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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98화 (98/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98화

“뭔데?”

테이블 반대편으로 넘어간 한서리가 노트북의 화면을 바라봤다.

알리시아는 문서 곳곳을 가리키며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한서리는 곧장 대답했다.

“이건 조항이 이상한데?”

“이건 견적이 안 맞아. 일단 반려하고, 제대로 숫자 맞춰 오라고 해.”

“이건…… 애매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괜찮네. 일단 확인하고, 문장 몇 개만 추가해서 명명을 확실하게 해.”

막혔던 부분이 풀리자 알리시아는 기분 좋은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군요.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

한서리는 알리시아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아직 젊은 용족의 얼굴은 눈에 띌 정도로 다크서클이 짖고 피부가 건조했다.

평소와는 달리 호흡도 규칙적이지 않았다.

보아하니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모양이다.

‘최근에 일을 많이 하긴 했지…… 내 분신으로서의 업무도 처리하고, 용족들간의 내부 정치에도 치이고 있으테니…….’

문득 알리시아가 안쓰러워졌다.

한서리는 아예 그녀의 옆에 앉았다.

“같이 봐.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도와줄게.”

“앗, 정말로요? 감사합니다!”

알리시아는 희희낙락하며 자세를 고쳐 앉아 한서리가 노트북의 화면을 보기 쉽게 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이나 같이 작업을 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서리의 휴대기가 알람을 울렸다.

“시간 다 됐네.”

매일매일 지구상의 위치에 상관없이 고정된 시간에 맞춰 놓은 알람이라 따로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한서리는 조금의 주저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가 볼게.”

알리시아는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항상 퇴근시간은 칼같으시군요…….”

“당연하지, 그래야 그이랑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

엄숙하게 대답을 하고는 잠깐 벗어 놓은 외투와 짐을 챙긴다.

한서리는 알리시아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쳐다보아도 개의치 않았다.

“그럼 고생해.”

가볍게 인사를 하고 등을 돌린다.

그런 한서리의 발걸음을 붙잡는 소리가 있었다.

“히잉.”

“…….”

한서리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알리시아를 바라보았다.

“……너, 나이가 몇인데 그런 소리를 내?”

삐죽, 알리시아의 입술이 튀어나왔다.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인간 기준으로는 그래 봐야 서른 정도예요. 게다가 나이고 뭐고 다 쓸모없어요. 오래 살았어도 맨 쌈박질만 하고 살았지, 이런 업무를 시작한지는 3년밖에 안 된 초보란 말입니다.”

그런 줄은 알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나이에 연연하지 않는 스타일인 모양이다.

한서리는 혀를 찼다.

알리시아는 대놓고 우는 소리를 냈다.

“조금만 더 도와주시면 안 됩니까? 저도 퇴근 좀 하고 싶습니다. 요즘 아주 죽겠어요.”

“…….”

알리시아를 이 자리에 앉힌 건 한서리다. 그러니 그녀가 겪는 고초에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아, 한서리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이야.”

그러고는 짐을 내려놓고 알리시아의 옆자리에 앉았다.

“역시 팀장님!”

알리시아는 아이처럼 좋아하며 한서리를 끌어안았다.

한서리는 징그럽게 달라붙는 자신의 권속을 떼어 내며 피식 웃었다.

“하여튼…… 농땡이 부리지 말고 얼른 보기나 해.”

그렇게 두 사람은 어깨를 붙이고 앉아 빠른 퇴근을 위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 * *

“다녀왔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주방에서 나오는 남편이 보였다.

김건은 부드럽게 웃으며 아내를 맞이했다.

“어서와.”

한서리는 바로 사과했다.

“미안해…… 좀 늦었지? 알리시아를 도와주느라…….”

“괜찮아. 도와주는 게 맞지. 요즘 엄청 고생하는 것 같던데.”

“다 자기 좋자고 하는 일인데 뭐. 고생 좀 해도 돼.”

두 사람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안쪽의 식탁에는 이미 한상이 다 차려져 있었다.

두 사람의 고향 음식인 한식. 퇴근 시간에 맞게 내놓은 밥과 국이 따끈따끈한 김을 뿜고 있었다.

두 사람은 상을 중앙에 두고 마주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식사가 시작되었다.

바깥에서와는 달리 집에서는 예의범절이나 품위를 신경 쓸 필요도 없다. 배가 고팠던 한서리는 빠르게 젓가락을 놀렸다.

“음~.”

맛있었다. 반찬 하나하나가 다.

메뉴 구성도 완벽했다.

남편은 그녀의 취향도 잘 알았다. 정갈한 음식을 좋아하는 한서리의 입맛에 맞게 대부분의 요리가 담백하고 깊은 맛을 가지고 있었다.

너무 심심해지지 않도록 강한 맛을 지닌 반찬이나 재료들도 곳곳이 숨어 있었다.

대부분의 요리들이 나름 공부를 한 한서리가 이름을 모를 만큼 복잡한 음식들이었다.

때문에 한서리는 이렇게 밖에 감상을 표할 수 없었다.

“엄청 맛있어!”

“많이 먹어.”

김건은 웃었다.

한참이나 식사를 즐기던 한서리가 말을 꺼냈다.

“당신은 실력이 점점 더 느는 것 같네. 난 칼 잡는 법도 잊어버린 것 같은데.”

회사 운영, 거기에 알리시아의 도움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기린의 화신으로 용족까지 통솔하는 위치에 있다 보니 너무 바빴다.

처음에 요리를 시작해 김건을 가르친 건 한서리였지만 그녀는 3년간 주방에 제대로 들어가 본 적도 없었다.

그동안 살림을 떠맡은 김건은 엄청나게 실력이 늘었다.

한서리의 요리 스승이자 친구인 메리안의 요리가 완성된 집밥이라는 느낌이라면, 김건의 요리는 완전히 프로, 셰프라 불릴 사람들이 만드는 음식 같았다.

김건은 피식 웃었다.

“도장에 아이들이 많으니까. 몸 만들려고 먹는 건 대부분 맛이 없어서 싫어하거든. 녀석들 입맛에 맞추려고 연구하다 보니까 늘은 거지.”

“당신, 관장 역할까지 하면서 애들 밥까지 챙기는 건 힘들지 않아? 전문 요리사를 고용하면 되잖아.”

“괜찮아. 다른 사람 손을 거치게 되면 애들 상태를 파악하기도 힘들고…… 나름 재미있어. 연구하는 보람이 있거든.”

그 뜻이 그렇다면 됐다.

한서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식사를 재개했다.

식사를 마치자 한서리는 자연스럽게 설거지를 했다.

그사이 김건은 차를 끓이고 다과를 내와 후식을 준비했다.

정식으로 결혼을 하고 살림을 차린 지 삼 년.

두 사람의 생활은 평화로웠다.

한서리는 용왕과 유명 기업가의 이중 생활로 시장의 흐름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이 그녀의 주머니에서 흘러넘쳤다.

한서리와 비견할 수는 없겠지만 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건의 수입도 만만치 않았다.

하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호화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둘만의 공간에 끼어드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서로가 빨래한 옷을 입고, 서로가 요리한 음식을 먹으며 서로가 청소한 집에서 살아가는 것이 훨씬 편하고 좋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성미가 맞았다. 그리고 둘 다 성실한 성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생활이 규칙적이었다.

식사 시간을 마친 뒤, 집을 정리하고 난 두 사람은 가볍게 공동 시간을 가졌다.

영화를 보거나, 독서를 하거나, 보드 게임, 혹은 다른 취미 활동을 하며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몇 시간을 놀다가 자기 전에 각자의 개인 시간에 서로 할 일을 마무리 짓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 두 사람의 루틴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새로 생긴 루틴이 하나 더 있었다.

“음, 으으으으음.”

“아, 거기, 거기가 좋은 것 같아.”

침대에 누워서 않는 소리를 내는 한서리.

김건은 그런 그녀의 등허리를 지압하며 피식 웃었다.

“운동 좀 해야겠어. 근육도 뭉쳐 있고…… 만져 보니까 체지방률도 점점 오르고 있는 것 같네.”

엎드려 있던 한서리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응? 혹시 나…… 살쪘어?”

전사로서 한계까지 갈고닦은 김건의 감각은 엄청나게 예민했다. 어지간한 측정기기는 필요도 없을 정도다.

그런 그가 말했다.

“응. 손 느낌으로는 한 2킬로그램 정도 늘은 것 같네. 배 쪽의 지방을 만져 보면 정확히…….”

그러면서 등에 위치하고 있던 손이 아래로 내려갔다.

허리 부근에 닿으려고 하는 손.

한서리는 재빨리 그것을 붙잡았다. 새빨개진 얼굴을 보이지 않도록 베개에 고개를 파묻으며 웅얼거렸다.

“만지지 마. 마, 만지면…… 화, 화낼 거니까……!”

“그래. 그래.”

기본적으로 마른 체형이어서 그런지, 한서리는 살이 쪘다는 말에 엄청나게 민감한 편이었다.

김건은 그 필사적인 방어를 억지로 뚫으려 하거나 장난을 치지 않았다. 그저 웃으며 베개에 파묻힌 머리 위를 쓰다듬어 주었을 뿐이다.

그는 이제 아내의 하체를 주무르며 말을 이었다.

“일도 좋지만 건강도 생각해야지. 요즘 지켜보니까 앉는 자세도 삐뚤어졌어. 허리에 안 좋아.”

“……당신, 애들 가르치는 일을 하더니 잔소리가 엄청 늘었네.”

뾰로통한 목소리로 한서리가 중얼거렸다. 그는 킥 웃으며 짓궂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데에서는 당신도 애들이랑 다를 바 없어.”

“…….”

“물론, 애들보다 당신이 나한테는 훨씬 중요하지만.”

“……그런 건 말로만 하는 게 아니야.”

이제는 아내의 어리광을 받아 주는 데에도 익숙해졌다.

김건은 살짝 자세를 낮춰 새하얀 아내의 허벅지에 살짝 입술을 맞춰 주었다.

마사지가 끝났다.

몸을 돌려 정자세로 누운 한서리는 하아, 한숨을 쉬면서 늘어졌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까딱여 남편에게 신호를 보냈다.

“아이고.”

그게 무슨 신호인지 아는 김건은 바로 아내의 옆에 가 누웠다.

응석받이처럼 안겨 오는 한서리를 안아 주며 등허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처럼 품속에서 꼼지락거리는 아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내일 새해맞이 저녁 약속 있는 거 알지? 다들 일곱 시에 모이기로 했으니까 늦지 않게…….”

슬그머니 올라온 손가락이 입을 막았다.

다시 한번 하아- 낮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옷자락을 꽉 쥐며 이쪽을 올려다보는 아내의 얼굴이 보였다.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거야?”

“나 참.”

김건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천천히 고개를 내려 아내의 얼굴에 입을 맞췄다.

* * *

다음 날.

채비를 마친 김건과 한서리는 바로 게이트를 타고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유럽의 한 산간 지방에 위치한 시골.

워낙 구석진 곳이다 보니 아직도 게이트 설비가 만들어져 있지 않았다.

그들은 게이트를 타고 근처의 도심으로 이동한 뒤, 비행 택시를 이용해 날아갔다.

그렇게 도착한 마을은 정말 한적한 곳이었다.

총 인구가 200명도 되지 않는 작은 마을.

얼마 전에 눈이 내렸는지 주변은 새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집 앞에 나와 눈을 치우던 마을 사람들 중 몇몇이 낯이 익은 두 사람을 보고 인사를 건넸다.

한서리와 김건은 적당히 마주 인사를 하며 걸어가다가 마침내 한 집의 앞에서 멈췄다.

작지만 꽤 그럴듯한 집이었다.

안에서 바깥쪽으로 비치는 황색 빛이 왠지 모르게 따뜻한 분위기를 풍겼다.

문 안쪽으로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커튼 사이로 비치는 그림자들을 보아하니 모두들 와 있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생체 정보는 집의 보안 장치에 이미 등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문을 두드릴 필요는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맛있는 요리의 향기와 따뜻한 온기가 뻗어 나오며 환한 풍경이 그들을 맞이했다.

“오! 친구들!”

거실에 놓인 큰 테이블의 앞에 앉아 맥주잔을 들고 낄낄거리던 세라스가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그동안 많이 변했다.

긴 머리를 땋아 어깨 앞으로 늘어트렸고, 체구도 좀 더 좋아졌다.

말괄량이 같던 부잣집 아가씨가 어느새 성숙한 분위기의 날렵한 여전사가 되었다.

김건과 한서리, 두 사람이 다가가자 세라스는 쓱 주먹을 내밀었다.

김건은 마주 주먹을 들어 그녀와 맞부딪치곤 씨익 웃었다.

“실력이 더 좋아졌는데.”

“난 성장하는 여자거든.”

세라스는 그러면서 반대쪽 손을 들어 올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마주쳐 하이파이브를 한 한서리는 비웃음을 띠었다.

“성장해 봐야 이이한테는 안 될걸?”

친구의 농담에 세라스는 킥킥 웃었다.

“그게 현역에서 물러난 인간이 할 소리야?”

가볍게 맞받아쳐 주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나니 거실 안쪽의 주방으로부터 집주인 두 사람이 등장했다.

발할라 잠정 폐교가 결정되자마자 영웅을 그만두고 살림을 차려 새 삶을 시작한 네드와 메리안 커플이었다.

요리를 하는 중이었는지, 앞치마에 물기를 닦던 메리안이 부드럽게 두 사람을 맞이했다.

“어서 와.”

“오랜만이야.”

김건과 한서리, 네드와 메리안 두 커플은 서로 포옹을 나눴다.

그다음에 한서리의 시선이 향한 것은 네드 쪽이었다. 그녀는 네드의 품에 안겨 있는 아기에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못 보는 동안 많이 컸네.”

보기 드물게 활짝 웃으며 아기의 뺨을 쓰다듬었다.

아기는 기분이 좋은 듯 꺅꺅 웃으며 한서리의 손가락을 붙잡았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세라스가 말했다.

“귀엽지? 하아, 나도 이럴 때 보면 확 결혼이나 해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

“너 같은 선머슴이랑 결혼할 놈이 어디 있겠냐.”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네드와 메리안의 뒤를 따라 어마어마한 덩치가 주방에서 빠져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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