 얼굴을 한 여섯 팔의 괴인.

아수라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장처럼 인간들을 굽어보았다.

“말은 필요 없지. 그분의 휴식을 방해하는 자들은 모두 죽일 뿐이다.”

황금색 무기를 꼬나쥔 마신의 추종자가 천벌을 내리듯, 그들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 * *

갑자기 나타난 새로운 형태의 아수라, 그리고 사방에서 덮쳐오는 열 마리 베히모스의 거체.

그것이 나타낸 결과는 피와 비명을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악!”

“크어억!”

베히모스의 발톱에 찢겨 나간 영웅들이 비명을 질렀다.

베히모스라고 무적인 것은 아니다.

재생 능력에도 한계가 있고 그러한 재생력과 거체를 움직일 동력을 제공하는 핵, 마정석을 파괴하면 죽는다.

문제는 그걸 노리는 게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는 것이다.

10층 건물에 가까운 키를 가진 거체가 몸통마저 공처럼 둥그렇게 말고 있으니, 핵을 파괴하려면 가히 10미터가 넘는 살과 뼈의 벽을 돌파해야 한다.

인간의 그것처럼 말랑한 것도 아니고, 철골에 버금가는 뼈와 가죽보다도 질긴 근육 줄기다.

극대소멸공격이라도 소형의 것은 표면만 그슬리는 것이 전부다.

후위의 공격도 그러할진대, 그것보다 낮은 화력을 가진 전위는 말할 필요도 없다.

거기에 그 커다란 덩치가 뿜어내는 일격은 하나하나가 필살이니, 상대하는 입장에서 끔찍한 악몽일 수밖에 없었다.

“아아아악!”

내로라하는 S급 영웅들이 학살당하기 시작했다.

세 체의 베히모스로 유인, 그 후 잠복을 통해 펼친 매복 작전에 당해 피해는 더 커졌다.

완전히 당했다.

그 지혜를 짜낸 것은 아마도 새로이 나타난 아수라이리라.

티아마트의 권속들은 멍청하다는 것 외에는 단점이 없는 놈들이다. 그런 놈들이 이 정도 전술까지 쓰기 시작하면 답이 없었다.

“제기랄!!”

티리온은 분노를 토했다.

대체 아수라라는 존재는 뭔가, 그것이 정녕 이 괴물들을 통제하고 있는 것인가?

가면이 바뀐 이유는? 새로이 나타난 무기의 능력은?

수많은 생각이 지나갔지만 고민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등 뒤의 금속 배낭에서 뾰족한 검날이 솟구쳐 올라왔다.

검을 뽑아 머리 위에서 날아오는 아수라의 금빛 칼날을 맞받아쳤다.

파앙!

최초의 충격으로 상대의 힘과 기세, 그리고 무기의 질을 판단.

한순간에 지금의 아수라가 쥔 황금 날이 이전의 놈이 사용하던 무기에 비해 격이 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자를 수 있어.

이론상 무엇이든 자를 수 있다고 하는 단분자 칼날.

그것의 단점은 강도다. 분자의 사이로 밀고 들어갈 정도로 얇은 그것은 그만큼 쉽게 파손되어 버리기 마련이다.

생성한 단분자 칼날로 무엇을, 어디까지 잘라 낼 수 있느냐.

그것은 전위의 오라 제련 기술 실력을 나타내는 중요한 척도였다.

그 척도로 따졌을 때, 지구에서 티리온을 넘을 사람은 없었다.

“스읍-.”

티리온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한서리에게 직접 부여받은 버프가 강체술과 합쳐져 근력을 끌어올리고, 그가 뽑아낸 무기를 감싼 오라가 휘황찬란한 빛을 뿌리며 종횡무진했다.

촤자자작!

일검이 춤추자 육검과 육완이 파편이 되어 흩뿌려졌다.

무서울 정도의 예리함, 무서울 정도의 검놀림이었다.

일합에 모든 무기와 팔을 잃은 아수라가 감탄을 토했다.

“굉장하군! 대단한 솜씨야!”

그렇게 아수라가 여유롭게 말할 수 이었던 것은 새로 돋아난 팔과 새로 생성한 칼날 여러 개를 겹쳐 티리온의 검을 막아 내는 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검을 맞댄 티리온과 아수라가 순간적으로 얼굴을 마주했다.

티리온은 이를 갈았다. 아수라는 가면 속 얼굴로 웃음을 흘렸다.

“이전 녀석이 칭찬했던 것도 이해가 가는군.”

그 말이 끝나자마자 아수라의 등에 자리한 금빛 휘광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허공에 떠오른 수십 개의 칼날이 그 끝을 티리온에게 향했다.

티리온은 그 순간 깨달았다.

처음 합을 교환했을 때 파악한 무기의 격.

그것은 결코 그것의 질이 떨어져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것은 제대로 된 무기가 아니라, 그저 소모품이었을 뿐이다.

샤샤샤샤샥!

허공에 뿌려진 황금 칼날이 살아 있는 것처럼 요동치며 티리온을 향해 쏘아져 들어왔다.

아수라를 떨쳐 내고 뒤로 후퇴하지만, 검들은 그대로 방향을 틀어 벌떼처럼 티리온에게 달려들었다.

수십 개의 검으로 행하는 어검술.

그 뒤를 쫓아 날아오는 여섯 팔의 신장.

“……!”

그야말로 꿈속에서 마주쳐도 무서울 광경이었으나, 공포는커녕 열화 같은 오기가 티리온의 눈에서 번득였다.

상성 따위의 핑계를 대며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만 했던 것이 방금 전이다.

내 영역 내에서의 싸움까지 질 것 같나!

그의 손에 들린 칼날을 배낭이 회수, 다시금 손을 뻗자 이번에는 다른 무기가 배낭에서 뿜어져 나왔다.

가시로 몸을 장식한 철구와 그것을 끝에 매달고 있는 사슬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유성추를 꺼내든 티리온이 사슬을 회전시켰다. 어마어마한 회전 속도에 헬리콥터의 날개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카가가가강!

고속으로 회전, 거기에 오라를 뒤집어씌워 한계까지 강화된 사슬이 벌떼처럼 날아오는 어검술을 튕겨 냈다.

카라라라락!

사슬이 부딪치며 불똥이 튀고, 뻗어 나간 유성추가 티리온의 몸 주위를 회전하며 이해 불가한 궤도를 그렸다.

사슬이 그려 낸 원형의 궤도가 모든 공격을 튕겨 내고, 그대로 일직선으로 날아가 아수라의 머리를 후려친다.

아수라의 머리통이 날아간다.

엄청난 충격에 코 윗부분의 머리가 그대로 분쇄됐다.

“……제법!”

아수라는 그 와중에도 중얼거리며 순식간에 재생해 낸 손으로 머리를 치고 지나가는 사슬의 중앙을 여섯 개의 검으로 꿰뚫었다.

사슬이 끊어졌다.

중간이 잘려 나간 유성추가 회전을 이기지 못하고 밖으로 날아갔다.

이어서 부서진 머리까지 복원한 아수라의 손짓을 따라 새로이 만들어진 황금 검의 무리가 티리온에게 재차 돌진.

티리온은 남아 있는 사슬을 버렸다.

바로 등 뒤에서 새로운 무기를 뽑았다. 길쭉하게 늘어난 창대가 그의 손에 잡혔다.

언월도를 꼬나쥔 티리온이 달려 나갔다.

회전하는 창대로 다시금 날아오는 어검을 격파.

그대로 아수라의 간격으로 파고든 티리온은 일섬을 내질러 무기채로 아수라의 팔과 몸통마저 두 조각으로 분할해 버렸다.

쩌엉!

어마어마한 일격을 내뿜은 언월도의 칼날이 충격을 못 이기고 두 쪽으로 흩어졌다. 반신이 없어진 아수라를 흘려보낸 티리온은 그대로 배낭에서 쌍검을 꺼내 들며 몸을 회복해 되돌아오는 아수라를 마주했다.

카카카캇!!

두 팔과 여섯 팔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며 충돌 지점에서 불똥이 튀겼다.

한순간에 몇 번 검이 부딪혔는지 셀 수도 없을 정도의 연격.

그 승자는 티리온이었다.

아수라를 태우고 다니는 황금색 용을 포함해, 아수라의 몸이 육편이 되어 사방으로 뿌려졌다.

하지만 신격을 지녀, 핵마저 존재하지 않는 괴물은 아무렇지도 않게 핏물 구덩이에 재구축한 몸을 일으켜 티리온에게 덤벼 왔다.

“좋구나, 좋아! 엄청난 투기! 엄청난 실력이다! 나를 더 죽여 봐라!”

그것을 바라보는 티리온의 눈에서 피가 흘렀다.

상처가 있어서가 아니다.

과도한 집중력으로 인한 뇌의 부하, 그리고 고도의 움직임을 재현하기 위해 끌어올린 심장 박동과 혈류의 압력이 신체 각부의 모세 혈관을 파괴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쌍검을 쥔 손끝이 떨렸다. 전신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며 아우성을 쳤다.

방금 전 티리온은 이미 그가 가진 최대한의 힘을 쏟았다.

그에게 더 이상 아수라를 압도할 힘은 없었다.

“…….”

그래도 검을 앞으로 향했다.

승패가 확실해도, 상상력이 그려낸 미래에 절망밖에 비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싸워 나갈 수 있는 집념이 없다면 당대 최강이라는 칭호를 얻을 수 없었다.

그런 그를 가로막는 인영이 있었다.

전신에서 회전하는 오라의 톱니가 날아오는 어검을 모조리 박살 냈다.

그리고 어디선가 날아온 초음속의 주먹이 티리온을 향해 달려들던 아수라의 몸을 수십 조각으로 분할해 버렸다.

안진현, 그리고 에디 슐츠.

두 덩치가 한 젊은이의 양옆에 나란히 섰다.

그 모습에 티리온은 경악했다.

“두 사람이 빠지면 다른 사람들은……!”

안진현이 말했다.

“어쩔 수 없어. 여기서 네가 허망하게 죽어 나자빠지면 끝이야. 그리고 네 생각보다 전황은 괜찮아.”

그는 그러면서 뒤편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낭랑한 외침이 전장을 울렸다.

“다른 곳은 파괴해 봐야 소용없어! 눈! 그리고 다리를 집중적으로 노려! 그리고 전신을 오라로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은 입안으로 침투! 안에서 핵을 찾아!”

골렘의 등 위에 올라탄 채 전장을 호령하는 여자가 있었다.

파란 머리가 정신없이 휘날렸다. 그녀가 뿌린 마력에 버프의 출력이 요동치며 전선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킹메이커, 최강의 서포터라 불리는 여자.

한서리였다.

“이 애송이가! 누구한테 명령질이야?!”

“입 닥쳐! 그 단어를 담을 시간이 아까우니까! 시키는 대로 해! 다 죽기 싫으면!”

한서리는 그 작은 몸에서 어떻게 그런 것이 나올까 싶은 목청과 기백을 뿜으며 적어야 몇 살, 많으면 수십 살이나 차이가 나는 선배들을 지휘했다.

자고로 지휘관이란 목소리가 크고, 하는 말에 확신이, 몸가짐에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한서리는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상식을 무시케 하는 극한의 상황과, 의문을 용납하지 않는 철혈의 지휘가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

하나하나가 자존심 덩어리인 영웅들이 통제에 따랐다.

개성 넘치는 일원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움직이자 기울어지던 승기가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대단한 아이라는 건 발키리가 되었을 때부터 알았지만 저 정도였을 줄이야.’

감탄한 티리온이 혀를 내둘렀다.

이걸로 조금은 걱정을 덜었다.

옆에 선 에디가 뿌드득 주먹 관절을 꺾었다. 턱짓으로 신체를 복구해 가는 아수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차피 저놈이 머리잖아? 저놈을 없애면 조금이나마 빈틈이 생길지도 몰라.”

“저걸 어떻게 없애죠?”

“어떻게 하긴, 죽어 없어질 때까지 두들겨 패는 거지.”

멍청한 소리 같지만, 그것이 이론상 전위가 오메가 몬스터를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리고 에디가 몸짓으로 보낸 작은 신호에, 티리온은 서포터 역할로 참가한 후위 중 극대소멸공격이 가능한 자들 몇이 저격을 노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발할라 교수 셋.

그리고 마무리를 지을 수 있는 극대소멸기 몇 개.

아수라를 죽이기엔 충분한 전력이었다.

하지만 아수라는 웃었다.

몇 번이고 산산조각이 났는데도 거인의 등에 떠오른 휘광은 여전했다.

금색 고리가 빛을 뿜자 다시금 황금색 선으로 이루어진 칼날과 용이 생겨났다.

“재미있군. 그러면 이러면 어떻게 할 텐가?”

아수라가 용을 타고 날아올랐다. 소용돌이치는 금색 꼬리를 따라 줄줄이 검을 생성. 탄환처럼 세 교수를 향해 쏘아 대기 시작했다.

안진현이 칼날을 튕겨 내고, 에디와 티리온이 돌격했지만 아수라는 계속해서 그들을 피하며 칼을 쏘아 날렸다.

제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돌격하던 인파이터가 갑자기 아웃복싱을 하는 것마냥 전법을 바꾸자 승기의 물줄기에 먹물이 끼얹어졌다.

도망치는 아수라를 뒤쫓던 에디가 칼날을 튕겨 내며 욕설을 토해 냈다.

“이런 씹……! 이 개새끼가! 적당히 안 하냐?”

생각을 할 줄 아는 괴물이 이렇게나 무섭다.

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건 인간 측.

악랄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전술에 아수라는 웃었다.

“내 할 일은 그분의 뜻을 이루는 것뿐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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