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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99화 (99/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99화

2미터짜리 근육 덩어리.

발할라의 교수이자 부수지 못하는 건 없다고 전해지는 세계 제일의 전사, 에디 슐츠였다.

그는 비웃는 기색으로 세라스를 내려다보았다.

“결혼을 하고 싶으면 욱하는 그 성질머리부터 죽여.”

세라스는 핀잔을 주었다.

“흥, 교수님이 그 말을 할 입장은 아니잖아요? 본인이 결혼한 사람이 누군지 잘 생각해 보시죠.”

그 말에 에디는 켁, 하는 소릴 내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뒤에서 다른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그거, 지금 내 욕을 한 거지?”

카랑카랑한 신경질적인 목소리.

그러면서 에디의 뒤에서 휠체어에 앉은 사람이 빠져나왔다.

피처럼 붉던 머리가 반백이 되었다.

하지만 온 세상을 적으로 두더라도 코웃음으로 넘길 것 같던 자신감 넘치는 얼굴은 여전했다.

“세라스, 아무래도 넌 혼 좀 나야겠다.”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반신을 소멸시킨 장본인.

티아마트의 반신과 벌인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던 전쟁 영웅.

스칼렛 발렌타인은 사나운 미소를 지었다.

* * *

티아마트를 쓰러트리고, 기린의 권속들을 받아들이면서 세상은 크게 변했다.

계속된 사건으로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게이트 발생량의 감소로 할 일까지 줄어든 발하라 역시 세태에 맞추어 크게 변했다.

사이먼 베이커의 은퇴를 시작으로 기존에 있던 선배격 영웅들이 대거 이탈, 새로운 시대를 시작할 자들은 티아마트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노제 프레데리카의 아래에 모여 기존의 발할라를 새로운 집단으로 재탄생시켰다.

에디 슐츠와 스칼렛 발렌타인은 그 변화에 맞춰 새로운 삶을 시작한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워 티아마트를 소멸시킨 스칼렛 발렌타인.

그 대가로 그녀는 뇌에 영구적인 타격을 입었고, 일상생활조차 힘겨운 장애인이 된 채 영웅에서 은퇴했다.

그런데 웬걸, 돌연 에디 슐츠가 그녀를 따라 은퇴를 했다.

그리고 갑자기 스칼렛과의 결혼을 선포해 버렸다.

얼굴만 마주치면 싸우기만 하던 두 사람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좋았고, 은퇴한 두 사람은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잔잔한 요양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김건과 한서리.

네드와 메리안.

에디와 스칼렛.

그리고 세라스.

세 부부와 독신 한 명은 테이블을 놓고 앉아 새해 맞이 만찬을 즐기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와구 와구, 크게 뜯어낸 칠면조의 다리를 복스럽게 씹어 먹던 세라스가 에디에게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둘이 어디서 눈이 맞았는지 아직도 모르겠는데. 그건 대체 언제 알려 줄 거예요?”

에디는 킁 하고 크게 콧김을 뿜었다.

“미쳤냐. 그걸 너한테 말하게.”

에디가 손질해 놓은 고기를 포크로 찍어 먹던 스칼렛은 눈을 부라렸다.

“입 다물어. 이 지지배야. 입술 다 꿰매 버리기 전에.”

“…….”

농담 한 마디에도 저 정도다.

김건은 머리를 저었다.

가정을 꾸렸지만 둘 다 그 난폭한 성격은 그대로였다. 저런 사람들이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다고 상상하면 왠지 활활 불타오르는 모습만 떠오르는데, 의외로 주변인들의 말을 들어 보면 조용히 잘 지낸다고 했다.

김건은 그것이 참 신기했다.

다음에는 메리안이 입을 열었다.

“세라스는 어때? 특무대 생활은 좀 체질에 맞아?”

세계가 바뀌기 시작하자 제일 큰 영향을 맏은 것은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영웅 및 헌터 계열 직업이었다.

줄어든 게이트 수, 그리고 이주해 온 용족들이 지구의 자원을 활용해 공급하기 시작한 마계의 원재료.

몬스터들로부터 사람을 지키고 그렇게 얻은 재료로 막대한 이득을 챙기던 헌터 사업은 급격하게 파이가 줄어들었다.

수많은 영웅과 헌터들이 경쟁에 밀려 길바닥에 나앉았고, 그렇게 갈 길을 잃은 힘은 빠르게 변질을 일으켰다.

3년 간 몬스터의 침입이 줄어든 대신 마법, 오라 등의 초능을 이용한 범죄율이 급격하게 는 것이다.

영웅을 키우는 조직이었던 발할라는 기존의 발할라 특무대의 역할을 급격하게 확장시켜, 천방지축 날뛰는 초인들을 때려잡는 조직으로 개편되었다.

세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쓰레기들이 성실한 사람들한테 손대는 꼴을 보고 있으면 속이 뒤집히거든. 그걸 합법적으로 쥐어 패줄 수 있으니까 참 좋지.”

범죄자들과 부대끼는 삶을 살다 보니 입담도 험해졌다.

가볍게 쓴웃음을 지은 메리안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리는? 뉴스에 자주 나오긴 하는데 그걸로는 잘 지내는지는 잘 모르겠어.”

한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잘 지내지 뭐. 매일 회의만 할 뿐인데.”

술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세라스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듣자 하니 그 기린의 화신이랑 자주 이야기한다며? 어때? 그 면사포 안쪽을 본 적 있어?”

그 안쪽의 얼굴이 자기자신, 혹은 자신의 권속의 것이라고는 말 못한다.

한서리는 시치미를 뗐다.

“없어. 인간들 중에 그 얼굴을 본 사람은 없는 것 같아.”

흐음, 세라스는 콧소리를 흘렸다. 과거에 마주친 새하얀 면사포를 떠올리며 말했다.

“잠깐 본 게 전부지만…… 전에 봤을 때는 꽤 차가운 인상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목소리도 딱딱하고. 왠지 너랑 좀 닮았을 것 같아서 궁금해.”

“…….”

농담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이럴 때 뜨끔한 느낌이 드는 것은 비밀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김건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고, 한서리는 피식 웃었다.

“그거 칭찬이야? 그러면 고맙게 받아들일게.”

가볍게 그것을 받아넘긴 그녀는 자연스레 화제를 돌렸다.

“일 이야기는 됐고, 넌 결혼 안 해? 슬슬 짝을 찾아볼 때도 됐다 싶은데.”

세라스는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지금 당장은 생각 없어. 너희들 결혼 생활하는 거 보면 정말 어지간한 남자 아니고서는 같이 그렇게 못할 거 같거든.”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그 뒤를 따라붙었다.

모두의 고개가 한편에 앉아 있는 빨갛고 하얀빛이 뒤섞인 여자에게 향했다.

스칼렛이 말했다.

“그런데, 그게 또 어떻게 되더라고. 참 웃기게 말이야.”

그녀는 그러면서 팔꿈치로 에디의 옆구리를 쳤다.

에디는 인상을 찌푸리며 옆구리를 만지작거렸다.

“이 여편네가…… 어딜 하늘같은 서방님의 옆구리를…….”

“하늘은 무슨, 똥통 같은 서방이겠지.”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언젠가 저렇게 별것도 아닌 걸로 소리를 드높이며 싸우는 모습을 봤다.

테이블의 모두가 저걸 어떻게 말릴까, 고민하던 찰나에 갑자기 스칼렛이 웃었다.

“어? 감히 성질을 부려?”

“…….”

한마디에 에디의 기세가 확 죽었다.

부리부리하던 눈동자가 방향을 찾지 못하고 흔들리더니, 이내 테이블 위의 음식으로 향했다.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나이프로 고기를 썰기 시작한다.

그 묘한 분위기를 보고 무언가를 눈치챈 메리안이 스칼렛을 바라보았다.

“언니, 혹시…….”

씨익, 스칼렛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그래, 임신했어. 2개월? 정도라고 하더라.”

“와, 진짜?! 축하해!”

세라스가 와하하하 웃으며 박수를 쳤다.

모두들 그것에 동조해 축복의 말을 쏟아부었다.

“축하드립니다.”

김건은 그렇게 말하며 옆에 앉은 에디의 어깨를 툭 두들겼다.

“…….”

에디는 답하지 않았다.

김건은 난생 처음으로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남자의 쑥스러운 얼굴을 보았다.

흐뭇한 표정으로 에디를 지켜보던 김건은 문득 옆자리의 사람이 조용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쪽을 돌아보았다.

미소를 짓고 있는 아내가 보였다.

하지만 그 미소가 지어 낸 것이라는 것을, 그는 한눈에 깨달을 수 있었다.

“…….”

그는 말없이, 그저 아내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 * *

지인들끼리의 파티를 마치고, 김건과 한서리는 집에 돌아왔다.

김건은 아까부터 말이 없는 한서리를 돌아보았다.

‘아이 때문인가.’

두 사람은 티아마트를 추방한 이후, 발할라가 재편하자마자 바로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회귀하기 전과 달리 안정된 사회를 살아가며 3년이나 결혼 생활을 해 왔지만 두 사람은 아직까지 아이가 없었다.

딱히 아이를 피했던 건 아니다. 그저 왠지 운명이 계속해서 그들을 비껴 가는 듯했다.

아이가 생기지 않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병원은 당연하고 이런저런 검사들을 받아 봤지만, 모두들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정체불명의 원인.

한서리는 그것이 화신의 힘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추측은 추측일 뿐이다.

김건은 아내를 위로해 주기 위해 가볍게 그녀의 어깨를 안아 주었다.

한서리는 그 의도를 눈치채고 피식 웃었다.

“아이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야.”

그녀는 어깨위로 올라온 남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녀가 품고 있던 진짜 고민에 대해 말했다.

“처음 돌아왔을 때…… 우리가 세웠던 목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어.”

“우리의 목표?”

김건은 과거를 돌이켜 보았다.

회귀하여 아카데미에서 아내를 만나고, 그다음 날에 들었던 아내의 계획.

그것은 임시방편인 계획이었다.

세 마신의 힘을 축소시켜 이 세계를 잠식해 가는 그들의 움직임을 둔화시킨다.

두 사람이 충분히 살며 삶을 즐길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원하던 것을 손에 넣었다.

비록,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았으나 어찌 되었든 간에, 원했던 목표를 달성한 것은 확실했다.

그런데 대체 고민할 것이 뭐가 있을까.

김건은 오늘 있었던 일과, 아내가 한 말의 의미를 되새김질해 보았다.

“…….”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거야?”

한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녀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는 그냥 우리만 생각했어. 다른 사람들이 어찌 되는 가는 신경도 쓰지 않았지. 그럴 여유도 없었고. 하지만…… 요즘 아이들을 보니까…… 이대로 끝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김건이라고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가 차린 도장에 다니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언젠가 그 아이들에게 덮쳐 올 시련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가르쳤다.

기술을, 싸워 나가기 위한 마음가짐을.

하지만 그의 아내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한서리가 말을 이었다.

“티아마트와 벨제불의 행동이 재개되는 건 시간문제야. 그저 호기심에 건드렸다가 뜨거운 맛을 보고 잠깐 손을 뗀 것에 불과해. 그저 그들의 찰나가 우리의 평생과 맞먹을 뿐이지.”

“…….”

“게이트는 다시 늘어나기 시작할 거고, 벨제불과 티아마트는 다시 이 세계를 노리기 시작할 거야. 그때쯤이면 우리는 죽어 사라졌을지도 몰라. 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이곳에서 살아가야 해.”

근본적인 원인의 해결.

한서리가 말하는 것은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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