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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91화 (91/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91화

무릎을 꿇고 숨을 고르던 김건이 말을 이었다.

“명동권으로 계속해서 진동을 증폭시키면…… 커다란 물체도 부술 수 있어요.”

티리온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정말 가능한가?”

“대신 작은 진동부터 중첩시켜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저만 한 크기면 못해도 3분은 걸릴 거예요. 중간에 방해를 받아서도 안 되고.”

에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됐어. 일단은 노림수가 하나 더 생겼으니까.”

그때였다. 아스타로트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이봐! 잡담은 그만하고 좀 도와!”

고개를 돌리자 필사적으로 무형기를 제어하고 있는 아스타로트가 보였다.

콰드득!

뼈가 뒤섞이는 소리가 나며 부러진 마기의 조각이 튀었다.

무형기로 전신을 꿰어 놓은 아수라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큭! 제기랄!”

아스타로트가 식은땀을 흘리며 힘을 준다.

그와 연결된 검은 괴물이 괴성을 지르며 신체를 옥죄지만 아수라는 개의치 않았다.

복구해 낸 손으로 달라붙은 괴물을 깨부수고, 꽉 들어찬 근육 섬유가 몸속을 파고든 가시를 조각 냈다.

빠득! 빠득!

붉은 피부와 검은 가시가 이리저리 뒤섞여 꿈틀거리는 모습은 마치 들끓는 벌레 소굴을 보는 듯 혐오스러웠다.

비틀린 육체 위로, 다시금 자라난 머리 앞에 태극 문양의 가면이 씌워졌다.

한숨이 흘러나왔다.

“정말 애먹이는군. 이렇게 고생하는 건 오랜만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중얼거리는 거인을 본 티리온이 경악했다.

“의식적으로 재생 능력을 끌어올린 건가!?”

에디가 이를 깨물었다. 재생을 마쳐 가는 아수라를 향해 달려가며 외쳤다.

“김건! 넌 가서 저걸 파괴해! 티리온!”

“알고 있어요!”

티리온과 에디가 아스타로트와 함께 아수라를 틀어막는다.

아수라가 손을 떨치자 바닥에 떨어져 있는 무기들이 속속이 그를 향해 빨려 들어왔다.

놈의 손에 잡힌 번개 모양의 법구가 뿜어내는 뇌전의 광격을, 에디가 팔을 쳐 내 가까스로 흘려보냈다.

날아드는 쌍검을 티리온이 막아 내고, 순간이동을 위해 던져진 차크람을 아스타로트가 붙잡았다.

“큭!”

저 셋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른다.

김건은 뒤를 생각하지 않고 크립티드의 핵을 향해 달렸다.

아니, 달려 나가려 했다.

눈앞을 가득 채우는 산이 움직이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콰르르르르!

대지가 울었다.

지진이 일고 하늘에서부터 떨어진 크립티드의 조각들이 운석처럼 지면을 향해 낙하했다.

그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양쪽에서 달려드는 에디와 티리온을 날려 버리며, 아수라가 외쳤다.

“소용없다!”

놈이 던진 금강저와 차크람의 이중 공격에, 아스타로트가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아수라는 그것 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 등 뒤에 느껴지는 힘에 심취했다.

광신자가 무기를 하늘로 뻗는다.

경이로 가득 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주변을 봐라! 이 뜨거운 투기의 열파를!”

여섯 개의 팔이 각각의 투기를 향해 방향을 돌리기 시작한다.

저 먼 상공에서는 십여 기의 비공정이 불을 내뿜으며 전방에서 날아드는 나무줄기와 맞서 싸우고 있고, 그 밑에서는 사방에서 몰려드는 티아마트의 권속들과 노제, 사쿠라의 조원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지금 이곳은 어떠한가.

수백의 전사들과 기린, 벨제불의 권속까지 끼어들어 베히모스들과 살육전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하늘을 종횡하는 네 신격의 충돌까지.

이 좁아 터진 행성에서, 이 이상 강렬한 투기를 피워 올릴 순 없을 것이다.

피와 전쟁. 그 자체를 형상화한 존재에게, 이것만큼 맛있는 식사는 없을 것이다.

태극 무늬의 아수라가 모든 무기를 합장하듯 모아 조용히 기도를 맺었다.

“너희들에게 감사한다. 너희들의 용기와, 투지와, 긍지가, 그분의 양식이 될지니.”

그오오오오오오──────!

소리가 하늘을 찢었다. 대지가 부서지며 애처로운 비명을 질렀다.

티아마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우우우우우우!!

거신(巨神)이 울부짖자 모두가 그 존재감에 숨을 삼켰다.

산이 쩌적쩌적 지면을 가르며 몸을 움직인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외눈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 시선에 아수라와 싸우는 두 화신과 전사들의 모습이 한 번에 담겼다.

거대한 눈에 희열이 담겼다.

“오오오오오!”

먹잇감을 발견한 티아마트가 어깨를 들썩였다.

하나뿐인 팔이 하늘로 치솟기 시작했다.

저게 다시 떨어지면 그때는 진짜로 끝이다.

그것을 깨달은 기린의 화신, 한서리는 욕설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머릿속을 맴도는 기린의 지식을 통한 그녀의 계산으로, 지금 시점에서 티아마트가 몸을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각 밑으로까지 뿌리를 내려 행성의 열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있기는 하나, 거대 크립티드부터 시작해서 아수라와 베히모스 등 강력한 권속들을 계속 생산해 내고 있는 탓에 반신 본체의 회복 속도가 느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투에 미친 마신, 티아마트라는 괴물은 다른 마신의 지식을 응용한 예측마저 깨부수며 몸을 일으켰다.

팔을 들어 올리는 거신의 몸 전체에서 붉은빛이 번뜩였다.

몸을 둘러싼 크립티드의 사이로 보이는 피부가 쩍쩍 갈라지며 균열을 보이고 있었다.

전에 클라우와 그녀의 싸움에 자극을 받아 무리한 강림을 시행했듯, 지금 티아마트는 스스로의 몸을 연료 삼아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극도로 굶주린 자가 스스로의 팔과 다리를 잘라 뜯어먹는 듯한 행위.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과 출혈, 그 뒤의 후폭풍 따위는 눈곱만큼도 고려하지 않는다.

배고프니, 그저 먹을 수 있는 걸 먹는다.

그저 그뿐인 행동이었다.

지능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 이렇게나 무섭다.

한서리의 눈앞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전에도 경험했듯, 티아마트의 일격은 수십 킬로 바깥의 적에게마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혔다.

그런 것이 지척에서 터지면 당연히 범위 내에 있는 모두가 죽는다.

키이이이이잉!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해 보려는 것인지 가동을 시작하는 수르트가 보였다.

하지만 너무 늦다. 수르트가 최대 출력의 포격을 뿜기 위해선 무려 5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티아마트가 주먹을 내리치기까지는 앞으로 삼십 초도 남지 않았다.

손 쓸 방법이 없다.

차가운 이성이, 그런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다음 기회를 만들어 볼 뿐이다.

판단을 마친 한서리가 김건을 데리고 공간이동으로 후퇴할 좌표를 찾으려 할 때였다.

한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찔렀다.

“네가 이쪽도 맡아!”

한서리와 함께 두 명의 아수라와 싸우던 클라우가 갑자기 기환마위로 전장을 이탈했다.

갑자기 아수라 둘을 상대하게 된 한서리가 욕설을 내뱉는 사이, 연속으로 고속이동을 펼쳐 하늘에 떠 있는 비공정 위로 순식간에 내려앉았다.

“벨제불의 화신?”

“조심해! 갑자기 공격할지도 몰라!”

클라우를 발견한 사람들이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바로 밑에서 그녀가 다른 영웅들을 도왔다는 것을 보았기에 섣불리 공격을 가하지는 않았다.

클라우는 그런 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미안하지만, 같이 제물이 되어 줘야겠다.”

마기가 끓어올랐다. 클라우가 화신으로서 가진 모든 마력이 해방되어 비공정을 감싸 안았다.

광역으로 정신 지배를 시도.

정확히 말하자면 완전한 지배가 아니라 그들이 내재하고 있는 전투 본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술식을 걸었다.

“끄아아아아악!”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들 모두가 뛰어난 영웅들이었지만, 티아마트의 위압감으로 주눅 든 정신력은 화신이 모든 것을 걸고 뿜어내는 지배의 힘을 이겨 낼 수 없었다.

비공정에 올라탄 모두가 바닥을 뒹굴었다.

지독한 공격 충동을 참지 못하고 자해를 시작한다.

벽면에 머리를 부딪치고, 혀를 깨물며 손톱으로 얼굴 가죽을 파 내려갔다.

클라우는 자기 자신의 정신도 조작했다.

피가 끓었다. 온 세상이 붉고 머릿속은 하얗게 덧칠되었다. 화신의 입에서 고통에 가득 찬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아아아악!”

지면에서 그것을 바라본 박사는 한눈에 클라우가 무엇을 하려는지 깨달았다.

“아가씨!”

하지만 그 목소리는 클라우의 귀에 닿지 않았다.

끼아아아아악──────!!

비명과 비명이 겹쳐져 마치 비공정 자체가 울부짖는 것 같았다.

정신 지배를 통해 인공적으로 증폭된 막대한 전투의 의념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티아마트가 지배하는 이 공간에서 그것은 마치 붉은색 아우라가 솟아나는 것처럼 보였다.

주먹을 치켜들었던 티아마트의 움직임이 멈췄다.

아래쪽을 향하던 눈동자가 휘릭 돌아가더니, 클라우가 탄 비공정을 향했다.

지능을 포기하고 강대한 힘을 얻어 본능과 욕구만으로 움직이는 마신, 티아마트.

그 특성은 때로 온갖 예상을 초월해 장점처럼 작용할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티아마트가 가지는 가장 큰 약점이다.

강한 투기를 지닌 상대를 인식해 공격한다.

클라우는 스스로가 가진 정신제어의 힘을 이용해 티아마트가 가진 습성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인공적으로 발휘된 투기를 이용해 반신의 공격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유인해 낸 것이다.

우우우우우!!

내려치기 위해 올라갔던 주먹이, 이제는 전방을 바라보며 뒤편으로 당겨지기 시작했다.

티아마트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아수라들은 금세 클라우가 벌이려는 일을 깨달았다.

“이런!”

세 명 모두가 클라우를 막으려 몸을 움직였지만 그들은 모두 실패했다.

매섭게 날아든 단분자 칼날과 음속의 주먹, 그리고 진동이 부동명왕 가면을 조각 냈다.

번개처럼 날아간 초절의 냉기가 태극 가면의 사지를 얼리고 깨부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날개를 펼친 만다라 가면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검은 악귀의 모습이 된 여자였다.

“네놈은 못 가!”

검게 마기로 젖어든 눈을 희번덕거린 레이나가 외쳤다.

마교의 교주이자 벨제불의 충신인 그 이름. 아름답던 금발과 미녀의 몸은 지금 모조리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꺼져라!”

만다라 가면을 뒤집어쓴 아수라가 내지른 창날이 한순간에 수십 발의 탄흔을 남기며 그녀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버렸지만, 레이나는 마치 화신들이 그러하듯 시간을 되돌리는 것처럼 몸을 수복시키며 꿰뚫린 채로 아수라의 창을 붙잡았다.

광마화.

온몸을 마기로 탈바꿈하여 일시적으로 화신에 근접하는 초월적인 육체를 얻는 기술.

원래는 제대로 된 사고가 불가능해지기에 최후의 발악으로나 사용하는 기술이었으나 레이나는 달랐다.

마인이라면 죽은 자까지 살릴 수 있는 회복 기술을 지닌 그녀는, 뇌가 마기로 변환되는 것보다 더욱 빠르게 두뇌를 회복함으로써 의식을 유지한 채 광마 상태를 지속할 수 있었다.

“켁, 이 멍청한 년이, 그따위 잡기술로……!”

하지만 아무리 무적의 신체를 지녔다 해도 그것을 다루는 기술이 없다면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다.

아수라는 코웃음을치며 창날을 비틀어 레이나의 몸을 찢어 버리려 했다.

하지만 그가 손에 힘을 주기 전에, 또 하나의 그림자가 레이나의 뒤에 당도했다.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래, 못 가지. 바보 멍청이 아가씨가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데.”

아스타로트가 레이나의 뒤에 있었다.

그는 그대로 살아 있는 진흙처럼 꿈틀거리는 레이나의 등에 손을 얹었다.

동시에 광마화를 발동.

검은 액체가 된 두 사람의 몸이 중간 지점에서 만난 두 개의 물방울마냥 빠르게 결합되었다.

마기가 소용돌이치고 검은 안개가 오라처럼 퍼져 나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아수라의 앞에 나타난 것은 끔찍한 이빨과 근육으로 무장한 흑색의 인간형 괴물.

레이나의 회복술과 마기로 무적의 신체를 손에 넣은 마인협회 최강의 전사였다.

괴물이 전신을 딱딱하게 굳혀 창날을 붙잡았다. 전신의 마기를 오라로 제련해 금강불괴와도 같은 몸을 만들어 낸 것이다.

“큭!?”

가면 안쪽에 얼굴이 존재하는지마저 불분명한 아수라의 몸짓에 작지만, 당황이 섞였다.

아스타로트는 그것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며 무형기 자체가 된 스스로의 몸을 짜냈다.

“아무리 그래도 널 죽이진 못하겠지.”

“……!”

“하지만 이건 확실해. 넌, 아무데도 못 가. 내가 풀어 주기 전까지는.”

아스타로트가 발출한 수천 개의 가시가 아수라의 온몸을 관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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