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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01화 (101/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01화

“음.”

티리온이 콧소리를 흘렸다.

김건이 칼을 물리고, 티리온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한 판이 끝났다.

두 사람은 가볍게 서로를 향해 목례를 했다.

언뜻 보기에는 싱거운 승부.

하지만 결착이 난 뒤에 보면 언제나 싱거운 것이 승부라는 것이다.

그런 싱거운 것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해 언젠가 있을 실전에 대비한다.

그것이 바로 수련이요, 단련이었다.

티리온이 말했다.

“바로 이어서 하지.”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다음 판을 준비했다.

그렇게 수십 번이나 합을 주고받고, 승패를 가르며 전투의 향방을 복기하여 서로의 단점과 약점을 잡아 주기를 수 시간.

두 사람의 수련은 정오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수련을 마친 두 사람은 연무장 옆에 마련된 시설에서 샤워를 마치고 게이트를 타고 도심으로 나갔다.

항상 들르는 단골 음식점에서 주문을 마치고 나서야 티리온이 입을 열었다.

“24승 15패…… 이젠 내가 뭘 더 가르쳐 줄 필요도 없겠군. 이젠 무기술로도 명백히 네 실력이 더 위야.”

“그것도 다 형님 덕이죠.”

김건은 그렇게 말하면서 슬쩍 웃었다.

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의미가 다 보였다. 티리온은 눈썹을 찌푸러트리며 투덜거렸다.

“나도 알아. 내 실력이 떨어졌다는 것쯤은. 제대로 된 전투를 치른 지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났어. 나이도 들었고.”

그는 이제 서른이 넘었다.

찰나의 순간에 목숨을 맡기는 전위는 후위보다 전성기가 훨씬 짧았다.

젊은 육체는 반응도 빠르며, 세상사의 풍파에 깎이지 않은 자존심은 망설임 없이 대담한 수를 질러 낸다.

반면 나이가 들고 삶을 겪다 보면 자연스레 반응이 늦고 생각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많은 경험이 꼭 좋은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건 아닌 것이다.

음식은 금방 나왔다.

두 사람이 시킨 것은 고기죽. 생선살과 돼지고기, 고기 완자 등 단백질과 지방이 듬뿍 들어간 건강죽이었다.

두 사람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죽을 퍼먹었다. 뜨끈한 살점과 전분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티리온이 말했다.

“오히려 이상한 건 너야. 너, 티아마트 공략전 이후로 실전을 겪은 적이 있어?”

김건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목숨을 걸고 싸운 적은 한 번도 없어요.”

“허, 그런데도 그 정도로 기량이 유지된다고? 현역이랍시고 몇 번 전투를 치른 나도 이 정도인데.”

티리온은 기가 막힌다는 듯이 혀를 내둘렀다.

전위란 존재는 날이 선 칼날과 같다.

예리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몸에 기름칠을 하고 날을 갈아 주어야 한다.

조금만 관리를 소홀히 해도 칼끝은 무뎌지며, 그 예기에는 녹이 슬기 시작한다.

하지만 정작 김건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전 제 실력이 어느 정도 유지가 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시치미 떼긴. 내가 보기에 너는 그대로야. 아니, 오히려 더 날카로워진 것 같아.”

티리온은 질린다는 기색으로 김건을 바라보았다.

한때 발할라의 선두에 섰었던 티리온 프레이저.

그는 세라스와 마찬가지로 특무대에 들어가 범죄자를 때려잡는 경찰 노릇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슬슬 나이도 차고, 주변에서 그에게 바라는 역할은 현장에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실무에서는 손을 뗀 지가 오래였다.

그가 알기로 김건도 도장만 운영했지,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김건은 실력이 녹슬기는커녕 오히려 스스로의 기량을 더욱 끌어올렸다.

한쪽은 현역으로 있으면서도 실력이 떨어졌는데, 한쪽은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는데 실력이 늘었다.

티리온은 그 이유를 태도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반쯤 먹은 죽에 조미료를 더하며 질문을 던졌다.

“에디 형님이랑도 계속 수련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김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혼하고 나가지를 못하니까 하도 답답해하셔서 제가 어울려 주고 있어요. 덕분에 새로운 발경법도 개발할 수 있었죠.”

“내 무기술을 훔쳐 갔으면 됐지, 형님의 발경법까지? 대체 얼마나 더 강해지려고 하는 거야?”

끝없는 향상심.

그것이 김건과 티리온을 구분짓는 가장 큰 차이였다.

이미 이 평화로운 시대에 녹아든 티리온과 달리, 김건은 항상 행동에 긴장이 서려 있었다.

전쟁을 코앞에 둔 냉전시대 사람마냥 행동하고 있다.

티리은 그가 왜 그러는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대체 왜 그렇게 계속 강해지려고 하는 거야? 이제 영웅의 시대는 갔어. 용족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개편된 발할라 덕분에 군대가 다시 전력의 주류가 되었으니까. 나나 세라스처럼 범죄자라도 상대하는 게 아니라면, 혼자서는 아무리 잘 싸워 봤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그냥 보험입니다. 꼭 전쟁을 앞두고 있는 게 아니더라도 다들 군비는 꾸준히 늘리잖아요? 그거랑 똑같은 거죠. 시대가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고요.”

“서리는 뭐라고 안 해? 스칼렛 누님처럼 눈치를 주지는 않는 것 같은데.”

그 질문에는 김건도 대답이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별말은 안 해요. 하지만 제 행동을 탐탁지 않아 하는 건 알아요. 그저 저를 존중해서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죠.”

특무대 생활을 하며 사회 경험이 풍부해진 티리온은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그것만 해도 대단한 거야. 저번에 기억 안 나? 네가 ‘그 기술’을 개선한답시고 사고를 쳤을 때, 그때는 정말 세상이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고. 오래 지난 것도 아니야. 고작 일 년 전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만큼 배려해 주는 건 진짜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는 거지.”

김건은 앓는 소리를 냈다.

“……그때는 확실히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받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걸 또 겪고 싶진 않네요. 조심해야죠.”

그래도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니 다행이다.

티리온은 혀를 찼다.

“나도 싸움꾼이니까 딱히 네 생각을 부정하진 않아. 하지만 할 만큼 했잖아. 벨제불의 화신을 죽이고, 마인협회와 싸우고, 아수라를 포함해 티아마트의 반신과도 싸웠어. 아직 네 실력이 건재하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이제는 슬슬 그 역할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음…….”

김건이 침음했다. 티리온이 말을 이었다.

“나야 아직 홀몸이니까 그렇다 쳐. 하지만 넌 아니잖아. 생각해 봐, 옆에 사는 사람이 계속해서 그렇게 날을 세우고 긴장 상태를 유지하면 그걸 지켜보는 사람도 불안해져. 서리는 더하겠지. 예민한 애니까.”

김건은 침묵했다.

곤란한 표정으로 한참이나 고민하던 그는 겨우 이 말을 내뱉었다.

“……알고 있어요.”

“그래.”

더 이상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잔소리를 넘어 쓸데없는 참견일 뿐이다.

티리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려놓았던 수저를 집어들었다.

다시 죽을 퍼먹던 그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수저를 멈췄다.

“혹시나 싶어서 묻는 건데.”

“…….”

“뭔가 걸리는 게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겠지?”

걱정, 그것과 동시에 의심이 담긴 시선이 김건에게 꼳힌다.

그 시선에 김건은 삼 년 전에 나눈, 마인과의 대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

하지만 김건은 고도의 전사였고, 속마음을 숨기는 데에 능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피식 웃으며 가볍게 말을 맺었다.

“그런 거 없어요.”

* * *

티리온과 헤어진 김건이 도착한 곳은 아메리카 대륙, 한 대학가에 붙어 있는 커다란 연구소였다.

하지만 그가 발길을 향한 것은 으리으리한 백색의 건물이 아니라 그 옆에 있는 작은 숲이었다.

그리 먼 걸음을 할 필요는 없었다.

조그만 오솔길을 따라 잠시 걷자 곧바로 그가 원하던 광경이 나타났으니까.

연구소 옆에 위치한 작은 공터, 그 안쪽에는 커다란 창고가 지어져 있었다.

창고는 허름했다. 기름때가 얼룩덜룩하고 열려 있는 문 안쪽으로 조잡한 잡동사니가 쓰레기처럼 쌓여 있었다.

연구소로부터 끌어왔는지, 사방에서 이어져 있는 동력선이 안으로 이어져 있었다.

김건은 잡동사니를 무너트리거나 동력선을 건드리지 않도록 발걸음을 조심해 가며 안으로 들어갔다.

파지지지직!

절단기로 쇠를 자르는 소리가 났다.

깡, 깡, 망치 소리가 뒤를 잇는다.

소리를 쫓아가자 확 트인 공간의 작업실이 나타났다.

사방이 강철이었다.

기계와 무쇠로 엮어 낸 갑옷의 파편들이 전선을 흩뿌리며 쓰레기처럼 나뒹굴고 있었다.

한켠에 놓인 작업대, 그곳에서 절단기로 불꽃을 튀겨 가며 작업을 하고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김건은 바로 그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오, 왔어?”

작업을 하던 사람이 손을 놓고 안면 보호대를 들어 올렸다.

기름때와 땀으로 숯검댕이가 되어 있었지만 김건은 쉽게 그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아서 로보타.

한때 마공학 슈츠를 입고 알리시아와 싸웠던 발할라의 교수.

그리고 지금은, 김건에게 받은 의뢰를 처리하고 있는 전문가였다.

아서는 가공 중이던 쇳덩어리를 던져 놓더니, 작은 망치를 들어 머리 위에 매달려 있던 깡통을 깡깡 두들겼다.

“어이! 일어나! 의뢰주님 오셨다!”

그러자 잠시후, 잡동사니 덩어리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 와르르 무너지며 그 아래쪽에서 한 사람이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이런 제길! 다시 쌓아야 하잖아!”

익숙한 얼굴이 욕설을 뱉어 냈다.

떡진 보라색 머리칼이 볼에 달라붙어 있고 커다란 안경이 코끝에 걸려 흔들렸다.

노바 라디스티는 반쯤 쇳덩어리에 파묻혀 거의 헤엄치듯이 그 속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아이고, 제기…… 랄!”

발길에 치이는 잡동사니가 하도 많으니 균형조차 잡지 못하고 휘청거린다.

한참이나 끙끙거리는 노바.

“손 이리 줘요.”

김건은 보다못해 손을 뻗어 그녀를 바깥으로 끄집어내 주었다.

“고마워! 헉! 헉!”

겨우 빠져나온 노바는 죽는 소리를 내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김건은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꼴이 말이 아니었다. 전에 봤을 때보다 더했다.

트레이드마크처럼 걸치고 다니던 가운은 어느새 없고 작업복뿐이다.

오랫동안 씻지 않았는지 기름 섞인 땀 냄새가 진동을 하고, 손끝이 새까맸다.

그나마 길던 머리를 짧게 자른 게 다행이다. 그게 아니었으면 사자 갈기보다도 더한 꼴을 봤을 테니까.

김건이 말했다.

“상태가 더 안 좋아지신 것 같은데요.”

노바는 희미하게 웃었다.

“아, 조금만 달리면 금방 끝날 것 같아서 밤 좀 샜어.”

김건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버트는요? 오늘 쉬나요?”

“아저씨는 칼 가는 데 기력을 너무 많이 써서 요양 좀 해야겠대. 너한테 안부 전해 달라고 하더라.”

요양을 해야 할 정도로 일을 하다니.

김건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서둘러서 하실 필요 없는데…….”

“아니, 아니, 괜찮아. 돈도 충분히 받았고, 덕분에 재미있는 경험도 많이 했으니까.”

손을 저으며 사양을 표한 노바는 이내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씨익 웃었다.

“그럼 따라와. 우리 의뢰주님한테 완성품을 보여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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