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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89화 (89/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89화

아수라가 대체 불가능 전력인 세 교수를 상대로 시간을 끌자, 상황은 빠르게 악화되어 갔다.

“빌어먹을!”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 소리를 들으며 한서리가 이를 악물었다.

명장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전력의 차이에는 한계가 있다.

신에 가까운 지휘 능력을 가졌다 해도 칼과 방패로 무장한 병사 수백으로 탱크 10대의 포위 공격을 이겨 낼 수는 없다.

그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았다.

그나마 상성이 좋은 편인 세라스가 선전하여 베히모스 한 마리를 잡아내는 데에 성공했지만 그뿐이다.

아무나 그녀처럼 15미터짜리 칼날을 휘둘러 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끽해야 2미터, 1미터. 대부분은 그 정도도 안 되는 무기를 휘두른다.

베히모스 입장에서는 근처에 파리가 왱왱대며 날아다니는 수준의 공격이었다.

반면 베히모스가 내뿜는 공격은, 하나하나가 필살기에 버금가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쾅!

“크아악!”

베히모스의 발톱에 스친 영웅이 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졌다.

심대한 중상.

숨을 헐떡이는 그의 머리 위로 베히모스의 발이 떨어졌다.

그 사이를 가로막는 사람이 있었다.

대검을 짊어진 금발의 전사. 세라스가 수백 톤에 달하는 공격을 막았다.

꽈아아앙!

세라스가 베히모스의 발을 틀어막으며 충격파가 사방으로 번졌다.

눈치빠른 영웅 몇이 재빨리 부상자를 끌어냈다. 세라스는 부서져라 이빨을 깨물었다.

대체 이 괴물은 무게가 얼마나 나가는 걸까.

막대한 질량에 온몸이 벌벌 떨렸다.

미친 척하고 끼어든 것이 순간적으로 후회될 정도다. 숨도 못 쉴 만큼의 압력이 그녀를 찍어 눌렀다.

그러다가 순간, 무슨 일인지 압력이 사라졌다.

컥, 하고 세라스가 숨을 내뱉고 상황을 파악하려는 찰나, 더 거세진 발길질이 그녀에게 날아들었다.

“……!!”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위력이 세라스에게 작렬했다.

한순간에 세라스가 주변 지면과 함께 내려앉았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하체의 절반이 땅에 박혀 버렸다.

꽈드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스스로의 귀에 들렸다.

어디가 부러졌는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탈색했다. 세라스는 눈을 까뒤집었다.

베히모스가 다시 발을 들어 올린다.

잠깐이지만 압력이 사라지는 사이. 빠져나올 수 있는 틈은 그때뿐이지만 충격을 받은 세라스는 움직이지 못했다.

“세라스!”

한서리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그녀를 구하려는 사람들의 외침이 들렸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무정하게 올라가는 괴물의 발바닥이 보인다. 놈의 다리 근육이 부풀어 오르며 거대한 힘을 장전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 이걸로 끝이구나.’

그 생각밖에 안 들었다. 무언가를 떠올릴 새도, 발악을 해 볼 틈도 없었다.

괴물이 다리에 체중을 실었다.

귀에 익은 포효가 들렸다.

어디선가 나타난 붉은 거체가, 세라스를 짓밟으려 하는 베히모스를 들이받아 날려 버렸다.

날아간 베히모스가 옆의 베히모스와 겹치고 겹쳐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그렇게 넘어진 놈들을 향해 억겁의 불줄기가 쏟아졌다.

“크허어어어어엉!”

과연 베히모스.

어마어마한 화력을 직격당했음에도 놈은 죽지 않았다. 하지만 전신이 불타올라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것까진 어쩔 수 없었다.

세라스는 그 불길이 걷히고 나서야 그녀를 구해 준 존재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새빨간 비늘을 가진 드래곤이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

눈에 익은 놈이다.

“카아아앗!”

마인협회와의 싸움에서 기린의 화신과 함께 그녀를 구해 주었던 존재가 다시금 울었다.

이변이 일었다.

사방의 공간이 물결처럼 일그러지더니 공간의 틈새로 각양각색의 괴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강철의 몸을 가진 야수, 콜로서스.

흰 뿔을 앞세우고 있는 일각수, 불 자체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외견을 지닌 새, 독수리의 머리에 사자의 몸통을 한 괴물,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세 마신 중 제일 다양한 권속을 품은 존재. 기린을 따르는 권속들이 공간이동 마법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이것들은?”

“미쳤군! 콜로서스에 유니콘…… 피닉스에 드래곤까지……!”

당황한 영웅들이 서둘러 거리를 벌렸지만 그들의 목표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 중심에 선 드래곤의 포효에 맞춰 기린의 권속들이 베히모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끼루루루루!”

“샤아아아앗!”

유니콘이 번개를 뿜고 피닉스가 베히모스의 눈을 태웠다.

콜로서스가 발톱을 깨물어 부쉈으며, 드래곤이 베히모스의 아가리 속으로 불길을 토해 냈다.

티아마트의 권속과 기린의 권속이 치고받았다.

간혹, 마계화지대에서 활동하다 보면 괴물들끼리의 싸움을 구경할 수는 있지만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이 정도의 충돌을 직관한 적은 없다.

나머지 베히모스와 싸우는 와중만 아니었다면 모두가 넋을 잃고 그것을 지켜보았으리라.

하지만 전투는 진행 중이었고, 그들의 목숨은 여전히 풍전등화였다.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세라스는 정신이 들자마자 베히모스의 발길질이 만들어 낸 구덩이에서 빠져나왔다.

“큭, 헉……!”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몸이 삐그덕거렸지만 우는 소리 따윌 할 순 없었다.

그녀가 휘청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저 앞에서는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었으니까.

“이잇……!”

어떻게든 용을 써서 앞으로 발을 내디디려 할 때, 단단한 손이 그녀의 어깨를 내리 눌렀다.

“조금이라도 쉬어. 그러다가 정말 죽는다.”

농담 따위와는 거리가 먼 진지한 목소리.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아…….”

세라스가 한숨을 흘렸다.

앞에 선 남자가 보이는 등에 조금이지만 눈물이 나왔다.

“우오오오오!”

아수라처럼 그가 느낀 투기를 감지하기라도 한 건지, 베히모스 한 마리가 이쪽을 향해 내달려 오며 무시무시한 일격을 휘둘러 왔다.

“……베히모스라.”

검은 그림자와 하얀 서리가 남자의 몸을 감싼다.

발을 박찬다. 그는 학처럼 날아올라 베히모스의 공격을 피했다.

동시에 살짝 손을 뻗어, 스쳐 지나가는 괴물의 팔을 만졌다.

남자가 착지했다.

그리고 하던 말을 맺었다.

“내가 상대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적이지.”

다음 공격을 위해 반대쪽 팔을 치켜들던 괴물이 움직임을 멈췄다.

“……!?”

괴물의 동공이 요동친다.

자신도 스스로의 몸에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듯했다.

작은 동산만 한 괴물이 피를 토했다.

커다란 동공이 위로 뒤집혔다. 비틀비틀 뒷걸음질을 치다 엉덩방아를 찧는다. 그리고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을 처음 본 자들은 모두들 이렇게 말한다.

“뭐야!? 죽었어?”

아무리 단단한 외피를 두르고 있어도, 아무리 두꺼운 근육으로 몸을 감싸고 있어도, 한 번의 타격에 치명적인 이상을 일으키는 급소가 있다면 그 남자의 공격권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야말로 신기.

그것의 위력을 제대로 목격하는 건 벌써 세 번째다. 세라스가 그의 이름을 외쳤다.

“김건!”

기린의 화신에게 납치당한 뒤, 전 세계의 추적에 쫓기다가 다음에는 벨제불의 화신에게까지 납치당했다는 기구한 이력을 가진 남자.

김건은 세라스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 * *

아수라는 김건이 나타나자마자 이변을 눈치챘다.

“그자군. 나약한 몸으로 제일 강한 투기를 가진 남자.”

아수라가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영웅들과 기린의 권속들과 맞서싸우던 베히모스 세체가 모든 공격을 두들겨 맞으며 급격하게 방향을 전환, 아수라를 향해 달려드는 발할라의 세 교수를 막았다.

“큭!?”

“뭐야? 갑자기?”

티리온이 이를 악물며 베히모스의 공격을 피했다. 에디는 욕지거리를, 안진현은 호통을 치며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했다.

아수라는 그 틈에 황금 용을 타고 공중으로 날아올라, 곧장 머리를 돌려 다른 베히모스를 향해 달려가는 김건을 향해 날아갔다.

김건 역시 머리 위로 날아드는 살기를 발견.

곧장 고개를 치켜들었다.

여섯 팔을 가진 거인이 외쳤다.

“네놈은 내가 상대해 주마!”

사방에서 황금색 어검이 떠올랐다.

파파파파팟!

수십 개의 칼날이 폭격처럼 김건을 향해 쏟아져 내린다.

“칫!”

마력이 적은 김건에게, 이런 원거리 공격은 쥐약이다. 그는 혀를 차며 가속했다.

빠른 움직임으로 날아오는 어검을 피하며 옆에 있던 베히모스의 시체를 엄폐물 삼아 몸을 숨겼다.

“이 놈!”

기세가 오른 아수라는 곧장 칼날을 들고 용의 머리 위에서 뛰어내렸다.

벽처럼 서서 시야를 가리고 있는 베히모스의 시체를 돌아가 김건을 찾았다.

시야가 트이자마자, 검은 채찍이 날아왔다.

별것도 아닌 일격이다.

가볍게 한 손을 튕겨 방어. 나머지 칼날은 모조리 검은 갑옷을 걸친 김건을 향해 내쏘았다.

당겨 잡은 채찍이 회전했다.

카가가강!

에디는커녕 티리온보다도 못한 신체 능력을 가진 남자는 무시무시한 방어 기술로 다섯 개의 칼날을 모조리 튕겨 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우우웅!

아수라의 귓가로 작은 소리가 파고들더니, 가면 안쪽이 터져 나가며 가슴이 가라앉았다.

아수라가 피를 뿌리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신음이 아니었다.

“하핫!”

일합 만에, 아수라는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들었던 대로다.

앞에 선 전사의 실력은 굉장했다.

존경스럽고, 사랑스러우며, 또한 먹음직스러웠다.

티아마트의 권속들은 오로지 강한 상대를 죽이는 것만으로 만족을 얻고 살아간다.

그건 아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김건이 거리를 벌리자, 아수라는 놓칠세라 먹잇감을 뒤쫓았다.

“어디 이것도 받아 봐라!”

그는 마치 야수가 된 것마냥 김건을 몰아쳐 갔다.

티리온이 그랬듯, 극대소멸공격을 가지지 못한 전위는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무한재생에 가까운 능력을 지닌 괴물을 상대로 이길 수 없다.

순식간에 칼이 난자하고 김건의 몸을 감싼 그림자 갑옷이 검은 파편을 튕겨 내며 갈려 나갔다.

하지만 김건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뒤로 물러서며 아수라를 한 방향으로 유도했다.

아수라가 그것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옆얼굴까지 검은색 광포가 덮쳐 온 다음이었다.

“……!”

콰아아아앗!

흑색의 에너지가 아수라의 상체를 꿰뚫고 지나갔다.

단숨에 아수라의 상체가 소멸.

“큭!”

아수라는 말도 안 되는 반응속도를 발휘해 광포의 범위에서 머리를 포함한 반신을 비틀어 내는 데에 성공했다.

서둘러 날아간 몸통을 재생하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복원이 늦었다.

그 원인을 채 파악하기도 전에, 얼굴 앞에 형태를 정의할 수 없는 괴이한 검은 덩어리가 놓였다.

웃음소리가 들렸다.

“팔이 참 많군. 하지만 어쩌나.”

따악,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함께 검은색 괴물이 폭죽이 터지듯 사방으로 퍼졌다.

“내가 더 많은데.”

수백 개로 갈라진 촉수가 아수라의 몸을 꿰뚫었다.

전신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아수라가 물러났다. 몸을 잠식하는 검은 기운 때문에 재생이 늦어진 것을 확인하고 이를 갈며 앞을 바라보았다.

“네놈……!”

짤랑짤랑,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금속 액세서리가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청바지를 걸친 재킷의 남자가 김건의 옆에 섰다.

시원한 미소가 남자의 입가에 떠올랐다.

아스타로트는 웃었다.

“왜, 네 장기인 공격으로 당하니까 분하냐?”

키에에엑!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수라와 김건이 싸우는 사이 사태는 또 다른 국면으로 향하고 있었다.

등장한 기린의 권속들 사이로 달려 나가는 검은색 시체가 보였다.

카아아악-!

썩은 살점이 떨어지고, 구더기가 들끓는 입에서는 바람 빠지는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소리를 비웃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목숨을 아끼지 않는 데스나이트의 무리가 벌떼처럼 달려들어 베히모스의 몸을 타고 올랐다.

베히모스가 으르렁거리며 손으로 훑자 수십의 언데드가 묵사발이 되어 흩어졌지만, 그러고도 남은 놈들은 발악을 하며 베히모스의 눈을 벌리고 그 사이로 몸을 비집어넣고, 입안으로 뛰어들어 내장을 난도질했다.

“크허어엉!”

격통에 울부짖는 베히모스.

그리고 그 옆에서는 빠르게 검은색 대지가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바닥을 타고 번져 가던 불온한 기운이 지면에 쓰러져 있던 영웅들의 몸을 파고들었다.

번쩍!

뒤집혀 있던 사안(死眼)이 눈을 떴다.

끼이이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시체들이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 영역의 중앙에는 알 수 없는 진언을 읊조리고 있는 두건의 남자가 있었다.

“이게 무슨……!”

에디와 안진현의 도움으로 베히모스들의 추격을 떨치고 빠져나온 티리온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아앙!”

드래곤이 울부짖으며 베히모스를 찢어발기고.

“끼이이이익!”

살아 일어난 시체들이 벌레처럼 괴물의 몸속을 파고든다.

정말이지 믿을 수 없지만, 기린과 벨제불의 권속들이 그들을 돕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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