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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94화 (94/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94화

꺄아아아아아─!!

생명의 원천이 되는 중심부를 잃는 순간, 찢어지는 듯한 고성이 들리더니 줄기줄기 솟아 티아마트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크립티드가 하얗게 말라붙었다.

금이 간 석고마냥 분진을 피워 올리며 쩍쩍 금이 가더니, 이내 스스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붕괴하기 시작했다.

“무너진다!”

그 파편에 깔리지 않기 위해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대피를 시작했다.

하얀 소용돌이가 일었다.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괴식물이 무너지며 그 잔해가 눈사태처럼 몰아쳤다.

그 사이로, 티아마트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근육으로만 이루어져 마치 바짝 마른 고목과도 같은 몸체가 산보다도 높은 곳에 서 있었다.

순수한 힘의 집합체, 그저 그 크기만으로도 만물을 압도하는 거신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를 겨냥하고 있는 것은, 세상이 존재하기 전부터 세상을 멸하기 위해 태어났다 전해지는 거인의 이름이었다.

휘날리는 하얀 잔해의 폭풍우 속에서 붉은빛이 번득였다.

키이이이이이이잉!!

수르트가 발광했다. 붉은 배를 감싸고 있는 마정석의 집합체가 전신에서 번갯불을 튀기며 마력을 압축하고 있었다.

일순, 나뭇가지처럼 사방으로 퍼져 있던 마력 네트워크가 관절을 굽히며 안쪽으로 모였다.

그 안에서 모인 멸세(滅世)의 에너지가 질주.

파앙!

원형의 파장이 퍼져 나갔다.

방대한 에너지의 움직임에 대기가 떨렸다.

주변에 퍼져 있던 마력이 마찰에 번져 플라즈마를 피워 냈다.

터져 나오는 2차, 3차의 충격파가 몰려오는 파편의 폭풍을 찢어 버렸다.

그 속에서, 모든 마력을 담은 수르트가 울부짖었다.

우우우우우우!!

붉게 달아오른 배가 마치 빚으로 만들어진 짐승마냥 입을 벌렸다.

갑판을 이루고 있던 선두가 접히고 뒤집히며 오로지 이 순간만을 위해 설계되어 만들어진 주포가 드러났다.

가운데로 모인 마력네트워크와 수르트의 표면 위로 회로도 같은 문양이 떠올랐다.

회로도의 끝에 불똥이 튀겼다.

속이 비어 있던 회로도 안쪽이 한순간에 가득 차며 일시에 모든 힘이 거미줄처럼 이어졌다.

전 출력 개방.

발사.

티아마트의 몸체가 하얗게 물들었다.

다음 순간, 앞으로 내뻗고 있던 500미터 길이의 팔이 일순에 증발. 대기가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지면의 흙이 질질 녹아 용암을 튀기고, 하늘에 펼쳐진 먹구름이 눈꽃처럼 사라졌다.

직경 2킬로미터에 달하는 불기둥의 방사에 세상이 빛과 열로 가득 찼다.

수르트, 라그나로크라 불리는 종말의 끝이 내뿜은 포격이 한순간에 현세를 멸망시킬 거신의 팔을 날려 버리며 그 머리와 몸통에까지 업화의 칼날을 들이밀었다.

크오오오오오─!

번쩍, 팔을 잃고 표면부가 녹아 가는 티아마트의 눈이 뜨이며 투기가 집중.

지축의 비틀림으로 솟아오르는 산처럼, 막대한 붉은색 장벽이 지면으로부터 용솟음쳤다.

콰콰콰콰콰!

투기로 만들어진 붉은 방어막이 수르트의 포격을 막았다.

그 모습을 발견한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이런 빌어먹을!”

“아직도 저만한 여력이……!”

수르트의 포격과 티아마트의 장벽이 부딪혀 허공에 멈췄다.

그 중앙에 끼인 공간이 어마어마한 충격의 여파에 휘어 버려 블랙홀 같은 무저갱이 생겼다.

길항하는 힘.

분명 최초의 계획에는 없는 상황이었으나, 상공에서 상황 지켜보고 있던 사이먼 베이커는 그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

그의 눈에는 보였다. 힘을 짜내느라 말단부터 부스러져 가고 있는 티아마트의 신체가.

허공에 날린 일격의 소모도 막대하다.

겉으로 보이는 부피에는 차이가 별로 없지만 그 속은 점점 비어 가고 있을 것이라고 사이먼은 예상했다.

그 말은 즉, 지금 펼쳐지고 있는 장벽만 뚫어 낸다면, 남은 수르트의 출력으로도 충분히 그 신체를 날려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힘을 보태야겠지.”

짧게 읊조린 대마법사가 입을 다물었다.

그의 등 뒤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금속 구체가 고속으로 원을 그리며 회전하고 있었다.

사이먼은 그 회전의 중앙을 향해 손을 뻗었다.

회전이 가속하여 마력이 분출됐다.

아직 젊은 모습을 하고 있는 노교수가 급격하게 노화를 시작했다.

검은 머리가 희게 탈색되고, 팽팽하던 피부가 주름으로 가득해졌다.

“…….”

사이먼은 말없이 자신의 생명, 경험, 그리고 모든 지식을 들이부어 만들어 낸 구체를 바라보았다.

그가 손에 쥔 것은 그저 검은 공이었다.

“이걸로 영웅 노릇도 끝이군.”

씁쓸하게 웃으며, 사이먼은 티아마트의 머리 위로 공을 떨어트렸다.

추락한 공은 자연스럽게 티아마트의 머리 위에 안착했다.

티아마트의 움직임에 맞춰 또르르 굴러 떨어지는 공.

일견,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벌어진 일은 막대했다.

공이 급격하게 확장을 개시했다. 쾅, 쾅, 폭음을 터트리며 몸집을 부풀리더니, 사방으로 검은 벼락을 내뿜으며 티아마트의 머리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

“……!”

반경 수백 미터를 공간째로 찢어 버리는 위력에 티아마트의 거대한 눈이 흔들렸다.

중력 폭탄.

마법으로 조작된 중력자를 폭주시켜 이상 중력장을 발생, 일정 범위내의 대상을 공간채로 찢어 버리는 초고위 마법이었다.

극대소멸공격의 범주에 넣기에도 아쉬운 파괴의 향연은 확실하게 티아마트에게 충격을 주었다.

장벽의 영역이 후퇴한다.

몰아닥치는 수르트의 포격이 티아마트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

그것을 본 모두가 깨달았다.

그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쏴! 후방이 열리더라도 상관없어!”

비공정이 포격을 개시했다.

뒤에서 몰려들어오는 티아마트의 권속을 막는 걸 포기하고 모든 화력을 티아마트에게 집중했다.

남은 벨제불의 권속들도 움직였다.

박사가 마기를 끌어모았다.

그의 마기에 조종당하는 언데드들이 앞으로 모이더니, 살아 움직이는 시체들이 진흙처럼 녹아 검은 마기로 승화되었다.

그 모든 마기를 모아, 박사가 납음부존지망을 발사했다.

본 드래곤의 그것보다 거대한 마기의 집합체가 쏘아져 날아갔다.

검은 강물이 지면을 질질 녹이며 뱀처럼 기어 티아마트의 장벽을 타격했다.

“크아아아아!”

레드 드래곤이 울부짖었다.

파충류의 배가 풍선처럼 부풀고, 이빨로 가득한 입이 열리며 구강 안쪽에서 마법진이 짜였다.

초거대 플레어가 작렬.

그 뒤를 따라 불사조가 화염의 불줄기를, 황금색의 뇌조가 초절의 번개를 뿜었다.

그리고 신수에 속하는 괴물들의 포격 위에 떠오른 자가 또 하나.

높게 날아오른 하얀 면사포의 여인, 기린의 화신이 마력을 모으고 내리쳤다.

콰아아아앗!

절대영도의 에너지가 광역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 경로와 범위 내에 존재하는 모든 공기 중 수분이 얼어붙으며 눈싸라기가 휘몰아쳤다.

콰콰콰콰콰!

수없이 많은 극대소멸공격이 티아마트의 방어막을 때렸다.

그들이 피워 올리는 열파와 충격에 세상이 뻐그러지며 지축이 뒤흔들렸다.

거대한 장벽이 점진적으로 후퇴를 거듭해 간다.

그리고 김건 역시,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명동권으로 중첩된 진동이 파형을 만들며 뻗어 나간다.

김건은 넘쳐흐르는 마기를 이용한 장벽으로 그것까지 회수하여 힘을 모았다.

몸에서 마력이 쭉쭉 빨려 나갔다.

아마도 이것을 발사하면, 모든 마기가 빠져나가고 일종의 기생체마냥 김건에게 달라붙어 있는 아스타로트와 레이나는 소멸할 것이다.

마기와 동화된 탓에 남을 후유증은 김건이 모두 감당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아스타로트는 킥 웃었다.

- 이걸로 끝이군. 덕분에 재미있었다.

- …….

레이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의 죽음에 미련 따윈 없고, 어쩔 수 없이 돕긴 했지만 그녀는 애초에 김건이라는 인간과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부우우우─

기술이 완성되어 갔다.

딱히 미안하다거나, 슬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일시적으로 동맹을 맺었을 뿐, 아스타로트든 레이나든 원래는 죽여 없애야 할 대상이었으니까.

김건은 입술을 떼었다.

“너희들이 지금까지 벌인 일들을 용서할 수는 없어.”

김건이 두 마인의 힘을 통제한다.

그는 저 먼 하늘 꼭대기에서 비명을 내지르는 티아마트를 올려다보았다.

김건은 마지막을 준비했다.

방금 스스로 말했듯, 그들을 용서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게 하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고마웠다. 너희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 뭐어─?

융통성 따윈 없을 것 같던 남자의 말에 아스타로트가 감탄을 토했다.

그는 낄낄거리며 사념인 채로 배를 잡고 웃었다.

그리고 레이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감사는, 아가씨에게 표하세요.

“……알았어.”

김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들어 올린다. 마지막 진동이 공명하며 웅, 하고 공간 위로 파문이 퍼져 나갔다.

“잘 가라.”

김건이 초진동파를 내쏘았다.

닿는 것을 모조리 물질 분해해 버리는 파동이 날아갔다.

파아아아아아!

전위의 기술로 자아낸 최초이자, 최후의 극대소멸공격이 포효를 토하며 티아마트의 방어막을 들이받았다.

“……!”

마지막 힘이 더해지자, 밀고 당기던 힘의 균형이 단숨에 무너졌다.

투기의 보호막이 스러져 간다.

수르트의 중심에선 스칼렛이 고통과 분노의 괴성을 지르며 영혼을 불태웠다.

“아아아아아앗!”

수르트의 포격이 일순 증폭.

한순간에 티아마트의 방어막이 날아갔다.

그리고 쏘아져 나간 불꽃의 신수가 거침없이 반신의 머리통을 집어삼켰다.

보호막을 펼치느라 약화된 몸뚱이가 순식간에 불탄다.

우뚝 솟은 산처럼 거대한 동체가 불길에 날아가 버리는 모습은 이야기 속에서나 볼만한 광경이었다.

티아마트의 몸체가 불타며 증폭된 열기와 광량에 사거리 밖에 있던 영웅들마저 비명을 지르고, 그것보다 더 커다란 울림이 사방에 번져 나갔다.

우오오오오오오!

티아마트가 비명을 질렀다.

뼈만 남은 채 불길 속에 선 거인은, 그 와중에도 싸움을 지속하기 위해 주먹을 치켜드는 시늉을 했지만.

더 이상 그에겐 팔도, 어깨도, 몸통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화력에 저항하던 외눈의 머리가 함성을 토해 내는 것과 동시에, 거센 화력이 모든 것을 산산조각내고 지나갔다.

포격이 멎었다.

오오오오오─────────────────────────

반신이 서 있던 장소에 남아 있는 것은 그가 남긴 비명의 잔류물뿐이었다.

티아마트가 소멸.

그가 내뿜고 있던 투기로 인한 결계가 해제되며 이상기후 역시 사라졌다.

붉은 안개가 걷혀 나갔다.

부자연스럽게 상공에 모여 있던 먹구름 역시 자연스러운 대기의 흐름에 따라 빠르게 허공에 녹아 사라지며, 그 틈으로 쨍쨍한 태양빛이 축복처럼 쏟아져 영웅들을 비췄다.

승리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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