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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93화 (93/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93화

-……그게 뭔데요?

뒤섞인 사고 속에서 킬킬 웃으며 아스타로트가 설명을 했다.

그가 떠올린 아이디어에 레이나는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저항했으나, 마인으로서, 클라우 베리스라는 화신을 따름으로서 부여된 사명은 그것을 용서치 않았다.

레이나는 결국, 아스타로트의 생각에 긍정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 알았어요. 하죠.

- 좋았어!

허락이 떨어지자 아스타로트가 호성을 지르며 몸을 변화시켰다.

아수라와 공수를 주고받던 광마의 전신이 한순간에 둥글게 뭉치더니, 수십 갈래의 꽃잎으로 갈라져 활짝 피어난 연꽃이 되었다.

그것이 폭풍처럼 회전. 연꽃 위에 솟아난 칼날로 덤벼드는 아수라의 신체를 믹서기처럼 갈아 버렸다.

“……!”

죽진 않겠지만 재생에는 시간이 소요되리라.

사방으로 흩어지는 살점과 추락하는 만다라 가면을 바라보며 광마의 모습으로 돌아온 아스타로트가 중얼거렸다.

“잠깐 쉬고 있어.”

말을 마친 그는 곧바로 기환마위를 사용해 지면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크립티드의 파괴를 위해 영웅들의 호위를 받으며 체력을 온존하고 있는 김건의 뒤에 착지했다.

기척을 느낀 김건이 뒤를 돌아보았다.

아스타로트는 광마의 상태로 입을 열어 말을 걸었다.

“어이, 애늙은이.”

“왜?”

“나를 믿나?”

뜬금없는 말에 김건의 눈매가 예리해졌다.

“당연히 안 믿지…… 라고 하고 싶지만, 뭔가 수가 있나 보군?”

“그래, 네가 허락만 한다면.”

아스타로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수가 뭔지, 뭘 어떻게 할 건지, 꼬치꼬치 캐묻고 납득할 시간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아스타로트의 생각에 어울려줄 수도 없었다.

김건은 잠깐 고민했다.

말은 아스타로트가 꺼냈지만 그는 결국 마인, 벨제불의 의사를 따를 뿐인 노예였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를 통제했던 것은 클라우. 바로 그녀였다.

클라우를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

김건에게 내밀어진 선택은 그것이었다.

“…….”

잠깐이지만, 그녀와 함께 보냈던 시간이 떠올랐다.

싫은 건 여전하다.

자신과 상충되는 존재.

그것을 떠올리기만 해도 소름이 돋고 혐오감이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클라우가, 이곳에 있는 모두를 구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김건은 말했다.

“……좋아. 믿을게.”

본디 모든 존재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스스로를 증명한다.

그리고 클라우는, 행동함으로서 자신이 무엇인지를 증명했다.

김건은 성실한 인간이었다. 그러니 당연히도, 클라우가 보인 행동의 의미를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설령 그녀가, 괴물이라 하더라도.

아스타로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진심이길 바라지.”

그러면서 곧장 손을 뻗어 거대한 손으로 김건의 머리를 짚었다.

손이 일그러지며 김건의 얼굴 전체를 덮었다.

악취에 토할 것만 같았다. 흐물거리는 마기가 끈적하게 귓속을 파고 들어왔다.

김건은 단번에 아스타로트가 무엇을 하려는지 깨달았다.

뇌를 마기로 침식하려 하고 있다.

“……!”

본능적인 공포가 치밀어 올랐다.

오랜 수련으로 척추에 각인된 방어 기제가 모조리 작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건은 참았다.

무의 극의에 달한 남자는 본능마저 통제하며 생명체가 지닌 반사 작용까지 억눌렀다.

머릿속으로 아스타로트의 말소리가 들렸다.

- 좋아, 잘하고 있어.

레이나의 목소리도 들렸다.

- 저항하지 말아요. 잘못하면 정말로 죽으니까. 아가씨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말아요.

마기가 침식을 가속화한다.

뇌.

몸과 정신, 모든 것을 지배하는 존재.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기관을 진흙 같은 마기가 헤집고 다니는 것이다.

정신이 일그러지고, 기억마저 흐드러져 파편이 되어 간다.

목을 내놓는 것보다도 더하다. 그것은 그냥 인간으로서 가진 모든 것을 바치는 것과 마찬가지인 행위였다.

그래도 김건은 참았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일구어 낸 남자는 믿는다고 한 스스로의 말을 끝까지 관철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보답을 받았다.

‘됐다.’

정신이 들었을 때, 김건의 눈앞에 더 이상 아스타로트는 없었다.

그저 일렁이는 검은 기운만이 넘실거리고 있을 뿐이다.

“후-.”

김건은 깊은 숨을 내쉬며 주변 상황으로 시간의 경과를 확인했다.

뇌를 침식당하는 과정은 마치 억겁처럼 길게 느껴졌지만, 실제로는 몇 초밖에 지나지 않은 듯했다.

주변의 정황이 그리 많이 바뀌지 않았다.

스스로의 몸을 둘러본다.

모든 상처가 나았다.

전신에서 힘이 용솟음쳤다.

무엇보다도, 몸속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힘.

마치 용암덩어리를 집어다 뱃속에 담아 둔 것 같았다.

그 정체는 모른다. 확실한 것은 하나, 그것이 김건 자신의 힘이라는 것이다.

킬킬거리는 아스타로트의 웃음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 어때? 이게 진짜 마력이야. 나랑 레이나의 것까지 더했으니까 최소 마력적성 SS, 어쩌면 SSS급 판정이 나올지도 몰라.

“뭘 한 거지?”

- 마기로 네 몸을 침식한 다음 제어권을 너한테 돌려준 거야. 간단히 말하자면 네가 우리의 힘을 다룰 수 있게 동기화를 한 거지.

레이나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 오래는 유지 못해요. 제 회복술로 버티고 있긴 하지만 이 상태가 계속 가면 당신도 우리랑 같이 죽으니까 빨리 끝내요!

그 와중에 바닥에 떨어진 만다라 가면의 아수라가 몸을 재구축해 일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여섯 팔의 괴인이 바닥에 널브러진 장창을 주워들며 이를 갈았다.

“켁, 이 잡것들이 감히……!”

지금까지 자신을 상대했던 마기를 추적하는 아수라. 그는 곧 검은색 아우라를 두른 김건을 발견했다.

저놈이 마인이었나?

순간, 의문이 들었지만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눈앞에 있는 건 모두 적이니까.

“뒈져라!”

요동치는 여섯 팔.

번득이는 창날이 폭풍처럼 쏘아져 이쪽을 향해 날아왔다.

그 찰나의 순간, 김건과 동화된 아스타로트는 웃으며 사념을 날렸다.

- 시간이 없다. 꼬맹아. 어디 네 진짜 실력을 보여 봐.

김건이 손을 들었다.

그는 가만히 서서 맨몸으로 날아오는 모든 창날을 받아 냈다.

바사사사사사!

기이한 소리와 함께, 창날이 그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손에 걸리는 느낌이 없다.

아수라는 한순간에 그가 내지른 창이 인간의 몸을 관통하기는커녕 그 끄트머리가 그대로 소멸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

단단한 마력을 생성한 것도 아니고, 극대소멸공격 같은 걸 일시적으로 내뿜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고제련 오라는 물론이요, 티리온의 단분자 칼날과 부딪혀도 상처만 생길 뿐인 무구가 한순간에 볼품없이 자루만 남았다.

뭔가 위험하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목격한 아수라가 발을 박찼다.

김건에게서는 신격을 지닌 괴물마저 위협을 느낄 정도의 냄새가 풍겼다.

펄럭!

만다라 가면의 아수라는 곧장 등 뒤의 날개를 펼쳐 거리를 벌렸다.

김건은 물끄러미 하늘로 날아오르는 아수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볍게, 지면을 박찼다.

투우웅!

단단한 흙바닥에 물방울이 떨어진 것처럼 파문이 번지고, 남자의 모습이 사라진다.

다음 순간, 김건은 아수라의 눈앞에 있었다.

“무슨!”

믿을 수 없는 초가속에 놀란 아수라가 당황해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그것보다 먼저, 김건이 날린 쌍장이 아수라의 가슴에 박혔다.

바아아아아아아!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김건의 손에 닿은 아수라의 신체가 공기에 녹아내리듯이 사라져 버렸다.

일격에 신격이 소멸.

그것을 눈치챈 다른 아수라들이 경악했다.

“뭣! 말도 안 되는!”

“뭐야? 뭘 한 거야?”

당황하기는 인간 측도 마찬가지였다. 공중으로 솟아올랐던 김건은 그 혼돈의 중앙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수십 미터 상공 위에서 자유 낙하를 했는데도 그가 내려밟은 지면에서는 소리 한 점 없었다.

김건은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았다.

넘실거리는 어둠과 진폭의 여파가 아직도 손아귀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좋은데.”

그는 살짝 웃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양손을 모아 그 중앙에 마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검게 모이는 마기.

하지만 주변에 퍼져 나가는 진폭과 소리가 그것이 단순한 힘의 집중이 아니라는 것을 알렸다.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위험한 존재가 김건의 양손에 집결되고 있었다.

<<수르트가 발사될 때까지 앞으로 삽십 초!>>

정보전달에 적아를 가릴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마법으로 증폭시킨 사이먼 베이커의 외침이 전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없다.

김건은 고개를 들어 크립티드의 핵까지의 거리를 쟀다.

그 간격은 약 100미터.

지금이라면, 충분히 노릴 수 있는 거리였다.

김건의 손이 올라간다.

그의 손아귀에 뭉친 검은 형체가 증폭하고, 올라갔던 손이 내리쳐지는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크립티드의 핵을 향해 쏘아져 날아갔다.

“안 돼!”

“안 돼!”

다른 적과 싸우던 두 아수라가 동시에 외쳤다.

태극 무늬 가면의 아수라가 팔을 젖혀 금강저를 장전했다.

그는 무기를 통한 순간이동으로 에너지의 진로를 따라잡아 그것을 막으려 했다.

“어딜 한눈을 팔아?”

기린의 화신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순식간에 얼음의 손을 내뻗어 던져지려는 금강저를 잡아챈다.

뇌격을 모으는 번개 모양의 법구를 얼려 깨부수고, 곧장 마력을 폭발시켜 분자 구조를 무너트리는 초저온의 기운을 아수라의 몸에 때려 박았다.

붉은 거인의 육체가 한순간에 하얗게 물들었다.

“……!”

냉정한 상태였다면 그렇게 쉽게 당하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티아마트를 향한 광신이 강한 태극 가면은, 티아마트가 내지른 공격이 클라우에 의해 허공을 가로지르고 인간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지 못한 시점에서 이미 평정심을 잃었다.

파사삭!

얼어붙은 육체가 무너지며 흰 가루가 휘날렸다.

지금까지의 싸움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 또 하나의 아수라가 사멸.

하지만 아직 한 명이 남았다.

금빛 휘광을 걸친 부동명왕의 가면은 성공적으로 인간들의 방해를 뿌리치고 번개 같은 속력으로 크립티드의 핵 앞을 가로막는 데 성공했다.

“크아아아앗!”

거센 외침과 함께 등 뒤의 휘광이 빛을 뿜었다.

신격의 전력이 광휘를 통해 발현되며 금빛 칼날이 빗발처럼 쏟아졌다.

콰콰콰콰콰!

허공에서 쏟아진 수천 개의 칼날이 침입 불가의 장벽이 되어 앞을 틀어막았다.

김건이 쏘아낸 에너지와 아수라가 세운 장벽이 격돌했다.

충격음은 없었다.

왜냐 하면, 김건이 쏘아낸 힘은 마치 물속을 파고들듯 쉽게 아수라가 세운 장벽을 꿰뚫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뭔……!”

상상을 초월한 위력에 아수라가 헛숨을 흘렸다.

그는 그 검은 에너지가 코앞에 다가와서야 그 공격의 정체를 깨달았다.

─────────!!

그것은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다만, 오메가 몬스터의 감각으로도 제대로 시인할 수 없을 정도의 진폭으로 진동하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초진동의 주파수가 분자 결합을 통째로 무너트리고 있었다.

그것은 허공에 녹아든 공기마저 분해하며 그저 무정하게 소멸이라는 결과를 흩뿌리고 나아갔다.

그 사실을 인지했을 때, 이미 아수라의 몸은 진동에 당해 녹아내리고 있었다.

“아…… 신이시여……!”

마지막 단말마와 함께 최후의 아수라가 그렇게 사라졌다.

그리고 드디어, 김건이 발현시킨 진동이 크립티드의 심장에 닿았다.

초월적인 초진동 앞에 한순간에 건물만 한 마력의 덩어리가 증발.

크립티드의 핵을 파괴하는 데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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